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중요해지는 순간
론 커리 주니어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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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하늘에는 별과 달이 떠 있고, 그 밑에서 아이는 잠들어 있다. 시간은 여전히 흐르며, 저 멀리 별 하나가 지상으로 떨어지려 한다. 잠자는 아이는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태어날 때부터 알 수 밖에 없었던 지구의 종말, 그 종말로 인해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던 시간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고자 헌신했던 주니어. 운명은 정해진대로 흘러가고 사람들은 수많은 선택을 하지만 어떤 것이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지구종말을 이야기하는 작품은 진부하지만 호기심을 자극한다. 생명의 유한함을 느끼는 우리로서는 이 지구에도 언젠가는 끝이 찾아오지 않을까, 찾아온다면 어떤 형태로, 그 시기는 언제인가를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언제 어떻게 인류에게 종말이 다가올지 알게 된다면, 우리는 인생을 마냥 아름다운 것으로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제인지를 안다면 더 열심히 살 것도 같지만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어차피 없어질 세상, 열심히 살아서 뭐해, 라는 생각과 함께. 하지만 주니어는 그래도 인류를 위해, 무엇보다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과 에이미를 위해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그러나 그에게 찾아온 운명은 너무나 가혹했다. 삶은, 고된 것이다. 

이 책은 구성이 약간 독특하다. [쌍둥이별]처럼 등장인물들의 시각에서 조금씩 이야기가 전개되며 그 시각에는 '~다!'라고 확실히 단정지을 수 없는 불확실한 존재도 포함된다. 그것이 신인지, 아니면 그저 미래를 알고 있는 '목소리'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 목소리로 이야기가 시작되며, 그가 이야기할 때 각 문단 앞에 숫자들이 붙어있는 이 책을 읽다보면 곧, 그것이 지구의 멸망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게 될 것이다. 마지막 장면은 특히 인상적인데, 그것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 종말과 함께 또 다른 삶이 시작된다는 것일까, 아니면 끝이 있기에 아름다웠던 모든 것을 일컫는 것일까. 그래도 한 가지 확실히 느껴지는 것은 세상에, 우주를 뛰어넘은 온갖 시공간에 진정한 '끝'은 없다는 점이다. 

작가는 '모든 것에 끝이 있고, 그래서 모든 것에 의미가 있다'고 한다. 끝나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시험이 있기에 어쩔 수 없이 공부를 하게 되는 것처럼, 끝이 있기에 우리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일까. 하지만 여기에서 초점은 '끝'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시험만을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끝'은 늘 찾아온다.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은 존재하지 않고, 한 생명의 뒤를 이어 또 다른 생명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것이 굳이 자손이라고 표현될 필요는 없다. 크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지구라는 한 울타리 안에서 살고 있는 셈이니까. 

중요한 것은, 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과, 때문에 그 끝이 다가오기 전까지를 채울 우리의 인생이다.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얻을지. 무엇을 가치있게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이 사랑할 수 있을지 헤아리는 지혜. 만약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끝은 늘 다가오겠지만 그 끝을 어떻게 맞이하는가는 순전히 자신의 몫이다. 순간순간의 그 선택이 우리의 삶과 마지막을 풍요롭게도, 고되게도 만들 수 있다. '에이, 다 알고 있어'라고 말하지는 말자. 진부하게 느껴지는 것들에는 중요한 것들이 많을 수 있으니. 

작가는 인류종말이라는 극단적인 소재로 우리 삶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지만, 그가 설정한 인류종말은 결국 우리 삶의 마지막을 비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끝은 언제나 찾아와. 찾아오지 않을 수가 없지. 하지만 그 사이사이를 메꾸는 것은 결국은 매 순간의 너의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야, 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끝을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그 끝은 두려움으로 장식될 것이 아니라 아름답고 풍요로움으로 받아들일 가치가 있는 것임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인가. 

소설이라기에도, 그렇다고 소설이 아니라고 하기에도 자꾸만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이상한 이야기다. 주인공인 주니어에게 들려오는 목소리, 다중우주의 개념 등은 마치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허공에서 손을 허우적대게 만드는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소중한 사람들의 손을 잡고 언젠가 별이 가득한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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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고스트
조힐 지음, 박현주 옮김 / 비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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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떤 책이든 그렇지 않은 책이 없겠지만, 이 책에 대한 나의 평가는 순전히 '취향의 차이'다. 영상 뿐만 아니라 책의 분위기, 묘사, 이야기 등에도 영향을 크게 받는 나로서는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머리가 아팠고 속이 불편했었다. 분위기 자체가 생명을 가지고 내 몸 전체를 압박해오는 느낌을, 혹시 알려나. 내가 읽기 힘들어하는 작가는 지금까지 딱 한 명 있는데, 그는 일본작가 '기리노 나쓰오'다. 편견이라고 해도 할 수 없지만 [리얼월드] 를 읽고 난 후, 그의 책을 다시 손에 들기가 겁이 난다. 어쩐지 이 '조 힐' 이라는 작가도 앞으로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다고 해서 그의 이야기들이 엉망인 것은 아니니 오해 마시기를. 

진주빛의 토슈즈와 블랙 표지가 묘하게 어울려 발레와 관련된 예.쁜. 공포소설인가 했으나 모두 15편으로 구성된 단편집이다. 그리고 각각의 이야기들이 담고 있는 소재는 예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신간 공포 걸작선>으로 시작되는 음습하고 기괴한 공포가 마치 벌레처럼 스멀스멀 우리 몸을 타고 기어오른다. 그 뒤를 잇는 이야기들의 주인공들 또한 왕따, 사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기묘한 가족, 전혀 평범하지 않은 의사까지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또 그렇지도 않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사람들 뿐이다. 작품 속의 사람들은 모두 불행하며, 아픔을 간직하고 있고, 그 아픔에서 벗어나려는 행동조차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불편하고 다른 의미에서 무서운 소설집이었지만 <팝 아트>라는 작품 하나만은 따뜻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더 인상적이다. 혈액 대신 공기가 몸 속을 채우고 있는 공기주입식 소년 아트. 어머니는 사라지고 아버지의 무관심과 사랑 없는 분위기가 가득 채워진 가정에서 자란 '나'는 그를 만나면서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주변 사람들과는 다른 존재였지만 '나'의 말을 잘 들어주고 가족보다 더 가깝게 위로해주었던 아트와 '나'는 누구보다 진한 우정을 나누지만, 사고로 인해 이별하게 된다. 이 작품은 공포나 호러소설보다 성장소설, 청춘소설이라는 이름이 더 알맞다. 가슴 속에 안타깝고 아련한 슬픔이 번져가지만 사실 이 작품 하나만으로 별 네 개를 주었을 정도로 읽을수록 괜찮은 이야기다. 

이 작품과는 반대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지만 작가의 상상력과 엄청난 기괴함으로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마지막 숨결>이라는 이름의 이 작품은 사람들의 마지막 숨결을 모으는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소재 자체와 분위기만으로도 음울해지지만 결말 부분은 뭐라 말 할 수 없는 잔혹함과 끔찍함이 전해져온다. 오멘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책을 펼치고 읽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공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 작가의 능력이 놀랍다. 스티븐 킹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관심을 끌었지만, 그의 아들이라는 사실조차 잊게 만드는 기묘하면서도 이상한 작가다. 앞으로 그의 작품을 또 읽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의 상상력과 그가 만들어낸 세계가 독특하다는 것은 인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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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자의 아내 1
오드리 니페네거 지음, 변용란 옮김 / 살림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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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침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는 여기 서서 양치질을 하고 있고, '과거' 어디쯤의 나는 잠을 자거나 TV를 보거나 내가 지난 밤 먹었던 오리훈제구이를 먹고 있고, '미래'의 나는 어딘가에서 서평을 쓰고 있겠지, 하는. 그런 나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마치 천장이 뻥 뚫린 아파트 안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다. 다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각각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모두 똑같은 얼굴을 한 나의 모습이라는 점이 조금 다를 뿐. 내가 지금, 여기에서 이렇게 이 글을 적고 있을 줄 과거의 나는 당연히 몰랐었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는 글을 쓸 생각이 없었으므로. 미래의 나와 과거의 내가 만났다면 미래의 나는 과거의 나에게 어떤 말을 건넸을까. '너는 2009년 9월 4일 금요일 오전 11시 30분에 [시간 여행자의 아내]라는 작품에 대해 리뷰를 쓰게 될 거야' 라는 그런 말을 했으려나. 

헨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느 순간 사라져 과거와 미래를 자유롭게 드나들며, 돌아가신 어머니와 미래에 자신의 아내가 될 클레어를 만나고, 자신의 주치의가 어떤 성별의 아이를 얼마나 낳을지를 알게 되는 사람. 미래의 자신이 시간 여행을 통해 클레어에게 제공한 정보를 현재에 전달받고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되는 사람.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모두 맞물려야 완전한 시간을 누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시간 여행은 우리에게 신비롭고 경이로워 보이는 것이지만 적어도 헨리에게 있어 그것은 '질병'이었다. 언제 사라질지 예측할 수 없고, 어디에 떨어질 지 짐작할 수 없어 힘들었다. 그러나 외롭고 어두운 시간 여행자의 운명 속에서 클레어를 만난 순간부터 그의 인생은 그제야 완성의 가능성을 내비춘다. 클레어와 헨리가 함께 해야 완성되는 두 사람의 시간, 두 사람의 추억, 두 사람의 운명. 

제목은 [시간 여행자]가 아니라 [시간 여행자의 '아내']다. 헨리의 아내 클레어. 어린 시절 나이 든 헨리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는 늘 그를 기다려야 했다. 처음에는 그가 자신을 찾아오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현재의 헨리를 만난 이후로는 그가 시간 여행을 갔다 무사히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주기는 일정하지 않고 그가 어디를 가는지, 밥은 잘 먹는지, 누구를 만나 어떤 곤경을 당할지 클레어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그저 묵묵히, 그리고 걱정하며 기다릴 뿐이다. 그가 먼 훗날 자신을 다시 찾아와 따뜻하게 안아줄 때까지. 

누군가를 오랫동안, 그리고 늘 기다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이라도 예외는 없다. 처음의 확고했던 신념은 시간과 함께 옅어지기 마련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찾아오는 외로움, 그 사람으로 인해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는 주위의 간질임, 그리고 내가 진정 그 사람을 사랑하는가에 대한 의문까지. 사랑하면 행복해야 하고 즐거운 에너지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정작 현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기다림은 그 대상을 완전히 받아들이겠다는 또 다른 표현이다. 누구도 클레어에게 헨리를 기다리라고 강요한 사람은 없다. 그저 그녀는 그를 놓을 수 없었을 뿐이다. 사랑하니까. 헨리와 클레어의 사랑은 클레어의 '기다림'이 없었다면 절대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기다림'이 없었다면 두 사람의 사랑이 이미 결정된 것이었어도 다른 운명의 그림판이 움직였을테니까. 마지막의 안타깝고 애틋한 장면은 그들 사랑의 결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시간 여행을 하는 헨리로 인해 배경은 수시로 바뀐다. 27세의 헨리, 31세의 헨리, 43세의 헨리. 그리고 한 공간에 같이 있게 되는 두 사람의 헨리. 앞과 뒤가 모순되지 않도록 작가가 꽤나 정성을 들여 쓴 작품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덕분에 읽는 동안 책의 앞뒤를 뒤적이며 그림이 맞는지, 다른 점은 없는지 애를 써야 했지만 그 점이 매력이다. 

기다림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은 누군가를 오래도록 기다려 본 적이 없거나, 그 때의 대상을 사랑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나도 평생을 때때로 오랜 기다림을 동반할 수 있을만큼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미래의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누구와 함께 있을까. 그 사람과 같이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 이 책을 같이 추억하고 싶다.


   난 언제나 당신을 사랑해.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야.-p354 (시간 여행자의 아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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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 In the Blue 1
백승선.변혜정 지음 / 쉼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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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여행과 관련된 책이 읽기 싫었었다. 떠나고 싶다는 바람과, 그럼에도 떠나지 못하는 용기없음, 떠나기 위해 생각해야 하는 이것저것들 사이에 갇혀서 마음은 점점 복잡해져만 갔다. 난 정말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것일까. 그건 자명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가뿐하게 '떠남'만을 생각하기에는, 현실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든다. 떠나고 싶었지만, 새로운 세계를 두려워하는 내 마음 한 구석에서 떠나지 않기 위한 핑계를 찾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책을 보면서 게으르고 겁많은 나를 깨달아야 했기 때문에 여행서적이 불편해졌던 것은 아닐까. 

그런 내 마음 속으로 크로아티아가 사뿐, 들어왔다. 생각보다 크기도 작고 휘릭 펼쳐보니 글보다는 사진이 더 많았다. '에이, 또 저자의 감상적인 기분만 내세운 책이구나' 라는 생각에, 하지만 어쩌면 그 때문에 부담없이 책을 넘기기 시작했던 것 같기도 하다. 크로아티아의 어디를 가면 볼 것이 많다느니, 어디를 가야 맛집이 많다느니, 쇼핑을 하려면 어디로 가야 한다는 여행서적에서 흔히 보았던 내용들을 이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작가의 소소한 감상이 적혀있기는 하지만 정작 우리를 두 팔 벌려 반갑게 맞이하는 것은 작은 책을 뛰어넘어 커다랗게 가슴 속을 채우는 몇 십장의 사진들이었다. 

크로아티아의 최남단에 있다는 두브로브니크의 빨간 기와지붕 집들. 그런 집들이 실제로 존재할 줄 상상도 못했었다. 어렸을 때 동화책을 보면서 막연히 상상했던 꿈 속의 집들이 그 곳에 있었다. 달빛만이 세상 빛의 전부일 깊은 밤, 그런 지붕들을 타고 다니면서 신비한 존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믿게 만드는 그런 곳이었다. 사진만으로도 절로 탄성이 나오는데 실제로 가서 본다면, 지붕을 타고 다니고 싶은 기분을 주체할 수 없을 것 같다.  





 



 

 

 

 

 

 

 

 

 

 

호수와 나무의 요정이 사는 숲이라는 플리트비체. 물 속에 잠긴 나무가 있고,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옥빛의 호수가 존재하는 곳. 풍덩 뛰어들어도 전혀 숨이 막히지 않고, 또 다른 존재가 다가와 포근하게 감싸안아 줄 것 같은 호수는 정말 장관이었다. 무언가를 보기 위해, 일상에 없는 것을 쫓아다니기 위해 돌아다니는 바쁜 여행이 아니라 휴식을 위한 여행이라는 말이 플리트비체에는 가장 어울린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과 골목골목에 이야기가 숨어있는 스플리트, 크로아티아의 수도로 중세의 매력과 현대적인 기품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자그레브도 각각 독특한 매력을 지닌 곳이다. 두브로브니크나 스플리트에서 찍은 사진들 중에는 유독 '빨래'를 찍은 것이 많았는데, 이상하게 그런 일상적인 풍경에 마음이 평온해졌다. 덧문이 씌인 창문을 열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아이가 손을 흔들 것 같은 그런 풍경이, 여기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도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의 발견이 여행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미리 언급한 것처럼 책은 정말 작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손바닥 위에 놓인다. 하지만 그 안에 찍힌 사진들은 그 보다는 몇 배의 크기로 확대되어 다가온다. 사진이 조금 더 컸다면 분명 좋았을 테지만 그럼에도 우리 가슴 속을 가득 채운다. 늘 그렇듯, 다시 떠나고 싶어졌다. 지금은 다시 그런 기분을 되찾은 것으로 만족해야지. 떠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극이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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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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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게 지금의 솔직한 내 마음이다. 어렸을 때 읽은 동화책의 결말은 늘 그런 것이었다. '예쁜' 공주나 아가씨가 '잘생기고 멋진' 왕자님을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해서 영원한 행복을 누렸다는 이야기. 사랑도, 결혼도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님을, 처음 동화를 읽은 나이부터 20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부터 깨달았던 듯 하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거짓말이라는 것을 안다고 해도 이 책 역시, 못생긴 한 여자가 있었는데 어떤 남자를 만나서 사랑을 했어, 그런데 그 둘에게 시련이 닥친 거야, 그러다 그 시련을 이겨내고 둘이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았대-라고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책이었다면 더 좋았을 뻔 했다. 못생긴 여자와 그렇지 않은 한 남자의 사랑이 나를 이렇게 울릴 줄 알았다면, 가슴을 이렇게 먹먹하게 할 줄 알았다면 나는 이 책을 읽는 것을 조금 더 미뤘을지도 모른다. 


   빛을 발하는 인간은 언제나 아름다워. 빛이 강해질수록 유리의 곡선도 전구의 형태도 그 빛에 묻혀버리지. 실은 대부분의 여자들...그러니까 그저 그렇다는 느낌이거나...좀 아닌데 싶은 여자들...아니, 남자든 여자든 그런 대부분의 인간들은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전구와 같은 거야. 전기만 들어오면 누구라도 빛을 발하지, 그건 빛을 잃은 어떤 전구보다도 아름답고 눈부신 거야. 그게 사랑이지. 인간은 누구나 하나의 극(極)을 가진 전선과 같은 거야. 서로가 서로를 만나 서로의 영혼에 불을 밝히는 거지-p185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지만, 그렇다. 일단은 이것은 사랑 이야기다. 상처를 가진 남자와 또 다른 상처를 가진,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 못생긴 여자의. 예쁜 것만 추구하고 그 외의 가치를 무참히 밟아버리는 사회를 비판하는 사회소설이든, 인생에 대해, 삶에 대해 논하는 철학소설이든 난 일단은 사랑에 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어쨌든 등장인물들은 사랑을 통해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사는 게 대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단순하게는 작가가 말한, 서로의 영혼에 불을 밝힌다는 그 사랑이라는 말이 나에게는 여전히 '희망'이라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메리 크리스마스, 서로를 간호하는 느낌으로 걸어가던 길고 긴 골목도 잊을 수 없다. 인간의 골목...그저 인생이란 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 불과한 인간들의 골목...모든 인간은 투병 중이며,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누군가를 간호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p214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는 그와 그녀, 그리고 요한은 상처를 간직한 사람들이다. 부모의 사랑, 부모의 이기심, 내재된 자신들의 어둠을 끌어안고 장난처럼, 무심하게, 그러나 발버둥치며 살아가는 인생들이다. 그 중 그와 그녀가 사랑을 했다. 함께 음악을 듣고, 함께 거리를 거닐며, 연인들의 전유물이라 여겨지는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냈다. 하지만 마음 속에 자리잡은 어둠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나에게도 못생긴 그녀가 품었던, 그러나 종류는 다른 어둠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피곤하고 미워하게 될, 원망하고 후회하게 될 일상 속으로 차마 그를 끌어들이지 못했던 그녀의 마음을 조금은 안다. 그 사랑이 그녀에게는 너무나 절대적인 것이어서 더욱 그리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느낀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책이 생각하게 하는 것은 사랑 뿐만은 아니다. 하하호호, 그저 못생긴 그녀와 평범한 그가 만나 사랑을 나누는 유쾌한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살짝 기대에 어긋날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움이 결국은 좋은 것,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굳어진 사회를 작가는 꼬집는다. 아름다움이 좋은 것이 되어버린 것은 그것을 부러워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다른 것에도 적용되지만 단 하나, 사랑에 있어서만은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사람의 상처에 대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수학 공식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지층의 구조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작가가 좋았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재치있고 유쾌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이 책은 다소, 무겁다. 글을 읽는 속도 자체가 한 템포 느려진다. 삶과 사랑에 대해 논하는 작가의 생각들이 책을 가득 메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구성이 독특하다. 앞 문단에도 뒷 문단에도 해당되는 듯한 마지막 글귀들을 음미하다보면 어느 새 시간이 훌쩍 흐른다. 숨을 '헉' 몰아쉬게 하는, 뭐가 서러운지 확실히 알지도 못하면서 한 바탕 서러운 눈물을 쏟아내게 만드는 결말은 일품이라고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파반느 또한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모호해지는 결말이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둘. 그 중 하나, 요한. 나는 '그'보다는 요한에게 더 눈이 갔다는 것만 말해두자. 그에 대해서는 누군가 이야기할 사람이 있으려니. 그리고 둘. 사랑 이외에 언급하고 싶었던, 그 외의 모든 것들. 그것들도 누군가가 이야기해 주겠거니. 나는 그냥 조금 더, 사람이 사람을 생각한다는 것에 대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사랑이 없는 삶은

 

 

 

 

 

 

 

 

 

 

 

 

 

 

 

 

 

 

 




   삶이 아니라 생활이었다.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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