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제3인류 1~2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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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접한 베르나르의 신작. 처음 [아버지들의 아버지]를 읽은 뒤로 [타나토노트]와 [뇌]를 읽은 후 한동안 그의 작품을 읽지 않았지만 여전히 그가 만들어낸 세계는 재미있고 신기한 데다 소설 속 세상을 진짜처럼 믿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성적으로는 '이건 허구의 세계야,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정말 그랬다는 건 아니잖아' 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책을 읽고 있을 때면 지구의 어느 한 쪽에서는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믿음이 생겨버리는 것이다. 베르나르가 종교를 만들면 가장 먼저 내가 홀라당 넘어가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당신, 여전히 매력 있구나.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빙그레 웃고 있는 사진은 세월은 그를 스쳐지나지도 못한 것 같다.

 

작품 시작부터 쑥 빨려들어갔다. 한 무리의 탐사대가 발견해 낸 17미터의 거대 인간상. 고생물학자 샤를 웰즈를 비롯한 탐사대는 그들이 바로 최초 인류이고 그들의 문명이 적어도 현재의 인류에 뒤지지는 않는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발견한다. 발견해낸 사실을 기록하고 영상을 촬영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고로 그들의 발견은 다시 어둠 속에 파묻히고 만다. 한편 샤를 웰즈의 아들인 다비드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오로르, 누시아, 펜테실레이아, 나탈리아 대령과 마르탱 중위와 함께 방사능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신인류 계발에 착수한다. 실험은 성공에 이르고 그들은 평균 키가 17cm밖에 되지 않는 '에마슈'라 이름 지은 신인류를 탄생시켰다. 새롭게 창조된 세계, 새롭게 세워지는 질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나서, 그리고 겪는 와중에 여성적인 면이 강한 초소형 인류인 에마슈들은 작전에 투입되고 비밀로 지켜졌던 그들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초소형 인류, 생각하는 로봇 등의 등장으로 첨단 과학을 소재로 한 소설이 아닌가 싶지만 인간의 존재 자체에 대해 고민한 작품으로도 읽힐 수 있을 듯 하다.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세계, 우리를 품어주는 세계인 지구-가이아-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인간들의 모습은 굉장히 이기적이고 지구에게는 해만 가하는 생명일 뿐이다. 서로 돕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오직 지구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관계. 지금까지 항상 따뜻하고 푸르게만 생각해왔던 지구의 시각이 너무 냉철하고 차가워서 낯설기도 했지만 일회용 젓가락을 만들기 위해 콩고의 나무들을 베어낸다는 부분에서는 그만 움찔하고 말았다. 작가는 뉴스의 형식을 빌어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소식을 전해주는데 그 안에 교묘히 작품과 연결되는 부분들도 심어놓았다. 작품을 읽다보면 관련된 부분이 자연히 눈에 띠지만 실제로 뉴스가 방영되는 우리 생활은 어떨까. 지구 온난화, 지구의 산소인 아마존 밀림이 사라져간다는 뉴스도 실제로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넘겨버리고 있지 않나. 어쩌면 작가는 환경오염과 지구 온난화 등 이미 병들어가는 지구에는 여전히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풍자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해서 그런 점은 영화 <아바타>를 떠올리게 한다.  

 

한편으로는 우리 다음에는 어떤 인류가 출현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작품이기도 하다. 우리가 최초의 인류가 아니라는 가정. 우리 전에도 문명화된 인류가 살았고, 우리 다음에도 분명히 인류는 나타날 것이라는 가정. 어쩐지 겸허해지는 느낌이 들면서도 소설 속 다비드 일행이 만들어낸 '에마슈'들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다비드 일행을 신이라 믿고 그들이 만들어낸 세상에서 안전하게 살다가 최초의 죽음을 접하게 된 그들. 점차 죽음과 범죄라는 개념을 깨달아가며 법과 종교를 만들어 체계화된 세상을 만들어내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우리 인류의 발전과정을 지켜보는 듯 하여 흥미로웠다. 예전 신종플루가 한창 유행할 때 어디선가 인류의 멸망에 대해 들은 기억이 난다. 인류가 멸망한다면 전쟁 혹은 질병 때문일 거라고. [제3인류]는 그런 멸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인류가 과연 어디까지 버텨낼 수 있고 무엇을 지켜낼 수 있을지 영생이 주어진다면 지켜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개미]는 읽지 않았지만 [개미]가 출간된 지 벌써 20년이 되었다고 한다. [개미]의 등장인물인 에드몽 웰즈와 연관시켜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의 여러 설명들로 인해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를 좋아한다더니 작품 곳곳에서 우리나라와 한국인에 대한 묘사를 볼 수 있었다는 점도 재미있다. 과학적인 검증이나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고라도 작가의 상상력과 구성력이 뛰어나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다만, 완결이 아니라는 것. 완결이 아니라는 것도 2권 마지막 페이지에서야 알았다. 이제 1부 끝이라니, 몇 부까지 진행시키려나. 작전에 투입된 후 살아남은 에마슈의 존재가 어쩐지 조마조마하다. 현 인류와 신 인류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다음이 기대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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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 받은 황비 1~2 세트 - 전2권 블랙 라벨 클럽 7
정유나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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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슬립한 여자는 늘 그 시대의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독특한 옷차림에 언어도 모르는 여자는 몇 번의 위험을 맞이하지만 그 때마다 늘 그녀를 구해주고 아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고, 여자의 신기한 소문을 들은 남자(이 때의 남자는 거의 대부분 왕이거나 왕자, 혹은 힘있고 매력있는 그 누군가이다) 와 마주하게 된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집에 돌아가고 싶어 몇 번이나 도망을 치고 그녀에게 구애하는 남자의 마음을 모른 척 하지만 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오직 자신만 바라보는 남자에게 이끌려 결국 그의 곁에 남기로 결심한다. 타임슬립한 시대는 먼 미래거나 아주 옛날, 혹은 여자가 잘 알고 있던 역사 속 어디 쯤이었다.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의 여자는, 타임슬립했다는 이유로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점이 매력으로 작용되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우리가 한 가지 간과했던 점이 있다. 어쩌면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 타임슬립으로 인해 그 시대의 다른 누군가는 상처받고 있었다는 것을.

 

[버림 받은 황비]의 주인공은 타입슬립한 여자가 아니라, 그녀로 인해 모든 것을 빼앗겨야만 했던 다른 누군가이다. 태어난 이후로 황태자의 반려로 키워져 황실의 예법과 마음가짐을 배워온 그녀, 아리스티아 라 모니크. 지금은 차가운 눈길로 그녀를 마주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자신을 돌아봐주며 서로 믿고 의지하고 살아가게 될 거라 믿어온 그녀의 짝은, 세상에서 제일 차가운 얼음같은 사람, 황태자였다. 그런 그들 앞에 어느 날 검은 머리 소녀 지은이 나타나고 황태자는 신의 축복을 받은 사람은 아리스티아가 아니라 지은이라며 그녀를 황후의 자리에 올려버린다. 결국 후비의 자리에서 지은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하며 온갖 설움을 당하지만 그래도 아리스티아는 황제가 된 그를 보필하기로 결심했었다. 그러나 모함에 의해 아버지를 잃고 자신마저 처형당한 아리스티아는 어찌된 일인지 열살 때로 돌아와 있다. 황제로부터 당한 수모와 고통, 아버지를 잃었던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새로운 길을 걸어나가기로 결심한 그녀 앞에 새로운 운명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작품의 초반에서 아리스티아가 겪는 고통은 내 마음을 시리게 했다. 아무리 마음을 다해도 돌아봐주지 않는 사람은 그녀를 더 아프게만 했고, 아무것도 모른 채 아리스티아 앞에서 징징거리기만 하는 지은은 무척 짜증스러웠다. 처음에는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하다가, 나중에는 아리스티아에게 자매처럼 지내자고 하더니, 결국 황제를 사랑하게 되었다며 미안하다 말하는(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지은 때문에 버럭 화가 났다. 평생의 인연으로 함께 하자 했으면서도 아리스티아가 황제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질투와 배신감(왜 배신을 느껴!!)을 느끼는 지은이 어이가 없었고, 늘 황제만 생각하는 아리스티아도 바보처럼 보였다. 무슨 캐릭터들이 이리 일방적이야!!-라며 계속 화를 내고 있는 동안 아리스티아가 과거로 돌아간다. 결국 다시 시작하게 된 인생. 아버지의 사랑을 가슴 깊이 느끼며 같은 아픔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 인생 앞에서 주춤거리는 그녀 앞에 알렌디스와 카르세인이 손을 내밀고, 과거에는 그녀를 그토록 아프게 했던 황태자마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며 다가온다.

 

뻔한 로맨스라 생각했는데 뭔지 모르게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 있다. 다시 시작된 인생 속에서 아리스티아가 앞을 잘 살피며 걸어갔으면 하고 부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어느새 주먹을 불끈 쥐게 된다. 셋 중 과연 누가 그녀의 짝이 될 것인지 (마치 응답하라 1994를 보는 느낌?!) 두근두근 하다. 전체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각 권 마지막에 실린 외전도 마음에 든다. 알렌디스와 카르세인이 서로 투닥투닥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1권 뒷편에 실린 외전으로 지은과 황태자에 대한 짜증이 아주 약간 가라앉았다 ㅡ_ㅡ;;

 

안타까운 점은 2권으로 완결인 줄 알았는데 아니란다. 무려 5권으로 완결이란다. 3권을 사러 내일 외출을 해야 할 지 월요일에 인터넷으로 주문할 지 무척 고민스럽다. 다행히 올해 안에 완간 된다니 부디 그 약속만 지켜졌으면 하는 바람!! 다른 장르도 아니고 로맨스 소설의 다음 권이 출간되기를 기다리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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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닉 페어웰 지음, 김용재 옮김 / 비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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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의 올해 가을편 중 한 작품에는 생각을 멈추지 않는 남자가 등장한다. (드라마의 스포 있습니다!!) 뭔가를 쓰고 있는 남자의 모습으로 시작된 드라마는 그를 마감기한에 쫓기는 작가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띵동. 물병을 맡기러 온 옆집 여자. 그녀와의 상황에서 뭔지 모를 위화감을 느낀 주인공은 그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물을 마셔보기도 하고, 물병이 담긴 박스 안을 살피기도 하는 등 여전히 부산스럽다. 그 와중에도 몇 자 적어보겠다고 책상 앞에 앉아보지만 그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다양한 생각들 때문에 도저히 글쓰기에 집중할 수 없다. 그리고 그의 이런 생각들은 옆집 여자의 '요즘, 비가 안 내리네요' 라는 한 마디로 정지된다. 옆집 여자와 그녀가 간직한 비밀, 그리고 물병들 모두 그가 만들어낸 환각이다. 그가 속해 있는 세상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황폐화되어버린 지구 한복판. 그리고 그가 가진 전부는 한 병의 물이 다이다.

 

나는 그 남자가 생각을 멈출 수 없었던 이유를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계속, 자신이 만들어낸 세상 속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각해야만 암담하고 비참한 현실에서 눈을 돌릴 수 있었을 테니까. 어째서 [GO]라는 작품을 말하는 데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일본 드라마 이야기를 꺼내는 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GO]를 읽으면서 계속 그 일본 드라마가 생각났다. 문체에 속도가 있고 생각의 고리들이 계속 연결되는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소설 속 주인공과, 현실을 잊기 위해 계속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드라마 속 그 남자가 매우 닮아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물론 [GO]의 주인공은 현실에서 도망은 치고싶지만, 도망치지는 않는 인물이다. 두 사람은 생각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살아가고 있지만, 드라마 속 남자는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 계속 생각하고 있는 반면 [GO]의 주인공은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점이 다르다고 할까.

 

[GO]는 한 편의 성장소설이자 작가 이규석의 자전적 소설이다. 이름도 정확하지 않은 스물 아홉 살의 청년. 패신저라는 클럽에서 디제잉을 하고 있고, 언젠가 훌륭한 작가가 되어 자신의 책을 내는 것이 꿈인 사람. 하지만 현실은 그가 예측하는 것보다 훨씬 가혹하게 그를 무릎꿇린다. 좋은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글은 잘 써지지 않는데다 사랑하는 여인을 단순한 오해와 제어하지 못한 욕망으로 잃었고, 같은 외로움을 지닌 사람이라 믿었던 다른 여자에게는 그가 모은 전재산을 강탈당했다. 어린 시절 떠나버린 아버지는 여전히 상처로 남아있고 그의 삶은 날이 갈수록 버겁기만 하다. 하지만 여러 우여곡절 끝에 친구를 얻었고, 또 친구를 잃었으며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내용만 보면 굉장히 어두운 소설인데 이 작품은 무척 시끄럽고 예상치 못하게 발랄하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내면의 소리였을 뿐 작품 속 다른 등장인물들이 보기에 주인공은 조용하거나 의외로 내성적인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타인을 믿지 못해 친구도 만들지 못했고,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기억에 제대로 사랑할 수도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끊임없이 후회하고 생각하고 앞으로 달려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작가의 어린시절은 어땠을지 궁금하게 한다.

 

어린 나이에 브라질로 이민 간 작가는 완벽한 브라질인이 되어 살아가기로 결심했고, 그는 이제 생각까지도 브라질어로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출간기념파티에서 마주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유창한 브라질어를 구사하는 작가의 모습은 자유로워보이면서도 약간 쓸쓸해보였다. 작품 속 주인공의 모습을 너무 투사한 탓일까. 다른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도록 도와주고 싶었지만 가장 많이 변화한 것은 자신이라는 말이 인상깊다. 우리의 정서와 살짝 맞지 않는 부분도 있고 감정의 흐름이 빨라 갸우뚱하게 만든 부분도 있지만, 불안함과 두려움 속에서도 꿈과 로맨틱함을 잃지 않으려는 메세지는 충분히 전달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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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심판 1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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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해보자. 정말 끔찍해서 상상하기 싫겠지만 그래도 한 번 해보자. 나의 분신이던 쌍둥이 동생은 6년 전 갑자기 사라졌다가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녀가 아끼던 빨간색 롤러스케이트를 꼭 한 짝만 신은 채로. 그런데 지금 바로 내 눈 앞에 동생의 빨간색 롤러스케이트의 다른 한 짝이 보인다. 그리고 나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는, 쓰러져있는 한 남자. 그 남자의 가슴에는 '날 죽여라'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달리 생각해보려고 해도, 그는 내 동생의 생명을 앗아간 진범임이 확실해보인다. 그는 의식이 없고, 나와 함께 온 동료는 나에게 원하는대로 하라고 이야기해준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속삭이는 자]가 출간된 후 한동안 뜸하던 작가 도나토 카리시가 '악'에 관한, 또다른 '괴물' 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간의 흐름만큼 [속삭이는 자]때보다 이야기의 구성도 더 탄탄해졌고, 전하려는 메시지도 확실해진 듯 하다. 바티칸에 축적된 방대한 범죄 기록을 바탕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신부들. 그리고 나이에 맞춰 적당한 사람을 살해하고 완벽히 그 자리를 차치하는 카멜레온 살인범. 작가는 실화를 모티브로 두 방향의 이야기를 절묘하게 짜맞추어 하나의 줄기로 만들어냈다. 

 

총격으로 인해 기억을 잃고 사라진 여대생을 조사하는 신부 마르쿠스. 그는 바티칸에 축적된 기록을 바탕으로 괴물을 쫓는 프로파일러이다. 사라진 여대생 라라의 행적을 좇는 와중에 미제사건의 진범과 피해자 가족이 마주하는 일이 연달아 발생하고, 그 순간마다 피해자 가족들은 저마다의 선택을 하게 된다. 또 다른 한 편에서는 사랑하는 남편 다비드를 잃은 산드라가 등장한다. 르포기자였던 그의 부재를 인정할 수 없어 그의 짐조차 찾아올 수 없었던 산드라는, 인터폴 형사라는 한 남자의 전화를 통해 남편의 죽음이 사고가 아닌 살해임을 의심하게 된다. 그가 남긴 여러 장의 사진들. 그리고 하나씩 밝혀지는 다비드의 비밀. 산드라와 마르쿠스의 접점이 밝혀지는 순간, 그리고 마르쿠스가 자신의 기억에서 해방되는 순간, 악이 아니었음에도 악이 될 수밖에 없었던 남자와 악이었음에도 악이 아닌 채 살아온 남자의 존재가 드러난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한 단어는 바로 '선택'이다. 자신의 삶을 '선택'한다는 것. 나의 가족을 해한 그 누군가가 바로 내 눈 앞에 있을 때 할 수 있는 선택, 나에게 악으로 갈 수 있는 길과 그렇지 않은 길이 있을 때 어느 쪽 길을 걸을 것인지에 대한 선택. 우리의 삶은 매 순간이 선택으로 이루어지며 그 작은 선택들이 현재 뿐만 아니라 미래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악에 있어서만큼은 창조되는 것인지, 선택하는 것인지에 대해 정확한 대답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 중간중간 추격자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작품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이 단락들이 작품의 결말과 어우러져 멋진 엔딩을 만들어냈다. 속편을 예고하는 듯한, 다시 무언가가 시작된다는 무언의 경고. 

 

바티칸이 가진 자료를 바탕으로 한다는 말을 듣고 또 성서와 관련된 이야기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소재만 가져왔을 뿐.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만큼 카라바조의 그림을 해석하는 부분도 흥미로웠다. 그런데 세상에는 정말 그런 신부들이 존재하는 것일까. 어디까지가 실화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여전히 아리송하다. 바티칸에는 우리가 모르는 비밀들이 얼마나 많을지 궁금하다. 투명인간이 된다면 뭘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바티칸 문서고에 들어가보고 싶다고 대답할 지경이다. 하지만 어쩌면 모른 채 놔두는 편이 더 좋은 것들이 많을 듯 하다는 생각도 든다. 현실이 소설보다 특히 더 가혹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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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계곡 모중석 스릴러 클럽 35
안드레아스 빙켈만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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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사랑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누군가를 '가지고 싶다, 소유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야만 사랑이라 부를 수 있다면 나는 한 번도 사랑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일까.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과 '가지고 싶다'는 마음에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나에게 사랑은 '함께 있고 싶다'였고, '그 사람이 나로 인해 행복했으면 좋겠다' 였고, 둘이 '함께 공감하는' 감정이었다. 누군가가 나로 인해 힘들어하는 모습은 언제나 보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나를 원하지 않는다 느껴지면 가볍게 떠날 수 있었다. 그것은 쿨함도 무엇도 아닌 나만의 방식이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곧잘 내뱉곤 하는 '난 네거야' 혹은 '넌 내거야' 같은 말은 와닿지 않는다. 물론 로맨틱하게 느껴지지 않을 때가 없는 것은 아니었고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영향을 미칠 수는 있겠지만 내 자신의 주인은 늘 나였고, 그 주인이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조차도 나는 그 누구의 것은 아니었던 듯 하다.

 

한 여자가 지옥계곡이라 불리는 험한 곳을 향해 산을 오르고 있다. 그녀는 곧 뛰어내리기 직전이다. 산악구조대원이자 스포츠용품점을 운영하는 로만이 그녀를 구하기 위해 달려가지만, 그녀는 자신의 손을 뿌리친 채 추락하고 만다. 구원을 거절하는 듯한 행동, 로만을 두려워했던 그녀, 라우라의 눈빛. 라우라가 자살한 후 그녀의 헤어진 연인 리키, 친한 친구 마라, 마라의 전 애인 아르만, 그리고 라우라를 짝사랑했던 베른트는 예전 등반 때 일어났던 사고를 떠올리고 누군가는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누군가는 꺼림칙함을 느낀다. 라우라의 부모는 그녀가 자살 뒤에 숨겨진 진실이 있다 여기고 사립탐정을 고용했다. 그리고 하나씩 살해되는 친구들. 그들이 함께했던 지옥계곡에서 일어난 우연적인 사고가 모두의 운명을 잔인하게 바꿔놓았다.

 

[사라진 소녀들]과 [창백한 죽음]으로 알려진 작가 안드레아스 빙켈만이 [지옥계곡]에서 왜곡된 사랑에 대해 말한다. 두 작품 중 [사라진 소녀들]만 읽어본 나로서는 그 작품이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아 [지옥계곡]에도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딱딱 맞아떨어지는 상황 설정과 등장인물들의 내밀한 심리묘사는 한 순간도 책을 손에서 떼어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라우라가 느낀 두려움, 남아있는 사람들의 심리적인 압박, 금방이라도 창밖에 눈보라가 휘몰아칠 것 같은 한기와 사나움 등이 현실과 책을 혼동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그들의 이야기와는 또 다른 방향에서 전개되는 누군가의 독백은 정말 무서웠다. 누군가의 정신세계를 이렇게까지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지 않다는 거부감, 그럼에도 읽을 수밖에 없는 묘한 끌림이 남다르다고 할까. 초반에는 잔인한 묘사들 없이 으스스한 긴장감을 느끼게 해 그 점도 마음에 들었지만 중후반으로 갈수록 사건 현장의 묘사가 잔인해지는 것은 아쉽다.

 

누군가를 내거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무서운 사람이다. 혹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일까. 자신을 누군가와 나눌 수 없는 사람, 자신이 만들어낸 세상 속에서 그것이 전부여야 하는 사람. 하지만 그의 존재감만으로도 세상이 두렵게 여겨지므로 그런 사람들에게 연민을 가지기에는 힘든 일이다. 스토커의 존재만으로는 경찰에 신고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그가 당장 어떤 행동을 저질러 피해를 입힌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사건이 벌어져야만 스토커를 처벌할 수 있다는 말인데 이미 그 지경까지 가면 피해자는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당한 뒤거나 살해당한 후라고 하니 어떻게 해야 하나. 누군가에게 느낀 사랑의 감정이 그 대상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는 건 슬픈 일이지만, 그렇다는 것은 결국 그의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아직도 마음 속에서 눈보라가 치는 것 같다. 책은 예전에 읽기를 끝냈지만 나는 여전히 지옥계곡에 서 있다.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며 괴롭히는 그를 피해 울며 서 있는 라우라가 보인다. 다른 선택은 없을까 고민해주었으면 한다. [지옥계곡]의 라우라는 주변사람들에게 도움조차 청하지 못했지만, 현실 속의 수많은 라우라들은 부디 그렇지 않기를. 사랑한다며 공포스럽게 하는 그가 아닌, 사랑한다고 따스하게 품어줄 수 있는 마라같은 친구와 가족들을 생각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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