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교통경찰의 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불현듯 학교 다닐 때 보았던 교통사고 예방 영상이 생각난다. 한 아이가 길을 건너다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그 소식을 듣고 걱정하며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오던 아버지가 역시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나고 만다는 내용이었다. 아버지를 잃고 다리 한 쪽은 영원히 불편하게 된 채 퇴원을 하던 아이의 모습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기억나다니, 제법 충격을 받긴 했나보다. 실수로 벌어진 일이 한 가정과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시킬 수도 있다는 메세지는 지금 생각해도 무척 오싹하다. 한국인은 암 발병보다 교통사고 위험 확률이 더 높다는 수치까지 발표되는 것을 보면, 교통사고, 정말 무시할 것이 못되는 듯 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편집 [교통경찰의 밤] 은 그런 의미에서 조금 특이한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추리소설이라고는 하지만 교통사고를 소재로 해서 경각심을 심어준다고 할까. 약 10년 전에 발표된 작품들이라 조금 옛날 느낌이 나기는 하지만 운전대를 잡았을 때 드러나는 인간의 양면성, 한 사람의 이기심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지, 사람의 인연 또한 '업보'와 관련되는 것인지 등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대부분 장편을 읽고 단편을 피해왔었는데, 이렇게 괜찮은 메세지를 전달하는 단편집이라면 앞으로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밤중에 교차점에서 일어난 추돌사고를 단 한 명의 목격자인 맹인소녀의 귀에 의지하여 해결하는 <천사의 귀>는 반전이 놀랍다. 상대 운전자가 사망한 상태에서 자신은 책임이 없다며 물러서는 다른 쪽 운전자, 그 운전자의 증언에 반박하며 예리한 청각으로 수사에 일조하는 소녀, 과연 책임이 누구에게 있었는지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교통법규의 헛점을 그리는 <분리대>는 애절하고, 초보운전을 하던 사람에게 위협을 가해 사고를 일으키고 급히 떠나버린 가해자의 그 후의 이야기를 그린 <위험한 초보운전>은 인간의 악의를 떠올리게 한다. 미숙한 사람에게 가하는 악의적인 장난이 자신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교훈으로 삼을 수도 있을 듯.
나의 불법주차로 인해 타인에게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을 그린 <불법주차>는 오싹하면서도 애절하고, 고속도로에서 앞의 차에서 날아온 캔에 맞아 한 쪽 눈의 시력을 상실한 약혼자를 위해 가해 차량을 찾는 <버리지 마세요> 는 인생의 아이러니함을 느끼게 한다. 어느 날 벌어진 교통사고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는 <거울 속으로> 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세 여자 선수가 어떤 회사의 세 여자 선수와 정확히 일치하는, 작가가 우연의 신비함을 느낀 소설이라고 한다.
매번 다른 형사, 다른 피해자와 가해자들이 등장하지만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동일하다.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진다는 것. 나의 조그마한 실수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망쳐버릴 수도 있다는 것. 아직도 면허 없는 나는, 연달아 가슴을 조이게 만드는 에피소드들로 인해 과연 면허를 따야 할까, 다시 의문이 생겨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