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고스트
조힐 지음, 박현주 옮김 / 비채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어떤 책이든 그렇지 않은 책이 없겠지만, 이 책에 대한 나의 평가는 순전히 '취향의 차이'다. 영상 뿐만 아니라 책의 분위기, 묘사, 이야기 등에도 영향을 크게 받는 나로서는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머리가 아팠고 속이 불편했었다. 분위기 자체가 생명을 가지고 내 몸 전체를 압박해오는 느낌을, 혹시 알려나. 내가 읽기 힘들어하는 작가는 지금까지 딱 한 명 있는데, 그는 일본작가 '기리노 나쓰오'다. 편견이라고 해도 할 수 없지만 [리얼월드] 를 읽고 난 후, 그의 책을 다시 손에 들기가 겁이 난다. 어쩐지 이 '조 힐' 이라는 작가도 앞으로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다고 해서 그의 이야기들이 엉망인 것은 아니니 오해 마시기를. 

진주빛의 토슈즈와 블랙 표지가 묘하게 어울려 발레와 관련된 예.쁜. 공포소설인가 했으나 모두 15편으로 구성된 단편집이다. 그리고 각각의 이야기들이 담고 있는 소재는 예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신간 공포 걸작선>으로 시작되는 음습하고 기괴한 공포가 마치 벌레처럼 스멀스멀 우리 몸을 타고 기어오른다. 그 뒤를 잇는 이야기들의 주인공들 또한 왕따, 사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기묘한 가족, 전혀 평범하지 않은 의사까지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또 그렇지도 않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사람들 뿐이다. 작품 속의 사람들은 모두 불행하며, 아픔을 간직하고 있고, 그 아픔에서 벗어나려는 행동조차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불편하고 다른 의미에서 무서운 소설집이었지만 <팝 아트>라는 작품 하나만은 따뜻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더 인상적이다. 혈액 대신 공기가 몸 속을 채우고 있는 공기주입식 소년 아트. 어머니는 사라지고 아버지의 무관심과 사랑 없는 분위기가 가득 채워진 가정에서 자란 '나'는 그를 만나면서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주변 사람들과는 다른 존재였지만 '나'의 말을 잘 들어주고 가족보다 더 가깝게 위로해주었던 아트와 '나'는 누구보다 진한 우정을 나누지만, 사고로 인해 이별하게 된다. 이 작품은 공포나 호러소설보다 성장소설, 청춘소설이라는 이름이 더 알맞다. 가슴 속에 안타깝고 아련한 슬픔이 번져가지만 사실 이 작품 하나만으로 별 네 개를 주었을 정도로 읽을수록 괜찮은 이야기다. 

이 작품과는 반대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지만 작가의 상상력과 엄청난 기괴함으로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마지막 숨결>이라는 이름의 이 작품은 사람들의 마지막 숨결을 모으는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소재 자체와 분위기만으로도 음울해지지만 결말 부분은 뭐라 말 할 수 없는 잔혹함과 끔찍함이 전해져온다. 오멘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책을 펼치고 읽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공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 작가의 능력이 놀랍다. 스티븐 킹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관심을 끌었지만, 그의 아들이라는 사실조차 잊게 만드는 기묘하면서도 이상한 작가다. 앞으로 그의 작품을 또 읽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의 상상력과 그가 만들어낸 세계가 독특하다는 것은 인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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