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환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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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96285일 미국의 영화배우 마릴린 몬로가 죽었다.

마릴린 몬로를 좋아한 30다나카 가즈미치란 남자, 남자는 일본도로 동네 주민에게 칼을 휘둘러 3명이 죽고 5명이 다치고 사건현장에 한 살의 여아가 살아남았다.

 

그는 왜 칼을 휘둘렀을까?

붉은 막대기처럼 보였다는 피에 젖은 일본도’, 그리고 살아남은 한 살 여자아이.

난 책속으로 뛰어들어 주인공 아카야마 리노를 따라 간다.

 

리노는 오늘 사촌오빠가 갑자기 창문을 열고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전화를 받는다. 사촌오빠 도리이 나오토팬드럼이란 밴드에서 키보드를 맡고 있고 친구 오스기 마사야와 공동 작곡도 하는 재능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촌오빠의 이유가 분명치 않은 자살.

그리고 그녀에게 새로운 사건이 하나 더 일어난다.

할아버지 아키야마 슈지의 타살, 그리고 할아버지가 키우던 나팔꽃 화분이 사라진다. 에도 시절에 있었다던 이제는 사라져 버린 노란색 나팔꽃’. 이 나팔꽃 씨앗을 먹으면 환각 증세가 나타나므로 몽환화라고도 불린다.

 

몽환화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비밀스런 일들. 거기에 관련된 사람은 한두명이 아니다. 사건의 중심을 향해 움직이는 주인공 리노, 나도 리노의 뒤를 따른다.

나는 리노를 따라 도쿄의 거리로 나선다.

오모데 산도 거리의 카페에서 몽환화를 뒤쫓는 경찰관 가모 요스케를 만나고,

그 인연으로 요스케의 동생 소타도 만난다.

리노소타는 사건의 중심에 떠오른 몽환화에 대한 같은 궁금증으로 뜻이 통한다.

둘은 진실을 찾아 함께 길을 나선다.

나도 그들을 따라 신주쿠, 시부야 지하철 역 그리고 시나가와, 요코하마까지 걷기도하고 지하철을 타기도 한다.

 

몽환화에 얽힌 사건을 따라가자 뫼비우스의 띠처럼 붉은 깃발의 일본도를 든 다나카 가즈미치를 다시 만나게 되고, 새로운 진실이 고개를 든다. 그리고 노란색 나팔꽃 몽환화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는데,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그리고 흥미를 가지고 읽을 독자를 위해 줄거리 소개는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주인공이 만드는 따뜻한 세상이다.

이번 <몽환화>도 예외는 아니다. 살해당한 할아버지 아키야마 슈지는 정의로운 사람이고 그의 도움을 받은 형사 하야세 료스케는 사건 해결에 전력을 다하는 의리를 보여준다, 그리고 주인공 소타와 냉철한 지성의 소유자인 형 요스케와의 관계에서 독자들은 인간의 궁극의 목표인 따뜻하고 행복한 삶을 발견하게 된다.

일본은 2011년 대지진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원자력 발전소 문제는 일본만이 아닌 세계적인 문제였다. ‘히가시노 게이고도 작가로서 이 문제를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원자력 문제를 노란색 나팔꽃을 쫓아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과 절묘하게 엮어서 <몽환화>에 담았다.

 

주인공 소타는 원자력 공학과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2011년 대지진 이후 자신이 하고 있는 학문에 회의가 들기 시작하는데

 

<책 속에서, 75>

소타, 너는 어떻게 할 거야?”

취직?”

소타의 물음에 후지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아버지는 원자력발전과 관계없는 회사에 들어가길 바라셔.”

, 지금은 그게 타당한 생각이겠지.”

후지무라는 차를 마시며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애써 몇 년씩이나 원자력을 공부했는데 관계없는 회사에 들어가라고? 어쩐지 아깝다고 해야 하나 허무하다고 해야 하나, 받아들이기 힘들어.”

우동 정식을 다 먹은 소타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동감이지만 앞으로를 위해 필요한 생각이야. 세상 이미지가 너무 나빠. 예를 들어 결혼하려는데 여자 쪽에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써야 하고 태어난 아이가 따돌림을 겪는다면 견딜 수 있겠어?“

후지무라는 얼굴을 찡그렸다.

결국 얘기가 그렇게 되나?”

우리가 속은 거야. 국민도 속았다고 생각하겠지만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우리라고. 도대체 뭐가 꿈의 핵연료 사이클이냐! 꿈도 희망도 아니었어.” 소타가 내뱉듯 말했다.

그러니까 너도 원자력과는 연을 끊겠다고?”

당연하지!”

 

그러나 <하가시노 게이고>는 결말 부분에서, 일본에 만연해 있는 원자력 기피에 대해, 학교로 돌아간 주인공 소타의 입을 통해 일본이 해야 할 일을 말하고 있다.

 

<책 속에서, 418>

결론부터 애기하자면 계속하기로 했어소타가 말했다.

계속해? ?”

물론 연구지. 나는 평생 원자력을 연구할 거야.”

후지무라는 눈을 희번덕거렸다.

정말?”

, 정말.”

무슨 소리야? 장래성이 없다고 전에 말했잖아.”

후지무라는 몸을 웅크리듯 팔짱을 꼈다.

“2030년에 가동하는 원자력 발전소가 제로가 된다고 햐도 원자력 발전 자체가 없어지는 건 아니야. 오히려 폐로문제는 그대로 남아. 게다가 오십 기 이상의 원자력 발전소에서 대량의 폐연료봉이 보관되어 있는 상태겠지.”

그야......그렇지.” 후지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인 집은 방치하면 폐가가 돼. 하지만 원자력 발전은 달라. 방치한다고 저절로 페로가 되는게 아니야. 이를테면 발전을 중지해도 엄중하게 관리하고 신중하게 폐로 절차를 밟아야 해.

-중략-

실질적으로 이 나라는 이제 원자력발전에서 도망칠 수 없어. 그런 무서운 선택을 수십 년 전에 이미 내려버린 거야.“

-중략-

네가 얘기하는 바는 알겠는데 그거, 엄청 배고플 거야. 세상으로부터 차가운 시선도 받아야하고, 수십 년이 지나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안게 돼

세상에는 빚이라는 유산도 있어.” 소타가 말했다. “그냥 내버려둬서 사라진다면 그냥 두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는 받아들여야 해. 그게 나라도 괜찮지 않겠어?”,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은 일사천리로 전개된다.

탄탄한 구조와 사건위주로 전개되는 이야기에 궁금증이 가속도가 붙어 단숨에 읽어나가게 만든다. 넓은 강물이 거칠 것 없이 흘러가는 것처럼 시원스럽다.

하지만 너무 빨리 지나와 버려 남는 아쉬움.

일사천리로 전개되는 그의 이야기를 물에 비유하여 생각해 보았다.

이야기는 굽이 없고 경계 없는 넓은 강물처럼 흘러만 갔다. 너무나 잘 흘러가기만 해서 요란한 소리로 떨어지는 폭포의 장쾌함을 맛볼 수도, 깊숙한 계곡을 흘러가는 아름다운 물소리와 빛깔을 느낄 수도 없었다는 것.

감상이 있었던 부분이 있었다면 주인공 소타의 첫사랑 정도랄까....

아님 내가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심각한 사랑의 삼각관계를 기대했나?

 

한 사람의 독자로서 욕심을 내자면 그런 감상에 젖을 시간이 없었다는 것.

물론 감상에 젖기를 원한다면 그런 소설을 찾아 읽으면 되지 않느냐는 비난이 예측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는 게 인간의 심리인 모양이다. 김연아에게 끊임없이 기대와 염원을 품고 있었듯이 말이다. 원래 기대란 감정은 능력자에게 품는 감정이 아니던가. 좋아하고 능력 있는 작가에게 기대를 하고, 그래서 아쉬운마음을 품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것도 사랑의 한 방법이라면, 그런 사랑을 누구를 향해 품어볼 것인가.

히가시노를 사랑하는 독자들이라면 내 심정을 이해해줄 것 같다.

내가 그를 무척 사랑하는 독자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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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꿈결 클래식 1
헤르만 헤세 지음, 박민수 옮김, 김정진 그림 / 꿈결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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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화산처럼 뜨겁게 주목받는 것이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휴화산으로 담담히 우리 기억에 사장된다. 그러나 여기, 멈춤이 없는 화산이 있다.

꿈결 출판사의꿈결 클래식 시리즈’1번으로 새롭게 번역된 <데미안>!

새 번역본 <데미안>을 다시 읽어볼 기회가 생겼다.

맨 처음 <데미안>을 접했던 시절.

<데미안>은 그 시절 청춘의 아이콘이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읽은 <데미안>이 주는 감동은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감동의 내용은 다소 달라졌지만 화산처럼 가슴을 뜨겁게 하는 열기는 전혀 다르지 않았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100년 전,

헤르만 헤세가 살았던 시대,

그 시대의 언어와 사회가 배경이 된 소설.

그리고 청춘시절의 <데미안>이 주었던 감동. 그리고 지금의 이 강렬한 느낌.

나는 여전한 감동으로 가슴이 뜨겁다.

시대를 뛰어넘는 위대한 정신이 나를 흔들고 있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젊다고 밖에 할 수 없던 시절,

흔히 청춘이라고 부르던 그 때,

알 수 없는 미래와 맞닿아 있으면서도 보장된 미래가 없고, 뚜렷한 확신과 방향도 없이 방황하던 대학 시절에 처음으로 <데미안>을 읽었다. 감동을 받은 기억은 있지만 내용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구절.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당시, 나는 그 구절 하나로 나의 불안을 알아챘고, 알을 깨뜨리는 용기로 취업 전선에 뛰어 들었다.

주는 메시지는 달라졌지만 <데미안>은 여전히 활화산이다.

청춘 시절에는, 어린 아이가 가지고 있는 안주라는 을 깨뜨리는 용기를 주었다면 지금은 인간 성찰이라는 새로운 세계의 을 제시하고 있다.

기독교 철학에서는 인간의 본성에 선과 악이 있다고 말한다. 기독교를 믿는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선과 악의 본성 중에서 선을 강조 한다. 중세를 넘어서 헤세가 살았던 20세기 초의 유럽도 신 중심의 세계관을 가진 기독교의 억압이 여전하였고 그러면서 인간 이성의 합리성을 신뢰하는 세계관도 자리 잡아 두 개의 세계관이 공존하던 시절이었다.

헤르만 헤세는 엄격한 개신교 가정에서, 강압적인 기독교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그러나 그의 타고난 성품은 그것을 받아들이기에 너무나 부적합했다. 따르지 않으면 상처가 되었을 흑백논리의 융통성 없는 세계관. 자연에 대한 이해와 인간적 해방을 추구하는 그의 기질과는 너무나 다른 사회 분위기.

그의 글을 읽어보면 그 고통을 아프게 느낄 수 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고통의 어두운 터널.

그가 어두운 터널을 지나서 마침내 밝은 세상을 마주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두운 터널의 아픔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는 작품이 탄생을 했는데, 그 작품이 바로 필명을 에밀 싱클레어로 바꾸어 발표한 소설 <데미안>이다.

<데미안>의 주인공에밀 싱클레어를 통해

그는 당시 기독교적 가치관과 그 세계가 요구하는 질서에 대해서,

그 질서가 요구하는 자연스럽지 못한, 우주의 섭리에 위배되는 것에 대하여,

그리고 자신의 내부에서 끓어오르는 금지된 세계의 욕망과 그 두려움과 매혹에 대하여,

자신이 경험한 방황, 신과의 합일 과정, 아름다운 청춘의 모습에 대하여,

군더더기 없이, 시대를 관통하는 깨어있는 의식으로,

우리에게 웅변한 셈이다.

***

내게 용기를 주었던 문장!

새는 투쟁하며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는 신이 허용한 선의 세계 속에서 안전한 어린양으로 살아가는 주인공 싱클레어에게 금지된, 그러나 강렬한 유혹에 이끌리는 소위 악으로 규정된 다른 세계가 신이 허용한 선의 세계와 동일한 것으로 깨닫고 인정하는 문장이다. 그리고 동시에 신을 벗어나 자아를 회복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자아를 회복한 싱클레어는 자신의 인도자 친구인 데미안에 이르고자 끊임없이 내면의 길을 찾아다니고 마지막 데미안이 곧 자신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264

싱클레어

그가 속삭이듯 말했다. 나는 그에게 말을 알아들었다는 눈짓을 보냈다. 그가 다시 미소를 지었다. 연민에 찬 미소였다.

꼬마야!”

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의 입은 내입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프란츠 크로머를 지금도 기억하니?”

그가 물었다. 나는 그렇다는 뜻의 눈짓을 했고, 미소도 지어 보일 수 이었다.

꼬마 싱클레어, 내말 잘 들어! 나는 떠나야 할 거야. 언제가 프란츠나 그 밖의 다른 일로 다시금 내가 필요할지도 몰라. 그땐 나를 부르면 말이나 기차를 타고서 단번에 달려오진 못할 거야.

그러면 너는 네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해. 그러면 내가 네 안에 있음을 알 게 될 거야. 알겠니? 한 가지 더!

에바 부인이 내게 입맞춤하고는 말했어. 너한테 좋지 못한 일이 생기면, 내가 받은 키스를 네게도 나눠 주라고... 싱클레어, 눈을 감아!”

나는 순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멈출 기미 없이 계속해서 피가 흐르는 내 입술 위로 누군가 가볍게 입맞춤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는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누군가 나를 깨웠다. 붕대를 감기 위해서였다. 가까스로 잠을 깬 나는 얼른 옆자리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사람이 누워 있었다.

싱클레어가 걸어가는 내면의 길에 동참하면서,

인간은 타인과 어울려 수많은 가치관을 서로 나타내고 얽혀있는 세계 속에 있다는 것을, 세상의 모든 것이 선과 악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둘 다가 인간 내면에 들어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의 내면에 깃든 선과 악을 사용하는 주된 자가 나란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나의 유전인자에 들어있는 불교철학과 과하거나 부족함이 없이 떳떳하며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중용을 배운 나에게는 외부의 신이 따로 존재하지 않아 <데미안>의 싱클레어의 깨달음은 어렵지 않게 와 닿았다. 그리고 어떤 종교를 가졌던 간에, 사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같다는 생각도 하게 했다.

그래서 나름대로 이렇게 정의를 내려본다.

<싱클레어의 친구이자 인도자인데미안은 사실 싱클레어에게는 예수그리스도이고,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부인은 성모마리아다.> 라고.

물론 헤세가 정의한 신의 모습과 마리아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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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배신 - 믿음이 어떻게 우리를 지배하는가?
마이클 맥과이어 지음, 정은아 옮김 / 페퍼민트(숨비소리)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나이를 먹다 보니, 아는 사람이 많이 생기고 다양한 분야의 친구도 가지게 되었다. 학교 동창부터 직장동료 그리고 동호회 친구까지

그들과는 공감대와 취미, 의견이 일치하는 경우도 상당히 있지만 서로 활동 분야와 경험, 직종이 다른 만큼 생각도 제각각이고 종교도 마찬가지다. 재미있는 건 어떤 그룹의 사람들을 만나느냐에 따라 모임의 장소, 먹는 음식, 대화 내용도 달라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나의 평가도 그들의 색깔만큼 다른데, 보수적이다, 편협하다. 지나치게 종교적이다, 너무 개방적이다. 와 같은 평들이 그들에 대해 느끼고 있는 나의 생각들이다 

그렇다면 나는 대체 무슨 기준을 가지고 이런 평을 내렸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전율이 왔다.

이것은 내가 나를 아주 객관적인 시각을 가진, 그런 판단을 할 만한 훌륭한 잣대의 소유자라는 착각에서 나온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들에게 내가 읽은 책, 영화 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며 그 영화와 책이 얼마나 괜찮은지 설파하고 보기와 읽기를 권유하고 내가 가보았던 여행지도 꼭 가봐야 한다고 선전하곤 한다. 이런 강요 역시, 내가 좋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며 아름다운 것을 보아낼 눈을 가졌다는 믿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와 정반대의 정치 성향을 가진 친구가 있다.

나의 정치 성향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지만 늘 그 친구와 부딪친다. 그리고 그 친구의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종교가 다른 친구에게 종교를 바꾸라고 슬쩍 이야기하기도 한다. TV에서 내가 좋아하지 않는 정치인의 얼굴이 보일 때는 채널을 돌린다. 말할 것도 없이 인터넷에서 댓글을 읽을 때도 편향되게 내가 좋아하는 글만 읽고 공감을 누르기도 한다. 이런 자신의 믿음을 관철하는 이야기는 수없이 열거할 수 있다.

내가 침을 튀기며 감동을 전했던 인도 여행기를 듣고 인도를 다녀온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친구가 돌아와서 하는 말은 한 마디로 대 실망’. 그리고 그에 대한 나의 반응은 네가 선택한 여행사가 나빴어였다. 이 무슨 해괴한 반응이었단 말인가. 친구의 입장과 시각을 완전 무시한, 결국 친구의 반응에 대한 응답이 아니라 나의 믿음만을 강조한 일방통행이 아니었는지.

이런 믿음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그 해답에 대한 갈증이 이 책으로 인해 제법 해소될 수 있었다. 바로 마이클 맥과이어의 <believing>, 번역서 제목은 <믿음의 배신>이다.

마이클 맥과이어는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캘리포니아 대학의 정신의학 및 행동학부 명예 교수로 인간의 믿음이 어떻게 우리를 지배하는지를 알고 싶어 연구를 시작했다. 그의 연구는 원숭이를 대상으로 하는 생태 관찰 실험에서 인간의 뇌까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고 그 결과물이 이 책이다.

 

저자는 뇌의 특성을 과학적이고 구체적인 설명과 함께, 독자가 믿음의 근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연구 사례를 이용하여 대화형식으로 쉽고 재미있게 알려준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16, 믿음이 어떻게 당신을 지배하는가?’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지었다.

<우리는 선천적으로 믿음을 지니도록 태어났다.

뇌는 믿음을 지닐 준비가 되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을 과대평가한다.

믿음이라는 것은 기쁨과 보상, 자신이 옳다는 생각과 연관되어 있다.

뇌는 간극을 줄이려는 성향을 지닌다.

뇌는 믿음의 발전과 영구적인 보존을 용이하게 하는 수많은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다.

간극만으로 믿음의 강도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믿는 대로 본다.

감정에 따라 무엇을 믿을지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믿음은 모호함과 불확실성을 줄여준다.

믿음은 뇌의 에너지 사용량을 줄여준다.

 

다시 말해 우리는 믿음을 생성하고 그 믿음을 어떻게든 지키려하는 성향을 타고 났으며 이 성향이 의식보다 한발 앞서는 것이다.>

위의 결론 중 인간은 자신이 믿는 대로 본다.”에 대한 그의 주장을 옮겨보면

214쪽

<강력한 믿음은 오래전부터 다뤄온 주제다. 1620년 프랜시스 베이컨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지성은 일단 어떤 생각을 받아들이고 나면 그 생각을 뒷받침하고 차지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끌어 모으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받아들인 생각과 반대되는 중요한 사례들이 더 많이 발견된다고 해도 이를 무시하거나, 경멸을 보내거나, 한쪽으로 치워버리면서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이 이미 내린 결론의 권위가 이러한 치명적인 것들로 침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중략>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믿음을 입증해 주는 증거가 가끔은 상상으로 만들어 질 때가 있다. 또한 인간은 즐거운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믿음을 갈망한다.

<중략>

다시 말해 일단 어떤 믿음이 만들어지면 스스로 권위를 획득하게 되며 이 믿음을 오래도록 이어가기 위해 우리 뇌가 정보를 은밀히 조직한다.

자신이 믿는 대로 보는 경향은 이 책의 또 다른 핵심 주제와도 일치한다.

우리의 뇌는 친숙한 절차와 믿음으로 구성된 문제해결 세트를 지녔을 뿐만 아니라, 모델과 견본 형식으로 일종의 믿음의 서재를 구성해서 이를 통해 정보를 처리하고 설명한다는 것이다.

<중략>

이 서재에 있는 모델의 일부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고 일부는 배운 것이며, 일부는 증거를 기반으로 하고 일부는 상상의 산물이다. 사람들이 이러한 모델의 형태를 의식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사실 그럴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그리고 인간의 믿는 대로 보는 경향 때문에 믿음이 갈수록 번성한다는 우려의 글을 옮겨보면

312

<우리는 자신이 열린 마음에 사려 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길 좋아한다. 가끔 그럴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는 순간들도 많다. 종교, 정치 도덕, 가족, 소수민족, 심미학적 관점, 이웃 , 스포츠계의 영웅, 과학, 정치와 정치인, 이상한 행동과 욕망, 지역정부와 중앙정부, 국제기구, 토지이용, 배우자, 부모, 자녀, 애완동물 등 수많은 대상에 대해 서로 다른 믿음들을 살펴보면 열린 생각과 사려를 찾아 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는 경험 및 지식의 종류와 깊이는 사람마다, 장소마다, 뇌마다 차이를 보인다. 이 때문에 매우 다양한 믿음과 간극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이다. 이를 벗어날 방법은 없다. 비타협적인 믿음들로 가득한 세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론은 매우 암울하다.

인간의 믿음에 대한 근사한 믿음을 계속 간직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훌륭한 답변이 그 속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산다는 것이 순조롭기만 하지 않다. 그런 정도의 인식은 사춘기만 되어도 어렴풋이 알아채기 시작한다. 그러니 이미 인생의 반을 지나온 나 같은 사람들에겐 사무치는 진실이기도 하다.

최근에도 가까운 친구와 불화를 겪으며, 자신과 친구를 탓하고, 자책하고 괴로워하고, 힐링 도서를 찾아 읽으며 위안을 삼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걘 어떻게 그렇게 생겨 먹었어?” 하는 의문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 번개에 맞은 것 같은 느낌으로 답을 얻었다.

이 책을 다 읽어갈 즈음.

불화는, 친구와 나, 두 사람 모두의 문제였다는 것.

각기 다른 비타협적인 믿음을 형성한.

<믿음의 배신>은 내가 만든 믿음이 과학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이타적이지도 않다는, 과학적 증거를 제공해 주었다.

<손자병법>에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나를 알려면 나를 구성한 근본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런 의미에서 <믿음의 배신>을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에게도 권유하고 싶다. 개인의 믿음에 대한 실체를 이해하는 것도 자신을 아는 중요한 방법의 하나임이 분명해 보인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자기계발서, 심리관련 책을 읽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읽어보는 것이 자신을, 더 나아가 인간을 이해하는 더 단단한 초석을 마련하는 길이 될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또한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란 것을 알기에 매우 조심스럽긴 하지만.

믿음의 배신을 통해 나를 분석한 것

1. 나의 믿음은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뇌의 작용,

2. 나의 믿음은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강화되고 고착되어 객관적이지도 완전하지도 않다는 것.

3. 내가 내린 결정은 2번의 완전치 못한 믿음을 기반으로하기 때문에 결정하기 전에 의심을 하라는 것

4. 모든 인간은 자기 믿음을 굳건하게 지키고, 믿는 대로 보기 때문에 잘 바꾸지 못한다. 그러므로  타인의 믿음과 부딪쳤을 때 감정을 앞세우기 보다는 객관적으로 판단하도록 노력하고 상대의 믿음의 자유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것

5. 토론을 할 때 내가 좋아하는 언어가 아니라 타인의 믿음을 설득할 수 있는 객관적 언어로 해야 하므로 내가 싫어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해하는 노력을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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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삶 1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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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을 열기도 전에 설레었다.

책의 표지엔 꾸려진 여행 가방이 열려진 문 앞에 놓여있다.

이 책은 나를 어떤 곳으로 데려갈까.

 

자유’, 가슴이 두근거린다.

자유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뜻에 따라 행동하는 것.’

그럼, 자유롭다는 것은?

문득 수영장이 떠올랐다. 물속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수영을 해야 한다.

수영을 하기 위해서는 물을 자신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두렵지 않다. 두려움이 없어야 자유롭게 뜰 수 있고, 깊이 잠수할 수도 있고, 물을 들여다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물 속의 자유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물에 기대어 사는 환경에 태어나 물에서 보내는 것이 일상이 아닌 다음에야 인간은 물에 대한 적응 연습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에겐 상당한 노력 후에나 얻어지는 자유, 특히 나같이 물이 무서운 사람에겐 결코 만만하지 않은 자유다.

 

하진의 <자유로운 삶>은 자유의 상징, 미국에 온 중국인의 생활을 그린 소설이다.

주인공 난우는 미국에서 대학교 석사과정을 마친 유학생이다. 그는 미국에서 학위를 따고 중국으로 돌아가 대학 강단에 서는 꿈을 가진 중국인이다. 그러나 중국의 톈안먼 사태를 목격한 이후 가족과 함께 미국에 남기로 결심한다.

자유의 땅 미국!

하지만 은 그곳에서 자신이 얼마나 이방인 인가를 깨닫게 되고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한 길고 긴 여정의 길을 걷게 된다.

이 부딪히고 힘들게 겪는 것들은, 그 곳 원주민에겐 아주 사소한 것들.

대학원을 졸업하고도 영어를 완벽하게 익히기 위해 영어사전을 포켓에 넣어 다니지만 종종 알아먹지 못할 언어로 곤란을 겪고, 법률적인 것은 도움을 받아야 했다. 중국인인 이 중국인으로서 써왔던 언어, 지식, 경험은 새롭게 주어진 미국 땅에서는 무용지물이 되다시피 한다. 그래서 좌절도 했지만 결코 쓰러지지 않고 가족과 함께 미국에 정착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해 나간다.

 

1,2권에 걸친 <자유로운 삶>12년간의 미국 정착기다.

그리고 작가 하진의 힘은 세밀함에 있다.

1000장이 넘는 소설에는 주인공 외에 여러 명의 중국인과 미국인이 등장한다. 그 등장 인물들의 성공담과 실패담도 자세하게 그려진다. 물론 그들의 성공과 실패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고 판단하기 위해서라 아니라, 주인공 이 조국이 아닌 미국에서 자유롭게 되기까지의 사고방식,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철학, 사랑에 대한 정의를 그들의 사고방식과 비교하기 위해서였다고 보여진다.

 

의 철학이 곧 작가 하진의 철학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은 책임을 다한다.

소설의 큰 흐름 중 하나는 아내 핑핑과의 관계이다.

이 첫사랑 실패 후 결혼을 위한 결혼을 하게 되는데, 그 상대가 핑핑이다. ‘은 첫사랑 베이나 수를 늘 마음에 그리면서 결혼 생활을 한다. ‘의 마음에 들어있는 첫사랑 때문에 핑핑은 늘 불안하다.

그런 가운데, ‘은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꿈을 뒤로 미루고 온갖 일을 거친 후 비로소 식당을 개업하고 요리사로 정착한다.

 

은 자신이 처한 위치를 객관적으로 이해할 줄 안다.

글 속에서, 일부의 다른 중국 이민자들은 자신이 살겠다고 선택한 미국에 맞추어 적응하려하지 않고 미국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만 가지려하거나, 차별에 대한 반발로 감정에만 치우친 애국을 떠들며 중국식으로 생활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은 냉철한 양립을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은 시인이 되고 싶어 하지만 시를 쓰는 것은 순수한 창작활동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예술을 통해 부를 이루는 것에 타협하지 않는다.

 

은 살아가면서 부딪혀 오는 고난에 대응하고 적응하고 개선할 줄 아는, 어른다운 어른이다.

그는 결국 자신의 곁에서 단단히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아내 핑핑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인물인가를 깨닫는다.

 

***

 

나는 개인적으로 또 다른 주인공 핑핑이 좋다.

그녀는 자신이 만들어 가는 가족이라는 우주에 흔들림이 없다. 남편이 흔들리고 있어도 자신의 방식으로 남편을 사랑한다. 남편 이 생계를 책임 졌다고 하지만 핑핑도 그저 삶에 숟가락만 얹고 살아간 것은 아니다. 미국식 교육을 받아야 하는 아들과 생계의 무거운 짐 때문에 다른 것을 돌아볼 수 없는 사이에서 아들의 공부를 도우고 식당일을 도왔다.

이 시에 대한 열망 때문에 식당을 비울 일이 생길 때에도 의 열망을 격려하고 기꺼이 그녀의 어깨에 얹히는 짐을 떠안아 결국 이 시인이 될 수 있도록 도운다.

 

긴 책을 끝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도 이민자였다.

<자유로운 삶>은 그만큼 이민자들의 이야기가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작가 하진은 장황하게, 직접적이고 설명조로 이민의 어려움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주인공 과 친구들의 생활을 소재로 그들의 대화 또는 사건을 통해 이민자의 어려움을 그린다. 이야기는 잔잔하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타인의 생활을 엿보는 재미로 책을 잡으면 놓을 수 없게 만든다.

그들의 성공과 실패를 보면서 생각해본다.

나에게 새로운 세계라는 파도가 닥쳐온다면 나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파도를 넘어 갈까.

부모를 통해 부여 받은 조국 대한민국, 언어, 피부 색깔, 자연환경에 대한 적응력... 그저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자유롭게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 이런 나에게 새로운 세계가 주어진다면 나는 과연 어떤 자세로 새로움에 대응을 하게 될까.

 

<자유로운 삶>, 아니 작가 하진은 이렇게 외치고 있다.

원주민들이여!

니가 가진 것은 태어나면서 주어진 것이지 위대한 것이 아니니, 이민자들에 대한 이해를 넓혀라. 네가 가진 것이 자랑이 아니듯이 이민자들의 부적응 또한 굴욕이 아니다. 너 또한 다른 곳에선 이민자와 같나니, 그 때는 너의 자랑이 곧 굴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민자들이여!

새로운 세계에선 고국에서 가져온 가치를 버려라.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새롭게 하나하나 배워 나가라. 나의 잣대로 새로운 세계를 저울질 하지 말고 새로운 세계의 저울에 나의 가치를 계량하려 하지 말라.

그리고, 조국과 이민국을 있는 그대로 두고 보라. 둘은 내가 살고 있고, 인류가 살고 있어서 이미 충분히 아름답고 가치 있는 곳이니

 

책의 에필로그에 시인이 된 의 시 옮긴다.

 

                 ‘찬사

 

그래, 칭찬이라-그런 사람을 생각해보자.

고통 속에 있음에도 아직도 행복을

자신의 타고난 권리로 생각하는 사람.

장갑을 어디 뒀는지 헛되어 찾다가

손이 없는 사람들을 기억하는 사람.

자기 자신을 쳐다보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신들한테

인상을 찌푸리지 않는 사람.

시합에 졌지만, 자기를 방금 이긴 사람에게

인사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번잡한 거리에서도, 먼 언덕에 있는 새들의

노랫소리를 듣는 사람.

많은 사람들과 섞일 수 있어도

그들의 소란스러움에 당황하지 않는 사람.

나라를 사랑하지만 그것이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사랑을 압도하지 못하는 사람.

재앙과 승리를 똑같이 받아들이고

어느 쪽도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

리무진을 운송 수단으로 생각하고

궁전을 거주지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

고관과 같이 커피를 마시면서도

신선한 공기를 마시러 문밖으로

나가는 걸 머뭇거리지 않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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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브리오 기담 이즈미 로안 시리즈
야마시로 아사코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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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야마시로 아사코

주인공 : 이즈미 로안

             미미히코

먼저 작가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작가는 <실종 홀리데이>, <어두움 속에 기다림> 등을 쓴 작가 오츠이치이다.

이번엔 야마시로 아사코란 필명으로 <엠브리오 기담>을 집필했다.

그의 필력의 한계는 어딜까?

그는 확실히 탁월한 이야기 꾼이다.

 

오츠이치의 소설은 선악이 존재한다. 선과 악을 적절히 이용하여 글을 쓰지만 마무리는 대개

 선한 쪽으로 결말을 맺는다. 내가 본 소설에서는....

 

<엠브리오 기담>도 재미난 이야기로 책을 들면 놓을 수 없다.

주인공인 이즈미 로안은 여행 안내서를 만드는 작가로 약점이라면 여행길에서 자주 길을 잃는다. 하지만 잘못 찾아든 길에서 기담이 만들어진다.

또 한사람의 주인공은 여행 동반자인 미미히코’. ‘이즈미 로안의 짐꾼이자 친구로 로안이 길을 잃을 때 기담의 주인공이 되어 산전수전을 겪는다.

<엠브리오 기담>의 이야기에는 9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기담이라고 하지만 오츠이치이야기답게 훈훈함이 깔려 있다.

 7편 <지옥>편은 광기를 가진 가족들이 보여주는 인간의 광기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살아서 체험하는 지옥을 만든다. 그 지옥에서도 광기를 가진 가족들이 보여주는 가족애는 비웃고 싶지만 긍정하게 된다.

최근 일어나는 범죄에는 가족도 목적으로 보고 일어나는 사건들이 있으니까....

 

또 1 번째 이야기 이자, 책 제목인 <엠브리오 기담>에서는 엠브리오가 뜻하는 태아의 이야기로, 누군가 낙태시키는 태아는 누군가에겐 간절히 기다리는 아이라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 낙태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하는 주제를 담고 있다.

 

마지막 9<“, 가요소년이 말했다.>이즈미 로안의 비밀이 일부 들어 있다. 어느 마을의 소작인 출신 며느리가 지주 집안으로 시집을 갔는데, 시집 식구들에게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이야기다. 구박과 멸시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며느리 앞에 어느 날 4차원의 경로를 통해 소년 이즈미 로안이 나타난다. 이유 없는 학대에 시달리는 며느리는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저항도 못하고. 희망도 없이 살아간다. 이때 그녀에게 내미는 손 ....가슴이 따뜻해 진다.

 

기담이란 이상야릇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상야릇한 것 중에는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는 것도 포함될 것이다.

보이지 않으면  믿지 않는가?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떨어져 타지에서 생활을 할 때 사랑하는 이들이 보이지 않지만 그들을 떠 올리기만 해도 힘을 얻는다. 혹 사랑하는 이가 죽어 영혼이 되었다고, 그 사람의 따스한 느낌이 사라지겠는가?

언제나 가까이 있는 듯 보내오는 그 따스함. 그것이 산자의 것이던, ‘죽은 자의 것이던 나에게 보내는 지지일 것이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다고 없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엠브리오 기담> 이야기에는 실존하는 현실의 세계와 영혼의 세계가 있다.

오츠이치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야기 할 때는 안 보인다고 함부로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우리도 행동을 할 때도, 말을 할 때도 세상 만물에게 나쁘지 않게, 가슴 아프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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