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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색 연구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7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은 이번이 두 번째. [행각승 지장스님의 방랑]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재미를 [주홍색 연구]에서 발견하고, 오오~! 눈을 번쩍거리며 읽었습니다. 행각승 지장스님으로부터 받은 충격이 너무 커서 -아리스가와 아리스라는 작가도 일본에서는 유명하다던데 나랑은 맞지 않는 건가, 아니면 내가 이해를 하지 못하는 건가-를 나름 심각하게(?) 고민한 것이 어언 몇 년 전. 어찌보면 단편을 잘 쓰는 작가가 실력이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은연 중에 가지고 있던 저로서는, -그렇다면 이 작가는 아직 조금은 더 두고봐야 할 존재?-라는 의문을 남겨주기도 했습니다. 어쨌거나 이 [주홍색 연구]는 크게 기대를 하지 않고 읽기 시작해서인지 체감으로 느낀 재미는 훨씬 더 컸던 듯 합니다. 중간을 지키기 위해 별은 네 개.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건은 세 가지. 1건의 화재와 2건의 살인사건. 화재 중 히무라에게 사건 의뢰를 부탁한 학생의 고모부가 목숨을 잃었으니 총 세 건의 살인사건 되시겠습니다. 그리고 늘 그렇듯 주인공 아리스와 히무라는 사건을 슉슉 해결한다는 이야기. '영상통화가 된다면 좋겠다'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꽤 오래 전에 쓰여진 작품 같지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재미 면에서는 크게 지장이 없으므로 샥샥 읽힙니다. 사건이야 아리스와 히무라가 알아서 해결을 해 주시니 직접적으로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 그리고 추리소설에서 내용을 자꾸자꾸, 많이많이 이야기하다보면 비밀이 새어나가고, 그건 곧 범죄라 믿는 바입니다!
이 작품에서 매력을 느낀 부분은 두 가지. 첫 째는 주인공 아리스와 히무라의 '존재' 그 자체라고 할까요. 셜록 홈스의 곁에 친구 왓슨이 있었던 것처럼, 탐정 히무라 옆에 작가 아리스가 있는 것이지요. 저에게 왓슨은 의사로서 명석한 두뇌를 가진, 추리능력이 조금 부족할 뿐 그래도 똑똑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남아있는데요, 어째서인지 이 <작가 아리스> 시리즈에서는 명석한 두뇌도 날카로운 추리능력도 전부 히무라가 가지고 있는 형편입니다. 다른 시리즈에서는 어떻게 등장하는 지 모르겠지만, 이 한 편만으로 볼 때 아리스는 조금 멍~한, 히무라의 사건현장에 동행은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그런 사람 같거든요.
그런데 이 둘을 보며 저희 반 반장과 부반장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2011년에는 반장복이 있어서 그랬는지 어쨌는지, 저희 반 반장녀석이 아주 똘똘합니다. 씩씩한 여학생인데, 작년 3월 개학 다음 날 제가 몸이 안 좋아서 (긴장했는지 급체를;;) 오후에 나갔더니, 알아서 기초자료를 싹 걷어서 제 책상위에 올려놓은 거 있죠! 그 후로 1년 동안 알게 모르게 제가 의지를 좀 많이 했습니다, 흠흠! 한 마디로 실무적인 능력이 아주 뛰어난 아이입니다. 반면 부반장 녀석은 늘 허허 웃는 순진무구 남학생이에요. 고3 이니 공부에 열중을 해야 할 터인데, 반장이 '좀 조용히 해, 공부 좀 해!' 라고 소리치는 무리 중에 이 부반장 녀석은 꽤 섞여 있고, 아이들이 떠들어도 큰 소리 하나 못내는 겁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이 부반장 녀석을 놀리면서도 좋아하는 게 눈에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깨달았죠. -아, 이 둘은 꼭 같이 있어야겠구나. 한 명은 실무 담당, 한 명은 인화 담당-그래서 두 녀석 다 봉사상을 주었습니다. 부반장은 지각도 엄청 하고, 자율학습 때도 몇 번 혼나기는 했지만요. 아, 그렇다고 반장이 실무면에서만 뛰어나고 친구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어찌나 씩씩하고 활발한 지 전교에 모르는 애가 없을 정도거든요.
히무라 옆에 아리스 작가가 없었다면 작품의 매력도는 크게 떨어졌을 거라는 건 두말 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저 또 하나의 밍숭맹숭한 탐정 이야기, 그 정도로만 여겨졌을지도요. 히무라와 아리스는 두 몸이지만 한 몸이나 마찬가지라는 요상한 생각이 듭니다. 히무라의 어두운 기운을 아리스가 받아줘야 하기도 하고. 또한 그 둘이 풍기는 엉뚱발랄한 분위기도 꽤 매력적입니다.
두 번째 마음에 들었던 점은 사건을 전개시키는 꼼꼼함이었어요. 추리소설을 오랜만에 읽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전개방식이 인상적입니다. 트릭을 서술할 때도 한 번에 이해가 확 되는 설명을 좋아하거든요. 이것은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이므로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끼셨을 지 모르겠습니다. 지루하다, 전개가 조금 느릿하다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 수도 있겠습니다.
[주홍색 연구]를 읽고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가 아리스> 시리즈를 전부 찾아봤는데, 평이 엇갈리는 경우도 있어서 아직 다 접하기에는 쪼큼 거부감이 듭니다. 아직은 [주홍색 연구]에서 받은 재미를 쪼큼 오래 간직하고 싶다는 기분이랄까요.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추리소설을 읽었더니 자꾸 추리소설만 읽고 싶다는 기분이 드는 게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