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자의 아내 1
오드리 니페네거 지음, 변용란 옮김 / 살림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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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는 여기 서서 양치질을 하고 있고, '과거' 어디쯤의 나는 잠을 자거나 TV를 보거나 내가 지난 밤 먹었던 오리훈제구이를 먹고 있고, '미래'의 나는 어딘가에서 서평을 쓰고 있겠지, 하는. 그런 나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마치 천장이 뻥 뚫린 아파트 안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다. 다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각각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모두 똑같은 얼굴을 한 나의 모습이라는 점이 조금 다를 뿐. 내가 지금, 여기에서 이렇게 이 글을 적고 있을 줄 과거의 나는 당연히 몰랐었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는 글을 쓸 생각이 없었으므로. 미래의 나와 과거의 내가 만났다면 미래의 나는 과거의 나에게 어떤 말을 건넸을까. '너는 2009년 9월 4일 금요일 오전 11시 30분에 [시간 여행자의 아내]라는 작품에 대해 리뷰를 쓰게 될 거야' 라는 그런 말을 했으려나. 

헨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느 순간 사라져 과거와 미래를 자유롭게 드나들며, 돌아가신 어머니와 미래에 자신의 아내가 될 클레어를 만나고, 자신의 주치의가 어떤 성별의 아이를 얼마나 낳을지를 알게 되는 사람. 미래의 자신이 시간 여행을 통해 클레어에게 제공한 정보를 현재에 전달받고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되는 사람.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모두 맞물려야 완전한 시간을 누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시간 여행은 우리에게 신비롭고 경이로워 보이는 것이지만 적어도 헨리에게 있어 그것은 '질병'이었다. 언제 사라질지 예측할 수 없고, 어디에 떨어질 지 짐작할 수 없어 힘들었다. 그러나 외롭고 어두운 시간 여행자의 운명 속에서 클레어를 만난 순간부터 그의 인생은 그제야 완성의 가능성을 내비춘다. 클레어와 헨리가 함께 해야 완성되는 두 사람의 시간, 두 사람의 추억, 두 사람의 운명. 

제목은 [시간 여행자]가 아니라 [시간 여행자의 '아내']다. 헨리의 아내 클레어. 어린 시절 나이 든 헨리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는 늘 그를 기다려야 했다. 처음에는 그가 자신을 찾아오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현재의 헨리를 만난 이후로는 그가 시간 여행을 갔다 무사히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주기는 일정하지 않고 그가 어디를 가는지, 밥은 잘 먹는지, 누구를 만나 어떤 곤경을 당할지 클레어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그저 묵묵히, 그리고 걱정하며 기다릴 뿐이다. 그가 먼 훗날 자신을 다시 찾아와 따뜻하게 안아줄 때까지. 

누군가를 오랫동안, 그리고 늘 기다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이라도 예외는 없다. 처음의 확고했던 신념은 시간과 함께 옅어지기 마련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찾아오는 외로움, 그 사람으로 인해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는 주위의 간질임, 그리고 내가 진정 그 사람을 사랑하는가에 대한 의문까지. 사랑하면 행복해야 하고 즐거운 에너지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정작 현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기다림은 그 대상을 완전히 받아들이겠다는 또 다른 표현이다. 누구도 클레어에게 헨리를 기다리라고 강요한 사람은 없다. 그저 그녀는 그를 놓을 수 없었을 뿐이다. 사랑하니까. 헨리와 클레어의 사랑은 클레어의 '기다림'이 없었다면 절대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기다림'이 없었다면 두 사람의 사랑이 이미 결정된 것이었어도 다른 운명의 그림판이 움직였을테니까. 마지막의 안타깝고 애틋한 장면은 그들 사랑의 결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시간 여행을 하는 헨리로 인해 배경은 수시로 바뀐다. 27세의 헨리, 31세의 헨리, 43세의 헨리. 그리고 한 공간에 같이 있게 되는 두 사람의 헨리. 앞과 뒤가 모순되지 않도록 작가가 꽤나 정성을 들여 쓴 작품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덕분에 읽는 동안 책의 앞뒤를 뒤적이며 그림이 맞는지, 다른 점은 없는지 애를 써야 했지만 그 점이 매력이다. 

기다림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은 누군가를 오래도록 기다려 본 적이 없거나, 그 때의 대상을 사랑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나도 평생을 때때로 오랜 기다림을 동반할 수 있을만큼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미래의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누구와 함께 있을까. 그 사람과 같이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 이 책을 같이 추억하고 싶다.


   난 언제나 당신을 사랑해.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야.-p354 (시간 여행자의 아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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