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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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지금 어디 있는가?> 라는 시를 남기고, 성 안드레이 훈장 수훈자인 알렉산드르 로스토프 백작은, 1922년 격동의 러시아 속에서 종신 연금형을 선고받습니다. 마땅히 제거되어야 하는 신분이지만 혁명에 동조하는 시를 쓴 공을 인정받아 자신이 머물던 모스크바 메트로폴 호텔 밖으로 평생 나갈 수 없다는 판결을 받은 그는 그 때까지 지내던 스위트룸에서 허름한 다락방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죠. 한때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 이제는 삶의 전부가 된 호텔. 로스토프 백작은 그 허름한 다락방에서 지난날을 그리워하고 괴로워하는 대신 호텔의 전면에서 활약할 것을 선택하고 웨이터 책임자의 자리까지 꿰찹니다. 어린 꼬마의 친구, 유명 배우의 비밀 연인, 공산당 간부의 개인교사, 수상한 주방 모임의 주요참석자로서 새 삶에 적응해나가요. 물론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호텔 총지배인이라는 존재도 있습니다. 항상 긍정적이고 명랑한 로스토프 백작. 그의 관심은 오로지 신사의 태도유지, 소중한 사람들과의 즐거운 시간입니다.

 

많은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데다 미국에서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심지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17년에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 11’권의 목록 가운데 하나로 미리 소개된 적도 있었던 [모스크바의 신사]입니다. 1922년부터 1954년까지 총 32년의 세월을 책 한 권에 담은만큼 두꺼운 분량의 작품이에요. 이렇게 두꺼운 작품은 꽤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자유를 빼앗기고 메트로폴 호텔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된 백작의 운명이 정해진 순간,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상상했습니다만 이 백작 의외로 담담하고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는 듯합니다. 여러 캐릭터들과의 어울림은 어두운 그의 운명을 밝혀주는 촛불 같았다고 할까요.

 

그런데도 한편으로는 저에게는 다소 어렵게 느껴진 작품이었습니다. 백작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이 왜 그리 버겁게 느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의 마음은 내내 어두운 복도를 더듬어 걷는 것 같았어요. 바뀐 환경을 원망하고 두려워하기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끝내 자신이 있을 수 있는 자리를 찾아낸 백작과는 달리요.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이 무엇인가, 결정된 운명 속에서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가, 결국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며 찬찬히 읽다보니 속도가 나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백작의 인생을 따라가는 데에는 더 더움이 되었던 듯합니다.

 

방대한 분량의 작품과 더불어 작가의 탈고도 신중하고 오래 걸리는 것 같습니다. 다음 작품을 만나기까지는 한 4년은 기다려야 한다고 하니 말이에요. 하지만 그런 신중함으로 인해 로스토프 백작의 일대기 또한 성심성의를 담아 그려냈던 게 아닐까요. 작품 속 등장하는 문학작품들도 매우 신중하게 골라 작품 속 상황과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있었어요. 데뷔작인 [우아한 연인]데뷔 소설이 아니라 열 번째 작품같다는 찬사를 들었다고 하는데, 이 작품 또한 찾아 읽어보고 싶게 만드네요.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인물들을 내세워 깊고 풍부한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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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 가구 살림법 - 어른 둘, 아이 둘 ‘보통 집’의 ‘보통 넘는’ 살림 이야기
김용미 지음 / 조선앤북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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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원래 정리를 잘 하는 편이 아닙니다. 나름 깔끔한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성향 때문인지 집에 이래저래 물건들이 많아요. 제 책에, 아기 전집에, 아기 장난감, 거기다 짝꿍 운동기구들과 도구, 컴퓨터 관련 잡동사니까지. 오죽하면 예전에 친정 부모님과 저희 집 이사시기가 겹쳤을 때, 이삿짐센터 직원분이 34평 부모님 집보다 20평 저희 집 물건이 더 많다고 그러셨을까요. 짝꿍도 물건을 못 버리는 성향이 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것 같지는 않거든요. 늘 깔끔한 집을 유지하고는 싶은데 아기 물건들이 점점 늘어나고, 이제 둘째까지 태어나면 한동안은 물건 정리는 포기하고 살아야겠다 마음도 먹었었습니다. 버릴 때 한 번에 버리기를 계획하면서요. 그런데 똑같이 아이 둘에 4인 가족의 살림법에 관한 책을 읽고 있자니 다시 욕심이 생기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4인 가구 살림법]은 어른 둘, 아이둘 보통 집보통 넘는살림이야기-라는 부제로 시선을 끄는 책이었습니다. 어른과 아이 살림에 정리법, 일상, 세세하게는 냄비와 그릇의 종류, 정리 상자, 아이 범퍼침대에 자동차 정리대, 출산 준비 리스트까지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 중 제가 눈여겨 본 것은 잼 팟과 역시 자동차 정리대였어요.

 

생김새는 큰 냄비나 들통처럼 생겼지만 주로 잼을 만들 때 많이 사용한다 해서 잼 팟이라 불린다고 해요. 잼 팟의 용도 중 젖병을 삶는 사진이 있었는데요, 저희 곰돌군 젖병은 항상 커다란 냄비에 삶았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둘째도 나오면 또 젖병을 삶아야 할텐데 어디다 삶아야하나 고민 중이었습니다. 젖병도 삶고 행주도 삶을 수 있어 안성맞춤이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자동차 정리대는 저희 곰돌군을 위해서요. 저희 집도 자동차가 꽤 많은 편인데 항상 모든 종류의 자동차를 가지고 놀기 때문에 곰돌군이 잠들고 나면 그저 거실 한 구석에 정렬해놓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자동차 정리대를 보니 아이에게도 정리하는 습관을 길러줄 수 있을 것 같고 깔끔해보여서 좋더라고요.

 

실린 사진과 글들을 보면서 이 분은 살림의 고수라는 느낌이 왔습니다. 비록 사진 뿐이지만 거실도, 방도, 냉장고도 어찌 그리 깔끔하고 산뜻한지요. 하지만 저같은 사람에게는 자괴감을 느끼게 하기에 딱 좋은 책이기도 했어요. 곰돌군이 어린이집을 가도 전 그저 그날그날 빨래하고 청소하고 저녁 반찬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훅 가버리는데, 지은이의 집 거실은 아이를 키우는 집임에도 저와는 확연히 다르더라고요. 책을 보면서 나도 이렇게 해봐야겠다 하는 생각이 드는 한편, 나는 도저히 이렇게까지는 못하겠다는 생각도 들면서, 질투와 열등감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저를 지켜보던 짝꿍은 옆에서 제가 아주 잘 하고 있다며 이런 책 보지 말라며 말려주기도.

 

보통이 아닌 살림법의 고수니 요런 책도 나오는 거겠죠. 저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진정한 고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성향 차이라는 것도 있으니까요. 저는 한동안은 못 따라할 것 같아요. 우선 둘째 건강하게 낳고 한 2년 정신없이 잘 키우고, 첫째 곰돌군과 마구 어지럽히며 놀면서 그렇게 살렵니다. 그리고 아기들이 어느 정도 다 크고 제 마음에 여유가 좀 생기면 그 때 다시 이 책 저 책 살펴보면서 살림을 정리해봐야겠어요. 아니면 눈 딱 감고 일단 다 버리는 게 제일 빠른 길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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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국기 국가 사전 - 국기를 보면 국가가 보인다! 사회탐구 그림책 1
실비 베드나르 지음, 원지인 옮김 / 보물창고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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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한창입니다. 사실 결과를 떠나서 이번 월드컵에는 그리 큰 관심을 갖지 못했어요. 육아만으로도 너무나 바쁜 것, 매일매일 저의 가장 큰 고민은 오늘 곰돌군 반찬을 뭐 해줄까이기 때문입니다. 모 광고의 카피문구에서처럼, 태어나서 가장 많이 참고 배우며 해내고 있는 이 엄마라는 자리는, 한 때 거리에 나가 열성적인 응원을 펼쳤던 저의 피도, 육아 외에는 사소한 일로 치부할 정도로 차갑게 만들었나 봅니다. 히힛. 그래도 경기가 있는 날은 곰돌군을 재워놓고 짝꿍과 함께 열심히(?) 관람했습니다. 그 와중에 제 눈에 똭! 들어온 것이 있었으니, 바로 각 나라의 국기였어요. 올림픽에서도 개회식 때 여러 나라 선수들이 자신들의 나라 국기를 펄럭이며 입장해서 저 국기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까 궁금하곤 했는데요, 마침 [세계 국기 국가 사전] 이라는 책을 읽다보니 더 관심이 가더라고요.

 

어렸을 때는 친구들과 국기를 보고 무슨 나라인지 맞추는 놀이도 했었는데, 요렇게 국기에 담긴 의미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은 책은 처음 읽어봅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태극기를 먼저 언급할 수밖에 없겠네요. ‘태극이란 중앙에 있는 음양의 상징을 가리키는 것으로 음양은 무한함, 완벽함, 영원함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두 개의 큰 쉼표 모양이 하나로 합쳐져 완전한 원을 형성하죠. 4괘 혹은 건곤감리라 불리는 검은 줄무늬들은 사계절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 물과 불을 상징하며, 흰색 바탕은 밝음과 순수,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나타냅니다. 아니, 이렇게 깊은 뜻이! 라는 오래전 유머가 생각나는 설명입니다. 이렇게 의미를 알고 나면 익숙했던 것도 새롭게 보이고, 더 큰 애정이 솟아나는 것 같아요.

 

책에는 우리나라 태극기를 비롯, 유럽과 아메리카, 오세아니아와 아프리카, 아시아의 전 세계 모든 나라의 국기가 담겨 있습니다. 미국이나 프랑스, 월드컵에서 우리와 맞붙었던 스웨덴, 멕시코, 독일은 물론 처음 들어보는 나라의 국기들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맨 뒤에는 색인도 있어서 먼저 알고 싶은 나라부터 찾아볼 수도 있고요. 각 나라의 국기마다 차이점은 물론,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로웠어요. 저의 경우는 여행도 좋아하고 역사도 좋아해서 한 나라의 기원이 담긴 국기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재미있었고 이 책이 무척 유익했어요. 물론 한 번 읽고 다 기억은 못하겠지요. 하지만 저뿐만 아니라, 곰돌군이 어느 정도 자라면 같이 지구본도 돌려보고 한 나라 한 나라 짚어보면서 여러 번 읽어보고 싶다는 소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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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린이한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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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부터 읽을까 말까 무척 망설였던 작품입니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명석한 두뇌로 타이베이 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지만 2주만에 우울증이 악화되어 휴학, 세 번의 자살 시도 뒤에 2012년 대만정치대학 중문과에 다시 입학했지만 3년 후 우울증으로 다시 휴학, 20122[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을 발표하고 두 달 뒤 자신의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작가. 그녀의 약력만으로도 마음이 복잡하고 심란해서 과연 이 책을 지금 읽어야 하나, 무척 고민스러웠어요. 저는 지금 임신 9개월째의 임산부, 책을 받아든 순간부터 태교에 절대 좋은 내용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냥 읽는 스릴러나 추리소설과는 다르잖아요. 그런 작품들은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볼 수 있고, 그저 비밀과 사연, 혹은 트릭에 당하는 재미로 즐길 수 있지만, 이런 이야기는 가슴 속 깊이 파고들어 오랫동안 잊히지 않으니까요.

 

살구빛 표지와 깃털의 부드러움으로 표현된 표지와는 달리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은 굉장히 잔혹하고 슬픈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팡쓰치가 같은 건물에 사는 교사 리궈화에게 오랫동안 성폭력을 당하면서 그 괴로운 시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던,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여겨지는 소설이에요. 절친한 사이였던 친구 류이팅조차 그녀의 아픔을 알 수 없었고, 후에 팡쓰치가 결국 정신을 놓아버린 시점에서야 모든 진실을 알게 됩니다. 처음 그 일을 당했을 때 왜 할 줄 모른다고 했을까? 왜 싫다고 하지 않았을까? 왜 안된다고 하지 않았을까? 이제 와서야 이 모든 일이 그 첫 순간에 결정되었다는 걸 알았다. 억지로 욱여넣은 건 그인데 내가 죄송하다고 말한 그 순간에.’라는 일기장의 구절에는 겉으로 드러내놓고 슬퍼하거나 괴로워할 수 없었던 팡쓰치의 후회와 슬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뭘 알 수 있었겠어요. 십 대 소녀가, 그저 문학을 좋아하고 아직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꿈도 명확하게 그리고 있지 않았던 아이가. ‘사랑이라고 아름답게 포장해서 더럽고 추악한 면모를 팡쓰치 뿐만 아닌 다른 많은 소녀에게 드러낸 리궈화라는 악마를 만났다는 것 뿐, 아무 잘못 없는 그녀가 정신을 놓아버리는 허구 아닌 허구에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그녀의 부모가 성교육에 조금만 더 진취적이었다면, 자신의 딸과 성인 남자를 한 공간에 두는 것에 조금만 더 경각심을 가졌더라면, 하는 안타까움도 남아요. 작가 린이한의 실제 이야기에 바탕을 두었다고 부모가 밝혔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팡쓰치의 부모가 그러했던 것처럼 작가의 부모들도 그랬던 걸까요. 그렇게 딸이 무슨 일을 당하는지 모르고 있었던 걸까요. 이 이야기가 소설로만 다가오지 않아 더욱 가슴에 사무쳐요.

 

읽으면서 이렇게 분노와 증오에 사로잡혀 욕을 한 적이 많이 없는데 말이죠. 내 눈 앞에 리궈화가 있었다면 당장 달려들어 머리를 쥐어뜯어버리든, 마구 때리든 했을 것 같아요. 더불어 저희 아들들 성교육을 확실히 시켜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누군가의 날개를 잔인하게 꺾어 좁은 공간 안에 가둬버리는 일은 생명을 앗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폭력은 폭력이라는 것을요.

 

하이고. 정말 읽기 힘들었던, 리뷰 쓰는 것조차 버거웠던 그런 작품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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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다운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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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고 완벽한 줄 알았던 남편의 반전 모습을 소름끼치게 그려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B.A.패리스의 [비하인드 도어]. 작가는 여름은 역시 스릴러!라는 것을 입증하듯 [브레이크 다운]으로 이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듯해요. 한 순간의 선택이 불러온 죄책감으로 급기야 치매와 망상증 환자로 의심받으며 사건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한 여성의 불안한 심리를 섬세한 묘사로 탁월하게 표현해내고 있는 작품입니다.

 

폭우가 몰아치는 여름밤, 남편 매튜의 말을 무시하고 지름길인 숲으로 들어선 캐시. 비는 억수로 내리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한 밤, 그녀의 심장은 터질 듯 뛰는 가운데, 저 앞에 멈춰 서 있는 자동차 한 대가 보입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한가 싶어 잠시 차를 멈추고 기다려보지만 운전석에 앉아있는 여자는 아무런 기미도 보이지 않습니다. 캐시 역시 무섭고 두려워 별 일 없을 거라 여겨 여자를 남겨두고 떠나지만, 다음 날 아침 매튜로부터 간밤 숲길에서 한 여자가 살해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어요. 여자를 도왔어야 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캐시에게 언제부터인가 정체 모를 전화가 걸려오고, 정신은 피폐해져가는 가운데, 치매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경우를 떠올리며 자신의 기억조차 믿을 수 없게 된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경악할만한 진실을 목도하게 됩니다.

 

[비하인드 도어] 에서 다정하고 따뜻한 성품의 여성을 전면에 내세워 누구에게나 일어날 법한 일상의 불안을 그려낸 작가는, [브레이크 다운]에서도 역시 순간의 자신의 선택을 질책하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선량한 여성 캐시를 통해 매력적인 심리스릴러 한편을 완성했습니다. 어머니가 치매로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얼핏 비치며, 캐시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묘사하면서 그녀가 겪고 있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일인지조차 의심하게 만들죠. 독자는 등장하는 인물 누구도 믿을 수 없습니다. 하필 그날밤 숲길로 오지 말라고 했던 매튜도, 그녀의 곁을 지키는 친자매같은 친구 레이철도, 매튜와 결혼하기 전 캐시에게 연정을 품었던 존도, 살해당한 여자의 남편도, 심지어 주인공 캐시조차 모두 의심스럽게 여겨집니다. 과연 이 가운데 누가 캐시를 괴롭히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단순한 캐시의 망상인지 마지막 50페이지를 읽기 전까지는 무엇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스릴러인 이상 스포를 남기면 안 되므로 더 길게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으핫, 결말 부분을 읽으면서 소름이 끼쳤어요. 나에게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상에서 그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더 무서웠던 것 같아요. 더불어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 모든 인간관계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은 사랑과 배려, 우정이나 따뜻함이 아니라 결국 그것이었나 싶어 허탈함도 밀려왔습니다. 소설 속 인물임에도 캐시에게 느껴지는 연민을 멈출 수 없었고, 그녀가 부디 좋은 날들을 맞이하게 되기를 바라게 되었어요.

 

다음 작품을 접해봐야 알겠지만, 작가가 다음에도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심리스릴러를 발표한다면, 시리즈로 만들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단순해보이면서도 어쩔 수 없이 빠져들게 만드는 소설이었어요. 아기가 일찍 일어나는 육아맘에게 새벽에 잠드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인데, 등을 긁어달라는 짝꿍의 말도 무시한 채 결말까지 읽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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