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머리 앤 : 기쁨의 하얀 길 편 빨강머리 앤
루시 모드 몽고메리 원작,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 / 대원앤북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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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올해 들어 빨강머리 앤과 관련된 책을 몇 권이나 읽었는데요, 이번에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원화가 실린 책입니다. 으흐흐. 이런 웃음이 왜 나오냐면 지금까지 읽은 그 몇 권의 책 중 원화가 실린 책은 처음이기 때문이랍니다. 대원앤북 말고 다른 출판사에서 원화가 실린 책이 출간되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아직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 실려있기만 한 상태라 원화는 정말 오랜만이에요. 이렇게 원화로 보니 앤의 어린시절과 좀 더 성숙해진 모습이 비교가 되기도 하고, 마릴라 아주머니와 매튜 아저씨의 모습도 더 정겹게 느껴집니다. 당장이라도 다시 애니메이션이 보고 싶어졌어요.

 

[빨강머리 앤 : 기쁨의 하얀 길] 편의 독특하다면 독특한 점은 앤의 모든 이야기가 다 실려있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시리즈로 제작되어서 이 <기쁨의 하얀 길> 편 외에 <딸기 레이어 케이크>와 <절망의 구렁텅이> 두 권이 이미 출간되어 있답니다. 다른 두 권에 어떤 내용들이 편집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기쁨의 하얀 길>편에서는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앤이 느꼈던 기쁨과 감동, 희열의 순간이 담겨져 있어요. 앤이 처음 매튜 아저씨를 만나 초록 지붕으로 가는 길에 '사과나무 가로수 길' 을 보고 느낀 감동을 '기쁨의 하얀 길'이라고 표현한 장면, 계속 초록 지붕에 있어도 된다는 말을 듣고 그 순간을 음미하면서 '기쁨이라는 말로는 표현이 안돼요. 너무너무 행복해요'라고 말하는 장면, 다이애나와 친구가 되고 다이애나로부터 책을 빌리면서 '책이나 상상이 친구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라고 말하는 장면, 학예회에서 시 낭송을 하고 퀸 학원에 진학하고 졸업하면서 성숙해가는 장면 등이 실려 있어 마음 깊이 음미할 수 있었습니다.

글로만 읽가 이렇게 원화를 마주하고보니 제가 앤을 사랑할 수밖에 없디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어요. 풍부한 상상력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한 앤, 자신이 지금 얻게 된 하나하나가 모두 너무 소중해서 그것을 가슴 깊이 간직하려는 앤의 모습은 마음을 애틋하게도, 울컥하게도 만들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열병으로 잃고 매튜와 마릴라를 만나기 전 보낸 시간이 어린 소녀에게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 힘든 순간들을 잘 이겨내 준 앤의 모습에 저 또한 용기를 얻게 됩니다. 앤에게는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이 앤에 대한 사랑에는 대체 언제쯤 안녕을 고하게 될까요. 앤과 관련된 책은 보이는 족족 구매하거나 장바구니에 담아두는 저로서는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기분이 듭니다. 우선 이 시리즈의 나머지 부분과 원화가 실린 다른 책을 좀 더 들여야겠어요. 늘 가까이 두고 뒹굴면서 읽고 싶은 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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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피 할로우 - 워싱턴 어빙의 기이한 이야기 아르볼 N클래식
워싱턴 어빙 지음, 달상 그림, 천미나 옮김 / 아르볼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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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로맨스, 코미디가 어우러진 여섯 가지 기이한 이야기]

'슬리피 할로우'라고 불리는 외딴 골짜기. 나른한 정적과 최초 네덜란드 이주민들의 후예인 주민들의 특이한 기질 탓에 붙여진 이름이다. 어떤 이는 이곳이 독일 고지의 한 마법사의 마법에 걸렸다고도 하고, 헨드릭 허드슨 선장이 이 지역을 발견하기 전에 부족의 예언자이자 주술사인 한 늙은 인디언 추장이 이곳에서 의식을 행했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선량한 이들의 마음을 홀려서 그들로 하여금 끝없는 공상 속을 헤매헤 하는 곳. 이곳의 가장 제일가는 정령은 머리 없는 기병의 유령이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헤센 용병의 영혼으로, 독립 전쟁 당시 이름모를 전투에서 포탄에 맞아 머리가 날아갓는데, 밤의 어둠 속을 바람을 타고 날듯이 질주하는 광경이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간간이 목격된다고 한다. [슬리피 할로우]에 실린 단편 <슬리피 할로우의 전설>에는 이렇게 머리 없는 용병에 관한 전설이나, 갖가지 기담을 잘 알고 있던 이카보드 크레인이라는 교사의 다소 덧없는 구애이야기가 오싹하고 기괴한 분위기 속에서 펼쳐진다.

칠흑같은 밤, 자신의 머리를 들고 나타난 기사와 그를 태우고 있는 말의 울음소리. 아주 오래 전 본 영화 <슬리피 할로우>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장면이다. 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처음이라서 영화 속 그런 장면이 주를 이루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소설 속 기사는 영화보다 신비감이나 매력이 조금 덜하게도 느껴진다. 주인공 이카보드의, 명문가 아가씨를 얻기 위한 투쟁(?)기에 이 슬리피 할로우 기사가 곁들여진 느낌이랄까. 기대했던 내용이 아니라서 약간 실망했지만 덕분에 워싱턴 어빙의 다른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악마와 거래하여 영혼을 빼앗긴 <악마와 톰 워커>, 독일인 학생이 만난 한밤의 유령 여인 <독일인 학생의 모험>, 하룻밤 자고 일어났더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 <립 밴 윙클>, 책 만드는 과정을 엿보는 <책 만드는 기술>, 결혼약속을 지키기 위해 찾아온 <유령 신랑> 등 세월의 흐름에 따라 약간 단순하게 여겨지는 작품들도 있지만, 한편 한편 읽을 때마다 이야기들 특유의 고딕적이고 민화나 전설이 전해주는 독특한 분위기에 매료되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다만 굉장히 무섭고 소름끼치는 이야기를 기대한 독자라면 실망할 수도 있으니 가볍게 옛날 이야기 하나 읽고 지나간다 생각하면 좋을 내용들이다. 양장에 호화로운 삽화까지 굉장히 공을 많이 들인 소설집으로 다양한 민간 전설을 소재로 한 워싱턴 어빙만의 특별한 기담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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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무더위 - 살인곰 서점의 사건파일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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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무라 아키라, 무더위와 함께 그녀가 돌아왔다!]

'일상 미스터리의 시초'라 불러도 좋을만한 작가 와카타케 나나미가 돌아왔다! 그녀의 전작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을 매우 좋아하는 독자로서 [어두운 범람] 이후 작품의 출간 텀이 길어져 계속 기다려왔는데 이렇게 귀여운 곰인형이 그려진 표지라니! 부제는 '살인곰 서점의 사건파일'이다. 표제작인 <조용한 무더위>와 <소에지마 씨 가라사대>가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심사에서 심사위원들로부터 역대급 미스터리라는 평을 받았고, 이들 단편이 수록된 『조용한 무더위』는 그해 최고의 미스터리를 뽑는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2위에 올랐다. 뿐만 아니라, 유서 깊은 미스터리 팬클럽 SR회가 수여하는 ‘SR 어워드’와 최고의 하드보일드 작품에 수여하는 ‘팔콘상’을 더블 수상하고,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 5위, ‘주간 분슌 미스터리 베스트10’에 올라 와카타케 나나미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작품은 작가각 탄생시킨 '불운하고 터프한 명탐정' 하무라 아키라가 등장하는 연작소설집인데, 그녀가 이번에 근무하게 된 곳은 도쿄 기치조지에 있는 미스터리 전문서점 '살인곰 서점'이다. 서점 직원으로 일하며 틈틈이 탐정 일도 수행하는 하무라 아키라. 10년 가까이 일해온 탐정 사무소가 폐업하면서 이참에 한 번 쉬어볼까 빈둥거리던 어느 날, '서 있을 수만 있다면 부모라도 써먹어라'는 신조를 가진 옛 지인 도야마를 만나 취직하게 된 것이다. 도야마는 미스터리 광팬의 미스터리 편집자였지만 현재 살인곰 서점을 운영 중. 그 서점에서 하무라가 그에게 이리저리 혹사당하는 모습이 꽤 재미있다. 이를테면 '달콤 미스터리 페어'를 열어 여러 쿠키를 구워오라는 주문을 하는 것으로 첫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뒷 이야기에서도 이어지는 이런저런 말도 안되는 요구들을, 하무라는 또 묵묵히 들어준다!

인간의 악의에 대한 6가지 이야기 실려 있다. 작가는 작품에 대한 신조를 밝혀온 바 있는데 '첫째,적어도 두 번 이상의 반전, 둘째, 독자들이 예상하지 못한 인상적인 복선, 셋째, 강렬한 마무리'가 그것이다. [조용한 무더위]에 실린 이야기들 역시 그녀가 평소 주장해 온 이 세 가지 사항을 충실히 따라, 한 작품 한 작품 끝날 때마다 '에엣~!'이라는 소리를 내지르며 깜짝 놀라기 십상이었다. 마흔 줄에 접어들어 어쩐지 어설픈 모습을 보이지만 천성적인 정의감과 불굴의 투지로 사건에 매진하는 하무라와, 그녀와 투닥투닥하며 소울메이트의 면모를 보이는 도야마. 게다가 작품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다양한 미스터리 작품들은 이런 서점이 있다며 내가 먼저 근무해보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어딘가에 미스터리 전문 서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도 한 번 도전해볼까. 내가 가진 미스터리 책들과 스릴러 작품들로 미스터리 전문 대여 도서관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이런 저런 생각에 즐거워지는 무더운 여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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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마더
에이미 몰로이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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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울화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은 만나기 쉽지 않은데 나에게는 딱 이 소설이 그랬다. 제목까지는 괜찮았다. 엄마라면 누구나 완벽해지기를 소망하니까. '완벽한 엄마'를 지향하는 것은 딱히 누구의 지시가 없어도 자연스러운 현상이 된다. 그것은 어떤 사회적 이념이나 정치적 성향이 거의 들어가지 않은, 아기를 낳아본 여자라면 아이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자신도 모르게 겪게 되는, 온전히 아기를 향한 사랑에서 발로되는 감정 중 하나라고 할까. 중요한 것은 '완벽'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인데 그 기준이 자신이 아닌 타인의 입장에서 정해지는 순간부터 육아지옥이 시작되는 것이다.

 

많은 엄마들이 아이를 낳기 전부터 수많은 압박에 시달린다. 아이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자연분만을 하는 것이 좋고, 아이를 위해서라면 임신 전부터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이 수십 가지에 이른다. 챙겨야 하는 영양제의 종류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임신한 여자는 이래서는 안된다는 둥, 저래서는 안된다는 둥 갖가지 근거없는 설득에 따라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은 아이를 낳은 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자연분만을 하고, 모유수유를 하고, 모유수유를 하는 동안에는 임신 기간 동안 먹지 못한 음식의 가지수보다 더 많은 것을 먹어서는 안 되는 상황에 처한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여성들이 자연분만을 하지 못하고, 모유수유를 하지 못하는 상황을 온전히 자신의 잘못으로 받아들이며 죄책감에 휩싸인다는 것이다. 게다가 아기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은 엄마'만의' 책임이 된다. 하물며 시중에 나와 있는 육아서의 대부분은 '엄마의-' 다. '아빠의 -'로 시작하는 책은 거의 없다는 이야기다. 도대체 왜! 이렇게 말하는 나도 첫 아이를 낳은 뒤에는 이런 생각들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퍼펙트 마더]는 그런 '답답한 모습'을 보이는 5월맘들의 모습을 상세히 묘사하며 시작된다. 아이를 낳은 지 어느 새 6주. 말이 6주지, 실제로 겪어본 이에게 6주는 길다면 긴 시간이다. 그 대부분의 시간을 먹는 것과 자는 것에 대해 통제 당하고, 혼자 앉아 조용히 사색할 시간은 꿈도 꿀 수 없을 지경에 놓인다면 엄청나게 길다. 시간은 쏜살같이 흐르지만 어느 때는 아직 6주밖에 지나지 않았어-라고 힘겹게 생각되는 때가 반드시 존재하는 것이다. 그 6주의 시간이 지난 후 엄마들은 약간의 '일탈'을 감행한다.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잠시나마 '홀몸'이 되어보는 시간. 물론 완벽한 자유는 아이를 낳은 순간부터 평생 얻을 수 없는 것이 되었지만 그 잠깐의 시간을 보낸다고 뭐가 어찌 되겠는가. 그런데 그 뭐가 어찌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5월맘의 멤버 중 하나인 위니의 아이가 실종되어 버린 것이다.

 

아이가 실종된 밤, 엄마들이 그 때 그 시각 술에 취해 즐기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뉴스 1면을 장식하면서 엄마들은 '공공의 적'이 된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이에게 들인 각고의 노력과 사랑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모두 그들을 '자격없는 엄마', '아이를 전혀 사랑하지 않는 엄마'로 낙인찍으며 비난하기에 바쁘다. 그 모습을 보며 과연 뉴스에서 다루어지는 기사 중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는' 진실이 얼마나 될지 의심스러웠다. 그저 일어난 사건의 단면만 보고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혹은 다른 누군가를 추앙해온 것은 아닌지 오싹해졌다. 아이의 실종을 걱정하기도 하지만, 언론은 실종된 아기의 엄마, 한 때 배우였던 엄마에게 초점을 맞추며 그녀의 현재 삶을 조명하고 '완벽한 엄마'의 삶의 잣대를 그녀 앞에 들이댄다.

 

겪어본 바, 세상에 '완벽한 엄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완벽할 수 없는데 어떻게 완벽한 엄마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아이에 대해 느끼는 사랑과는 별개로 엄마가 개인적, 사회적으로 느끼는 억압과 굴레는 생각보다 엄청나다. 작가는 그런 현실적인 모습을 작품 안에 녹여내며 아이를 낳은 여성의 사회적 입지, 육아휴직 등의 문제와 버무려 스릴러 형식으로 풀어나간다. 작품 전체가 속도감을 가지고 굴러가지는 않지만 감정이입 해 읽어나가다 보니 어느 새 끝이 나 있었다. 읽은 후에도 영 개운하지는 않은 작품이다. 읽는 내내 피곤했고 힘들었다. 여성으로서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것. 이런 저런 일들이 걸리는 이 사회 속에서. 때로 현실이 소설보다 더 큰 공포를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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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고바야시 히로키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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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물든 살인현장에서 발견된 남자의 시체 한구. 그 누구보다 고통스러운 순간을 맛보았을텐데도 그의 얼굴은 평온함을 넘어 행복해 보이기까지 한다. 사건현장에 남겨진 기묘한 노트 한 권. 범인과 피해자가 함께 써 내려간 것으로 보이는 노트 안에는 그들의 삶과 범행동기가 모두 적혀 있다. 그 노트를 형사 K와 감식과 G가 함께 읽어나가며 사건의 전말이 공개된다.

 

Q는 나무 상자에 담겨 성당 정문 앞에 버려졌다. 성당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는 Q를 포함해 열 명의 아이들이 있었고, 아이들은 성당에서 붙여준 이름 대신, 키 순서대로 번호를 매겨 그것을 이름으로 삼았다. Q는 앞에서 아홉 번째로 키가 컸고, 뒤에서 두 번째로 키가 작았기 때문에 '9'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던 어느 날, 거리에서 행복한 모습으로 걸어가는 한 가족을 주시하던 아이들은 계획을 세워 그 가족의 아이를 납치한다. 몰매를 때리면서 Q는 세상의 부조리함과 잔혹함을 인식했다.

신은 잔혹하다. 신이 창조한 세상은 잔혹하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그런 신을 본떠서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우리들 인간이 잔혹한 것은 아주 당연한 결과다...우리의 행동은 분명 잔혹하다. 하지만 그것은 틀림없는 세상의 진실이다. 이 세상 누구에게도 죄는 없다. 그렇다면 이 세상 자체가 원래 잔혹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우리 또한 어쩔 수 없이 이 잔혹한 세상의 일부다. 이는 눈을 돌려도 변하지 않는 진리 중 하나다. 그저 그 뿐이다. 이제 우리는 세상 그 자체가 됐다.

그 후 '9'는 자신이 깨달은 '잔혹함'의 진리가 세상에 통용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엔디어 부부에게 입양된다. 그리고 학교에서 만난 &. 그를 통해 Q라는 이름을 얻은 9.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얻지 못한 교감과 우정을 &를 통해 쌓아가던 Q는 '세상'이라는 잔혹함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무너져내린 &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그에게 세상은 여전히 부조리하고 잔혹했지만, &를 통해 A와 연결되어 자신과 &에 관한 영원불멸한 기억을 남길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하는 Q.

 

그리 두껍지 않은 분량의 소설임에도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던 이유는 이 작품이 단순한 미스터리 소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작품은 미스터리라기보다는 철학에 미스터리한 요소를 접목시켰다고 표현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작가가 Q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 등이 심도있게 그려져 있는데 이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 천천히 문장을 곱씹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굉장히 절묘하고 똑똑한 작품이다. 모든 요소가 딱딱 맞아떨어지며 섬세한 구성은 심지어 등장인물의 이름에서도 드러난다. 일본어에서 숫자 '9'는 '큐'라고도 읽는데 알파벳 Q와 발음이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그와 세상을 이어주는, 말 그대로의 &와 Q의 삶의 귀결점이 되는 A는 평소 우리가 사용하는 'Q & A'와 맞물려 묘한 쾌감과 신비함까지 전달해준다.

 

평소 창작은 신의 영역이라 생각하는 나지만, 이 작품을 쓴 고바야시 히로키에게는 '어떻게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는가' 하는 질투심마저 생겨버렸다. 초반에는 '뭐지 이건' 하는 감정이 '뭐야! 이건'으로 바뀌어나가는데, 읽기 시작하니 멈출 수 없어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작가가 만들어낸 잔혹하지만 아름답게 느껴지는 세계 속에 빠져 결국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새삼 던지게 만드는 깊이있는 미스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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