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 꿈이 끝나는 거리 모중석 스릴러 클럽 26
트리베니언 지음, 정태원 옮김 / 비채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처음 작가 이름과 표지를 봤을 때는 '게임책같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뒤따르는 선입관. 상처라도 입은 듯 한 쪽 손은 코트를 바싹 여미고, 한 쪽 손은 권총이 들린 채 늘어져 있는 남자와 따스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진한 회색의 풍경. 메마른 고독의 냄새만 풍겨나오면 어쩌나 하는 염려 아닌 염려. 표지만으로도 한숨이 포옥 나올 정도의 외로움이 느껴져 선뜻 책을 펼칠 수가 없었다. 고독을 풍기는 남자가 싫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분위기를 만나기 싫은 때도 가끔은 있는 것이다. 결국은 한 탐정이 (혹은 형사가) 외투 깃을 꼭꼭 여미고 고독의 바람을 일으키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가 될 거라고, 단순히 그렇게만 생각했다. 

라프왕트 (어쩐지 중국 사람 이름같다) 는 이제 53세를 맞는 메인의 경찰이다. 몬트리올의 프랑스계 지역과 영국계 지역의 경계선이 애매하게 되어 어느 쪽 언어도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중간지대, 이민자들이 가장 먼저 정착하는 곳, 노인과 패배자, 신세를 망친 사람들의 삶이 이어지는 곳, 메인. 그 곳에서는 꿈을 꾸는 것은 사치이고 작은 자존심을 지키는 것마저 굉장한 구경거리가 된다. 그런 메인에서 유일한 법의 집행자인 라프왕트는 오늘도 메인의 안전을 위해 순찰을 계속한다. 결혼 1년 만에 아내를 잃고, 총격전에서 얻은 부상으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남자. 유일한 즐거움은 친구들과 모여 피너클 게임을 하는 정도일까. 어느 밤, 젊은 이탈리아 남자가 칼에 찔려 살해되고 라프왕트는 젊은 신참내기 형사 거트먼과 빛바랜 메인의 역사를 다시 걷는다. 

굉장히 정적인 작품이다. 형사물임에도 범인을 뒤쫓는 숨가쁨, 스릴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라프왕트가 메인을 순찰하듯, 사건은 단서의 문을 열고 또 열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해결되어 갈 뿐이다. 작가는 이탈리아 청년의 죽음을 전면에 내세운 채 피폐한 메인의 거리, 그 곳에서 숨 쉬는 매춘부, 포주, 음식점과 술집의 주인들의 삶을 하나하나 조명한다. 그 곳에서 라프왕트의 삶 또한 제외될 수 없다. 라프왕트가 다른 것은 그가 메인을 관할하고 순찰하는 경관이라는 것 뿐, 그의 삶 또한 메인에 얽매인 다른 사람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고독이라는 병을 가슴 한 구석에 깊이 묻은 채 작은 설레임과 기쁨을 선사하는 존재가 다가오는 것에도 두려움을 느끼는 약하디 약한 노인일 뿐이다. 겉으로는 강한 척 하지만 늘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고 있을 리 없는 딸들을 상상하는 그 누구보다 연약한 존재. 

메인의 유일한 무법자(?) 라프왕트와는 달리 교과서대로의 경찰의 삶을 실현하려는 거트먼과의 조합이 참 재미있다. 수습형사로서 라프왕트와 사건해결에 뛰어든 거트먼 또한 젊다고 해서 특유의 발랄함과 눈부신 젊음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그가 나이를 먹는다면 라프왕트같은 진중함과 무게감을 지니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만큼 매사에 신중하고 진지한 청년. 머리로는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이 똑바로 서 있지만 라프왕트와 함께 행동하면서 그 기준도 모호해진다. 그런 거트먼을 곁에서 지켜보는 라프왕트의 모습은 흡사 의지할 수 있는 아버지를 보는 듯 했다. 의외의 곳에서 간간히 웃음이 나올만큼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커플이었다. 

이 작품의 강점은 역시 분위기다. '고독'이라는 단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고, '퇴폐'라는 단어만으로는 아우를 수 없는 거리 메인에서 그 메인을 닮아가는 남자 라프왕트는 나에게 이상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그것을 연민이라고 불러야 할 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상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행복을 비는 마음이 되어버렸다. 결국에는 범인이 드러나지만 앞쪽에서 풍기던 분위기가 뒤쪽에서 드러난 사건의 전모와 그리 잘 어울리지 않아 그 점이 약간은 아쉽다. 엄청난 걸작이 평범한 작품으로 돌아가버린 듯한 느낌. 하지만 <워싱턴 포스트>의 가장 완벽한 느와르라는 평가에 대해 불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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