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의 기억 (Leaves)
스티븐 헉튼 지음, 김지유 옮김 / 언제나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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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을 맞이해 독서와 관련해서 세운 계획이 있습니다. 하나는 한 권의 책이라도 깊이 읽자, 또 다른 하나는 되도록 그림책의 리뷰도 남겨보자-입니다. 요즘처럼 가정보육을 하는 시기에는 제 책보다 그림책을 읽는 시간이 더 많아요.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소파에서 양쪽에 아이들이 자리를 잡으면 1시간 정도 함께 책을 읽습니다. 독후활동의 중요성, 모르지 않지만 저는 재미를 더 추구하는 편이예요. 책을 읽고난 후 왜 '아 재미있었다!'라는 느낌 하나만 가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굳이 그런 재미를 분석해서 이 부분이 좋았고, 이런 글귀가 좋았다며 해체(?) 작업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 큽니다. 

 

[나뭇잎의 기억] 도 마찬가지였어요. 아마 이 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어보신 분이라면 굳이 독후활동을 하지 않아도, 전해져오는 느낌 하나만으로도 아이와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고 여기실 것 같아요. 풍성하고 따스한 색감과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저는 또 그만 제가 폭풍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작가이자 아티스트로 노르웨이의 서부 해안에 거주 중이라는 작가 스티븐 헉튼. 선입관을 가지고 싶지는 않지만, 그림책도 너무 좋았는데, 살고 있는 나라도 동경의 나라 노르웨이!! 아름다운 피요르드 끝에 위치한 집에서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영감을 얻는다니, 생각만으로도 너무 부럽습니다. 

 

두 그루의 나무가 등장해요. 큰 나무와 작은 나무. 큰 나무는 작은 나무가 더 작았을 때부터 작은 나무를 돌보아주었죠. 거센 비바람과 타는 듯한 태양으로부터 지켜준 것은 물론, 사랑을 듬뿍 담은 보살핌으로 작은 나무는 쑥쑥 자랐습니다. 싱그러운 초록빛으로 빛나는 좋은 기억들만 남겨둔 큰 나무는 이제 작은 나무에게 자신이 보고 배운 것을 가르쳐주기 시작합니다. 다정함과 친절함, 강한 바람에 맞설 때도 있지만 때로는 굽혀야 하는 유연함 등을 배우는 동안 작은 나무에게도 잎이 나요. 반면 큰 나무의 잎은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큰 나무의 잎들은 계속 떨어지고, 이제 남아 있는 잎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하트로 묘사된 큰 나무의 마지막 잎. 이제 작은 나무는 혼자 남았고, 비바람도 홀로 견뎌야 했습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작은 나무의 앞길을 밝혀준 것은 큰 나무와 함께 했던 따뜻한 기억들입니다. 

 

자기 전에 작은 아이는 꼭 저에게 물어요. '엄마, 나 사랑해?' 하고요. '그럼, 엄청 사랑하지' 라고 대답하면 '그런데 아까 왜 화냈어?' 라고 되물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게요. 아이들을 무척 사랑하는데, 저는 왜 화를 냈을까요. 무서운 건, 화를 낼 때보다 화를 내지 않을 때가 더 많은데 아이들의 기억 속에 저는 화내는 엄마로 자리잡을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장차 아이들이 세상 속에서 홀로 서야 하는 때가 왔을 때, 아이들을 버티게 해주는 건 가족이 주었던 따스한 사랑의 기억일텐데요. [나뭇잎의 기억]을 읽으면서 오늘의 육아에서 무엇이 가장 중한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부디 이 그림책이 주는 메시지와 풍경들을 직접 만나보시기를 바라요. 그림 하나하나가 얼마나 섬세한지 깜짝 놀라실 겁니다. 특히, 집으로 돌아가는 작은 나무 앞에 떨어진 사랑의 마음들은 무척 감동적이예요. 작은 나무가 집으로 돌아와 만나게 되는 더 작은 나무를 발견한 순간에는 생의 신비와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우리들의 삶의 기록에 경외감마저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 네이버 독서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언제나북스>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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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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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의 남편이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홀로 남은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에밀리의 집을 찾은 제라티 자매에게, 에밀리는 슬픔보다 더 짙게 남은 회한을 털어놓는다. 죽은 남편의 장점보다 단점을 더 많이 기억하고 술회하는 에밀리. 자매는 '누구나 좋은 면과 나쁜 면이 있다'는 말로 애써 당혹감을 감추려 하지만, 에밀리에게 남은 것은 슬픔이나 죽은 자를 향한 마지막 사랑이 아니라 빈 껍데기 같은 무엇이었다. 

 

[밀회] 에 실린 단편들은 모두 12편. 작가인 윌리엄 트레버의 명성을 익히 들었기에 무척 기대하고 읽기 시작한 작품집이었는데, 첫 작품부터 익숙치 않은 분위기와 메시지에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삶에 대한 무언가. 오랜 결혼 생활을, 애정없이 그저 함께 살아왔을 뿐인 부부생활을 끝내게 되면 에밀리처럼 반응하게 되는 것일까. 이런 당황스러움은 첫 번째 이야기인 <고인 곁에 앉다> 를 시작으로 마지막 작품인 <밀회>로 주욱 이어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첫 이야기에서는 알쏭달쏭했던 그 무언가가 손에 잡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인 감상을 말하자면, 그의 작품 속에서 줄거리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윌리엄 트레버의 작품 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한 번 스쳐가는 손길, 눈빛, 분위기 안에서 느껴지는 무언의 깨달음 같은 것이다.

 

 <밀회>에서 적절치 못한 관계를 이어오던 커플 중 여성이 이별을 감지하는 것은 상대의 말 때문이 아니었다. 이별의 예감은 단순히 '그들의 연애가 어제와는 다르다는 것을 잠시나마 느꼈다'라는 문장으로 대변될 뿐이고, 독자는 이 문장을 읽는 순간부터 그녀와 함께 이별의 징조를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글로 쓰여있으되 글로 표현되어 있지 않은 그 무언가를, 독자는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이별의 말조차 나누지 않는다. 백화점 유리창에 반사되어 새겨지는 두 사람의 마지막 포옹. 그 장면과 분위기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일었다.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찬사와 존경을 받는 윌리엄 트레버. 하지만 나는 아직은 그의 작품이 많이 낯설다. 나의 삶의 깊이가 아직 그런 수준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모양이다. 오기가 나서 에잇!하며 계속 읽어가기는 했지만 표제작인 <밀회> 외에 이렇다 할 느낌은 받지 못했다. 어떤 작가와 작품에 도전한다는 표현은 옳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도전해보고 싶은 작가가 한 명 더 생긴 것은 확실하다. 그 끝을 살짝 붙잡은 것 같은 윌리엄 트레버의 세계. 그가 보여주는 여백의 미를 조금은 더 음미해보고 싶다.

 

** 출판사 <한겨레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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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도어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모모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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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패리스의 기념비적인 데뷔작 [비하인드 도어]를 새해 첫 책으로 다시 읽게 될 줄이야!! <스튜디오 오드리> 서포터즈로 받은 세 권 중 하나인 이 작품은, 2016년 발표된 후 전 세계 40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350만부가 넘게 팔린 수작입니다. 예전에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을 때 깊은 인상을 받아 이후 작가의 다른 책들도 열심히 읽었지만, 이 [비하인드 도어]를 뛰어넘지는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일본작가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이 작가 본인이 극복해야 할 작품이 되어버린 것처럼, B.A.패리스에게도 [비하인드 도어]가 그런 이야기로 남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겼습니다. 

 

정원에서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곧 차가 자갈이 깔린 진입로를 나간다. 오늘은 잭이 떠나도 다른 때처럼 불안하지 않다. 먹었으니까. 한번은 사흘 동안 잭이 돌아오지 않아서 욕실 비누를 먹으려 한 적도 있었다. 

p 96

 

사실 예전에 한 번 읽은 작품이니 대충, 슬렁슬렁 넘겨도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부터 다시 작품 속으로 끌려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이미 결말을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 장면 하나하나가 자아내는 긴장감과 공포로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내가 그레이스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미치지 않고 버텨낼 수 있었을까, 그 오랜 시간을 언젠가 탈출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살아간다는 게 진정 가능한 일인가, 온갖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자신마저 의심하게 되었을지도 몰라요. 사실은 나에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고, 남편인 잭은 그런 나를 헌신적으로 보살펴주는 사람이라고요. 하지만 그레이스가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현실을 놓을 수 없었던 단 한 가지 이유는, 바로 동생 밀리 때문이었습니다. 

 

다운증후군을 안고 태어난 동생 밀리를 부모 대신 애정을 가지고 돌봐온 그레이스. 밀리까지 품어줄 수 있는 상대를 만나기를 원하지만, 그레이스에게 사랑과 결혼은 사치처럼 느껴져요. 그런 그녀에게 다가온 완벽한 남자 잭. 변호사인 그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밀리도 함께 살자며 그레이스에게 청혼합니다. 이게 무슨 행운이야-라며 행복해하는 그레이스지만 얼마 되지 않아 잭의 본성이 드러나죠. 그는 타인의 고통을 양식으로 삼는 진정한 사이코패스. 그가 원한 사람은 그레이스가 아니라 자신이 얼마든지 공포심을 심어주고 조종할 수 있는 밀리였습니다. 자신만의 이상적인 집을 구축하며 밀리가 기숙학교에서 나와 자신과 함께 살 날만 기다리는 잭. 그 날이 다가오기 전에 그레이스는 어떻게든 잭에게서 벗어나야 합니다. 

 

와!! 이렇게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며 페이지도 같이 넘어가기 있기없기??!! 계속되는 탈출 시도가 실패할 때마다 그레이스가 느끼는 절망감은 곧 저의 것이 되었고, 과연 이 지옥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 것인가 마음이 다급해졌습니다. 재독이었는데도 말이에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잭이 절망에 빠져 울부짖는 장면을 보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다는 것이랄까요. 마지막 장면에서 그레이스와 그녀의 이웃인 에스터가 나누는 대화는 다시 읽어도 정말 소오름! 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따뜻한 마음 뿐만 아니라 매와 같은 날카로운 관찰력도 겸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어요. 

 

이 작품을 시작으로 '가정 심리 스릴러'라는 장르를 개척한 B.A.패리스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비하인드 도어]를 제외하고는 그리 인상적이지 못했어요. 개인적으로 느끼는 그녀의 부진을 서포터즈 도서 중 한 권인 [테라피스트]로 극복했기를 바라며, [비하인드 도어]에는 역시 엄지척! 드립니다.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 출판사 <모모>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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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호로 역 번지 없는 땅 마호로 역 시리즈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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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호!! <마호로 마을 여행단>의 두 번째 여행, 시작합니다!! [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에서는 각 등장인물들의 소개와 사연, 다다와 교텐이 함께 지내게 된 경위 등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면 [마호로 역 번지 없는 땅]은 심부름집 인물들의 주변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느낌입니다. 물론 독특한 의뢰는 늘 있는 법! 심부름집을 하지 않았다면 겪지 않았을 요상한 주문은 계속되고, 그 일들을 처리해내면서 보이는 다다와 교텐의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여전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그들이 주인공이라는 느낌이 강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주변 인물들을 통해 비춰지는 다다와 교텐의 모습은, 어딘가 조금 더 사랑스럽고 정이 갑니다. 

 

마호로 역을 주름잡고 있는 거친 호시의 일상도, 부모님으로부터 원하는 사랑을 받지 못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유라 도련님의 색다른 모험 이야기도 좋았지만, 저는 치매에 걸린 기쿠코 할머니의 사연이 그렇게 마음에 와 닿더라고요. 잠시 정신이 돌아오신 건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의 생에 단 한번 존재했던 사랑이야기를 털어놓는 모습에 가슴이 아렸습니다. 아무리 늙고 나이를 먹었어도 사랑했던 기억은 여전히 색을 잃지 않고 여전히 한 인간의 마음에 남아있다는 그 생생한 증거. 이렇게 스러져 가는 생명에 안쓰러움과 허무함을 동시에 느꼈지만, 그렇기에 더욱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투닥투닥, 다다와 교텐의 다툼 또한 계속됩니다. 심지어 정원 청소와 버스 정류장 감시를 의뢰받은 오카 씨 댁에서조차도요. 그 와중에 교텐은 오카 씨와도 한바탕 난리를 치르는데요, '정원에서는 조수와 남편이 서로 엉켜 있고, 다다가 짐칸에서 땅으로 뛰어내려 조수 뒤에서 겨드랑이를 껴안고 말리는 참이었다'라는 장면에서 그만 와하하! 웃음이 터지고 말았어요. 마치 만화의 한 장면처럼 유쾌하게 그려진 이 에피소드 사이에 오카 부인과 교텐의 추억의 한 조각이 떠오릅니다. 과거에 말도, 표정도 없었던 교텐. 그랬던 교텐이 이제는 저기에서 말도 하고 싸움도 한다는 사실에 묘한 안도감을 느끼는 오카 부인입니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교텐의 과거를 좀 엿볼 수 있으려나 싶었지만 아직 자세하게 드러난 건 없었어요. 다만, 독감에 걸린 부인과 아이를 돌봐달라는 의뢰를 받고 찾은 한 가정에서 보인 교텐의 극단적인 반응으로 인해 그 상처가 심각하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을 뿐이었죠. 마치 또 다른 인격이 드러난 것 같았던 교텐. 1부를 통해 부모님으로부터 학대받았다는 말은 들었지만 대체 무슨 사연을 간직한 것일까요. 듣고 싶기도 하고 듣고 싶지 않기도 한, 불편한 심정입니다. 

 

[마호로 역 번지 없는 땅]에 담긴 에피소드들은 대체로 평온해요. 어쩐지 다다에게도 새로운 사랑이 찾아올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폭풍전야 같은 기운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교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빨리 3부를 읽고 싶기도 하고, 그러고 싶지 않기도 한 기분. 교텐의 상처를 마주하기 위해 작은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호로 마을 여행단> 이라는 배에서 아직 내리고 싶지 않네요!! 조금만 더 이 기분을 음미한 뒤, 3부로 고고, 해보겠습니다!

 

** 출판사 <은행나무>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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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도끼다 (10th 리미티드 블랙 에디션) - 특별 한정판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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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다른 사람이 소개하는 책'으로 이루어진 책을 잘 읽지 않는 편입니다. 어떤 책에 대한 감상은 개인의 몫이고, 때문에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이미 읽은 책이라면 '이 사람의 감상은 이렇구나' 생각하면 되지만, 아직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어떤 말을 듣는 것은 마치 스포일러를 본 것 같은 당황스러운 감정을 느낀 적도 꽤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베스트셀러라고 해도 '책에 관한 책'은 멀리하는 편이었는데요, 그럼에도 박웅현님의 [책은 도끼다] 10주년 리미티드 블랙 에디션은 도저히 그냥 넘기기 아쉬웠다고 할까요. 워낙 오래 전부터 유명하다는 말을 들어왔던 책이고, 책을 도끼에 비유한 점이 독특해서 읽기 시작한 인문학 강독회. 

 

저는 여느 독서가들과 비교했을 때 독서량이 평균에 미치지 못할 겁니다......대신 저는 책을 깊이 읽는 편입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꼭꼭 눌러 읽습니다. 

p 14

 

1년에 200권을 읽었다고 한다면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닐 겁니다. 벌써 [책은 도끼다]만 해도 250번째 책으로 리뷰가 등록되네요. 리뷰를 쓰지 않고 읽은 책도 있으니 270권 정도는 읽은 것 같은데, 요렇게 읽었다! 라고 하면 칭찬해주시는 분들이 계세요. 물론 칭찬 받으니 기분은 좋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한 감정이 들기도 합니다. 읽긴 읽었으나 내가 제대로 읽은 것이 맞나, 이렇게 읽은 책들 중 나의 기억에 남을 책은 과연 얼마나 될까. 쌓여가는 책들의 홍수 속에서 대충 읽은 책들도 제법 있을 겁니다. 매순간 저도 '꼭꼭 눌러' 읽고 싶지만, 코로나로 가정보육 기간이 많았던 작년과 올해 같은 상황에서는 아무리 짬을 내어 읽어도 절대적인 독서 시간이 부족했거든요. 결국 가당치 않게 속독의 방법을 실천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제 자신이 무척 부끄러워지더라고요. 

 

2022년에는 복직과 함께 어쩔 수 없이 독서의 시간이 대폭 줄어들게 될텐데, 그 생각만으로도 벌써 아쉬움에 한숨이 나오던 요즘이었어요. 무엇으로 이 아쉬움을 대체할 수 있을까 곰곰 생각하던 중, 돌아가게 된 길은 역시 '깊이 읽기' 입니다. 어차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책을 전부 읽을 수는 없는 법!! 그렇다면 한 권이라도, 이왕이면 양질의 도서를 제대로 읽자고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어떤 책을 언제, 어떻게 만나느냐도 인연이라고 생각해요. 독서의 방향이 바뀌게 된 지금, [책은 도끼다]를 이제서야 읽게 된 것도 운명일까요!!

 

한국문학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서 계시는 김훈 작가님, 사랑에 대해 깊은 통찰을 보여주었던 알랭 드 보통, 지중해의 문학,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으로 대표되는 밀란 쿤데라와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등, 어쩌면 다른 '책에 대한 책'에 비해서는 적은 수의 책들이 소개되어 있지만 그 깊이가 남다르다는 느낌입니다. 이야기의 가지가 이렇게도, 저렇게도 뻗어나가는 점이 매력 있었고, 작품들을 인용한 부분의 분량도 꽤 되어서 무척 꼼꼼하고 성실하게 책을 읽어오셨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 작가진과 작품들 중 제가 반한 분은 판화가 이철수님입니다. 검색해보니, 세상에나!! [몽실언니] 그림을 그리신 분이기도 하네요! 저의 마음을 순식간에 빼앗가버린 글은 바로 이것입니다!!

 

사과가 떨어졌다

만유인력 때문이란다

때가 되었기 때문이지

p 22

 

깊은데

마음을 열고 들으면

개가 짖어도 

법문

p27-28

 

다른 작가들에 관한 글들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이 두 인용글은 제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계속 떠올랐어요. 사과가 떨어진다는 것을 만유인력이라고 밝혀낸 서양과는 달리, '때가 되었다'며 받아들이는 동양적인 사고관에 제 마음이 활짝 열린 겁니다. 게다가, 마음을 열고 들으면 개가 짖어도 법문이라니, 와, 어떻게 이런 글을 쓰실 수 있죠??!! 게다가 말로는 잘 표현할 수 없지만 이철수님이 그리신 판화에도 자꾸만 눈길이 갑니다.

 

2022년에는 이렇게 인상적인 책들을 만나고 싶어요. 변화한 생활 속에서 어쩌면 또다른 독서의 의미가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하고, 조금 두렵기도 합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책을 손에서 놓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 이철수님의 글이 저의 '도끼'가 된 것처럼, 또 다른 책들이 무수히 많은 도끼가 되어 저를 깨워주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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