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 꿈이 끝나는 거리 모중석 스릴러 클럽 26
트리베니언 지음, 정태원 옮김 / 비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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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 작가 이름과 표지를 봤을 때는 '게임책같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뒤따르는 선입관. 상처라도 입은 듯 한 쪽 손은 코트를 바싹 여미고, 한 쪽 손은 권총이 들린 채 늘어져 있는 남자와 따스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진한 회색의 풍경. 메마른 고독의 냄새만 풍겨나오면 어쩌나 하는 염려 아닌 염려. 표지만으로도 한숨이 포옥 나올 정도의 외로움이 느껴져 선뜻 책을 펼칠 수가 없었다. 고독을 풍기는 남자가 싫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분위기를 만나기 싫은 때도 가끔은 있는 것이다. 결국은 한 탐정이 (혹은 형사가) 외투 깃을 꼭꼭 여미고 고독의 바람을 일으키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가 될 거라고, 단순히 그렇게만 생각했다. 

라프왕트 (어쩐지 중국 사람 이름같다) 는 이제 53세를 맞는 메인의 경찰이다. 몬트리올의 프랑스계 지역과 영국계 지역의 경계선이 애매하게 되어 어느 쪽 언어도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중간지대, 이민자들이 가장 먼저 정착하는 곳, 노인과 패배자, 신세를 망친 사람들의 삶이 이어지는 곳, 메인. 그 곳에서는 꿈을 꾸는 것은 사치이고 작은 자존심을 지키는 것마저 굉장한 구경거리가 된다. 그런 메인에서 유일한 법의 집행자인 라프왕트는 오늘도 메인의 안전을 위해 순찰을 계속한다. 결혼 1년 만에 아내를 잃고, 총격전에서 얻은 부상으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남자. 유일한 즐거움은 친구들과 모여 피너클 게임을 하는 정도일까. 어느 밤, 젊은 이탈리아 남자가 칼에 찔려 살해되고 라프왕트는 젊은 신참내기 형사 거트먼과 빛바랜 메인의 역사를 다시 걷는다. 

굉장히 정적인 작품이다. 형사물임에도 범인을 뒤쫓는 숨가쁨, 스릴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라프왕트가 메인을 순찰하듯, 사건은 단서의 문을 열고 또 열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해결되어 갈 뿐이다. 작가는 이탈리아 청년의 죽음을 전면에 내세운 채 피폐한 메인의 거리, 그 곳에서 숨 쉬는 매춘부, 포주, 음식점과 술집의 주인들의 삶을 하나하나 조명한다. 그 곳에서 라프왕트의 삶 또한 제외될 수 없다. 라프왕트가 다른 것은 그가 메인을 관할하고 순찰하는 경관이라는 것 뿐, 그의 삶 또한 메인에 얽매인 다른 사람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고독이라는 병을 가슴 한 구석에 깊이 묻은 채 작은 설레임과 기쁨을 선사하는 존재가 다가오는 것에도 두려움을 느끼는 약하디 약한 노인일 뿐이다. 겉으로는 강한 척 하지만 늘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고 있을 리 없는 딸들을 상상하는 그 누구보다 연약한 존재. 

메인의 유일한 무법자(?) 라프왕트와는 달리 교과서대로의 경찰의 삶을 실현하려는 거트먼과의 조합이 참 재미있다. 수습형사로서 라프왕트와 사건해결에 뛰어든 거트먼 또한 젊다고 해서 특유의 발랄함과 눈부신 젊음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그가 나이를 먹는다면 라프왕트같은 진중함과 무게감을 지니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만큼 매사에 신중하고 진지한 청년. 머리로는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이 똑바로 서 있지만 라프왕트와 함께 행동하면서 그 기준도 모호해진다. 그런 거트먼을 곁에서 지켜보는 라프왕트의 모습은 흡사 의지할 수 있는 아버지를 보는 듯 했다. 의외의 곳에서 간간히 웃음이 나올만큼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커플이었다. 

이 작품의 강점은 역시 분위기다. '고독'이라는 단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고, '퇴폐'라는 단어만으로는 아우를 수 없는 거리 메인에서 그 메인을 닮아가는 남자 라프왕트는 나에게 이상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그것을 연민이라고 불러야 할 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상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행복을 비는 마음이 되어버렸다. 결국에는 범인이 드러나지만 앞쪽에서 풍기던 분위기가 뒤쪽에서 드러난 사건의 전모와 그리 잘 어울리지 않아 그 점이 약간은 아쉽다. 엄청난 걸작이 평범한 작품으로 돌아가버린 듯한 느낌. 하지만 <워싱턴 포스트>의 가장 완벽한 느와르라는 평가에 대해 불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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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외 세계문학의 숲 5
다자이 오사무 지음, 양윤옥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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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헥헥. 드디어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을 읽었습니다. 생각보다 읽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그다지 두껍지 않은 분량임에도 처음 도전! 하던 그 마음을 유지하기가 참 힘든 책입니다, 이 작품. 세계문학은 늘 마음 한 켠에 약간의 부담을 가지고 첫 페이지를 펼치게 되는데, 일본어 전공자라 그런지 일본의 세계문학은 좀 수월한 편이었어요. 도전! 할 때도 그렇고 작품을 계속 읽어내려갈 때도요. 그런데 이 녀석은 작품의 분위기와 주인공에 대한 몰입이 조금 힘들었습니다. 숱한 자살미수를 거쳐 결국에는 자살에 성공한 작가의 작품이었기 때문일까요. 가늠할 수 없는 어둠의 늪으로 자꾸만 끌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에 마지막까지 읽어낸 저 자신에게 기특하다 해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토닥토닥. 

작품은 알만한 분은 다 아시는 -나는 그 남자의 사진을 세 장, 본 적이 있다-로 시작됩니다. 어린 시절의 모습에서조차 어린아이다운 모습을 발견할 수 없는 남자. 유복하고 여유로운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그는 인간관계를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저히 알 수 없다는 그, 인간이 가진 감정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던 그는 '인간에 대한 마지막 구애'로 광대짓을 시작합니다. 자신의 마음과는 정반대로 타인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살아가게 되는 삶. 누군가에게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 하나로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나마 정상적인 유년시절을 보낸 그의 인생은, 그러나 가족들과 떨어져 학창시절을 보내는 동안 철저히 파괴되고 이것이 정말 인간의 삶인가 싶을 정도의 타락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저는 작품을 읽을 때 묘사와 문장도 꼼꼼하게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감정이입'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등장인물들의 감정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고 당위성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자신이 마치 등장인물이 된 것마냥 상황에 하나하나 반응하게 되는지요. 그런 감정이입이 없으면 등장인물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작품 전체도 이해할 수 없게 되는 것은 당연한 거겠죠. 저에게는 이 작품이 그랬어요. 아무리 유명하고 가치있는 세계문학이라고는 해도 저는 이 작품의 주인공이 어째서 이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었는가, 그 점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뭔가 해보고자 하는 의지, 어떻게든 풍요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저 또한 충만하다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만-가 결여된 한 인간이, 그저 인간 세상의 이치를 잘 깨닫지 못하겠고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에 두려움을 느낀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까지 자신의 삶을 내던져버릴 수 있는가, 하는 점이요. 그것을 과연 젊은이의 순수-만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일까요. 

어쩌면 제가 너무 좁은 범위 안에서만 이 작품을 바라보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번 주인공의 감정에 물음표가 떠오르자 몰입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으니까요. 전 이번에는 다 읽은 것만으로 만족할래요. 다른 책들처럼, 이 작품도 나이를 먹고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기대를 눌러담아 책장에 고이 꽂아두겠습니다. 참, 이 작품 안에는 <인간실격> 외에도 <물고기비늘 옷>, <로마네스크>, <새잎 돋은 벚나무와 마술 휘파람>, <개 이야기>, <화폐> 도 같이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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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혁신학교에 간다 - 대한민국 희망교육
경태영 지음 / 맘에드림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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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혁신학교에 관한 내용들이 궁금했다. 같은 교무실에 계시는 선생님 한 분은 혁신학교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셔서 나름대로 계획서도 만드시고 이리저리 연수도 들으러 다니시다가 결국 올해 혁신학교로 발령이 나셨다. 어찌어찌하다가 연수도 챙기지 못하고 혁신학교에 대한 막연한 생각에 자료도 미비한 나는, 인터넷을 통해 혁신학교에 대한 정보들을 얻어보려 했지만 생각보다 그 양이 적기도 하고 구체적인 내용들을 찾지 못해 마음 속 발을 동동 구르며 올 한 해는 또 어떤 수업과 학급경영을 해야 하나 걱정만 가득 안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차에 알게 된 이 책. 사실 책을 받아들었을 때조차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이었는데 읽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혁신 :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 새롭게 함+학교 : 일정한 목적, 교과 과정, 설비, 제도 및 법규에 의하여 계속적으로 학생에게 교육을 실시하는 기관=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 일정한 목적, 교과 과정, 설비, 제도 및 법규에 의하여 계속적으로 학생에게 교육을 실시하겠다는 의미. 책의 첫머리에 나와있는 혁신학교의 정의다. 학생 개개인의 개성과 인권이 무시된 채 좋은 성적을 거두어 높은 평가를 받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만을 최대 목표로 삼게 된 공교육은 학생과 학부모들의 외면으로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아무리 변명하고 무시하려 해도 그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고 이제 그 현실을 타파하기 위한 대책이 '혁신학교'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도약을 꿈꾸기 시작한다. 경기도교육청은 2009년 9월 13개 학교에 이어 2010년 3월 20개 학교를 혁신학교로 지정하여 이미 운영중이고 2011년에는 그 숫자가 더 늘어날 전망이며 서울시교육청도 2014년까지 순차적으로 300개 학교를 혁신학교로 지정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책에는 학교 구성원들의 의지와 화합, 문제의식 공유와 실천을 강조하는 혁신학교 7곳의 사례가 실려있다. 국어 시간에는 연극을, 음악시간에는 영어뮤지컬을 배우며 건강한 심성을 기를 수 있는 조현초등학교, 학부모들이 생태체험학습에 도우미교사로 참여하고 아빠와 함께하는 학교캠프가 있는 서정초등학교, 학생들이 음악과 춤, 극 등을 선택해 다양한 예술장르를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남한산초등학교, 친구 사랑의 날과 등굣길 하이파이브가 인상적이었던 장곡중학교, 지역 네트워크 활용이 돋보이던 덕양중학교, 해외통합기행을 통해 새로운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 이우학교, 교장선생님에게 보낸 친근한 문자가 인상적인 흥덕고등학교. 초중고에 따라 교육과정은 각각이었지만 학생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암기위주의 공부보다는 몸으로 느끼는 생활,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해볼 수 있는 기회부여, 학생과 교사의 열린 소통, 지역사회와의 연계,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인상적인 학교들이었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점은 이들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학교 가기를 즐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 한 편에서는 우려가 없지 않다. 모든 학교들이 혁신학교가 아닌 지금,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고 암기식 공부가 아닌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학습을 행해온 아이들이 전혀 다른 교육과정을 가진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 생기는 괴리감과 그로 인해 불거져 나올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또한 혁신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느끼는 소외감 등은 어떻게 하나. 실제로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혁신학교에 보내기 위해 이사를 다니고, 혁신학교로 지정된 학교에는 전학생을 받지 않겠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고 하니 교육적으로 거두는 성공 외에 차근차근 해결해나가야 할 문제들도 많을 것으로 보인다. 

학교가 변하기 위해서는 수업이 바뀌고 교육이 바뀌고 그 안의 구성원들이 바뀌어야 한다. 또한 실제와 맞지 않는 대학입시체제도. 공교육은 더 이상 입시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고 삶의 본질을 탐구할 수 있고 미래를 준비하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혁신학교는 그 방법의 일환이다. 많이 생각하고 연구하고 참여와 소통으로 아이들과의 미래를 꿈꾸는 학교, 그 곳이 바로 혁신학교의 시작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다시 또 새로운 학년을 맞을 준비를 하는 학부모와 교사가 읽는다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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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도시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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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군이 모여 생긴 도시 유메노. 유메(꿈)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것과는 정반대로 이 도시는 꿈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새로운 도시로의 위상을 높이고자 드림타운같은 쇼핑몰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이미 쇠락해가는 도시의 어둠을 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걸까요. 이미 도시는 꿈을 잃은 채 그 날 그 날을 겨우 숨쉬며 보내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젊은이들은 거의 대도시로 떠나고 남은 것은 젊은이들 중에서도 유메노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 뿐입니다. 도시를 채우는 것은 끊임없는 어둠과 어리석은 인간들이 내뿜는 악취. 그 중 소개된 다섯 사람-아이하라 도모노리, 구보 후미에, 가토 유야, 호리베 다에코, 야마모토 준이치-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하라 도모노리는 시청의 사회복지사무소에서 일하는 공무원입니다. 자신의 일에 그 어떤 보람도 느끼지 않고 기계적으로 일처리를 하는 무기력한 사람이죠. 자신의 일도 감당하기 벅찬데, 윗선에서는 생활보호대상자 수를 줄이라는 지침이 내려오니 요즘은 죽을 맛입니다. 구보 후미에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에요. 열일 곱 소녀이지만 누구보다 유메노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대학은 꼭 도쿄로 가겠다는 꿈을 안고 있는 당돌한 아가씨죠. 학교에서조차 유메노를 떠날 학생과 유메노에 남을 학생들로 구분되는 현실. 그녀는 도쿄의 여대생이 되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오늘도 학원으로 향합니다. 세일즈 판매를 하고 있는 가토 유야는 폭주족 출신으로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지금은 폭주족 시절 보스였던 가메야마 밑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말이 좋아 일이지, 엄밀히 따지자면 사기에요, 사기. 마트에서 보안담당으로 일하는 호리베 다에코는 남편과 이혼하고 두 자녀와 떨어져 사는 여성입니다. 외롭고 쓸쓸한 마음을 사슈카이라는 종교로 달래는, 조금 불쌍한 사람이에요. 야마모토 준이치는 지역 인사로 뒤가 구린, 그러면서 심지는 강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구보 후미에가 좋아하는 야마모토 하루키의 아버지기도 하고요. 

[꿈의 도시]는 아이하라 도모노리를 시작으로 이 다섯 사람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진행됩니다. 챕터 1이 아이하라 도모노리의 이야기라면 챕터 6은 되어야 다시 그의 이야기가 나온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아, 중간에 사건이 벌어져 구보 후미에의 이야기가 몇 번 빠지니까 꼭 그렇다고만은 할 수도 없겠군요. 어쨌든 이 다섯 사람의 이야기는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어두컴컴해져요. 어쩌면 이리도 생명력 없는 인생이 있을 수 있나, 어쩌면 이렇게도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는가, 어쩌면 이렇게도 자신에게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고 일을 해결하려 하는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아무 보람도 없고, 꿈도 없고, 남에게 해를 가하고도 죄의식도 없고, 외로움도 괜찮다고만 하며 사이비라는 것이 뻔히 보이는 종교에만 의지하는 사람들. 지역 인사라는 사람들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고 안에서만 권력을 휘두르며 볼썽 사나운 모습을 감추지도 않고 겔겔 거리며 웃고 있는 곳. 그런 유메노를 벗어나고자 꿈꿨던 구보 후미에만이 어쩌면 밝은 앞날을 기대해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녀에게 닥쳤던 일을 잘 극복한다면요. 

두께에 비해 슉슉 잘 읽히고 초반에는 재미도 있었지만 제가 별 세 개를 준 이유는 이렇습니다. 이 작품에는 그냥 '이야기'만 있다고 할까요. 결말이 궁금해지는 읽는 '재미'는 분명 있었지만 저는 아무 감동도 느끼지 못했어요. 가슴을 짠하게 울려주는 메세지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스무살 도쿄] 입니다. 일견 가벼운 청춘소설로 짐작되겠지만 의외로 그 안에 감동과 교훈이 숨어 있어서 아직까지 기억에 남습니다. 물론 재미도 있고요. 제가 읽다가 지하철 안에서 깔깔 웃어버렸다니까요. 마이니치 신문은 '마지막에 암흑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비춰 오는 것 같은 감동이 있다' 라고 했지만, 저는 구보 후미에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성장한 사람은 없다고 느꼈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오싹해진 장면이 바로 마지막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아, 호리베 다에코의 경우도 빼고요. 그녀는 조금,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예전의 길을 반복할 것 같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거든요. 빛을 느꼈다면 이들에게서가 아니라 유메노의 다른 사람들 쪽에서라고 할까요. 

이번 작품은 개인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만 되고 제대로 된 마무리가 되지 않은 느낌에 조금 아쉬운 작품이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끼셨을 지 궁금하네요. 아니면. 오쿠다 히데오는 그런 아쉬움을 일부러 조장한 것일까요? 꿈이 존재하지 않는 도시 유메노에서 일어난 일이니까요!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래도 다음 작품을 늘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작가임에는 분명합니다. 이야기는 재미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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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다 - 인생 앞에 홀로 선 젊은 그대에게
김난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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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서 앞자리 숫자가 바뀌었다. 정작 나는 아무렇지 않은데, 주위 사람들이 오히려 소란스럽다. 어제와 오늘이 그리 다를 것 없고 평소 때는 나이조차 잊고 사는데 왜 저러나 싶으면서도, 약간의 팔랑귀를 타고난 나는 또 점점 마음이 이끌려간다. 괜히 센티멘털해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난 아직 청춘이야, 이거 왜 이래!'라는 오기도 생겨서 괜히 이 책이 읽고 싶었더랬다. 그리고. 2010년 한 해는 이러저러 마음 다칠 일이 또 많았어서, 이 책이 눈에 들어온 시기에, 난 정말로 아팠더랬다. 새삼스러운 일이지만 스트레스보다 큰 만병의 원인은 없는 듯 하다. 그리도 아프고 저리던 몸이 방학을 맞음과 동시에 점점 괜찮아졌으니까.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파온다는 말을, 난 태어나서 두 번째로 경험했더랬다. 

사람은 참 간사한 동물이다. 좋고 즐거울 때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던 에세이들이, 종교가, 마음이 힘들고 몸이 아프니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임용고시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면서 지친 마음을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로 달랬던 그 때처럼. 그러니 위의 평점은 지극히 나의 주관적인 평가라 하겠다. 실제로 읽어보면 나보다는 지금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이나, 취업난에 허덕이는 어린 청춘들에게 더 적합하다는 느낌을 받겠지만 그들보다는 조금, 아주 조금 성숙한 청춘인 내가 읽어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내용들이 많았다. 다만 어린 청춘들이 100% 청자의 입장에서 받아들이게 된다고 한다면, 나는 청자와 화자의 입장을 번갈아가면서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 조금 다르다고 할까. 

그는 선생이라 했다. 학생들을 꿈꾸게 만들고 그 꿈을 이루도록 도와 주는 사람, 그런 좋은 선생이 되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새해 목표를 정했다. '학생들을 꿈꾸게 만들고, 그 꿈을 이루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되자고. 유독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주면 좋을 것 같은 말들이 눈에 많이 들어온 것은,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하기 때문일 것이다. 공부밖에 모르는 아이들, 학교와 집 안에서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떠먹여주던 밥만 열심히 받아먹던 아이들이 대학에 가면 어떤 마음이 들 지 조금은 알 것 같기 때문이다. 성실했던 아이들일수록, 공부를 잘하고 부모님 기대에 부응했던 아이들일수록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는 가혹하고 그만큼 고통스러울 것이다. 

김난도 교수의 말 중 첫 번째로 공감한 것은 '대학에 진학해서 처음 느끼는 어려움은 '목표가 퍼져버리는 것'이다'라는 부분이었다. 대학 진학이라는 목표가 달성된 후 무엇을 할 것인지가 순간 막연해지면서 생겨나는 아픔. 이 아픔을 이미 아이들은 겪고 있다. 수시에 합격하거나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와서 하는 말 중 거의 대부분은 '시간은 많은데 생각보다 할 게 없다' 였다. 그는 그런 아이들에게 조급해하지 말고 자신이 가진 가능성을 믿으라고 말한다. 실수는 자산이니 멋진 실수를 해보고 치밀했던 삶의 계획에 여유를 두고 다소 우연에 기대어 보라고. 그렇지 않아도 불안해하고 초조해 할 스무 살 청춘들에게 이보다 더 위로가 될 말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눈앞의 것에 연연하지 말고 넓게 미래를 바라보라는 뜻의 많은 말들은 그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통용될 것이다. 

아무래도 대학 교수이다보니 자신이 학생들을 바라보면서 느꼈던 것, 자신이 어려웠던 시절 생각했던 것들 중심으로 내용이 구성되어 있다. 그러니 단순히 아픔을 위로받을만한 이야기를 기대했던 사람들이라면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간지점에서 자신의 목표를 재검토해보고 싶은 사람, 새로운 목표를 세웠는데 단순히 '나이'와 '시간'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 사람이 읽는다면 어느 정도는 자신감과 위로를 얻을 수도 있겠다. 내 경우에는 이 이야기들에 직접적인 위로를 받았다기보다, 그의 말과 나의 행동들을 비교하고 반성하고 새로운 일년을 계획할 수 있었다. 항상 곁에 두고 내 일로 인해 힘들어질 때마다 꺼내 다시 읽어보고 싶다. 

사람은 괴로워하고 아파하고, 익숙해지면 또 괴로워하고 아파하면서 살아가기 마련인 것 같다. 나이에 신경쓰지 말자. 속도에도 신경쓰지 말자. 도전과 용기는 나이와 세대를 불문하고 필요한 것임을 늘 기억할 수 있기를. 불안하고 막막하고 흔들리고 외로워도 삶에 대한 열정과 용기, 담대함을 유지할 수 있다면 우리는 늘 청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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