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 나는 나일 때 가장 편해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투에고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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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프렌즈 에세이 시리즈의 네 번째 주인공은 '무지와 콘'이다. 나는 튜브를 앞세운 하상욱 작가의 촌철살인 글귀에 풍덩 빠져 이 시리즈를 읽기 시작했는데 각 작품마다 캐릭터와 작가의 절묘한 조합에 힘입어 인기가도를 달리는 중. 예전부터 무지는 귀여운 토끼, 콘은 무지의 친구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무지는 토끼옷을 입은 '단무지'다! 이 사실을 얼마 전에서야 알았는데 그 때 받은 충격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나도 모르게 '뭐?!'라고 소리칠 정도였으니까.

사실 이런 에세이는 잘 읽지 않는 편이다. 그 때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느냐에 따라 글귀가 마음에 들어올 때가 있고 전혀 와닿지 않을 때가 있는데, 뭐랄까, 쉽게 쓰인 글 같은 느낌, 이를테면 '이런 건 나도 쓰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책들을 접하면서 실망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 시리즈도 서점에서 대충 훑어보고 그렇게 쓰인 책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튜브 책을 읽으면서 그 선입관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무지, 나는 나일 때 가장 편해]는 그래서 더 관심이 가고 애정이 가는 책이다.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아마 세상의 많은 무지들도 이 책을 보면서 공감하고 용기를 얻지 않았을까.

 

무지에게 토끼옷은 세상 밖으로 나가기 위한 '갑옷'같은 존재다. 마음의 갑옷. 누군가의 비난에 맞설 때에도, 누군가의 칭찬에 부끄러워질 때도 토끼옷은 큰 도움을 준다. 아침에 일어나 토끼옷을 꺼내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 그렇지 않은가. 학교에 가기 전, 회사에 가기 전, 하루를 잘 보내보자고 파이팅을 외치고 혼잣말로 자신을 격려하는 것. 그 모두가 자신만의 토끼옷인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그 토끼옷을 벗어던지는 그 순간, 진정한 내가 되고 가장 편한 상태를 맞이할 수 있다. 가식이 아니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이라면 응당 그러한, 순도 100%의 자신의 얼굴을 타인에게 내보이기란 어려운 일이므로. 나의 토끼옷은 뭘까, 생각해보게 된다.

타고난 능력치가 다른 사람을 따라잡기 쉽지는 않다는 말. 월등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어중간한 위치의 무지이자 투에고 작가의 모습은 딱 나같았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저 평범한 사람. 능력으로도 이길 수 없는 '운'이 나에게도 찾아오길 바라며 작가가 시키는 대로 저 페이지를 세 번 문질렀다! 나의 운은 얼마나 상승했을까. 히히. 그래도 지금 이렇게 별 탈 없이 살아가고 있는 걸 보면 나의 운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무지는 소심하고 겁쟁이다. 그렇기에 아침마다 토끼옷을 챙겨입는다. 책 곳곳에서 그런 모습들을 엿볼 수 있다. 생각이 깊고 많아 행동하는 게 쉽지 않기도 하다. 튜브가 나와는 다른 모습이라 가슴 깊은 곳에서 통쾌함을 느꼈다면 무지는 내 마음 속 어느 곳에 있는 내 모습들 같아 더 마음이 간다. 웃는 이모티콘도 이제는 그냥 웃는 것으로 안보인다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 이렇게 짠하게 느껴지는 에세이가 또 있을까. 페이지마다 접할 수 있는 무지의 이모티콘을 보면서 우리 모두 자신만의 토끼옷을 입고 하루하루 '잘!' 살아내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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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하다
선현경 지음, 이우일 그림 / 비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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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틀랜드의 삶을 담담하면서도 재치있게 그려냈던 [퐅랜,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우린]의 속편같은 책, [하와이하다]. 딸인 은서는 학업을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떠났고 부부는 하와이로 거주지를 옮겨 딱 1년만 살다가 서울로 돌아가기로 한다. 그렇게 시작된 하와이에서의 삶. 저자는 호놀룰루 마라톤에 나가보겠다며 러닝화까지 구입하고, 남편인 이우일님은 낚싯대를 구입하지만 생전 안하던 마라톤과 낚시질을 할 리 만무. 하와이에 도착하고 나니 양말 신는 것도 귀찮다는 말에 첫장부터 웃음이 터졌다. 왠지 나를 보는 것 같아서. 그럼에도 부부는 파도 타고 글 쓰고, 파도 타고 그림 그리고, 파도 타고 뭐하고가 일상이 될만큼 하와이에서 파도타는 일에 푹 빠져버렸다. 내가 하와이에서 살았어도 파도 타기에 빠졌을까. 수영도 못하고 물을 극도로 무서워하는 내가?! 전혀 상상이 되지 않지만 부부의 열정이 부럽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도전으로 인해 만나게 된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이 곳, 서울에서는 그리기 어려운 느긋하고 한적해보이는 삶. 포틀랜드에서의 삶을 들여다보았을 때 그랬던 것처럼 가슴 속에 질투가 불끈 솟아오른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포르투갈에는 '창문하다'라는 동사가 있다고 한다. 그 곳에서는 창문을 통해 바깥세상을 만나며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는데, 부부는 하와이를 통해 다른 세상을 보고 서로를 생각했다. 자신들은 하와이했다고 말하는 두 사람. 근심 걱정을 잊고 느긋한 하루를 보내라는 인사인 '샤카(주먹 쥔 상태에서 엄지와 새끼손가락만을 펴고 좌우로 흔드는 동작)'를 몸에 익히고, 마트 계산대에서 직원이 동료와 사담을 나누는 통에 일시정지한 계산을 기회삼아 서로 대화를 나누고 각자의 쇼핑 목록을 점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따뜻해진 기온만큼이나 더 느려진 하와이. 아침에 깨진 현관문은 별다른 공지 없이 일주일이 지나서야 수리되고, 아파트 계약 전 하고 있던 공사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와이가 아니라 한국이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속터져 죽는다고 아우성을 쳐도 모자랄 상황이 여기저기에서 벌어지는데, 하와이 사람들은 그냥 '그러려니'하고 넘기는 모습에 내 마음까지 누그러졌다.

[하와이하다]에서는 '하와이하다'를 겪는 저자의 가족 이야기, 자신과 남편 이야기도 곧잘 엿볼 수 있다. 그 중 인상적인 것은 친정엄마와의 일화. 잠시 서울에 다녀온 저자가 다시 하와이에 도착해 친정엄마와 통화를 하는데 서울은 다시 추워졌다는 말을 듣는다. 그 와중에 외삼촌이 병에 걸려 인천에 있는 병원을 찾아가야 했던 엄마. 그런 엄마에게 힘들겠다고 말하니 엄마는 '그래, 힘들고 귀찮지. 근데 왜 살아? 그러려고 사는 거지.'라고 답한다.

엄마 말대로다.

이러려고 사는 거다.

마음을 다해 시간을 할애할 누군가가 있기에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거다.

p53

궁극적으로는 하와이에서 '하와이한' 부부의 이야기인데 나는 저 짧은 일화가 그렇게 마음에 남을 수 없었다. 요즘 나는 너무 힘들었다. 두 곰돌군을 돌보기에 내가 한참 부족한 것 같고, 기운 세고 고집 센 두 녀석 참아내자니 그렇지 않아도 가느다란 신경줄은 더 얇아져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달랑댄다. 그 신경줄이 끊어지는 날은 정말 벼락처럼 아이들에게 짜증을 냈는데, 그 때마다 드는 생각은 '혼자 있고 싶다'. 진심으로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아이들 다 재우고 남편도 잠든 한밤중에 거실로 나와 혼자 책보고 음악 듣고 리뷰 쓰며 해가 뜨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다. 그 시간이 너무 달콤해서 다음 날의 피곤은 커피 중독자처럼 커피만 마시면서 이겨내려고 기를 썼는데 또 그러다보면 내가 왜 이러고 살고 있나, 책이 뭐라고, 그냥 나의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피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가끔 결혼 전의 삶을 꿈 꿀 때가 있다. 내가 지금도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산다면 그 시간을 만끽하면서 하고 싶은 일 다 하면서 살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곤 한다. 그런데 엄마의 저 한 마디 '그러려고 사는 거지'에 이상하게 용기와 힘을 얻었다. 그래, 내가 이러려고 사는 거지. 내가 태어나서 가장 잘 한 일은 우리 곰돌이들 낳은 거지. 지금 이렇게 부대끼면서 사는 게 가장 큰 축복이고 행복이라고, 잊고 있었던 감사함을 다시 불러일으켜 주었다.

파도를 타다보니 시간이 오래 지난 후에 코에서 물이 쏟아지는 이야기, 바다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 남편인 이우일씨와의 일화, 딸 은서에 대한 애정 등 소소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나는 비록 정신없이, 혼이 쏙 빠지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지만 마음만은 느긋하게 먹자고 다짐했다. 나에게 '하와이하다'는 뭘까. 책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바다의 소금 냄새, 한낮의 태양을 간접적으로나마 맛보게 해주는 책. 오랜만에 청량감이 느껴지는 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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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손을 보다
구보 미스미 지음, 김현희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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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면서도 평범한 사랑의 모습들]

노인요양시설에서 일하는 히나가 미야자와를 만난 것은 그녀가 졸업한 노인요양복지전문학교의 입학 안내 팸플릿 을 제작하기 위한 인터뷰 때문이었다. 팸플릿에 졸업생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으니 꼭 인터뷰에 응해달라는 교장 선생님의 간곡한 부탁에 인터뷰에 나선 히나. 팸플릿은 제작되었고 우연히 가진 술자리가 파하고 미야자와가 히나를 집까지 데려다 준 후 둘의 관계는 변화한다. 명목은 히나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정원에 우거진 잡초를 베러온다는 것이었지만 여섯 번째 만났을 때 결국 잠자리를 가진다. 그런 히나에게는 전 남자친구 가이토가 있다. 전문학교 시절 사이좋은 동기였던 가이토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한 히나 곁에서 그녀를 살뜰히 챙겨주었고, 그 마음에 히나는 '보답'해야 한다고 느꼈다. 미야자와와 만나기 시작했을 때 이미 그들은 헤어진 상태였음에도 가이토의 히나를 향한 집착은 식을 줄 모른다.

그런 가이토에게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하타나카가 접근한다. 남편과 이혼했고 아들이 하나 있지만 자신은 모성애를 느낄 수 없다는 그녀. 멋진 외모에 경박해보이는 분위기로 많은 남자와 관계를 맺어왔고 가이토와의 관계 또한 처음에는 가볍게 여겼다. 그런데 사랑과 인간 관계 앞에서 세상 진지한 이 남자에게 자꾸만 끌린다. 가이토가 자신을 어디까지 데려가려는지 한 번 따라가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미야자와. 지금까지 그 어떤 여자도 진심으로 좋아한 적이 없는 그다. 이번에 히나를 만나면서 변화가 생기려나 했는데 그렇지도 않은 듯. 네 남녀의 관계가 달콤하면서도 쌉사름하게 그려져, 세상에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으면서 그럼에도 사람의 온기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이상한 연애소설이다.

구보 미스미는 2009년 성인 여성을 대상으로 한 소설 공모전인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R-18 문학상'에서 대상을 거머쥐며 문단에 데뷔했다. 일본 연애소설은 정서적으로 잘 맞지 않아 자주 찾아읽는 편은 아니지만 그 동안 읽어왔던 다수의 작품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연애와 관계가 다소 쿨하게 그려져 있던 것과는 다르게 [가만히 손을 보다] 속 주인공들의 욕망과 성행위는 무척 적나라하다. 초반부터 그려지는 노골적이고 대담한 성행위에 대한 묘사를 보고 깜짝 놀랐을 정도. 심지어 욕망의 주체는 여성으로 히나와 하타나카 모두 자신들의 욕망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데 자연스럽다. 어찌 생각해보면 그런 것이 자연스러운 일임에도 우리는 여성의 욕망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모른 척 해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삶의 한 부분으로 묘사되는 성행위는 그렇기에 야하게만 느껴지지 않고 때로는 외로움을 극복하려는 도구, 누군가를 붙잡고 싶은 필사적인 몸부림 같은 것으로도 여겨진다.

히나도, 가이토도, 미야자와도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유옥 하타나카에게 눈길이 갔다. 계획에 없던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서 아이에게 전혀 애정을 느낄 수 없었던 엄마. 한 달에 한 번 아이를 만나는 것도 부담스러워하고 자신은 엄마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문장을 통해 전달되는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애정을 발견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경박해보이고 남자 관계가 복잡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녀가 열심히 살지 않았다고는, 가이토와의 관계에 충실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겠다.

예전에는 '사랑'이 무척 대단하고 특별한 것인 줄 알았다. 맞다. 대단하고 특별하고 소중한 것. 그리고 일상 속에 녹아들면 평범한 것으로 변해버린 듯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치부해버리기 쉬운 것.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도 사랑은 존재한다. 우정이든, 격렬한 열정이든 다양한 모습으로. 기억해야 할 것은 지금 사랑하는 사람을 더욱 아껴주라는 것, 소중하게 생각하자는 것. 지금의 평범한 일상 속 녹아있는 사랑의 모습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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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에 갇힌 소년 에프 영 어덜트 컬렉션
로이스 로리 지음, 최지현 옮김 / F(에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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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9월부터 시작된 캐시 대처의 이야기. 의사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녀는 열세 살 때는 아버지를 따라 의사가 되고 싶어했고, 전쟁이 한창인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전쟁 기사를 읽으면서도 오직 부상자들 생각만 하던 캐시는 '죽음'에 관해 누구보다 진지했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마을 어귀에 서 있던 어사일럼이라고 불리던 석조 건물. 정신병자, 고아, 노인 등을 수용하던 보호시설이었던 어사일럼에는 캐시가 평생 잊지 못할 한 소년에 대한 기억이 묻혀 있다. 오래되고 복잡한 이야기, 울적한 이야기. 제이콥 스톨츠에 관한 이야기.

여섯 살 무렵 집에 새가정부 페기가 왔다. 그녀의 언니 넬은 옆집 비숍 가에서 가정부로 일하고 있었고, 그들에게는 제이콥이라는,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모르겠지만, 페기의 설명에 따르면 정상이 아닌 동생 제이콥이 있었다. 정상이 아니기는 했지만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고 동물 돌보는 일에 뛰어났던 제이콥. 제분소에서 맷돌이 돌아가는 소리에 '슈우우다, 슈우우다, 슈우우다' 라고 웅얼거리던, 캐시에게 따뜻하고 귀여운 새끼고양이를 선물한 제이콥. 넬은 비숍 가의 장남 폴과 위험한 관계로 발전하고 그 일로 인해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한다.

이 소설의 시작은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였다. 작가의 대고모님이 1911년에 찍은 실제 사진에는 한 소년이 오른손에 무언가를 들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작가는 그 소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소년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그가 정신적 충격을 경험했거나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 때문에 혼이 난, 상처 받은 아이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작가가 접한 사진, 작가의 성격 등이 작품 안에 다수 녹아들어 있어 이 소설은 소설이 아니라 수기 같은 느낌도 든다. 만약 이 작품이 소설이 아니라 수기였다면 나는 또 이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자리에 누웠겠지만, 그나마 소설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극 중 화자인 캐시가 여섯 살 때부터 아홉 살, 그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나기까지의 과정이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다. 그 동안의 묘사로 제이콥이 어떤 사람인지, 그의 누나인 페기와 넬이 어떤 성격이었는지, 그들에게 슬픈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얼마나 따스한 시간들이 존재했는지 알게 된다. 다소 지지부진해 보이기도 하는 그 과정을 통해서만, 제이콥이 벌인 일이 사건이 아니라 사고였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 후의 이야기. 각각의 사람들의 행적을 읽고 있으면 인생이란 참으로 오묘한 것, 그 어떤 시련과 고난이 존재해도 삶은 계속된다는 불변의 진리를 깨닫게 된다. 얇지만 마지막으로 갈수록 깊은 울림을 주는, 분명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모두 존재할, 시간이 흘러도 결코 잊을 수 없고 때로는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 그런 순간들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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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하에 인문학을 입히다 - 이야기 길 따라 걷는 시간 여행 우리 산하에 인문학을 입히다 3
홍인희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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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하 답사기]

제목에는 '인문학'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만 개인적인 느낌으로 이 책은 역사책에 좀 더 가깝다. 어렵거나 부담스럽지 않지만 내용은 충실하다. 현재의 지명 위주로, 혹은 자신이 여행을 간 곳과 연관된 역사를 쉽고 흥미롭게 소개한다. 저자는 전작에서 우리나라 부동의 1위 여행지 ‘강원도’의 숨은 인문학적 이야기들을 공개했다고 한다. 태백산맥의 줄기를 따라 멋진 풍광으로 유명한 강원도에 숨어 있던 이야기들을 세상 빛을 보게 해주었다면, 이번 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어 친숙한 이야기, 혹은 잘 알고 있다 여기지만 자세히는 모르는 이야기들을 되짚어보는 계기로 삼았다고 할까. 덕분에 역사를 어려워하는 사람이 읽어도 전혀 거부감 들지 않는, 여러 편의 옛 이야기를 모아놓은 것 같은 책이다.

총 20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 책의 첫부분을, 세종대왕이 맡았다. 경기도에서 동남쪽에 빗겨나 있어 지역 세가 그리 크지 않은 도시 여주. 조선조 내내 걸출한 인물들과 왕실의 안주인을 네 명씩이나 배출한 유서깊은 땅이다. 이 여주의 인문적 컨텐츠의 대표는 바로 세종대왕. 조선의 제왕 27명 중 성군으로 칭송되며 백성을 생각한 글자를 창제하신 분. 이 왕이 잠들어 계신 무덤이 바로 여주에 있다. 여기 저기 지역을 소개하며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의 일화를 풀어놓으며 개혁군주였던 정조대왕을 떠올리게 만드는 '정조대왕 능행차'를 소개하고, 남사당패와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갔던 도공들의 이야기도 잊지 않는다. 여러 인물이 등장하면서도 각 지역을 소개하면서 특산물, 지역특색, 무궁화와 연꽃 등의 식물도 함께 소개하고 있어 마치 우리나라 여기저기를 책을 통해 여행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책을 읽다보니 어째서 제목이 '우리 산하에 인문학을 입히다'로 지어졌는지 이해가 된다. 인물과 업적에 치우치지 않고 우리 나라 전체를 주제로 한 이야기. 저자의 책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강원도를 소개했다는 전작도 궁금하다. 각 지역을 독립시켜 좀 더 깊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시리즈가 나와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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