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중요해지는 순간
론 커리 주니어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하늘에는 별과 달이 떠 있고, 그 밑에서 아이는 잠들어 있다. 시간은 여전히 흐르며, 저 멀리 별 하나가 지상으로 떨어지려 한다. 잠자는 아이는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태어날 때부터 알 수 밖에 없었던 지구의 종말, 그 종말로 인해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던 시간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고자 헌신했던 주니어. 운명은 정해진대로 흘러가고 사람들은 수많은 선택을 하지만 어떤 것이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지구종말을 이야기하는 작품은 진부하지만 호기심을 자극한다. 생명의 유한함을 느끼는 우리로서는 이 지구에도 언젠가는 끝이 찾아오지 않을까, 찾아온다면 어떤 형태로, 그 시기는 언제인가를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언제 어떻게 인류에게 종말이 다가올지 알게 된다면, 우리는 인생을 마냥 아름다운 것으로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제인지를 안다면 더 열심히 살 것도 같지만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어차피 없어질 세상, 열심히 살아서 뭐해, 라는 생각과 함께. 하지만 주니어는 그래도 인류를 위해, 무엇보다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과 에이미를 위해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그러나 그에게 찾아온 운명은 너무나 가혹했다. 삶은, 고된 것이다. 

이 책은 구성이 약간 독특하다. [쌍둥이별]처럼 등장인물들의 시각에서 조금씩 이야기가 전개되며 그 시각에는 '~다!'라고 확실히 단정지을 수 없는 불확실한 존재도 포함된다. 그것이 신인지, 아니면 그저 미래를 알고 있는 '목소리'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 목소리로 이야기가 시작되며, 그가 이야기할 때 각 문단 앞에 숫자들이 붙어있는 이 책을 읽다보면 곧, 그것이 지구의 멸망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게 될 것이다. 마지막 장면은 특히 인상적인데, 그것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 종말과 함께 또 다른 삶이 시작된다는 것일까, 아니면 끝이 있기에 아름다웠던 모든 것을 일컫는 것일까. 그래도 한 가지 확실히 느껴지는 것은 세상에, 우주를 뛰어넘은 온갖 시공간에 진정한 '끝'은 없다는 점이다. 

작가는 '모든 것에 끝이 있고, 그래서 모든 것에 의미가 있다'고 한다. 끝나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시험이 있기에 어쩔 수 없이 공부를 하게 되는 것처럼, 끝이 있기에 우리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일까. 하지만 여기에서 초점은 '끝'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시험만을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끝'은 늘 찾아온다.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은 존재하지 않고, 한 생명의 뒤를 이어 또 다른 생명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것이 굳이 자손이라고 표현될 필요는 없다. 크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지구라는 한 울타리 안에서 살고 있는 셈이니까. 

중요한 것은, 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과, 때문에 그 끝이 다가오기 전까지를 채울 우리의 인생이다.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얻을지. 무엇을 가치있게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이 사랑할 수 있을지 헤아리는 지혜. 만약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끝은 늘 다가오겠지만 그 끝을 어떻게 맞이하는가는 순전히 자신의 몫이다. 순간순간의 그 선택이 우리의 삶과 마지막을 풍요롭게도, 고되게도 만들 수 있다. '에이, 다 알고 있어'라고 말하지는 말자. 진부하게 느껴지는 것들에는 중요한 것들이 많을 수 있으니. 

작가는 인류종말이라는 극단적인 소재로 우리 삶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지만, 그가 설정한 인류종말은 결국 우리 삶의 마지막을 비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끝은 언제나 찾아와. 찾아오지 않을 수가 없지. 하지만 그 사이사이를 메꾸는 것은 결국은 매 순간의 너의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야, 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끝을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그 끝은 두려움으로 장식될 것이 아니라 아름답고 풍요로움으로 받아들일 가치가 있는 것임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인가. 

소설이라기에도, 그렇다고 소설이 아니라고 하기에도 자꾸만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이상한 이야기다. 주인공인 주니어에게 들려오는 목소리, 다중우주의 개념 등은 마치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허공에서 손을 허우적대게 만드는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소중한 사람들의 손을 잡고 언젠가 별이 가득한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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