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 경성 모던라이프 - 경성 사계절의 일상
오숙진 지음 / 이야기나무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찬바람이 불고 날씨가 쌀쌀해지면 생각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아이들을 키우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이 계절이 되면 '그림자극장'이 떠오른다. 정작 내가 어렸을 때는 별 흥미를 갖지 못했는데, 아이들이 좋아하니 덩달아 나도 좋아지는 것. 잠들기 전 이불을 둘러쓰고 앉아 그림자극장 속 전래동화에 귀기울이다보면 아련한 향수같은 것에 마음이 먹먹해지는 것 같다.

 

[1930 경성 모던라이프]는 그렇게 그림자극장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멈춰있는 그림들, 하지만 언젠가 그 시간 속에 살아있었던 사람들이 생각나면서 전해져오는 그리움 같은 것. 글은 얼마 되지 않고 그림이 주를 이루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들의 숨소리, 말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이런 경성의 안내자는 금파리. 작은 금파리 하나가 경성의 이곳저곳을 유랑하며 보여주는 1930년. 남대문과 태평통, 광화문통, 종로 네거리, 설렁탕집, 탑골공원, 경성도서관, 천도교당, 카페, 창경원까지 멈춰있으나 책 안에서 흘러가는 그들의 시간을 함께 느끼는 책이다.

 

그 동안은 경성이라고 하면 화려하고 소란스러운 이미지를 연상했었다. 그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알면서도 미디어가 만들어낸 이미지에 현혹되었던 탓이다. 근대남녀 열풍에 나타난 모던보이, 모던걸이 떠오르는 시절. 그러나 그림 속 경성은 건조하고 덤덤하다. 심지어 자동차와 당나귀의 충돌 장면마저도.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당나귀와 자동차라니. 그림에는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어울려 있다. 소달구지와 자동차, 두루마기에 맥고모자, 치마 저고리와 대비되는 구두와 스커트 등. 그림이 나타내는 것처럼 그 시대 자체가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글로 설명되어진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그림 안에 담겨 흘러나온다. 비록 혼란의 시대였어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 현란한 그림이 아니라 더 깊고 진하게, 사실적으로 그 시대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작가님이 앞으로 어떤 주제의 작품들을 선보일지 궁금하다.

 

**북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이야기나무>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네이스 1 아이네이스 1
베르길리우스 지음, 김남우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트로이아의 영웅 아이네아스가 새 나라를 건국하라는 신탁을 받은 뒤 여러 고난을 겪은 후 로마의 기초를 세우게 된다는 내용의 [아이네이스]. '아이네아스의 노래'라는 뜻의 베르길리우스의 대표작이자 마지막 작품으로, 그가 죽기 전까지 11년간 매달렸다 전해진다. 오늘날까지 라티움어로 쓰인 가장 위대한 문학 작품으로 평가받지만, [아이네이스]의 완성을 위해 여행을 떠났던 베르길리우스가 열병에 걸려 세상을 뜨는 바람에 미완성으로 남았다.

 

쉽게 쓰인 [아이네이스]는 읽어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원문을 직접 번역한 것은 처음으로, 김남우 번역가님은 원문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우리말로 자연스럽고 선명하고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해 <18자역>이라는 방법을 사용하셨다. 그래서인지 초반은 읽는 속도가 잘 나지 않고 어렵게만 느껴져서 몇 번이나 책을 들었다놓았다 했을 정도. 아마도 이런 문체에 익숙하지 않았던 점이 가장 컸고, 또 신들의 이름이나 등장인물들의 이름 또한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르게 표기되어 있다는 점도 한몫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낸 방법은 나만의 리듬으로 책을 읽어나가는 것. 비록 심각한 내용의 서사시지만 일단 노래하듯이 경쾌하게(?) 한번 읽었더니 한결 수월했다. 또한 처음에는 원문과 주석을 같이 읽어나갔는데 그러다보니 더욱 혼란만 가중되어서 과감하게 주석을 포기했다. 우선 원문을 먼저 한 번 읽은 뒤에 주석 위주로 처음부터 다시 읽었더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면서 그제서야 작품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오죽하면 아이네아스의 아들이 율루스라는 것, 그의 이름을 이어받은 사람이 율리우스 카이사르라는 것을 발견하고 탄성을 질렀을까! 결국에는 '이거 너무 재미있잖아!'라는 말이 터지고야 말았으니 나름 뿌듯한 독서의 시간이었다. 

 

[아이네이스] 1권에는 원작 <아이네우스>의 1권부터 4권까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조국 트로이아의 패망으로 아내를 잃고 아버지와 아들,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데리고 역경을 겪은 아이네아스가 디도 여왕이 다스리는 카르타고에 도착해서 그곳을 떠나기까지의 여정이다. 여왕 디도 앞에서 아이네아스가 자신의 모험을 서술하는 식으로 시작하는 1권. 이야기를 다 들은 디도는 아이네아스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결국 광포한 사랑으로 비극적인 마지막을 맞게 된다.

 

<18자역>을 통해 전달되는 이야기들은 무척 생생하게 살아있다. 덕분에 신들의 진노, 디도의 열정적인 사랑, 디도가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경위까지 날 것 그대로 접할 수 있어 읽다보면 그 격정에 나까지 사로잡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매력적인 번역. 그 휘몰아치는 2권으로 고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네이스 1 아이네이스 1
베르길리우스 지음, 김남우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에 읽기 힘들었던 시간이 지나자 흥미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운율 형식의 원문을 읽다보니 그 생생함과 열정이 더욱 되살아나는 듯 하다. 원문을 따라 한 번 죽 읽고난 후, 다시 앞으로 돌아가 주석을 중심으로 한 번 더 읽었더니 처음 읽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와 한층 재미를 더한다.

이름 표기가 낯설어 깨닫지 못했는데 아이네아스의 아들이 율루스였구나! 아버지 아이네아스의 뒤를 이어 받아 30년 동안 라비니움을 다스리다 알바롱가로 근거지를 옮기는데, 알바롱가는 3백년 동안 이어진다. 율루스를 이은 이름이 율리우스 카이사르였다니! 두 번, 세 번 읽을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외 지음, 황현산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평점 :
품절


 

[디 에센셜_어니스트 헤밍웨이]에 실린 작품 중 <깨끗하고 밝은 곳>이라는 이야기에 이런 문장이 등장한다.


모든 것은 '나다(무(無))'이면서 '나다'이고 또 '나다'와 '나다'이면서 '나다'일 뿐이지.
[디 에셀셜_어니스트 헤밍웨이] <깨끗하고 밝은 곳> p4

 

저 '나다'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도 독자 개인의 몫일 듯 한데, 일단 나는 이 '나다'의 개념을 '허무'보다 '그저 담담히 세상 일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번에 다시 읽은 [노인과 바다]에서도 이 '나다'의 분위기가 짙게 느껴진 것은 노인의 태도 때문이었다. 고기 잡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나 오랫동안 수확이 없어도 낙담하지 않는 덤덤한 태도. 누구나 그를 측은하게 여기고, 함께 고기를 잡았던 소년의 부모는 노인을 '재수 없는 자'라며 업신여기지만 그럼에도 묵묵히 늘 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간다. 조바심이나 분노, 슬픔과 외로움 등의 감정은 찾아볼 수 없는 대신 어쩐지 때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분위기가 감돈다. 그것은 포기와는 다른 것. 이 생이 끝날 때까지 자신은 주어진 일을 다 할 뿐이라는 태도마저 엿보이는 듯 하다.

 

그런 그에게 찾아온 최대의 행운, 바로 큰 물고기다. 혼자서는 제대로 감당도 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물고기와의 사투. 책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이 한판 대결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볼 것이다. 노인이 혹시나 죽지는 않을까, 어떤 불운한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예상대로 비록 노인은 생명을 잃지는 않았으나 그의 손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큰 고기를 집까지 가져가기에는, 노인은 너무 멀리 와 버린 탓이다. 그가 그 고기를 잃을 때의 심정이 세세하게 묘사된 것은 아니지만 단 한 문장으로 그의 마음을 헤아려볼 수는 있다.


차라리 이게 꿈이었더라면. 저 고기를 낚지 않고 차라리 신문지를 깐 침대 위에 그냥 누워 있었더라면.
p 101

 

큰 고기를 잡았으나 아무런 수확도 없이 돌아온 그의 모습을 '허무'라는 단어와 연결시켜 볼 수도 있겠다. 처음 떠날 때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올 때도 비어 있는 노인의 손. 차라리 처음부터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면 모르겠으나, 세상 큰 고기를 손에 넣었다가 잃게 된 그의 마음은 말 그대로 '허무'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노인은 그 허무에 잠식당하지는 않았다. 비록 자신은 패배했으나 파괴되지는 않았다는 인간으로서의 긍지. 폭풍과도 같았던 시간은 지나고 이제 그의 앞에는 고요한 일상이 다시 자리잡을 것이다. 그의 삶은 앞으로도 계속되리라.

 


 

 

어렸을 때 읽은 [노인과 바다]는, 내 기억 속에 노인이 물고기를 잡았다가 놓쳤다는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었다. 그 때는 이게 뭐 그리 대단한 작품이냐고 의문을 품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역시 대가의 작품이란 이런 것인가. 7월에 두 번째, 이번을 계기로 세 번째 읽고 나니 문장 하나하나가 새롭게 다가온다. 이번에 눈에 들어온 것은 항상 노인을 지지해주고 위로해주는 소년. 소년이 없었다면 노인은 그토록 힘을 낼 수 있었을까. 인간이 순간순간마다 망가지거나 패배할 수는 있어도 완전히 파괴되지 않는 것은 자신을 지탱해주는 단 한 조각의 햇살일지도 모른다.

 

1954년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독자들에게 저마다의 교훈을 이끌어낸다는 [노인과 바다]. 이 작품에서 느껴지는 '나다'가 가슴에 묵직하게 남아있는 기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네이스 1 아이네이스 1
베르길리우스 지음, 김남우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익숙하지 않은 문체와 운율을 접하다 보니 생각보다 속도가 나지 않다가, 노래처럼 나름의 리듬으로 읽다보니 이제야 좀 읽히는 듯 하다. 처음에는 운문과 주석을 같이 읽었는데, 둘을 동시에 읽다보니 내용이 더 헷갈려서 우선 원문에만 집중해서 읽는 중이다. 이름 등 표기가 지금까지 접해온 것과는 달라 느낌도 새롭고 또다른 이야기를 읽고 있는 듯한 느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