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서브 로사 2 - 네메시스의 팔 로마 서브 로사 2
스티븐 세일러 지음, 박웅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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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스티븐 세일러의 <로마 서브 로사> 시리즈가 두 번째 이야기 [네메시스의 팔] 로 돌아왔습니다. 1권을 어찌나 재미있게 읽었던지 하루라도 빨리 2권이 출간되길 기다렸었는데요, 재미만큼이나 출간되는 속도도 매우 바람직하여 정말 애정하지 않을 수 없는 시리즈라 할 수 있겠어요.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더듬이 고르디아누스가 부친 살해 사건 용의자의 변호를 맡고 있던 키케로를 도와 멋지게 사건을 해결했었습니다. 저는 키케로와 그의 심복 티로가 계속 등장하는 줄 알았는데 이 매력남 고르디아누스는 매번 다른 정치가들과 조우할 모양입니다. 참, 더듬이라 하여 이상한 곤충같은 것을 상상하시면 안 됩니다. 정보를 잘 찾아내는 능력이 있다 하여 붙여진 애칭인 것 같거든요, 애칭. 

이번 편에서 고르디아누스에게 일을 의뢰한 사람은 '마르쿠스 크라수스'입니다. 로마공화정 말기의 정치가이자 장군으로 스파르타쿠스 반란을 제압하고 집정관을 지냈습니다. 후에 폼페이우스 및 카이사르와 3두정치를 시작한 인물이죠. 키케로와 함께 해결한 부친 살해 사건이 벌어진 후 8년 정도 지난 시기로 1권에서 등장한 술라는 이미 병에 걸려 사망했고, 로마는 트라키아 출신 노예 검투사 스파르타쿠스가 동료 검투사 70여 명과 함께 양성소에서 탈출, 반란을 일으킨 탓에 혼란스럽습니다. 저는 요즘 이 스파르타쿠스에 관련된 미드를 보고 있습니다만, 로마인들 입장에서야 당연히 그들이 반란군처럼 보이겠지만 또 이 미드를 보면 스파르타쿠스 또한 아내와 마을을 빼앗긴 불쌍한 남자인 겁니다. 

요런 정국 속에서 자신의 집에서 노예지만 사랑하는 여인 베테스다와 꿈나라를 헤매던 고르디아누스를, 크라수스의 오른팔인 마르쿠스 뭄미우스가 찾아옵니다. 행선지가 어디인지, 고르디아누스를 데리고 오라 명한 사람인지 누구인지도 밝히지 않은 채 무작정 그와 그의 아들 에코를 호화로운 배에 태운 뭄미우스. 하지만 고르디아누스가 누구입니까. 관찰력과 통찰력이 뛰어난 그는 금방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누구의 부름으로 가는지 알아채죠. 부자들이 해안에 별장을 짓고 더운 진흙으로 목욕을 한다는 '잔'에 크라수스의 명령으로 불려간 고르디아누스는, 그 곳에서 또 다른 살인사건과 맞닥뜨립니다. 그리고 그 사건을 해결하느냐 마느냐에 백 여명의 노예들의 목숨이 걸려 있다는 엄청난 사실. 

1부와 마찬가지로 이야기의 전개는 만족스럽습니다. 베일에 가려진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고르디아누스의 끈기와 노예들을 향한 연민, 시간이 흐를수록 배가 되는 사건의 긴장감은 역시 가슴을 두근거리며 책을 읽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범인일까, 아냐, 저 사람인가' 하며 끊임없이 등장인물들을 의심하게 만드는 추리소설임에도 이 작품이 빛을 발하는 이유는 그것 뿐만이 아닙니다. 1권의 리뷰에서 언급했던 살아있는 듯한 캐릭터는 말할 것도 없고 작가가 설정한 로마시대의 모습을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다는 거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작품의 배경은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이 지속되고 있는 시기입니다. 크라수스는 원로원으로터 스파르타쿠스 진압군의 지휘권을 얻기 위해 기다리고 있고, 살인사건이 일어난 집의 노예 백 명은 주인이 노예에게 살해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죽음을 맞이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고르디아누스와 에코가 타고 온 배 안에는 노예들이 극악한 상황에서 일을 하고 있고, 그들의 생명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늘 위태롭기 짝이 없죠. 

이런 상황에서 귀족들은 노예들에게는 당장 필요한 먹을 것들과 주인을 섬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없다고 단정짓습니다. 그런 시대에 벌어진 살인사건이기 때문에 비로소 고르디아누스의 사건해결 능력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은 아닐까요. 고르디아누스를 율법의 여신이자 인간의 주제넘은 오만에 대한 신의 응징이라는 추상개념을 신격화한 숭배 대상인 네메시스의 팔로 비유한 것은, 그의 정직성과 공정함, 신분고하를 막론한 인간에 대한 연민을 아주 잘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로마시대하면 우리가 바로 떠올리는 검투사들의 대결 장면도 간접적으로 언급되어 있어요. 검투사들의 대결, 귀족들과 노예들의 모습, 크라수스를 비롯한 정치인들의 야망과 음모. 1부에 비해 2부에서 보다 로마의 속살이 조금씩 보이고 있다는 느낌이에요. 그 제목, <로마 서브 로사> 처럼요. 이 시리즈를 한 번 접하면 로마라는 거대한 매력 앞에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꿇게 되실 테니, 저항하지 마시고 어서 빠져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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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경찰의 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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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학교 다닐 때 보았던 교통사고 예방 영상이 생각난다. 한 아이가 길을 건너다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그 소식을 듣고 걱정하며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오던 아버지가 역시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나고 만다는 내용이었다. 아버지를 잃고 다리 한 쪽은 영원히 불편하게 된 채 퇴원을 하던 아이의 모습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기억나다니, 제법 충격을 받긴 했나보다. 실수로 벌어진 일이 한 가정과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시킬 수도 있다는 메세지는 지금 생각해도 무척 오싹하다. 한국인은 암 발병보다 교통사고 위험 확률이 더 높다는 수치까지 발표되는 것을 보면, 교통사고, 정말 무시할 것이 못되는 듯 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편집 [교통경찰의 밤] 은 그런 의미에서 조금 특이한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추리소설이라고는 하지만 교통사고를 소재로 해서 경각심을 심어준다고 할까. 약 10년 전에 발표된 작품들이라 조금 옛날 느낌이 나기는 하지만 운전대를 잡았을 때 드러나는 인간의 양면성, 한 사람의 이기심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지, 사람의 인연 또한 '업보'와 관련되는 것인지 등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대부분 장편을 읽고 단편을 피해왔었는데, 이렇게 괜찮은 메세지를 전달하는 단편집이라면 앞으로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밤중에 교차점에서 일어난 추돌사고를 단 한 명의 목격자인 맹인소녀의 귀에 의지하여 해결하는 <천사의 귀>는 반전이 놀랍다. 상대 운전자가 사망한 상태에서 자신은 책임이 없다며 물러서는 다른 쪽 운전자, 그 운전자의 증언에 반박하며 예리한 청각으로 수사에 일조하는 소녀, 과연 책임이 누구에게 있었는지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교통법규의 헛점을 그리는 <분리대>는 애절하고, 초보운전을 하던 사람에게 위협을 가해 사고를 일으키고 급히 떠나버린 가해자의 그 후의 이야기를 그린 <위험한 초보운전>은 인간의 악의를 떠올리게 한다. 미숙한 사람에게 가하는 악의적인 장난이 자신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교훈으로 삼을 수도 있을 듯. 

나의 불법주차로 인해 타인에게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을 그린 <불법주차>는 오싹하면서도 애절하고, 고속도로에서 앞의 차에서 날아온 캔에 맞아 한 쪽 눈의 시력을 상실한 약혼자를 위해 가해 차량을 찾는 <버리지 마세요> 는 인생의 아이러니함을 느끼게 한다. 어느 날 벌어진 교통사고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는 <거울 속으로> 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세 여자 선수가 어떤 회사의 세 여자 선수와 정확히 일치하는, 작가가 우연의 신비함을 느낀 소설이라고 한다. 

매번 다른 형사, 다른 피해자와 가해자들이 등장하지만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동일하다.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진다는 것. 나의 조그마한 실수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망쳐버릴 수도 있다는 것. 아직도 면허 없는 나는, 연달아 가슴을 조이게 만드는 에피소드들로 인해 과연 면허를 따야 할까, 다시 의문이 생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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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배회자 우먼스 머더 클럽
제임스 패터슨 지음, 이영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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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흠, 별점을 어떻게 줘야할 지 지금 고민하고 있는 중입니다. 읽기는 제법 재미있게 읽었지만 뭔가 기분이 이상하거든요. 어쨌거나 사건이 해결된 것은 다행이기는 하지만, 뭐랄까, 이게 정말 끝인가, 이 분들은 무척 손쉽게 범인을 잡는구나, 네 명의 여인이 범인을 잡기 위해 모인 건 맞는데 모임의 주된 목적은 수다와 교류를 위해서가 아닌가 하는 그런 기분이 드는 겁니다. 주인공들의 직업을 고려하면 범죄와의 싸움은 그녀들의 인생에 있어 무척 중요한 일이기는 하나 그것은 이차적, 이라는 느낌이랄까요. 입체성이 다소 부족한 평면적인 캐릭터들의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우먼스 머더 클럽은 미국드라마로 먼저 만났고 책으로는 [쓰리 데이즈] 를 읽었습니다. 영상으로 보이는 캐릭터들에 비해 책 속의 인물들이 밋밋하게 다가와 [쓰리 데이즈] 에서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는데요, 한 동안 스릴러 소설을 읽지 않은 탓인지, 아니면 제 머리에 조금 쉽게 읽히는 책이 필요했던 것인지 [한밤의 배회자] 는 쪼콤 재미있었답니다. 우먼스 머더 클럽의 언니 격인 린지 박서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검시관 클레어같은 인생을 살고 싶다, 그런 생각도 하면서요. [쓰리 데이즈] 를 읽을 때는 불편했던 짧은 챕터들도 이번에는 좀 더 영상미를 상상하며 읽었더니 나름대로 편안했어요. 

이번 작품에서는 샌프란시스코 시립병원에서 일어난 의문의 죽음과 연쇄살인사건을 동시에 다루고 있습니다. 시립병원에서 일어난 사건은 무척 오싹합니다. 회복기에 있던 환자들, 결코 죽음으로 갈 수 없으리라 생각한 환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숨을 거두는데 시신들의 눈 위에는 의술의 신인 카두케우스 문양이 새겨진 단추가 얹혀 있는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병원에 가는 것을 무서워하는 저인데 이 책을 읽는 내내 과연 의료진과 병원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병을 고치러 찾아간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 아우, 상상만으로도 정말 오싹해요. 게다가 우먼스 머더 클럽 멤버에게 직접적으로 닥친 일은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 그 멤버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고급 승용차 안에서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연달아 시체로 발견되는 사건입니다. 화장도 되어있고 멋진 옷에 향수까지 뿌려져 있는 시체. 조금 늦은 시간에는 지하철 역에서 집까지 거의 뛰다시피 하는 저에게 이 사건 또한 두려움을 가져다 주었지만, 사건 해결은 과정에 비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간단해서 맥이 빠질 정도였습니다. 요거요거, 정말 끝마무리가 부족한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사실 두 사건은 뛰어난 반전이라고 할 것도, 뒷표지에 실려 있는 홍보문구처럼 숨 막히는 법정 드라마라고 할 요소들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특히 '숨 막히는 법정 드라마'라고 하기에는 정말 한참 모자라지요. 훗. 그저 조금 어려운 책을 읽다 머리를 식히고 싶다, 요즘 스릴러 소설을 안 읽었더니 한 권 읽고 싶다고 느껴질 때에 가볍게 읽기 좋은 책입니다. 또 미드를 보신 분들이라면 주인공들의 얼굴과 장면 하나하나를 상상하면서 읽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 편이 좀 더 현실감있고 생생하게 다가오거든요. 마지막 부분은 미드를 염두에 두고, 혹은 미드의 결말 부분을 묘사한 것이라 여겨지는 그런 장면이었습니다.

으흠. 여기까지 쓰다보니 평점이 정해졌습니다. ( 위에서 확인하세요. 힛 ) 그리 나쁘지도, 그렇다고 어디가 딱히 좋다고 꼽기에도 애매한 책입니다. 그냥그냥 린지는 이런 형사구나, 신디는 이런 기자구나, 클레어는 이런 검시관이구나, 유키는 이런 사람이구나 라고 받아들이며 읽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구나아~라고 넘기시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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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 미국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허먼 멜빌 외 지음, 한기욱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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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 브로드]라는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처음으로 미국문학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재미있다, 굉장하다가 아닌 '아름답다' 라고 느낀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지만 그것 또한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생각. 하지만 내가 접한 미국문학은 순수문학보다 흥미위주의 책들이 더 많았기 때문에 미국문학의 '아름다움'이라고 해도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도 어쩐 일인지 [사우스 브로드]를 읽고 나서는 '이게 미국문학의 정수라는 걸까' 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 미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졌는데, 이번에 창비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미국편>을 통해서 더 깊이있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창비에서 출간된 세계문학전집은 다른 출판사의 책들과는 달리 각 나라의 단편만을 모아서 엮은 것이다. 미국편을 읽기 전에 일본편도 읽었었는데, 일본편은 표기와 번역이 영 매끄럽지 못해 읽는 내내 몰입이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미국편은 눈에 거슬리는 표기 몇 개를 제외하고는 문체도 나름 매끄럽고 번역자가 고심한 흔적이 보여 차근차근 읽는 맛이 났다. 그 흔적이란 표제작 <필경사 바틀비>의 "I would prefer not to" 를 "그렇게 안하고 싶습니다" 로 옮기기까지 몇 년에 걸쳐 고심했다고, 해설 부분에서 번역자가 토로한 부분이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문장이 없었다면 <필경사 바틀비>의 독특한 분위기는 제대로 살아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편도 그랬지만 미국편 역시 내로라 하는 작가들의 단편이 실려 있다. <주홍글씨>의 작가 너새니얼 호손의 <젊은 굿맨 브라운>, 애드거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 마크 트웨인의 <캘레바레스 군의 명물, 뜀뛰는 개구리>, 헨리 제임스의 <진품>, 샬롯 퍼킨스 길먼의 <누런 벽지>, 찰스 W. 체스넛의 <그랜디썬의 위장>, 스티븐 크레인의 <소형 보트>, 셔우드 앤더슨의 <달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로 유명한 F. 스콧 피츠제럴드의 <겨울 꿈>, 윌리엄 포크너의 <에밀리에게 장미를> 까지 각양각색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한 두 작품은 미국의 역사와 시대배경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기도 했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빼놓고 거의 대부분 '재미있다'고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앞서 언급한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이다. 변호사의 시선으로 필경사 바틀비라는 독특한 사람에게 주목한 이 작품은 세계문학 중 가장 뛰어난 단편으로 꼽히며 바틀비의 모델이 누구냐에 대해 꽤 많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듯 하다. 바틀비와 변호사에 대한 해석도 여러 방향에서 이루어지며 변호사와 바틀비의 대화, 바틀비의 말투를 중심으로 책을 읽다 보면 오묘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곳곳에 숨어 있는 유머와 기이한 상황으로 인해 몇 번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하며 각 상황에서 자주 쓰이는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어구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다보면 언어의 신비함에 다시 한 번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어렸을 적 읽은 애드거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는 지금 읽어도 여전히 오싹하고 공포스러우며, 샬롯 퍼킨스 길먼의 <누런 벽지> 또한 밤에 혼자 읽으면 자신을 둘러싼 모든 벽지에 두려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찰스 W. 체스넛의 <그랜디썬의 위장>은 주인공 딕 오언즈가 여자 친구 채러티의 관심을 사기 위해 아버지 소유의 흑인 노예 그랜디썬을 캐나다에 도망치도록 유도하지만 엉뚱한 결과를 얻게 된다는 내용이다. 분명 흑인 노예에 관한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을텐데 문체와 분위기가 희화적이며 놀라운 반전만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보통 단편작품집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거나 정말 재미있다고 소문난 책이 아니면 읽지 않는 편인데, 미국편도 그렇고 일본편도 그렇고 어느 정도의 재미는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일본편은 작품 자체보다 표기와 번역의 탓이 컸다;;) 총 9권으로 기획된 창비세계문학전집, 두 권을 읽고 나니 다른 나라의 이야기들도 기대된다. 아울러 깊이있는 미국작가들의 다른 작품들도 선정해 한 권씩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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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작은 마을 - 앙증맞고 소소한 공간, 여유롭고 평화로운 풍경
서순정 지음 / 살림Life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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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조금 오래된 이야기지만,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갔을 때, 물론 도쿄는 내게 흥미로운 곳이었다. 복잡한 덴샤 노선도에서 벗어나지 못해 선배언니를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에서 30분은 늦게 갔던 일, 차 안에서 아담한 집들을 바라보던 일, 우리나라의 종로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던 신주쿠나 가부키를 보기 위해 찾아갔던 긴자, 내가 좋아하는 책들과 CD들을 헐값에 구입할 수 있던 Book Off 등.(이 Book Off 는 우리나라에도 몇 군데 생겼다.) 얼마 되지 않는 추억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이렇게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을 보면 일본은 분명 나에게 정겨운 곳인가 보다. 

하지만 나는 도쿄보다 학교 언니오빠들과 같이 갔던 가마쿠라, 엄마와 함께 찾았던 하코네 같은 곳이 더 마음에 들었다. 제법 이름있는 관광지이지만 사람이 많아서 으레 겪어야 하는 분주함과 혼란스러움보다 고풍스럽고 아늑함을 더 깊게 느꼈던 곳들이다. 가마쿠라에 갔을 때 탔던 에노덴, 가마쿠라 신사, 생각보다 작은 크기에 놀랐던 다이부쓰, 길을 잃어 한참을 돌아 찾아갔었던 미나모토 요리토모의 무덤에는 일본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정취가 배어있다. 하코네에서 갔던 온천과 화원같은 곳들도 벌써 7년 정도 된 일인데 이렇게 생각나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만 하다. 이를테면. 나도 북적북적 머리 아픈 곳보다 정취있고 일본의 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을 동경하는 것이다. 교토나 오사카, 나라같은. 서순정이라는 저자가 알려준 작고 정겨운 마을들을.  



지금까지의 일본 관련 서적들은 주로 대도시를 중심으로 엮어진 것으로 '일반적인' 취향을 반영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도쿄에 가면 꼭 봐야 할 것들, 오사카에 갔다가 들리지 않으면 서운한 장소, 나가사키에 가서 꼭 먹어야 할 요리들. 물론 이런 것을 중시하는 여행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여행 속에서도 얻을 것은 많고, 새로운 시각으로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된다. 하지만 나같은 경우는 헉헉거리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리 많이 여행을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여행 중에는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이런 기회가 생기겠어' 라고 생각하며 있는 힘껏 여기저기 돌아다니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냥 걷는 것, 여행지의 공기를 느껴보는 것,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내 몸 속 긴장을 모두 풀어내고 편해 쉴 수 있는 곳이 그립다. 

이 책은 그러 곳들을 소개한 여행서이자 에세이다. 그저 지도 한 장만이 필요할 뿐, 여행책자만으로는 갈 수 없는 곳으로 발을 이끌어준다. 주부, 간사이, 주고쿠, 홋카이도, 오키나와까지 주로 내가 가보지 못한 곳들의 이야기가 펼쳐져서 더 즐거운 시간이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작은 강과 그 강 사이를 잇는 여러 개의 다리들, 마을을 지탱해주는 우물과 몸과 마음을 펀안하게 쉴 수 있도록 해주는 민슈쿠에 온천, 따뜻한 차 한 잔의 여유. 내가 좋아하는 고양이들이 사는 섬, 마나베시마를 달랑 잡지 하나 보고 찾아갈 수 있는 그녀의 용기와 한가로움이 부럽다. 여행객들은 잘 찾지 않는다는, 지역 주민들만의 온천인 키노사키 온센에는 지금이라도 가서 몸을 푹 담그고 싶어진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저절로 따뜻한 온센과 차 한 잔, 맛있는 케이크가 생각난다. 책 읽는 속도도 빨라지지 않고 쉬엄쉬엄 읽게 되어 그리 두껍지 않은 책임에도 오히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일본에서 만든 라멘도 먹고 싶고, 덴샤도 다시 타보고 싶고, 일본의 정취가 느껴지는 거리도 걸어보고 싶고, 유명 문화재 한 두 가지 정도도 보고 싶다. 방학이라 그 동안 잘 쉬었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그 동안의 시간을 허투루 쓴 느낌이다. 올 여름에는 장맛비라도 맞으면서 교토의 거리들을 걸어볼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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