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카세론
캐서린 피셔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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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영화 <큐브> 시리즈의 처음을 보면서, 저는 그게 감옥의 하나의 형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중죄를 지은 죄수들만 수감시켜 놓은 감옥이요. 그래서 처음에 깨어난 방에서 벗어나려하거나 감옥 자체를 벗어나려 해도 목숨을 잃고, 움직이지 않고 한곳에만 머물러도 물러설 자리가 없는 장소를 만들어놓은 거라구요. 그들이 죽음을 맞는 방법들이 하나같이 잔혹하고 무서워서 정작 결정적인(?) 장면에서는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지만, 소재 하나만은 독특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내가 이 바깥에서 이토록 자유롭게 살아있을 수 있다는 것에 새삼스레 감사하면서요.

 

캐서린 피셔의 [인카세론]은 미래사회의 감옥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으나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어 마침내 감옥 안을 장악하게 된 감옥. 아주 오랜 옛날에 만들어져 이제는 존재하는 장소조차 모르게 된 그 곳에 정체불명의 소년 핀이 3년 전부터 생활하고 있어요. 그는 자신의 몸에 새겨진 문신을 의지삼아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를 밝혀내기 위해 끊임없는 모험을 감행하죠. 감옥 밖에서는 교도소장의 딸인 클로디아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맞서서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기 위해 미약하게나마 싸우고 있습니다. 그 둘을 연결시켜주는 것은 인카세론. 암투와 모략으로 가득찬 세상 속에서 운명은 상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그들을 이끌고, 그들에게는 이제 선택의 순간만이 남아있습니다.

 

소재면에서나 재미면에서나 전반적으로 괜찮은 느낌의 작품입니다. 감옥 속에서 핀은 어떻게 될지, 감옥 밖에서 클로디아는 어떻게 될지, 그들의 운명이 과연 어떻게 이어질지 흥미진진합니다. 게다가 이 책의 주인공(?)격인 인카세론에 대한 설정도 꽤 독특해요. 처음에는 완벽한 사회로서 만들어진 감옥이지만 어느 순간 인간들이 통제할 수 없게 되고 제멋대로 움직이게 된 인카세론, 생명체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말살시키기도 하는 인카세론은 정말 감옥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로 느껴졌습니다. 핀과 클로디아를 제외한 인물설정도 궁금증을 자아내며 긴장감을 증폭시켰는데요, 저는 정작 남자주인공인 핀이 아니라 그의 곁에서 그를 지켜주는 역할을 맡았지만 속을 알 수 없는 케이로에게 눈길이 더 갑니다. 핀보다는 케이로의 캐릭터가 한층 더 입체적이에요. 기억이 없는 핀이라 그 존재도 투명하게 느껴지는 걸까요.

 

그런데 이 [인카세론]이 시리즈인지, 아니면 단권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가 없네요. 책날개의 작가 소개글에는 시리즈라고 나와있지만 맨 마지막 장에는 '끝'이라고 나와있거든요. 만약 이것이 단권이라면 용두사미격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아직 설명이 부족한 부분도 많고, 모든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으며, 핀과 클로디아가 해야 할 일도 많이 남아있으니까요. 그런 것들을 배제한 채 작품을 끝냈다면 이 작가, 용서할 수 없습니다! @.@ 그렇다면 별, 안 드리렵니다. 하지만 아마도, 시리즈겠죠?! [인카세론]의 스타트를 끊은 이 책을 뛰어넘는 이야기들로 다시 찾아올 것이라 믿으며 기다려보고 싶어요. 이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전체적인 별점은 이 책 이후의 이야기들로 결정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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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인의 반란자들 - 노벨문학상 작가들과의 대화
사비 아옌 지음, 정창 옮김, 킴 만레사 사진 / 스테이지팩토리(테이스트팩토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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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주로(가 아니라 거의 대부분) 읽는 분야는 문학 쪽이지만, 더 나이 들어서 머리가 딱딱해지기 전에 어려운 책도 읽어봐야 한다는 강박증에 못내 인문이나 사회 쪽 책을 집어들기도 한다. 설사 읽다가 한 쪽으로 미뤄진 책을 못본 체하며 꿈나라로 떠날지라도. 그런데 문학 분야에서도 이 인문사회 쪽 책만큼이나 나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작품들이 있으니, 그건 바로 노벨문학상 수상작들이다. '~상 수상'이라는 수식어에 그리 현혹되지 않는다 자부하면서도 매년 그 해의 수상작들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책 읽는 사람으로서는 어찌보면 당연한 관심인 걸까-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헌데 이 수상작들을 읽어내기란 나에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기와 끈기로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덤벼보기도 하지만 결국-이건 아닌 것 같아, 내 소중한 시간을 이해 되지 않는 책들을 읽으며 괴로워하기 싫다!-로 끝맺음하기 일쑤다.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16인의 작가군 중에서도 내가 아는 이름은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인터뷰 내용을 읽으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사고의 폭을 넓혀가는 데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세운 계획은, 다른 책을 읽을 때의 목적과 다르지 않았다. 바로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깊이 들여다볼 기회를 얻는 것.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그들의 작품을 단순한 글자로만이 아닌 행간까지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얻고 싶었다. 어쨌든 노벨문학상이라는 건 참으로 매력적인 타이틀이니까.

 

이 책에 실린 16인의 작가들은 '거장'이라는 말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없을만큼 한 점의 사진에서조차 거대한 기운이 느껴진다. (요건 사진작가의 능력?) 개인이 처한 정치적 상황과 의견, 주력해서 표현하고자 하는 일상의 모습은 제각각이지만, 그들에게는 공통점도 있다. 문학을 통해 자신이 가진 상처를 치료하고, 더 큰 희망의 날들을 꿈꾼다는 것. 오로지 문학만을 추구하며 그 세계에서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과 정면으로 맞부딪히면서 자신만의 이데아를 실천하기 위해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가고 있었다.

 

아들의 장애로 인해 깊은 실의를 겪었지만 또한 그를 통해 더 깊은 문학세계를 추구할 수 있었던 오에 겐자부로, 터키 극우민족자들의 협박을 받으면서도 뛰어난 재치와 유머로 새로운 세계를 갈구하는 오르한 파묵, 인간에 대해서, 현실에 대해서 깊은 사유의 세계를 헤엄치는 도리스 레싱,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에 맞서며 에이즈와의 한판 싸움에 한창인 나딘 고디머, 지난날의 과오와 죄책감 속에서 미래를 보기를 마다하지 않는 귄터 그라스, 괴한의 습격을 받아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몸이 되었지만 여전히(그 당시에) 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나기브 마푸즈, 홀로코스트를 겪고 살아남아 다시금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추구하는 임레 케르테스와 이미 흘러가버린 시간들을 유유히 바라보며 삶의 오묘함을 되새기고 있는 비슬라바 쉼보르스카까지. 그들의 삶은 그들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라는 타이틀이 없더라도 충분히 아름답고 경탄할만 하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어요. 내 책에서만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그래요.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에요. 그것을 아니라고 거부하는 건 아주 잘못된 거예요. 우리는 각자가 외롭지 않기 위해서 함께 살기를 원하는 두 종류의 인간일 뿐이예요. 그게 바로 내가 보는 관점이고요.

 

구약을, 복음서를, 신약을, 코란을 읽다 보면 우리는 그것들이 똑같은 사람을, 똑같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을 알게 돼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다양한 이야기들처럼 말이에요. 유대교든, 그리스도교든, 이슬람교든, 그것들은 서로 다른 시기와 배경으로 인해 유일한 종교로 보일 뿐인데, 그런데도 그것들은 서로 질투를 하고 자기들만이 진짜로 유일하다고 확신하고 있어요.

-도리스 레싱

 

문학은 상업적인 것을 훨씬 뛰어넘는 가치들을 지니고 있어요. 문학은 인간이 의미하는 것을 심오하게 일깨워주는 도구이지, 다른 것을 얻기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 돼요. 실제로 예술가는 세상을 구원하지 못했고,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랬듯이 자신의 내적인 세계를 표현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구현하는 존재니까요.

-가오싱젠

 

우리는 반드시 얘기해야 해요. 치명적인 트라우마까지, 그 모든 것을. 지금까지 나로서는 할 수도 없었고 알 수도 없었지만, 기왕에 이렇게 된 것에 대해 무척 만족하고 있어요. 내가 겪었던 젊은 시절은 얘기하는 게 썩 유쾌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어요. 우리 세대는 이 문제를 결코 뛰어넘을 수 없고, 어떤 종지부도 찍을 수 없을 거요. 그러나 나는 그것에 관해 계속해서 쓸 거라고 약속할 거요. 나는 계속해서 입을 열 것이고, 나의 적들은 참을 수밖에 없을 거요.

-귄터 그라스

 

누가 되었든지, 어떤 중요한 사안에 대해 하루 정도 생각할 시간을 갖지 않으면 제대로 된 논리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어요. 이처럼 이 세상에는 즉답을 요구하는 자들이 많아요. 어리석은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도 말이에요. 여전히 나는, 잠시만 생각하면 된다고 믿는 사람들 중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어요.

-비슬라바 쉼보르스카

그들이 살아온 몇 십년의 삶을 단지 몇 페이지의 인터뷰만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나처럼 그들의 작품세계를 이해하지 못해 허둥거렸던 독자, 작가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사람들의 바람을 채워주는 의미있는 책이다. 흑백으로 처리된 사진들 때문인지, 그들의 모습이 허상이 아니라(당연한 말이지만) 실제였다는 것을 이제야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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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책이다 - 시간과 연민, 사랑에 대하여 이동진과 함께 읽는 책들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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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전, 제가 즐겨보는 프로는 이동진님과 팝칼럼니스트 김태훈님이 등장하는 '영화는 수다다' 입니다. 꿀맛같은 늦잠 속에서 느긋하게 떠돌다가도, 이 시간만 되면 눈을 번쩍 뜨곤 합니다. 영화를 소개해주는 프로그램 속 코너 중 하나로, 저는 이 '영화는 수다다'에서 이동진님의 영화에 대한 별점을 꽤 신뢰하는 편이에요. 별점이 적으면 꼭 그만큼밖에 느낄 수가 없었고, 별점이 많으면 그런대로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거든요. 맞는 별점이었거나 아니면 제가 그의 별점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겠죠. 때문에 이번 책에 대한 기대도 상당히 컸습니다. 그의 블로그를 통해 많은 영화를 접하는만큼 독서량도 굉장하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거든요. 오오. 그런데 제 기대가 너무 컸든, 혹은 저랑 책이 잘 맞지 않았든, 아니면 정말로 이 책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재미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뒷페이지로 넘어갈수록 저는 점점 책에 대한 흥미를 잃어갔습니다.

 

[밤은 책이다] 에는 그동안 그가 읽었던 70편이 넘는 도서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총 330여 페이지, 330여 페이지를 70(70보다는 많은 도서이지만)으로 나누어보면, 한 권당 평균 4.7 페이지가 할애되는 편입니다. 많으면 두 장, 적게는 1.5페이지 정도입니다. 이 책에는 그가 책을 읽으면서 감명깊게, 혹은 일상적으로 읽었던 장면들이 인용되어 있고 뒤에는 그의 감상이 뒤따릅니다. 불쑥불쑥 공감할 수 있는 문구가 나타나거나 새로운 단어에 대해 알 수 있었지만, 저는 마치 단순히 나열되어 있을 뿐인 도서목록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어쩌면 읽은 책보다는 읽지 않은 책이 더 많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문에 그가 제시한 인용글의 앞뒤를 파악할 수가 없어서 그리 인상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을지도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만약 그가 자신이 읽은 책을 독자들과 더 깊게, 더 진솔하게 나누고 싶었다면 그에 대한 배경지식을 충분히 제공했어야 한다고요. 소개된 책의 권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의 책을 소개하더라도 독자를 깊게 끌어들일만한 요소를 제공했어야 한다고요. 저는 [밤은 책이다]에서 독자와의 소통을 원하는 저자가 아니라, -나는 이런 책도 읽었고, 저런 책도 읽었어. 그리고 이런 생각들을 했지-를 내세우는 그저 한 사람의 '독자'를 만났을 뿐입니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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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한번은 이탈리아를 만나라 - 역사와 예술이 숨 쉬는 이탈리아 기행 일생에 한번은 시리즈
최도성 지음 / 21세기북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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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신 분들 중에 어째서 이 책을 인문으로 판단했는지 궁금해하는 분들도 계실 거라 생각해요. 크게는 이탈리아 여행서이지만 단순히 관광지만을 다루고 있는 책은 아닙니다. 요즘 특히 여행에세이가 많이 출간되고 있고 또 주위에 언젠가는 여행다닌 것을 책으로 내면 좋겠다는 분들도 꽤 계셔서 그 인기를 실감하고 있는데요, 이 책은 관광지를 소개하고 그 곳에서의 단상만을 소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 점이 이 <일생에 한번은...>시리즈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여행지에서의 감성적인 단상은 그 곳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허용 가능하지만, 그 감성이 과도해서 읽기 버거운 책들도 있거든요. 그런 여행서는 책이 아니라 개인적인 일기장을 만들었어야 옳다고 보는 저로서는 여행지의 모습과 문화적, 역사적인 지식을 함께 맛볼 수 있는 <일생에 한번은...>시리즈를 애정하는 편입니다.

 

사실 저는 이탈리아를 비롯한 서유럽에 그리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제 안에 나름대로 순번을 매겨놓은 장소가 있는데 동유럽-터키-스페인-북유럽-서유럽 순이었거든요. 그런데 요즘 유독 로마에 관련된 소설과 여행서를 읽다보니 이탈리아도 꼭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웅대한 건물과 장대한 역사의 현장인 이탈리아를 직접 가보지 못한다면 분명 후회할 것 같다는 마음까지 드는 거 있죠. 그 생각에 이 책이 한층 부채질을 해주었습니다. 매혹적인 사진과 함께 작가와 이탈리아를 거니는 시간은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일생에 한번은 이탈리아를 만나라-는 거창한 제목과 달리 많은 곳을 소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 드라마 <아테나-전쟁의 여신>에 등장했던 도시 비첸차, 볼로냐, 레지오 에밀리아,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의 고향인 빈치 마을과 카프레세,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탈리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로마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쇼핑과 패션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기대하셨을 밀라노와 나폴리, 시칠리아 등의 주요 도시들은 아쉽지만 제외되어 있어요.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밝혔듯 이 책의 주제는 과거 그랜드 투어(역사 문화 기행) 대상지와 르네상스 정신이 살아있는 도시들이거든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여행지와 문화, 역사를 함께 설명해준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베네치아와 같은 도시명의 어원,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에 얽힌 일화들, 피렌체의 역사, 음식에 얽힌 이야기, 수많은 전설들을 함께 알아갈 수 있어요. 게다가 그림, 영화, 문학작품들도 함께 소개해주고 있어 이탈리아에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층 더 이탈리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책인 듯 합니다.

 

그럼에도 별이 다섯 개가 될 수 없었던 이유는 마지막의 로마 부분이 앞부분보다 성의가 없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앞부분의 내용들은 느긋한 분위기에 세세하고 꼼꼼하게 설명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로마 부분은 어쩐지 페이지를 채우기 위해 간단히 편집된 느낌이랄까요. 마지막까지 일관된 분위기와 내용이 유지되었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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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색 연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7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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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은 이번이 두 번째. [행각승 지장스님의 방랑]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재미를 [주홍색 연구]에서 발견하고, 오오~! 눈을 번쩍거리며 읽었습니다. 행각승 지장스님으로부터 받은 충격이 너무 커서 -아리스가와 아리스라는 작가도 일본에서는 유명하다던데 나랑은 맞지 않는 건가, 아니면 내가 이해를 하지 못하는 건가-를 나름 심각하게(?) 고민한 것이 어언 몇 년 전. 어찌보면 단편을 잘 쓰는 작가가 실력이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은연 중에 가지고 있던 저로서는, -그렇다면 이 작가는 아직 조금은 더 두고봐야 할 존재?-라는 의문을 남겨주기도 했습니다. 어쨌거나 이 [주홍색 연구]는 크게 기대를 하지 않고 읽기 시작해서인지 체감으로 느낀 재미는 훨씬 더 컸던 듯 합니다. 중간을 지키기 위해 별은 네 개.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건은 세 가지. 1건의 화재와 2건의 살인사건. 화재 중 히무라에게 사건 의뢰를 부탁한 학생의 고모부가 목숨을 잃었으니 총 세 건의 살인사건 되시겠습니다. 그리고 늘 그렇듯 주인공 아리스와 히무라는 사건을 슉슉 해결한다는 이야기. '영상통화가 된다면 좋겠다'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꽤 오래 전에 쓰여진 작품 같지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재미 면에서는 크게 지장이 없으므로 샥샥 읽힙니다. 사건이야 아리스와 히무라가 알아서 해결을 해 주시니 직접적으로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 그리고 추리소설에서 내용을 자꾸자꾸, 많이많이 이야기하다보면 비밀이 새어나가고, 그건 곧 범죄라 믿는 바입니다!

 

이 작품에서 매력을 느낀 부분은 두 가지. 첫 째는 주인공 아리스와 히무라의 '존재' 그 자체라고 할까요. 셜록 홈스의 곁에 친구 왓슨이 있었던 것처럼, 탐정 히무라 옆에 작가 아리스가 있는 것이지요. 저에게 왓슨은 의사로서 명석한 두뇌를 가진, 추리능력이 조금 부족할 뿐 그래도 똑똑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남아있는데요, 어째서인지 이 <작가 아리스> 시리즈에서는 명석한 두뇌도 날카로운 추리능력도 전부 히무라가 가지고 있는 형편입니다. 다른 시리즈에서는 어떻게 등장하는 지 모르겠지만, 이 한 편만으로 볼 때 아리스는 조금 멍~한, 히무라의 사건현장에 동행은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그런 사람 같거든요.

 

그런데 이 둘을 보며 저희 반 반장과 부반장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2011년에는 반장복이 있어서 그랬는지 어쨌는지, 저희 반 반장녀석이 아주 똘똘합니다. 씩씩한 여학생인데, 작년 3월 개학 다음 날 제가 몸이 안 좋아서 (긴장했는지 급체를;;) 오후에 나갔더니, 알아서 기초자료를 싹 걷어서 제 책상위에 올려놓은 거 있죠! 그 후로 1년 동안 알게 모르게 제가 의지를 좀 많이 했습니다, 흠흠! 한 마디로 실무적인 능력이 아주 뛰어난 아이입니다. 반면 부반장 녀석은 늘 허허 웃는 순진무구 남학생이에요. 고3 이니 공부에 열중을 해야 할 터인데, 반장이 '좀 조용히 해, 공부 좀 해!' 라고 소리치는 무리 중에 이 부반장 녀석은 꽤 섞여 있고, 아이들이 떠들어도 큰 소리 하나 못내는 겁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이 부반장 녀석을 놀리면서도 좋아하는 게 눈에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깨달았죠. -아, 이 둘은 꼭 같이 있어야겠구나. 한 명은 실무 담당, 한 명은 인화 담당-그래서 두 녀석 다 봉사상을 주었습니다. 부반장은 지각도 엄청 하고, 자율학습 때도 몇 번 혼나기는 했지만요. 아, 그렇다고 반장이 실무면에서만 뛰어나고 친구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어찌나 씩씩하고 활발한 지 전교에 모르는 애가 없을 정도거든요.

 

히무라 옆에 아리스 작가가 없었다면 작품의 매력도는 크게 떨어졌을 거라는 건 두말 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저 또 하나의 밍숭맹숭한 탐정 이야기, 그 정도로만 여겨졌을지도요. 히무라와 아리스는 두 몸이지만 한 몸이나 마찬가지라는 요상한 생각이 듭니다. 히무라의 어두운 기운을 아리스가 받아줘야 하기도 하고. 또한 그 둘이 풍기는 엉뚱발랄한 분위기도 꽤 매력적입니다.

 

두 번째 마음에 들었던 점은 사건을 전개시키는 꼼꼼함이었어요. 추리소설을 오랜만에 읽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전개방식이 인상적입니다. 트릭을 서술할 때도 한 번에 이해가 확 되는 설명을 좋아하거든요. 이것은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이므로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끼셨을 지 모르겠습니다. 지루하다, 전개가 조금 느릿하다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 수도 있겠습니다.

 

[주홍색 연구]를 읽고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가 아리스> 시리즈를 전부 찾아봤는데, 평이 엇갈리는 경우도 있어서 아직 다 접하기에는 쪼큼 거부감이 듭니다. 아직은 [주홍색 연구]에서 받은 재미를 쪼큼 오래 간직하고 싶다는 기분이랄까요.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추리소설을 읽었더니 자꾸 추리소설만 읽고 싶다는 기분이 드는 게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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