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린이한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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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부터 읽을까 말까 무척 망설였던 작품입니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명석한 두뇌로 타이베이 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지만 2주만에 우울증이 악화되어 휴학, 세 번의 자살 시도 뒤에 2012년 대만정치대학 중문과에 다시 입학했지만 3년 후 우울증으로 다시 휴학, 20122[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을 발표하고 두 달 뒤 자신의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작가. 그녀의 약력만으로도 마음이 복잡하고 심란해서 과연 이 책을 지금 읽어야 하나, 무척 고민스러웠어요. 저는 지금 임신 9개월째의 임산부, 책을 받아든 순간부터 태교에 절대 좋은 내용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냥 읽는 스릴러나 추리소설과는 다르잖아요. 그런 작품들은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볼 수 있고, 그저 비밀과 사연, 혹은 트릭에 당하는 재미로 즐길 수 있지만, 이런 이야기는 가슴 속 깊이 파고들어 오랫동안 잊히지 않으니까요.

 

살구빛 표지와 깃털의 부드러움으로 표현된 표지와는 달리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은 굉장히 잔혹하고 슬픈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팡쓰치가 같은 건물에 사는 교사 리궈화에게 오랫동안 성폭력을 당하면서 그 괴로운 시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던,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여겨지는 소설이에요. 절친한 사이였던 친구 류이팅조차 그녀의 아픔을 알 수 없었고, 후에 팡쓰치가 결국 정신을 놓아버린 시점에서야 모든 진실을 알게 됩니다. 처음 그 일을 당했을 때 왜 할 줄 모른다고 했을까? 왜 싫다고 하지 않았을까? 왜 안된다고 하지 않았을까? 이제 와서야 이 모든 일이 그 첫 순간에 결정되었다는 걸 알았다. 억지로 욱여넣은 건 그인데 내가 죄송하다고 말한 그 순간에.’라는 일기장의 구절에는 겉으로 드러내놓고 슬퍼하거나 괴로워할 수 없었던 팡쓰치의 후회와 슬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뭘 알 수 있었겠어요. 십 대 소녀가, 그저 문학을 좋아하고 아직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꿈도 명확하게 그리고 있지 않았던 아이가. ‘사랑이라고 아름답게 포장해서 더럽고 추악한 면모를 팡쓰치 뿐만 아닌 다른 많은 소녀에게 드러낸 리궈화라는 악마를 만났다는 것 뿐, 아무 잘못 없는 그녀가 정신을 놓아버리는 허구 아닌 허구에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그녀의 부모가 성교육에 조금만 더 진취적이었다면, 자신의 딸과 성인 남자를 한 공간에 두는 것에 조금만 더 경각심을 가졌더라면, 하는 안타까움도 남아요. 작가 린이한의 실제 이야기에 바탕을 두었다고 부모가 밝혔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팡쓰치의 부모가 그러했던 것처럼 작가의 부모들도 그랬던 걸까요. 그렇게 딸이 무슨 일을 당하는지 모르고 있었던 걸까요. 이 이야기가 소설로만 다가오지 않아 더욱 가슴에 사무쳐요.

 

읽으면서 이렇게 분노와 증오에 사로잡혀 욕을 한 적이 많이 없는데 말이죠. 내 눈 앞에 리궈화가 있었다면 당장 달려들어 머리를 쥐어뜯어버리든, 마구 때리든 했을 것 같아요. 더불어 저희 아들들 성교육을 확실히 시켜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누군가의 날개를 잔인하게 꺾어 좁은 공간 안에 가둬버리는 일은 생명을 앗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폭력은 폭력이라는 것을요.

 

하이고. 정말 읽기 힘들었던, 리뷰 쓰는 것조차 버거웠던 그런 작품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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