폭풍우
조정희 지음 / BG북갤러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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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깊이, 몸을 들여다볼 때가 있다.
특히 어디가 아프거나 할 때.
통증은 좀체 잊을 수가 없는 감각이다. 그래서 일부러 마음먹고 오롯이 그것만 느끼려고 덤벼들었던 기억이 있다. 통증과 하나가 되려고 집중했다. 그런데 그렇게 집중을 하고 있으니 통증의 실체가 모호해졌다. 도대체 어디가 아픈 거지? 어디라고 콕 찍을 수 없는 통증의 장소. 분명 나의 몸인데 어디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잘 설명되지 않는 말로 억지로 표현을 해본다면,
‘내 몸이 몹시 혼돈의 상태에 놓여 있다.’ 이다.
난 아픈 게 아니었다. 어떤 부분이 몹시 혼돈상태에 빠져있을 뿐이었다. 잠시 평화가 떠난 상태라고나 할까. 그렇게 혼돈의 몸을 느끼고 있으니 통증은 통증으로써가 아니라 하나의 강렬한 감각으로 다가왔다. 통증을 잊으려고 시작했다고 치면 어느 정도 성공한 셈이었다.

통증은 생물의 생존에 꼭 필요한 감각이라고 한다.
아주 드물게 통각이 없는 사람이 있다고. 참 좋겠다 싶지만, 그 사람에겐 가벼운 상처도 목숨을 가져갈 수 있는 상처가 될 수 있다. 살이 찢어져도 아프지 않으니 신속한 조치를 취할 시기를 놓치기가 훨씬 쉽지 않겠는가.
통증을 들여다보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을 이루고 있는 것 중 필요 없는 것이 있을까. 이렇게 정밀한 기계가 그럴 리가 없다. 그렇다면 내가 느끼는 감각 중 필요 없는 게 있을까. 그것도 그럴 리가 없다. 통증조차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던가. 그렇게 생각하니 견디기가 좀 쉬웠다.
그 후론,
난 아플 때마다 그 때 경험을 떠올리며 통증을 좀 가볍게 하려는 버릇이 생겼다.

***

소설 <폭풍우>.
제목을 보았을 땐, 폭풍우 같은 사랑? 폭풍의 언덕? 그런 생각이 지나갔다.


하지만 그 생각은 길게 하지 않았다. 소설의 제목이 소설을 잘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또 소설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역시, 그건 아니었다.
책을 덮는 데, 그 경험이 떠올랐다.
그 통증을 바라보던 경험이.
그리고 번개처럼 스쳐간 생각.
혹 ‘폭풍우’는 자연에 꼭 필요한 통증이 아닐까.
작가는 <폭풍우>란 제목을 그런 의도로 지은 것이 아닐까, 하는.
사나운 바람과 억수같은 비. 폭풍우!
자연과 생명체에겐 두렵고 힘든 통증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자연에 존재하는 것 중에 필요하지 않은 게 있을까. 생명체를 이루고 있는 것 중에 필요 없는 기관은 있을까. 식물도, 동물도, 물론 인간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우주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 중 필요 없는 것이 있을까. 그리고 통증처럼 두렵고 기피하고 싶은 것일수록 더욱 존재를 빛나게 하는 장치가 아닐까.
그걸 견디고 이겨낸 자연에겐.

<폭풍우>란 제목이 바로 그런 의도를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감히 판단한다. 내 판단이 맞아야 그 제목과 내용이 정말 매력적으로 연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런 줄거리 소개도 없는 나의 감상문에 불만이 있는 독자가 계시다면 좀 미안하지만 지금 기분엔 도저히 줄거리를 쓸 수가 없다. 그냥 충만한 감상만으로 너무 벅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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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모네 2015-05-14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상문에 감동받고 돌아가요.....

솔방울 2015-06-16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문학은 열린세계라더니,,,,어떤 글이기에 이런 감상평이 나오나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