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코맥 매카시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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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뭔지 모르지만,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맞는걸까를 생각하며 몸부림을 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마음에 안 드는 책이라면 그냥 탁 덮어버리면 그만이지만, 이 책은 그러기도 쉽지 않다.  소리가 잘 안 들려서 답답하지만, 그 나름의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흑백 무성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이 책은, 우리가 지금까지 읽어왔던 스릴러와는 전혀 다른 세계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모스는 죽음의 냄새가 가득한 살인현장에서 물을 달라는 생존자의 말을 뿌리치고, 그 곳에 있던 거액의 돈가방을 들고 자리를 피한다. 양심에 가책을 느낀 모스가 하룻밤이 지나 물을 가지고 살인현장을 다시 찾지만 이미 생존자는 목숨을 잃은 뒤다. 돈가방을 노리고 살인자가 자신을 뒤쫓고 있음을 느낀 그는 아내에게도 몸을 피하게 한 뒤 이 곳 저 곳으로 피신하지만 살인자의 그물망을 피할 방법은 없다. 다른 한편에는 경찰을 죽이고 도주한 살인자 시거를 쫓는 보안관 벨이 있다. 모스가 살인자에게 쫓기고 있음을 안 벨은 어떻게든 모스를 도와주고 싶어하지만 잔혹한 시거를 멈출 방법이 과연 그에게 있을까. 

거의 모든 스릴러에서 주인공은 뜻하지 않은 불행으로 킬러에게 쫓긴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조금 색다르다고 할 수 있다. 물을 달라는 생존자의 말을 못들은 척 하고 자신의 것이 아닌 돈가방을 훌쩍 들고 떠나버린 모스는 결코 선인이라 불릴 수 없다. 오히려 비양심적인 사람이라는 인상이 강하며 킬러인 시거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잔혹하다.  모스가 시거에게 쫓기게 된 불행은  자기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므로  그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는 것이기에 경찰에게조차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의 분위기는 더욱 숨가쁘다. 난무하는 총싸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살려두지 않는 시거의 냉혹함 앞에서 과연 모스가 위기를 뚫고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가 관심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중간중간 그 긴장감이 실이 끊기듯 툭 풀려버리는 순간이 있다. 시종일관 무미건조한 문체가 진행되다가 벨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부분이다. 한 쪽에서는 죽느냐 사느냐를 놓고 숨이 가쁜데 벨은 테이프가 늘어나는 것 같은 느낌으로 느릿느릿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기도 하고, 일상생활을 털어놓기도 한다. 벨의 존재는 이 작품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단순히 벨과 시거를 선인과 악인이라고 규정짓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과거의 상처를 안고 계속 괴로워하는 벨은 전세대(혹은 노인), 양심의 가책도 죄책감도 없이 동전으로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시거는 현재의 세대로 보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학교에서 교사들이 걱정해야 할 것은 이제 학생들이 숙제를 안 해오거나 복도에서 뛰는 것 같은 소소한 일이 아니라 약물중독, 살인, 강간, 낙태 등의 끔찍하고 비인륜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작품이 나타내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인간적이고 양심적이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괴로워할 줄 아는 사람들의 나라이다. 시거 같은 사람이 존재하는 세상은 더 이상 벨이 존재하고 싶어하는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이미 세상에 그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대화를 나타내는 따옴표도 하나 없이 줄줄  문장이 나열된 책은 참 읽기가 힘들었다. 보통 책들과는 달리 내면묘사가 적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의 황폐함과 몰인정성을 그리기에 훌륭한 시도였다고 생각된다.  영화로도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황량한 분위기를 잘 살렸는지 궁금해진다. 언젠가 조용히 이 흑백 무성영화같은 책을 다시 펼치고 진정한 '노인을 위한 나라'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는 기회를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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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송필환 옮김 / 해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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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의 내 가장 큰 궁금증 중 하나는 '세상에 있는 모든 이름들의 기원'이었다. 책상은 왜 책상이고, 의자는 어째서 의자이며, 하늘은 무슨 이유로 하늘로 이름 붙여진 것인지, 그것이 너무나 궁금했고  지금도 도저히 풀 수 없는 신비라고 생각한다. 각 사회에서 이름이라는 것은  '자의성'으로 설명된다. 자의성이란 강아지를 우리는 강아지로 부르고 영어에서는 Dog, 일본어로는 いぬ(이누) 라고 하는 현상을 의미하는데, 즉 뜻과 기호 사이에는 필연성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일반명사 뿐 아니라 우리가 생활 속에서 부르고 불리는 이름 또한 그러하다. '이름' .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연 '이름'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주인공 주제씨는 중앙 호적 등기 보관소에서 일하는 사무보조원이다. 52세를 앞두고 있는 그는 낮에는 등기 보관소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등기 보관소 옆에 붙어있는 작은 집에서 홀로 지내고 있는데, 남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취미를 하나 가지고 있다. 유명 연예인들의 기사들을 스크랩하는 일이 그것인데, 어느 날 주제씨는 추기경의 기사를 스크랩하다가 그가 세례받은 성당, 대부 등의 기록이 알고 싶어 한밤중에 등기 보관소에 잠입한다. 그 과정에서 알지도 못하는 한 여인의 기록을 같이 가져오게 된 주제씨는 그 순간부터 그녀의 행적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녀가 살았던 어린 시절의 집을 찾아가거나 그녀의 대모를 만나기도 하고, 한밤중에 그녀가 다닌 학교에 몰래 들어가 기록을 빼내오기도 했다. 비를 맞고 독감에 걸리고 사람들의 미심쩍은 눈초리를 견뎌내면서 주제씨는 힘들게 힘들게 그녀의 행적을 따라가다가 그녀가 결국 자살로 생을 마쳤다는 것을 알아내고야 만다. 

'그녀'의 행적을 찾아가는 길이 주제씨에게 왜 그리 중요했던 것일까. 사실 주제씨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그녀'는 작품 안에서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다. 그녀 뿐만 아니라 주제씨의 주위 사람들인 등기 보관소 소장, 조사를 하다 만난 1층에 사는 노부인, 세탁소 주인, 직원들의 이름은 한글자도 나오지 않고, 심지어 주제씨까지 그의 풀네임이 아닌 그저 '주제씨'라고만 명기되어 있다.  작가를 직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단어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쓸 것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름들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이 발견(!) 이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름은 우리 삶 속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제일 처음 하는 일이 명함을 교환하는 것이고, 자기 소개를 할 때 먼저 하는 것이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일이다. '이름'이란 자신의 존재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일이고, 그 일을 통해 누군가에게 무게감있게 다가가는 일종의 도구로 사용된다.  하지만 도구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의미가) 되고 싶다.  


책을 읽는 내내 어쩐지 이 시가 계속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 그가 나에게 와서 꽃이 된 것'처럼, 이름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 관심과 애정의 표현 그 자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에서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표시되지 않은 것은, 그들 사이가 그만큼 삭막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때가 되면 출근하고, 밥을 먹고, 몇 년 전에 살았던 사람의 얼굴과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관계는 차가운 바람이 부는 회색빛 도시를 연상시킨다. 

'이름이 없다'는 것은 정말로 이름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모른다'라는 의미라고 생각된다. 혹은 '관심이 없다'라고 대체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알지 못하는 여인의 행적을 조사하는 주제씨의 좌충우돌 조사기록 과정은, 자신의 고독을 나타내는 몸부림, 혹은 아무에게도 전달되어지지 않는 노력처럼 보여 안타깝다. 

사실 책의 내용을 100% 이해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아직도 계속해서 솟아오르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어디서 찾아야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게다가 긴 문장과 쉴새없이 이어지는 쉼표들의 나열은 그의 작품을 한 번도 접한 적이 없는 나를 충분히 당황스럽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라는 글자가 마음과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시간이 지나도 내 이름을 기억하고, 그리하여 내 존재를 기억해 줄 이가 이 도시에 한 명이라도 있을 것인지 문득 두려운 기분이 엄습한다.



이 사람아,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어둠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배웠듯이 자신의 외부에 존재하는 어둠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도 배워야 해.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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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마지막 의식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엮음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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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으로 발을 내딛었고, [속죄]를 통해 푹 빠져버린 작가 이언 매큐언은, 책을 읽을 때마다 과연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 기대하게 만드는 사람 중 하나다. 작가 본인은 마치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 툭툭 던져놓는 화제들이 사실은 우리 독자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과 가슴 절절함을 느끼게 만드는지 그는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가끔은 '이게 뭐야'라며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결국에는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그의 세계에 빠져들어갈 수밖에 없는 느낌을, 나는 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번번히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가 '서머싯 몸'상을 수상했다는 이 작품집은 나뿐만 아니라 그의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으로 다가왔을 것이 틀림없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여기에 실린 작품들은 편안하지 않다. 편안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쾌하고 끈적끈적하고 읽고 난 순간 내 몸 어디 한 군데가 아파오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첫사랑이라는 단어와 표지의 여성 때문에 아련하고 몽실몽실한 사랑의 느낌을 생각했다면 기대와 크게 어긋날 것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영상 뿐 아니라 글자에서도 자극에 약한데,  글자를 따라가며 잔인하거나 충격적인 장면을 상상하다 보면 꼭 울렁증이 느껴진다. 그렇게 도저히 책을 읽을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작가가 한 명 있는데 그는 일본작가 '기리노 나쓰오'다. 이번 이언 매큐언의 작품은 '기리노 나쓰오' 정도는 아니었지만, 읽고 있다보면 어쩐지 어둠에 내 몸이 잠식당하는 기분이 들어 참 힘들었다.는 것은 밝혀둔다. 

8편의 이야기는 작가의 개성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냉소적이고, 저 위에 우리들 머리 꼭대기보다 더 높은 곳에서 혼자 의자에 앉아 놀라고 불쾌해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낄낄대고 있을 듯한 작가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그의 이런 모습이 이리도 쉽게 상상되면서도 멀리 피해가지는 못하고 오히려 더 깊이 들어가고 싶어하는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그러한 분위기는 이언 매큐언이라는 작가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는, 희소성을 중시하는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증조부의 일기를 바탕으로 존재를 사라지게 만든다는 입체기하학, 근친상간을 그리고 있는 가정처방, 어느 여름날의 사고를 평화로운 수채화처럼 그린 여름의 마지막 날, 단어를 사용한 유희 극장의 코커씨, 살인자의 심리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묘사한 나비, 벽장 속에서 살게 된 남자의 생의 발자취를 그린 벽장 속 남자와의 대화, 청소년들의 사랑이야기지만 어쩐지 쓸쓸함과 고독감이 느껴지는 첫사랑 마지막 의식, 그리고 가장무도회까지 읽고나면 몸서리쳐지는 이야기들로 가득찬 이 작품집은, 그러나 결국에는 이언 매큐언이라는 작가의 역량을 다시 한 번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시킨다. 완성되지 않은 인격체들이 겪는 혼란스러움이 때로는 경악으로, 때로는 잔잔하게 다가오면서 감정의 이쪽과 저쪽을 자유롭게 넘나드게 만드는 그에게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작품집이 발간되었을 때 영국의 '옵서버'지는 구식 안경을 걸친 이언 매큐언의 지적인 용모를 빗대 '학교 선생처럼 생긴 사람이 글은 악마처럼 쓴다'라는 글을 실었다고 한다. '악마적인 글쓰기'. 그에게 이렇게 어울리는 수식어가 또 있을까. 악마처럼 우리를 자신의 글세계로 끌어들이고, 우리의 경악과 당황스러움에 그 어떤 대답 없이 침묵하는 이언 매큐언. 그래, 한 번 빠져든 이상 내 당신의 작품은 피하지 않고 읽어드리겠소~!!  그가 다음에는 어떤 주제로 나를 끌어들여 놀라게 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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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의 명저
김소연 지음 / 삼양미디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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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도전'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도전'이라 함은 그 '세계명작'이 시공을 초월해 여전히 많이 읽히고는 있으나, 그 문학들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가 결코 이해하기 쉬운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적어도 나는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가까이하기에는 어렵고, 멀리하기에는 어쩐지 아쉬운 그런 '존재'라 할까. 내가 이렇게 '세계명작'에 '도전'이라는 거창한 말을 쓰게 된 것은 역시 학창시절의 경험에서 받은 영향이 크다. 당시 내가 손에 들었던 것은 [생의 한가운데]라는 루이제 린저의 작품이었다. 비교적 보편적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폭풍의 언덕]이나 [제인 에어]같은 브론테 자매들의 작품을 읽은 후 접한 [생의 한가운데]는 나에게 미지의 이야기로만 남았다. 그 후로 세계명작=어려운 작품이라는 인상이 깊게 남았고, 부끄럽지만 그 인상은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의 명저]가 나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다. 작품을 쓰게 된 동기, 사회적 배경,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 등등을 작가의 사진과 여러 가지 흥미로운 사진을 통해 쉽게 이야기한다. 그 동안 어려운 책이라고만 치부해왔던 세계명작들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하고, 여기 소개된 책들을 한 권씩 읽어보고 싶다는 욕구가 치솟는다. 전부 45편의 작품을<인간 실존에 대한 진지한 물음, 사랑의 위대한 힘,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수수께끼, 주체적인 여성의 삶, 다른 차원을 통해 본 세상, 시간을 잊게 하는 모험, 세상을 비틀어 보는 재미,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 현실에 대항하는 인간의 의지, 잃어버린 세대의 이야기 >의 10개의 챕터로 나누어 소개한다. 

작품들 중에는 내가 여태까지 가지고 있던 이미지가 180도 바뀌어버린 책도 여럿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걸리버 여행기]이다. 걸리버의 여행 혹은 모험 이야기로만 알고 있었던 [걸리버 여행기]는 본래는 사회 비판 의식이 강한 작품으로 출간 당시 격렬한 비난을 받아 한동안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고 한다. 19세기 비평가들의 입김으로 내용의 일부가 각색되어 나온 것이,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접한 '아동물'이었던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소인국'편 뿐으로, 원래는 총 4부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소인국, 거인국, 하늘을 나는 섬나라와 말나라 이야기가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천공의 섬 라퓨타>가 바로 이 '하늘을 나는 섬나라, 라퓨타'를 모티브로 삼아 창작된 작품이라고 한다. 

[걸리버 여행기]뿐만 아니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저자 루이스 캐럴에 얽힌 비화, 추리소설 작가 앨러리 퀸의 이야기, [크리스마스 캐럴]로 대표되는 크리스마스 문학 등 갖가지 이야기가 세계의 명화와 작가들의 사진과 더불어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어렵게만 생각했던 세계명작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간 듯한 느낌이 든다.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숙제를 끝낸 것 같은 홀가분함마저 느껴진다. 이 책이 그 동안 세계명작에 거리감을 가지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친근감을 느끼고 유명 작가들이 말하고자 했던 참뜻을 느끼고 생각하게 하는 발판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아마 가까운 시일 내에 도서관의 세계명작 코너에서 한동안 머무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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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안녕하세요? - 글래디 골드 시리즈 탐정 글래디 골드 시리즈 4
리타 라킨 지음, 이경아 옮김 / 책이좋은사람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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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다행이다! 책 표지를 자세히 보니, [글래디 골드 시리즈1 ]이라고 적혀있다! 제목에만 눈이 가서 작가 이름 위에 있는 이 문구를 놓치고 있었다니! 하지만 지금이라도 발견해서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왜 이 문구에 열광하는지 아마 아는 사람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75세의 전 세계 최고령 사립탐정 글래디 골드가 얼마나 우리를 매혹시키는지를. 게다가 그녀의 친구들은 또 어떠한가! 

1년, 2년..시간이 갈수록 과연 나는 나이를 먹었을 때 무엇을 하고 있을까를 그려보지 않을 수가 없다. 몸은 건강할지, 그 때도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눈은 좋을지, 자식들과 손자들의 사랑은 받고 있을지..생각하자면 끝도 없는 노후의 생활은, 아직은 나에게 낯설고 두렵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인생은 60부터라고 했던가. 그 말이 이 책의 주인공들에게는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이름. 글래디 골드. 나이. 75세. 취미. 추리소설 읽기. 그녀의 친구들인 아이다는 71세, 벨라는 83세, 소피는 80세, 프랜시는 77세에, 동생인 에비 또한 73세다. 우리의 주인공과 친구들이 사는 곳은 최연소자가 71세고 최고령자가 86세인 라나이 가든이다. 때가 되면 일어나서 아침운동을 하고, 풀장에 가서 수영을 하고, 55세이하로는 어린애 취급을 하는 마트에 가서 한바탕 전쟁을 치르는 것이 일과인, 조금은 쓸쓸하지만 행복한 그녀들의 생활에 끔찍한 일이 일어난다. 언젠가부터 심장마비로 죽어가는 노인들이 늘어난다는 것. 우리의 명탐정 글래디 골드와 그녀의 검투사(글래디에이터)들은 경찰조차 콧방귀를 뀌는 단서들을 찾아 모으며 살인자들을 찾아나선다. 

이 책은 추리소설이기도 하지만 명랑소설이기도 하다. 다만 주인공이 탱탱하고 튼실한 몸을 가진 젊은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만 다를 뿐이지 재미는 그 몇 백배라고 단언할 수 있다. 각각의 개성이 뚜렷한 이 검투사들은 도저히 할머니들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발랄하고 귀엽다. 같이 몰려다니며 수영을 하고, 맛있는 간식을 나누어먹고, 서로 비밀 없이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그녀들을 보며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그렇게 두려운 일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우리의 글래디 여사는 멋진 신사분인 잭과 사랑까지 나눈다! 나이 75세에 가슴 뛰는 것을 느끼고 첫 데이트를 하기 위해 몇 시간 째 옷을 고르며, 정성들여 화장을 하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책을 읽는 나까지 행복해졌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나면 우리 주위의 어르신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분들인데, TV에 나오는 독거노인들의 눈빛은 글래디 여사와는 달리 슬프고 공허하다. 외로움이란, 가장 지독한 병이다. 글래디 여사와 검투사분들은 비록 자식이 멀리 떨어져 있어도 친한 친구들이 옆에 있어 활기차다. 행복한 노후, 활기찬 생활, 누군가와 어울려 살아가는 것. 우리 모두가 꿈꾸고 원하는 것들이지만 어쩐지 현실과 소설이 너무 다른 것 같아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소설의 존재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본다. 읽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 언젠가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 어디까지나 소설은 '현실에 있음직한 일'을 써서 보여주는 것이니까.  

 어쨌든 추리소설이므로 범인찾기도 중요하다. 몇 권의 추리소설을 탐독한 사람이라면 쉽게 맞출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서의 살인동기가 그렇듯, 소설 속에서의 살인동기도 너무나 어처구니 없다. 범인에 대한 응징을 바라는 내 마음을 우리의 검투사분들과 어르신들이 너무도 후련하게 풀어주셨다. 오늘밤부터 유쾌하고 상큼(?)하고 통쾌하고 발랄한 글래디 여사와 글래디에이터들의 재등장들 손꼽아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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