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을 들이키소서, 죽음 앞에서, 부디 부디.

p 370

 

죽음 앞에서 저자는 미소를 지으셨을까. 위중한 병을 얻고 보니 여든이 넘은 삶에도 배울 것이 있다고 하셨다는 분.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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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소위 '님비 현상'은 죽음 및 죽음을 위한 시설을 대상으로 해서도 말썽을 빚고 있다. 신체부자유자나 고아들을 위한 사회 시설에 대해서조차 님비 현상이 야기될 때, 이미 우리 사회는 인간사회이기를 포기한 것이나 진배없다.

p334

 

묘역을 철거하고 싶은 욕망은 죽음 자체를 기피하고 싶어하는 욕망과 직결된다. 죽음에 대한 혐오감이 묘역에 대한 혐오감으로 번진 것이다. 초상집에 갔다가 묻어오는 살을 '상문살'이라고 하는데 이런 말이 생겨난 것만 보아도 우리 사회가 죽음을 얼마나 부정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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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박혁거세의 죽음을 변란스러운 일이었다고 말하는 이유. 그의 죽음 또한 귀천의 죽음을 맞는 것처럼 보였지만 시신이 다섯 토막으로 나뉜 채 낙하한다.

샤먼의 영혼이 우주 여행을 하는 사이에 그의 육신이 뼈 마디마디까지 산산조각조각으로 토막이 났다가 그의 영혼의 귀환과 입신에 즈음해서 새로이 재통합되는 절차야말로 성무식의 가장 중요한 궤적이다.

p 250

 

혁거세의 시신의 재수습의 실패는 탈신혼의 입신하기의 실패에 따른 죽음이다. 여기에서 몸은 집이고 영혼을 생명이라고 여기는 저자의 관점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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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죽음의 판에 난데없는 듯이 껴드는 웃음판, 농짓거리판, 혹은 익살의 놀이판의 의미며 구실을 다잡아서 다시 캐어볼 수 있게 되고, 그로써 죽음 그 자체의 의미며 구실이 삶의 한복판에서 감당해낼 몫을 흔들어서 깨울 수 있게도 된다.

p226

 

상례에 수반된 놀이며 농은 죽음이 자아내는 엄숙함과는 거리가 있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그것 또한 죽은 이를 애도하는 의식이었다. 전남의 다시래기를 전형으로 했다는 여러 가지 상례놀이. 하지만 오늘날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란 어렵다. 죽음은 죽음일 뿐. 전통이 이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저자의 안타까움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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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스러운 만큼의 상례에는 물론 곡이 있다. 곡읍이라고도 하는데, 우는 것이 곧 예다. 곡읍이라고 했지만, 곡은 그냥 울음과는 다르다. 다같이 슬픔 곧 애의 극이 다름 아닌 읍이고 곡이지만, 읍과는 달리 곡은 제도요 또 문화다.

p212

 

이 부분을 읽다보니 상가집에 가면 '아이고, 아이고' 우는 모습을 드라마에서 본 기억이 난다. 읍과 곡 모두 자연스러운 인간 감정의 표출이지만 곡은 어떤 맥락 안에서 행해지는 것이라는 정의를 보고 있자니 신기하다. 그냥 '아이고 아이고' 하는 게 아니었구나! 이런 울음도 지역에 따라 '울음놀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고 하니, 죽음의 전통을 연구하는 것도 흥미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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