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비테의 공부의 즐거움 - 아이와 함께 읽어야 더 효과적인 자녀교육 바이블
칼 비테 지음, 남은숙 옮김 / 베이직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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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즐거움'. 이 제목을 들은 어떤 사람은 순간 고개를 갸우뚱 할지도 모르겠다.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책이 나오기도 했지만, 누가 뭐래도 공부는 세상 다른 일만큼이나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끈기가 있어야 하고, 공부를 통해 무언가를 해내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지금 공부하고 있는 것에 매력을 느껴야 그 공부는 오래 간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공부의 즐거움을 안 것은 불과 몇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항상 성적을 걱정하고, 누가 어떤 과목에서 점수가 잘 나오나 눈을 빛내며(?) 둘러보던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란 항상 내 가슴 한가운데를 차지하는 커다란 돌덩이와 같았다. 그러던 공부가 대학에 입학하고 시험을 준비하며 '아, 내가 정말 좋아서 이 공부를 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게 되면서부터는 즐겁게 여겨지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학습의 달콤함을 맛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 때문인지 나는 '공부의 즐거움'이라는 말에 크게 당황하지 않고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책을 펼칠 수 있었다. 

칼 비테 주니어는 그의 아버지가 페스탈로치의 권유에 의해 저술한 [칼 비테의 교육]의 주인공이자 19세기 독일의 유명한 천재라고 한다. 이 책은 조기교육 이론서로써 지난 200년 동안 영재교육의 경전으로 불리며 수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독일의 시골에서 저능아로 태어난 그가, 목사 아버지의 열정적인 교육에 의해 영재로 거듭난 과정을 세세한 예를 통해 알기 쉽게 이야기한다. 책의 띠지에도 '영재교육 지침서'라는 문구가 적혀 있으나, 이 책은 비단 영재교육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자녀교육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학습하는 아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야 하는가 등,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봐야 할 알찬 내용들이 가득 담겨 있다. 

조기교육을 강조했던 칼 비테의 아버지는 부모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도 소홀히 하지 않았고, 저능아로 태어난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교육의 힘을 믿으며 그를 학습시켰다. 칼 비테가 아기였을 때부터 식습관과 올바른 생활습관을 길러주고자 노력했고, 관찰력과 기억력을 신장시킬 수 있는 훈련, 학습의 동기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 배움이 주는 즐거움, 인성과 전인교육, 경제교육의 세세한 부분까지 정성을 기울였다. 

이 책을 펼치기 전에는 내가 앞으로 만나게 될 아이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공부의 즐거움을 가르쳐 줄 것인가를 먼저 생각했었다. 그런데 책에 담긴 내용 중에는 앞으로의 학습자들에게 사용할 수 있는 조언도 있지만, 이미 다 자란 성인에게도 용기를 주는 말들도 많다. 이를 테면 '무슨 일이든 완벽하게 해내고 싶으면, 우선 자신에게 엄격해져야 한다-p244' 는 말은 나태해지기 쉬운 우리를 격려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 칼 비테의 아버지의 손길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로 채워져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거부감도 있었지만, 칼 비테 주니어의 어린 시절 모습들이 상세하게 나와있어 마치 위인전을 읽는 듯한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나갈 수 있었다. 부모가 된 사람이라면, 그리고 미래에 부모가 될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교육지침서다. 이 책의 1권에 해당하는 [칼 비테의 자녀 교육법]도 찾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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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s 더 뉴스 - 아시아를 읽는 결정적 사건 9
쉐일라 코로넬 외 지음, 오귀환 옮김 / 아시아네트워크(asia network)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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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빠지지 않고 신문을 챙겨보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우리나라 주요 기사와 세계 강국의 기사, 관심이 집중된 기사를 제외하고는 국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두 알기란 불가능하다. 어쩌면 나만의 변명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문득 이 책을 읽고나니 신문을 보는 눈이 새로워진다. 신문이나 뉴스에서 아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기사가 몇이나 될까. 서양 기자들이 쓴 아시아 기사가 아니라 아시아인이 쓴 아시아 기사는 또 과연 몇 개나 될까. 

이 책은 그 동안 서구인의 눈으로 보도되고 서구인의 감각으로 쓰여왔던 기사들에 반발한, 아시아 기자들의 특종을 엮었다. 아시아 기자들이 발로 뛰어 취재한 기사들은 서양기자 '친구'들에게 건네져 '최초 인터뷰', '최초 보도' 의 이름을 달고 세상으로 나왔다. 아시아 기자들이 열정으로 만들어낸 기사 위에 서양인들의 눈이 더해진 기사는 과연 아시아의 사정을 제대로 보도하고 있을까. '서구 중심주의'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대신 '아시아중심주의'를 옮겨 심겠다는 뜻은 없다고 밝혀 둔 이 책은 아시아의 언론인들의 열정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인기 많던 배우가 대통령이 되었지만 비리로 인해 물러났다. 그 배경에는 기자의 용기와 빛나는 언론인의 정신이 있었다. 네팔에서 일어난 왕세자 사건에는 진실 말고는 어떤 것도 발표하지 않겠다는 긍지가 있었고, 독가스가 도시를 뒤엎은 사건에는 잘못된 점을 끝까지 바로잡겠다는 열정이 있었다. 검열에 대한 반대의지와 조심스럽지만 군주제에 대해 말하는 언론인들의 목소리는 어쩌면 작지만 그 누구도 비판하지 못할 힘이 숨어 있다. 기사가 검열을 통과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고민과 과연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일단 '시작하고 본다'는 그들의 열정은 내 가슴 속에도 불꽃을 터뜨렸다. 

사실 그 동안 기자를 보는 내 눈은 그다지 곱지 않았다. TV에서 그들의 모습을 잘못되게 묘사한 탓도 있겠지만, 내 눈에 그들은 특종을 터뜨리기 위해 여기저기 냄새를 맡으며 돌아다니는 별종에 지나지 않았다. 정의와 진실을 실현하기 위해 기자가 되었을 그들이지만, 큰 상처를 받은 사람에게 마이크를 들이미는 모습 등에 적잖이 실망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특종만을 위해 살아가는 기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진정한 언론의 자유를 외치는 사람들, 나라와 대기업이 숨기려는 진실을 끝까지 파헤치는 정의로운 사람들이 실제로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가슴 깊이 느꼈다. 그리고 처음으로 기자라는 직업이 참으로 보람되고 멋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부디 그런 기자들이 나라 안팎에 넘쳐서 어떤 나라든 인간의 권리가 보장되고 평화로운 시대가 계속될 수 있기를 바란다. 

모두 9명의 기자들이 쓴 기사들 중에는 내게 친숙한 것도, 낯선 것도 있었지만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조금 더 넓어진 것 같아 뿌듯하다. 본문 뒤에는 주요 용어들이 정리되어 있어 쉬운 이해를 돕는다. '아시아중심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시아의 뉴스가 아시아 기자들의 이름으로 당당히 발표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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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안 내고 떠나는 세계 여행 BEST 15 - 여행 고수 조은정이 콕 찍어 주는 알짜 테마 여행
조은정 지음 / 삼성출판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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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을 오래 한 건 아니지만, 그리고 발령이 나기까지 잠깐 다닌 직장이었지만, 월요일이 다가오는 것이 참 싫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은 항상 너무 길었고, 주말은 짧기만 하다. 고작 몇 개월을 다닌 나도 이렇게 매일 쳇바퀴 돌아가는 생활이 지겨웠는데 하물며 몇 년씩 회사를 다닌 사람에게는 어떠했을까를 생각해보니 대한민국의 모든 직장인들이 위대해 보인다. 그런 그들에게 휴가는 꿀처럼 달콤할 것이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막상 휴가철이 되어도 여행 떠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휴가철에 맞추어 항공사 예약을 해야하는데 그것또한 유동적이라 어찌될지 예측할 수 없고, 물가와 개인사정 등을 따지다 보면 휴가를 방안에서 보내기 일쑤인 것이다. 그런 직장인들에게, 그리고 직장을 다녀야 할 나에게 '휴가를 안 내고도' 떠날 수 있는 세계여행이라니, 상당히 매력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제목만 들어도 가슴에 마구 설레인다. 

이 책의 매력은 단연 여행일자에 맞춘 세세한 안내사항이다. 사실 배낭여행이 아닌 이상 한 나라의 가보고 싶은 곳을 모두 둘러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짧은 기간 동안 시간 활용을 잘 해서 얼마나 알차게 여행을 할 수 있는가, 그것이 모든 여행객들의 관심사일 것이다. 작가는 그런 사람들, 특히 직장인의 요구사항을 정확히 알고 있다. '코타키나발루 3박 5일 휴양여행'이나, '홍콩 2박 3일 쇼핑 여행' 등 제목에서부터 이미 적당한 여행일자를 언급하며 시작한다. 게다가 여행 1일째, 2일째 등으로 나누어 그날 그날의 적당한 여행코스를 조언해준다. 또한 다양한 나라들을 휴양여행, 쇼핑여행, 도시 여행, 가족 여행, 온천여행, 유적여행 등으로 나누어 상황에 맞추어 떠나기 좋도록 소개하고 있다. 

여행 에세이, 여행정보하면 사진이 빠질 수 없다.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있어 사진보다 더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 보통 여행 책자를 보면 방대한 정보를 싣기 위해 조그마한 글씨에 작은 사진들로 채워져있는데, 이 책은 적당한 여행일자에 알맞은 여행코스를 소개하고 있기 때문인지 글씨도 그리 작지 않고 사진도 생각보다 풍부하다. 

배낭여행을 다니는 사람이나 한 나라가 가지고 있는 깊은 맛을 즐기는 사람들은 어쩌면 이런 여행이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마땅히 시간을 낼 수 없는 대한민국의 직장인들에게 있어서는 단 며칠이라도 다른 나라에서 보내는 달콤한 시간이 힘든 직장생활을 견디게 하는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다. 

나도 얼마전부터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경비부족과 시간적 여유 때문에 망설이고 있었는데 이 책을 보니 내 사정에 맞추어 얼른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조금씩 이 책에 실린 나라들을 여유가 될 때마다 돌아볼 생각이다. 휴가를 내지 않고도 내 삶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여행, 나도 저자처럼 즐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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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여자
레몽 장 지음, 김화영 옮김 / 세계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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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어떤 드라마에서 호스피스 일을 하는 사람이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에게 좋은 책을 읽어주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봉사'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책을 읽어주는 행위가 그렇게 아름다운 것인 줄 그 때 처음 알았다. 하지만 남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인 것만은 아닌 듯하다. 일단 사람들은 책을 '듣는' 일에 익숙하지 않고, 읽어주는 사람은 상대방의 기호에 맞추어야 하며, 목소리나 상황이 책의 내용과 어울리지 않을 경우에는 책에 담긴 의미를 온전히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뭐, 나도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책을 읽어준 적은 없으니 이것은 순전히 나의 생각이긴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주위사람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가족이나 친구에게 전달하는 것처럼, 책 속에서 의미있고 좋다고 생각한 부분을 전달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책을 읽는 순간순간 솟아오른다.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책을 읽어준다면 그런 마음에서 시작될 것 같다. [책을 읽어주는 여자]의 마리-콩스탕스 G처럼 목소리가 뛰어나게 좋은 편은 아니니 상대방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남편은 있으나 아이는 없는 마리는 서른네 살로, 순전히 목소리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책 읽어주는 일을 시작했다. 아파트에 '소리 잘 나는 방'이라는 공간을 만들어놓고 목소리의 울림과 듣기를 즐기는 그녀의 바람대로 신문에 광고를 낸지 얼마 후부터 고객이 생겼다. 그런데 단순히 책만 읽어주고 오면 될 것이라 생각했던 일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방향이 조금씩 궤도를 바꿔간다. 한창 사춘기를 맞고 있는 장애를 가진 소년 에릭과 마르크스에 심취한 노 백작부인, 책이 아닌 마리에게 관심이 많은 사업가와 집보다는 아직은 밖에서 놀고 싶어하는 어린 소녀, 게다가 사드 백작의 책을 읽어달라는 판사까지. 마리의 좌충우돌 책을 통한 소통의 확장은 시작된다. 

이 책 안에는 다른 여러 종류의 책들이 많이 등장한다. 모파상의 [손]이라는 작품부터 노 백작부인이 읽어주기를 청하는 [자본론], [독일 이데올로기] 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사드 백작의 책까지 책을 통해 책을 들여다보는 즐거운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이 책들은 단순히 '책'이 아니다. 그 중에는 마리가 직접 선정한 책도 있지만 대부분은 고객으로부터 의뢰받은 책들로, 각각의 고객을 대변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어떤 지식을 얻고 재미를 얻기 위해 읽었던 '목적'으로서의 책이, 한 개인의 특성을 나타내고 서로가 소통하기 위한 '도구'로변화한 것이다. 

독서는 보통 홀로 이루어진다. 혼자 구절들을 음미하고 생각을 정리하며 공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독서를 누군가와 나눈다는 것은 상상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단순히 기호에 그치지 않고 자신을 대변할 수 있는 책이 한 권씩 있다면 서로의 책을 나눠 읽어주는 것도 멋진 작업이 될 것 같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문체가 무척 독특하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마리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지만, 그녀는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양 덤덤하고 감정의 변화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한 편의 흑백무성영화를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그런 점이 오히려 매력으로 다가온다. 어쩐지 신비스러우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분위기는 등장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상황이나 문체와 연결되어 더욱 흥미를 자극한다. 

작품의 맨 뒤편에는 레몽 장과 역자와의 대담이 실려 있다. 레몽 장을 처음 접한 나같은 독자와 프랑스 문학의 동향이 궁금한 이에게는 고마운 부록이 아닐 수 없다. 홀로 즐기기 위한 독서가 아닌 누군가와 연결되기 위한 독서, 그 동안 가지고 있던 독서에 대한 생각을 되돌아볼 수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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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의 지도
에밀리오 칼데론 지음, 김수진 옮김 / 북스토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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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를 주제로 한 이야기는 읽는 내내 가슴을 졸여야 하지만 흥미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정보를 캐내 아군에게 넘겨야 하는 스파이. 언제 잡혀 죽을지 모르는 혼란 속에서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운명의 상대’라는 요소까지 첨가되면 이상하게도 나는 그런 이야기야말로 최고의 낭만을 선사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죽음과 피바람이 항상 따라다니지만 자신의 신념과 사랑을 위해 움직이는 스파이는 악당이라는 이미지보다는 멋진 사람의 이미지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어쩌면 통속적이라 할 수 있을 스파이 이야기지만 이 작품은 여타의 작품들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우리가 영화로 만나왔던 제임스 본드나 영웅들의 이야기를 상상하고 책을 접한다면 약간 당황할 것이다. 배경은제2차 세계대전, 장소는 전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로마. 혼란스러운 시대 속을 살아가는 스파이의 이야기지만, 책을 덮는 마지막 순간까지 누가 진정한 스파이인지 되묻게 되는 복잡하면서도 섬세한 소설이다.

스페인 내전으로 인해 이탈리아의 로마로 피신해 있던 건축가 호세 마리아는 기거하던 아카데미에서 몬세라는 여인을 만나고 그녀의 매력에 빠져든다. 어느 날 아카데미에 있던 도서관의 고서들을 팔아 어려운 상황을 타개해보고자 외출한 그와 몬세는 한 권의 책을 계기로 후니오 대공과 접촉하게 된다. 그 책은 신이 직접 작성하고, 세계의 근원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담겨 있다는 ‘창조주의 지도’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책으로, 나치는 그 지도를 비롯한 12개의 성물을 차지하여 강한 힘을 얻으려 하고 바티칸은 그러한 나치를 막으려고 한다. 그 지도 때문에 스미스라는 남자에게 후니오 대공으로부터 정보를 캐내라는 의뢰를 받은 호세 마리아는 얼떨결에 스파이 활동을 시작하게 되고 전쟁이 가속화되면서 그와 몬세, 후니오 대공의 앞날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세계 여러 나라의 영토분쟁과 독일 히틀러의 야욕, 일본의 세계재패 야심 등 이 작품이 배경으로 하고 있는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해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그리 많지 않다. 얼마 전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한 책을 한 권 읽기는 했지만 짧은 시간 내에 그 많은 정보를 정립할 수 있을 정도로 내 머리는 그리 뛰어나지 않은 모양이다. 그 책이 전쟁을 정치, 경제, 산업등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하고 있다면 [창조주의 지도]는 로마를 배경으로 한 팩션으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눈, 그것도 스파이의 눈으로 자세한 정황을 세세하게 보여준다.

한 여인에 대한 사랑으로 목숨을 걸고 스파이 활동을 감내해야 했던 호세 마리아와 몬세를 사랑하면서도 그녀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후니오. 그들보다 더 강하게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그들이 사랑하는 여인 몬세였다. 몬세는 이 작품에서 이상을 사랑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행동하는 굳건한 인물로 두 남자보다도 더 강직하게 그려진다. 마지막에 밝혀지는 비밀은 놀라운 것이지만 그런 몬세야말로 스파이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제2차 세계대전을 중심으로 하는 영화나 소설은 몇 번 접했지만 로마와 스페인 내전을 연관지어 다룬 작품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전 세계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바티칸 시국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끌어들인 것은 새롭고 괜찮은 시도였던 듯하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다른 팩션들과는 달리 예수와 성배에 관한 이야기만 하다가 허무하게 끝내버리지 않은 점 또한 마음에 든다. 익숙하지 않은 이름들과 복잡한 플롯, 부족한 역사적 지식으로 읽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역사와 미스터리가 절묘하게 결합된 이 책을 읽다보면 어느 새 푹 빠져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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