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작은 마을 - 앙증맞고 소소한 공간, 여유롭고 평화로운 풍경
서순정 지음 / 살림Life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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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조금 오래된 이야기지만,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갔을 때, 물론 도쿄는 내게 흥미로운 곳이었다. 복잡한 덴샤 노선도에서 벗어나지 못해 선배언니를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에서 30분은 늦게 갔던 일, 차 안에서 아담한 집들을 바라보던 일, 우리나라의 종로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던 신주쿠나 가부키를 보기 위해 찾아갔던 긴자, 내가 좋아하는 책들과 CD들을 헐값에 구입할 수 있던 Book Off 등.(이 Book Off 는 우리나라에도 몇 군데 생겼다.) 얼마 되지 않는 추억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이렇게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을 보면 일본은 분명 나에게 정겨운 곳인가 보다. 

하지만 나는 도쿄보다 학교 언니오빠들과 같이 갔던 가마쿠라, 엄마와 함께 찾았던 하코네 같은 곳이 더 마음에 들었다. 제법 이름있는 관광지이지만 사람이 많아서 으레 겪어야 하는 분주함과 혼란스러움보다 고풍스럽고 아늑함을 더 깊게 느꼈던 곳들이다. 가마쿠라에 갔을 때 탔던 에노덴, 가마쿠라 신사, 생각보다 작은 크기에 놀랐던 다이부쓰, 길을 잃어 한참을 돌아 찾아갔었던 미나모토 요리토모의 무덤에는 일본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정취가 배어있다. 하코네에서 갔던 온천과 화원같은 곳들도 벌써 7년 정도 된 일인데 이렇게 생각나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만 하다. 이를테면. 나도 북적북적 머리 아픈 곳보다 정취있고 일본의 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을 동경하는 것이다. 교토나 오사카, 나라같은. 서순정이라는 저자가 알려준 작고 정겨운 마을들을.  



지금까지의 일본 관련 서적들은 주로 대도시를 중심으로 엮어진 것으로 '일반적인' 취향을 반영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도쿄에 가면 꼭 봐야 할 것들, 오사카에 갔다가 들리지 않으면 서운한 장소, 나가사키에 가서 꼭 먹어야 할 요리들. 물론 이런 것을 중시하는 여행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여행 속에서도 얻을 것은 많고, 새로운 시각으로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된다. 하지만 나같은 경우는 헉헉거리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리 많이 여행을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여행 중에는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이런 기회가 생기겠어' 라고 생각하며 있는 힘껏 여기저기 돌아다니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냥 걷는 것, 여행지의 공기를 느껴보는 것,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내 몸 속 긴장을 모두 풀어내고 편해 쉴 수 있는 곳이 그립다. 

이 책은 그러 곳들을 소개한 여행서이자 에세이다. 그저 지도 한 장만이 필요할 뿐, 여행책자만으로는 갈 수 없는 곳으로 발을 이끌어준다. 주부, 간사이, 주고쿠, 홋카이도, 오키나와까지 주로 내가 가보지 못한 곳들의 이야기가 펼쳐져서 더 즐거운 시간이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작은 강과 그 강 사이를 잇는 여러 개의 다리들, 마을을 지탱해주는 우물과 몸과 마음을 펀안하게 쉴 수 있도록 해주는 민슈쿠에 온천, 따뜻한 차 한 잔의 여유. 내가 좋아하는 고양이들이 사는 섬, 마나베시마를 달랑 잡지 하나 보고 찾아갈 수 있는 그녀의 용기와 한가로움이 부럽다. 여행객들은 잘 찾지 않는다는, 지역 주민들만의 온천인 키노사키 온센에는 지금이라도 가서 몸을 푹 담그고 싶어진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저절로 따뜻한 온센과 차 한 잔, 맛있는 케이크가 생각난다. 책 읽는 속도도 빨라지지 않고 쉬엄쉬엄 읽게 되어 그리 두껍지 않은 책임에도 오히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일본에서 만든 라멘도 먹고 싶고, 덴샤도 다시 타보고 싶고, 일본의 정취가 느껴지는 거리도 걸어보고 싶고, 유명 문화재 한 두 가지 정도도 보고 싶다. 방학이라 그 동안 잘 쉬었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그 동안의 시간을 허투루 쓴 느낌이다. 올 여름에는 장맛비라도 맞으면서 교토의 거리들을 걸어볼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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