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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도시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12월
평점 :
세 개의 군이 모여 생긴 도시 유메노. 유메(꿈)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것과는 정반대로 이 도시는 꿈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새로운 도시로의 위상을 높이고자 드림타운같은 쇼핑몰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이미 쇠락해가는 도시의 어둠을 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걸까요. 이미 도시는 꿈을 잃은 채 그 날 그 날을 겨우 숨쉬며 보내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젊은이들은 거의 대도시로 떠나고 남은 것은 젊은이들 중에서도 유메노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 뿐입니다. 도시를 채우는 것은 끊임없는 어둠과 어리석은 인간들이 내뿜는 악취. 그 중 소개된 다섯 사람-아이하라 도모노리, 구보 후미에, 가토 유야, 호리베 다에코, 야마모토 준이치-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하라 도모노리는 시청의 사회복지사무소에서 일하는 공무원입니다. 자신의 일에 그 어떤 보람도 느끼지 않고 기계적으로 일처리를 하는 무기력한 사람이죠. 자신의 일도 감당하기 벅찬데, 윗선에서는 생활보호대상자 수를 줄이라는 지침이 내려오니 요즘은 죽을 맛입니다. 구보 후미에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에요. 열일 곱 소녀이지만 누구보다 유메노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대학은 꼭 도쿄로 가겠다는 꿈을 안고 있는 당돌한 아가씨죠. 학교에서조차 유메노를 떠날 학생과 유메노에 남을 학생들로 구분되는 현실. 그녀는 도쿄의 여대생이 되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오늘도 학원으로 향합니다. 세일즈 판매를 하고 있는 가토 유야는 폭주족 출신으로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지금은 폭주족 시절 보스였던 가메야마 밑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말이 좋아 일이지, 엄밀히 따지자면 사기에요, 사기. 마트에서 보안담당으로 일하는 호리베 다에코는 남편과 이혼하고 두 자녀와 떨어져 사는 여성입니다. 외롭고 쓸쓸한 마음을 사슈카이라는 종교로 달래는, 조금 불쌍한 사람이에요. 야마모토 준이치는 지역 인사로 뒤가 구린, 그러면서 심지는 강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구보 후미에가 좋아하는 야마모토 하루키의 아버지기도 하고요.
[꿈의 도시]는 아이하라 도모노리를 시작으로 이 다섯 사람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진행됩니다. 챕터 1이 아이하라 도모노리의 이야기라면 챕터 6은 되어야 다시 그의 이야기가 나온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아, 중간에 사건이 벌어져 구보 후미에의 이야기가 몇 번 빠지니까 꼭 그렇다고만은 할 수도 없겠군요. 어쨌든 이 다섯 사람의 이야기는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어두컴컴해져요. 어쩌면 이리도 생명력 없는 인생이 있을 수 있나, 어쩌면 이렇게도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는가, 어쩌면 이렇게도 자신에게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고 일을 해결하려 하는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아무 보람도 없고, 꿈도 없고, 남에게 해를 가하고도 죄의식도 없고, 외로움도 괜찮다고만 하며 사이비라는 것이 뻔히 보이는 종교에만 의지하는 사람들. 지역 인사라는 사람들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고 안에서만 권력을 휘두르며 볼썽 사나운 모습을 감추지도 않고 겔겔 거리며 웃고 있는 곳. 그런 유메노를 벗어나고자 꿈꿨던 구보 후미에만이 어쩌면 밝은 앞날을 기대해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녀에게 닥쳤던 일을 잘 극복한다면요.
두께에 비해 슉슉 잘 읽히고 초반에는 재미도 있었지만 제가 별 세 개를 준 이유는 이렇습니다. 이 작품에는 그냥 '이야기'만 있다고 할까요. 결말이 궁금해지는 읽는 '재미'는 분명 있었지만 저는 아무 감동도 느끼지 못했어요. 가슴을 짠하게 울려주는 메세지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스무살 도쿄] 입니다. 일견 가벼운 청춘소설로 짐작되겠지만 의외로 그 안에 감동과 교훈이 숨어 있어서 아직까지 기억에 남습니다. 물론 재미도 있고요. 제가 읽다가 지하철 안에서 깔깔 웃어버렸다니까요. 마이니치 신문은 '마지막에 암흑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비춰 오는 것 같은 감동이 있다' 라고 했지만, 저는 구보 후미에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성장한 사람은 없다고 느꼈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오싹해진 장면이 바로 마지막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아, 호리베 다에코의 경우도 빼고요. 그녀는 조금,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예전의 길을 반복할 것 같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거든요. 빛을 느꼈다면 이들에게서가 아니라 유메노의 다른 사람들 쪽에서라고 할까요.
이번 작품은 개인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만 되고 제대로 된 마무리가 되지 않은 느낌에 조금 아쉬운 작품이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끼셨을 지 궁금하네요. 아니면. 오쿠다 히데오는 그런 아쉬움을 일부러 조장한 것일까요? 꿈이 존재하지 않는 도시 유메노에서 일어난 일이니까요!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래도 다음 작품을 늘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작가임에는 분명합니다. 이야기는 재미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