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제3인류 1~2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접한 베르나르의 신작. 처음 [아버지들의 아버지]를 읽은 뒤로 [타나토노트]와 [뇌]를 읽은 후 한동안 그의 작품을 읽지 않았지만 여전히 그가 만들어낸 세계는 재미있고 신기한 데다 소설 속 세상을 진짜처럼 믿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성적으로는 '이건 허구의 세계야,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정말 그랬다는 건 아니잖아' 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책을 읽고 있을 때면 지구의 어느 한 쪽에서는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믿음이 생겨버리는 것이다. 베르나르가 종교를 만들면 가장 먼저 내가 홀라당 넘어가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당신, 여전히 매력 있구나.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빙그레 웃고 있는 사진은 세월은 그를 스쳐지나지도 못한 것 같다.

 

작품 시작부터 쑥 빨려들어갔다. 한 무리의 탐사대가 발견해 낸 17미터의 거대 인간상. 고생물학자 샤를 웰즈를 비롯한 탐사대는 그들이 바로 최초 인류이고 그들의 문명이 적어도 현재의 인류에 뒤지지는 않는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발견한다. 발견해낸 사실을 기록하고 영상을 촬영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고로 그들의 발견은 다시 어둠 속에 파묻히고 만다. 한편 샤를 웰즈의 아들인 다비드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오로르, 누시아, 펜테실레이아, 나탈리아 대령과 마르탱 중위와 함께 방사능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신인류 계발에 착수한다. 실험은 성공에 이르고 그들은 평균 키가 17cm밖에 되지 않는 '에마슈'라 이름 지은 신인류를 탄생시켰다. 새롭게 창조된 세계, 새롭게 세워지는 질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나서, 그리고 겪는 와중에 여성적인 면이 강한 초소형 인류인 에마슈들은 작전에 투입되고 비밀로 지켜졌던 그들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초소형 인류, 생각하는 로봇 등의 등장으로 첨단 과학을 소재로 한 소설이 아닌가 싶지만 인간의 존재 자체에 대해 고민한 작품으로도 읽힐 수 있을 듯 하다.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세계, 우리를 품어주는 세계인 지구-가이아-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인간들의 모습은 굉장히 이기적이고 지구에게는 해만 가하는 생명일 뿐이다. 서로 돕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오직 지구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관계. 지금까지 항상 따뜻하고 푸르게만 생각해왔던 지구의 시각이 너무 냉철하고 차가워서 낯설기도 했지만 일회용 젓가락을 만들기 위해 콩고의 나무들을 베어낸다는 부분에서는 그만 움찔하고 말았다. 작가는 뉴스의 형식을 빌어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소식을 전해주는데 그 안에 교묘히 작품과 연결되는 부분들도 심어놓았다. 작품을 읽다보면 관련된 부분이 자연히 눈에 띠지만 실제로 뉴스가 방영되는 우리 생활은 어떨까. 지구 온난화, 지구의 산소인 아마존 밀림이 사라져간다는 뉴스도 실제로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넘겨버리고 있지 않나. 어쩌면 작가는 환경오염과 지구 온난화 등 이미 병들어가는 지구에는 여전히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풍자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해서 그런 점은 영화 <아바타>를 떠올리게 한다.  

 

한편으로는 우리 다음에는 어떤 인류가 출현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작품이기도 하다. 우리가 최초의 인류가 아니라는 가정. 우리 전에도 문명화된 인류가 살았고, 우리 다음에도 분명히 인류는 나타날 것이라는 가정. 어쩐지 겸허해지는 느낌이 들면서도 소설 속 다비드 일행이 만들어낸 '에마슈'들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다비드 일행을 신이라 믿고 그들이 만들어낸 세상에서 안전하게 살다가 최초의 죽음을 접하게 된 그들. 점차 죽음과 범죄라는 개념을 깨달아가며 법과 종교를 만들어 체계화된 세상을 만들어내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우리 인류의 발전과정을 지켜보는 듯 하여 흥미로웠다. 예전 신종플루가 한창 유행할 때 어디선가 인류의 멸망에 대해 들은 기억이 난다. 인류가 멸망한다면 전쟁 혹은 질병 때문일 거라고. [제3인류]는 그런 멸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인류가 과연 어디까지 버텨낼 수 있고 무엇을 지켜낼 수 있을지 영생이 주어진다면 지켜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개미]는 읽지 않았지만 [개미]가 출간된 지 벌써 20년이 되었다고 한다. [개미]의 등장인물인 에드몽 웰즈와 연관시켜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의 여러 설명들로 인해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를 좋아한다더니 작품 곳곳에서 우리나라와 한국인에 대한 묘사를 볼 수 있었다는 점도 재미있다. 과학적인 검증이나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고라도 작가의 상상력과 구성력이 뛰어나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다만, 완결이 아니라는 것. 완결이 아니라는 것도 2권 마지막 페이지에서야 알았다. 이제 1부 끝이라니, 몇 부까지 진행시키려나. 작전에 투입된 후 살아남은 에마슈의 존재가 어쩐지 조마조마하다. 현 인류와 신 인류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다음이 기대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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