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계곡 모중석 스릴러 클럽 35
안드레아스 빙켈만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타인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사랑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누군가를 '가지고 싶다, 소유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야만 사랑이라 부를 수 있다면 나는 한 번도 사랑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일까.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과 '가지고 싶다'는 마음에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나에게 사랑은 '함께 있고 싶다'였고, '그 사람이 나로 인해 행복했으면 좋겠다' 였고, 둘이 '함께 공감하는' 감정이었다. 누군가가 나로 인해 힘들어하는 모습은 언제나 보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나를 원하지 않는다 느껴지면 가볍게 떠날 수 있었다. 그것은 쿨함도 무엇도 아닌 나만의 방식이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곧잘 내뱉곤 하는 '난 네거야' 혹은 '넌 내거야' 같은 말은 와닿지 않는다. 물론 로맨틱하게 느껴지지 않을 때가 없는 것은 아니었고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영향을 미칠 수는 있겠지만 내 자신의 주인은 늘 나였고, 그 주인이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조차도 나는 그 누구의 것은 아니었던 듯 하다.

 

한 여자가 지옥계곡이라 불리는 험한 곳을 향해 산을 오르고 있다. 그녀는 곧 뛰어내리기 직전이다. 산악구조대원이자 스포츠용품점을 운영하는 로만이 그녀를 구하기 위해 달려가지만, 그녀는 자신의 손을 뿌리친 채 추락하고 만다. 구원을 거절하는 듯한 행동, 로만을 두려워했던 그녀, 라우라의 눈빛. 라우라가 자살한 후 그녀의 헤어진 연인 리키, 친한 친구 마라, 마라의 전 애인 아르만, 그리고 라우라를 짝사랑했던 베른트는 예전 등반 때 일어났던 사고를 떠올리고 누군가는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누군가는 꺼림칙함을 느낀다. 라우라의 부모는 그녀가 자살 뒤에 숨겨진 진실이 있다 여기고 사립탐정을 고용했다. 그리고 하나씩 살해되는 친구들. 그들이 함께했던 지옥계곡에서 일어난 우연적인 사고가 모두의 운명을 잔인하게 바꿔놓았다.

 

[사라진 소녀들]과 [창백한 죽음]으로 알려진 작가 안드레아스 빙켈만이 [지옥계곡]에서 왜곡된 사랑에 대해 말한다. 두 작품 중 [사라진 소녀들]만 읽어본 나로서는 그 작품이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아 [지옥계곡]에도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딱딱 맞아떨어지는 상황 설정과 등장인물들의 내밀한 심리묘사는 한 순간도 책을 손에서 떼어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라우라가 느낀 두려움, 남아있는 사람들의 심리적인 압박, 금방이라도 창밖에 눈보라가 휘몰아칠 것 같은 한기와 사나움 등이 현실과 책을 혼동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그들의 이야기와는 또 다른 방향에서 전개되는 누군가의 독백은 정말 무서웠다. 누군가의 정신세계를 이렇게까지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지 않다는 거부감, 그럼에도 읽을 수밖에 없는 묘한 끌림이 남다르다고 할까. 초반에는 잔인한 묘사들 없이 으스스한 긴장감을 느끼게 해 그 점도 마음에 들었지만 중후반으로 갈수록 사건 현장의 묘사가 잔인해지는 것은 아쉽다.

 

누군가를 내거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무서운 사람이다. 혹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일까. 자신을 누군가와 나눌 수 없는 사람, 자신이 만들어낸 세상 속에서 그것이 전부여야 하는 사람. 하지만 그의 존재감만으로도 세상이 두렵게 여겨지므로 그런 사람들에게 연민을 가지기에는 힘든 일이다. 스토커의 존재만으로는 경찰에 신고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그가 당장 어떤 행동을 저질러 피해를 입힌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사건이 벌어져야만 스토커를 처벌할 수 있다는 말인데 이미 그 지경까지 가면 피해자는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당한 뒤거나 살해당한 후라고 하니 어떻게 해야 하나. 누군가에게 느낀 사랑의 감정이 그 대상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는 건 슬픈 일이지만, 그렇다는 것은 결국 그의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아직도 마음 속에서 눈보라가 치는 것 같다. 책은 예전에 읽기를 끝냈지만 나는 여전히 지옥계곡에 서 있다.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며 괴롭히는 그를 피해 울며 서 있는 라우라가 보인다. 다른 선택은 없을까 고민해주었으면 한다. [지옥계곡]의 라우라는 주변사람들에게 도움조차 청하지 못했지만, 현실 속의 수많은 라우라들은 부디 그렇지 않기를. 사랑한다며 공포스럽게 하는 그가 아닌, 사랑한다고 따스하게 품어줄 수 있는 마라같은 친구와 가족들을 생각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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