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하다
선현경 지음, 이우일 그림 / 비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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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틀랜드의 삶을 담담하면서도 재치있게 그려냈던 [퐅랜,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우린]의 속편같은 책, [하와이하다]. 딸인 은서는 학업을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떠났고 부부는 하와이로 거주지를 옮겨 딱 1년만 살다가 서울로 돌아가기로 한다. 그렇게 시작된 하와이에서의 삶. 저자는 호놀룰루 마라톤에 나가보겠다며 러닝화까지 구입하고, 남편인 이우일님은 낚싯대를 구입하지만 생전 안하던 마라톤과 낚시질을 할 리 만무. 하와이에 도착하고 나니 양말 신는 것도 귀찮다는 말에 첫장부터 웃음이 터졌다. 왠지 나를 보는 것 같아서. 그럼에도 부부는 파도 타고 글 쓰고, 파도 타고 그림 그리고, 파도 타고 뭐하고가 일상이 될만큼 하와이에서 파도타는 일에 푹 빠져버렸다. 내가 하와이에서 살았어도 파도 타기에 빠졌을까. 수영도 못하고 물을 극도로 무서워하는 내가?! 전혀 상상이 되지 않지만 부부의 열정이 부럽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도전으로 인해 만나게 된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이 곳, 서울에서는 그리기 어려운 느긋하고 한적해보이는 삶. 포틀랜드에서의 삶을 들여다보았을 때 그랬던 것처럼 가슴 속에 질투가 불끈 솟아오른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포르투갈에는 '창문하다'라는 동사가 있다고 한다. 그 곳에서는 창문을 통해 바깥세상을 만나며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는데, 부부는 하와이를 통해 다른 세상을 보고 서로를 생각했다. 자신들은 하와이했다고 말하는 두 사람. 근심 걱정을 잊고 느긋한 하루를 보내라는 인사인 '샤카(주먹 쥔 상태에서 엄지와 새끼손가락만을 펴고 좌우로 흔드는 동작)'를 몸에 익히고, 마트 계산대에서 직원이 동료와 사담을 나누는 통에 일시정지한 계산을 기회삼아 서로 대화를 나누고 각자의 쇼핑 목록을 점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따뜻해진 기온만큼이나 더 느려진 하와이. 아침에 깨진 현관문은 별다른 공지 없이 일주일이 지나서야 수리되고, 아파트 계약 전 하고 있던 공사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와이가 아니라 한국이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속터져 죽는다고 아우성을 쳐도 모자랄 상황이 여기저기에서 벌어지는데, 하와이 사람들은 그냥 '그러려니'하고 넘기는 모습에 내 마음까지 누그러졌다.

[하와이하다]에서는 '하와이하다'를 겪는 저자의 가족 이야기, 자신과 남편 이야기도 곧잘 엿볼 수 있다. 그 중 인상적인 것은 친정엄마와의 일화. 잠시 서울에 다녀온 저자가 다시 하와이에 도착해 친정엄마와 통화를 하는데 서울은 다시 추워졌다는 말을 듣는다. 그 와중에 외삼촌이 병에 걸려 인천에 있는 병원을 찾아가야 했던 엄마. 그런 엄마에게 힘들겠다고 말하니 엄마는 '그래, 힘들고 귀찮지. 근데 왜 살아? 그러려고 사는 거지.'라고 답한다.

엄마 말대로다.

이러려고 사는 거다.

마음을 다해 시간을 할애할 누군가가 있기에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거다.

p53

궁극적으로는 하와이에서 '하와이한' 부부의 이야기인데 나는 저 짧은 일화가 그렇게 마음에 남을 수 없었다. 요즘 나는 너무 힘들었다. 두 곰돌군을 돌보기에 내가 한참 부족한 것 같고, 기운 세고 고집 센 두 녀석 참아내자니 그렇지 않아도 가느다란 신경줄은 더 얇아져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달랑댄다. 그 신경줄이 끊어지는 날은 정말 벼락처럼 아이들에게 짜증을 냈는데, 그 때마다 드는 생각은 '혼자 있고 싶다'. 진심으로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아이들 다 재우고 남편도 잠든 한밤중에 거실로 나와 혼자 책보고 음악 듣고 리뷰 쓰며 해가 뜨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다. 그 시간이 너무 달콤해서 다음 날의 피곤은 커피 중독자처럼 커피만 마시면서 이겨내려고 기를 썼는데 또 그러다보면 내가 왜 이러고 살고 있나, 책이 뭐라고, 그냥 나의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피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가끔 결혼 전의 삶을 꿈 꿀 때가 있다. 내가 지금도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산다면 그 시간을 만끽하면서 하고 싶은 일 다 하면서 살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곤 한다. 그런데 엄마의 저 한 마디 '그러려고 사는 거지'에 이상하게 용기와 힘을 얻었다. 그래, 내가 이러려고 사는 거지. 내가 태어나서 가장 잘 한 일은 우리 곰돌이들 낳은 거지. 지금 이렇게 부대끼면서 사는 게 가장 큰 축복이고 행복이라고, 잊고 있었던 감사함을 다시 불러일으켜 주었다.

파도를 타다보니 시간이 오래 지난 후에 코에서 물이 쏟아지는 이야기, 바다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 남편인 이우일씨와의 일화, 딸 은서에 대한 애정 등 소소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나는 비록 정신없이, 혼이 쏙 빠지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지만 마음만은 느긋하게 먹자고 다짐했다. 나에게 '하와이하다'는 뭘까. 책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바다의 소금 냄새, 한낮의 태양을 간접적으로나마 맛보게 해주는 책. 오랜만에 청량감이 느껴지는 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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