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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닉 페어웰 지음, 김용재 옮김 / 비채 / 2013년 11월
평점 :
일본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의 올해 가을편 중 한 작품에는 생각을 멈추지 않는 남자가 등장한다. (드라마의 스포 있습니다!!) 뭔가를 쓰고 있는 남자의 모습으로 시작된 드라마는 그를 마감기한에 쫓기는 작가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띵동. 물병을 맡기러 온 옆집 여자. 그녀와의 상황에서 뭔지 모를 위화감을 느낀 주인공은 그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물을 마셔보기도 하고, 물병이 담긴 박스 안을 살피기도 하는 등 여전히 부산스럽다. 그 와중에도 몇 자 적어보겠다고 책상 앞에 앉아보지만 그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다양한 생각들 때문에 도저히 글쓰기에 집중할 수 없다. 그리고 그의 이런 생각들은 옆집 여자의 '요즘, 비가 안 내리네요' 라는 한 마디로 정지된다. 옆집 여자와 그녀가 간직한 비밀, 그리고 물병들 모두 그가 만들어낸 환각이다. 그가 속해 있는 세상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황폐화되어버린 지구 한복판. 그리고 그가 가진 전부는 한 병의 물이 다이다.
나는 그 남자가 생각을 멈출 수 없었던 이유를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계속, 자신이 만들어낸 세상 속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각해야만 암담하고 비참한 현실에서 눈을 돌릴 수 있었을 테니까. 어째서 [GO]라는 작품을 말하는 데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일본 드라마 이야기를 꺼내는 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GO]를 읽으면서 계속 그 일본 드라마가 생각났다. 문체에 속도가 있고 생각의 고리들이 계속 연결되는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소설 속 주인공과, 현실을 잊기 위해 계속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드라마 속 그 남자가 매우 닮아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물론 [GO]의 주인공은 현실에서 도망은 치고싶지만, 도망치지는 않는 인물이다. 두 사람은 생각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살아가고 있지만, 드라마 속 남자는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 계속 생각하고 있는 반면 [GO]의 주인공은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점이 다르다고 할까.
[GO]는 한 편의 성장소설이자 작가 이규석의 자전적 소설이다. 이름도 정확하지 않은 스물 아홉 살의 청년. 패신저라는 클럽에서 디제잉을 하고 있고, 언젠가 훌륭한 작가가 되어 자신의 책을 내는 것이 꿈인 사람. 하지만 현실은 그가 예측하는 것보다 훨씬 가혹하게 그를 무릎꿇린다. 좋은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글은 잘 써지지 않는데다 사랑하는 여인을 단순한 오해와 제어하지 못한 욕망으로 잃었고, 같은 외로움을 지닌 사람이라 믿었던 다른 여자에게는 그가 모은 전재산을 강탈당했다. 어린 시절 떠나버린 아버지는 여전히 상처로 남아있고 그의 삶은 날이 갈수록 버겁기만 하다. 하지만 여러 우여곡절 끝에 친구를 얻었고, 또 친구를 잃었으며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내용만 보면 굉장히 어두운 소설인데 이 작품은 무척 시끄럽고 예상치 못하게 발랄하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내면의 소리였을 뿐 작품 속 다른 등장인물들이 보기에 주인공은 조용하거나 의외로 내성적인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타인을 믿지 못해 친구도 만들지 못했고,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기억에 제대로 사랑할 수도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끊임없이 후회하고 생각하고 앞으로 달려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작가의 어린시절은 어땠을지 궁금하게 한다.
어린 나이에 브라질로 이민 간 작가는 완벽한 브라질인이 되어 살아가기로 결심했고, 그는 이제 생각까지도 브라질어로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출간기념파티에서 마주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유창한 브라질어를 구사하는 작가의 모습은 자유로워보이면서도 약간 쓸쓸해보였다. 작품 속 주인공의 모습을 너무 투사한 탓일까. 다른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도록 도와주고 싶었지만 가장 많이 변화한 것은 자신이라는 말이 인상깊다. 우리의 정서와 살짝 맞지 않는 부분도 있고 감정의 흐름이 빨라 갸우뚱하게 만든 부분도 있지만, 불안함과 두려움 속에서도 꿈과 로맨틱함을 잃지 않으려는 메세지는 충분히 전달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