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에 갇힌 소년 에프 영 어덜트 컬렉션
로이스 로리 지음, 최지현 옮김 / F(에프)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1908년 9월부터 시작된 캐시 대처의 이야기. 의사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녀는 열세 살 때는 아버지를 따라 의사가 되고 싶어했고, 전쟁이 한창인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전쟁 기사를 읽으면서도 오직 부상자들 생각만 하던 캐시는 '죽음'에 관해 누구보다 진지했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마을 어귀에 서 있던 어사일럼이라고 불리던 석조 건물. 정신병자, 고아, 노인 등을 수용하던 보호시설이었던 어사일럼에는 캐시가 평생 잊지 못할 한 소년에 대한 기억이 묻혀 있다. 오래되고 복잡한 이야기, 울적한 이야기. 제이콥 스톨츠에 관한 이야기.

여섯 살 무렵 집에 새가정부 페기가 왔다. 그녀의 언니 넬은 옆집 비숍 가에서 가정부로 일하고 있었고, 그들에게는 제이콥이라는,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모르겠지만, 페기의 설명에 따르면 정상이 아닌 동생 제이콥이 있었다. 정상이 아니기는 했지만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고 동물 돌보는 일에 뛰어났던 제이콥. 제분소에서 맷돌이 돌아가는 소리에 '슈우우다, 슈우우다, 슈우우다' 라고 웅얼거리던, 캐시에게 따뜻하고 귀여운 새끼고양이를 선물한 제이콥. 넬은 비숍 가의 장남 폴과 위험한 관계로 발전하고 그 일로 인해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한다.

이 소설의 시작은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였다. 작가의 대고모님이 1911년에 찍은 실제 사진에는 한 소년이 오른손에 무언가를 들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작가는 그 소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소년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그가 정신적 충격을 경험했거나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 때문에 혼이 난, 상처 받은 아이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작가가 접한 사진, 작가의 성격 등이 작품 안에 다수 녹아들어 있어 이 소설은 소설이 아니라 수기 같은 느낌도 든다. 만약 이 작품이 소설이 아니라 수기였다면 나는 또 이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자리에 누웠겠지만, 그나마 소설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극 중 화자인 캐시가 여섯 살 때부터 아홉 살, 그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나기까지의 과정이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다. 그 동안의 묘사로 제이콥이 어떤 사람인지, 그의 누나인 페기와 넬이 어떤 성격이었는지, 그들에게 슬픈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얼마나 따스한 시간들이 존재했는지 알게 된다. 다소 지지부진해 보이기도 하는 그 과정을 통해서만, 제이콥이 벌인 일이 사건이 아니라 사고였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 후의 이야기. 각각의 사람들의 행적을 읽고 있으면 인생이란 참으로 오묘한 것, 그 어떤 시련과 고난이 존재해도 삶은 계속된다는 불변의 진리를 깨닫게 된다. 얇지만 마지막으로 갈수록 깊은 울림을 주는, 분명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모두 존재할, 시간이 흘러도 결코 잊을 수 없고 때로는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 그런 순간들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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