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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고바야시 히로키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6월
평점 :
피로 물든 살인현장에서 발견된 남자의 시체 한구. 그 누구보다 고통스러운 순간을 맛보았을텐데도 그의 얼굴은 평온함을 넘어 행복해
보이기까지 한다. 사건현장에 남겨진 기묘한 노트 한 권. 범인과 피해자가 함께 써 내려간 것으로 보이는 노트 안에는 그들의 삶과 범행동기가 모두
적혀 있다. 그 노트를 형사 K와 감식과 G가 함께 읽어나가며 사건의 전말이 공개된다.
Q는 나무 상자에 담겨 성당 정문 앞에 버려졌다. 성당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는 Q를 포함해 열 명의 아이들이 있었고, 아이들은
성당에서 붙여준 이름 대신, 키 순서대로 번호를 매겨 그것을 이름으로 삼았다. Q는 앞에서 아홉 번째로 키가 컸고, 뒤에서 두 번째로 키가
작았기 때문에 '9'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던 어느 날, 거리에서 행복한 모습으로 걸어가는 한 가족을 주시하던 아이들은 계획을
세워 그 가족의 아이를 납치한다. 몰매를 때리면서 Q는 세상의 부조리함과 잔혹함을 인식했다.
신은 잔혹하다. 신이 창조한 세상은 잔혹하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그런 신을 본떠서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우리들
인간이 잔혹한 것은 아주 당연한 결과다...우리의 행동은 분명 잔혹하다. 하지만 그것은 틀림없는 세상의 진실이다. 이 세상 누구에게도 죄는
없다. 그렇다면 이 세상 자체가 원래 잔혹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우리 또한 어쩔 수 없이 이 잔혹한 세상의 일부다. 이는 눈을 돌려도 변하지
않는 진리 중 하나다. 그저 그 뿐이다. 이제 우리는 세상 그 자체가 됐다.
그 후 '9'는 자신이 깨달은 '잔혹함'의 진리가 세상에 통용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엔디어 부부에게 입양된다. 그리고
학교에서 만난 &. 그를 통해 Q라는 이름을 얻은 9.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얻지 못한 교감과 우정을 &를 통해 쌓아가던 Q는
'세상'이라는 잔혹함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무너져내린 &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그에게 세상은 여전히 부조리하고 잔혹했지만,
&를 통해 A와 연결되어 자신과 &에 관한 영원불멸한 기억을 남길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하는 Q.
그리 두껍지 않은 분량의 소설임에도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던 이유는 이 작품이 단순한 미스터리 소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작품은 미스터리라기보다는 철학에 미스터리한 요소를 접목시켰다고 표현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작가가 Q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 등이 심도있게 그려져 있는데 이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 천천히 문장을 곱씹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굉장히 절묘하고
똑똑한 작품이다. 모든 요소가 딱딱 맞아떨어지며 섬세한 구성은 심지어 등장인물의 이름에서도 드러난다. 일본어에서 숫자 '9'는 '큐'라고도
읽는데 알파벳 Q와 발음이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그와 세상을 이어주는, 말 그대로의 &와 Q의 삶의 귀결점이 되는 A는 평소 우리가
사용하는 'Q & A'와 맞물려 묘한 쾌감과 신비함까지 전달해준다.
평소 창작은 신의 영역이라 생각하는 나지만, 이 작품을 쓴 고바야시 히로키에게는 '어떻게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는가' 하는
질투심마저 생겨버렸다. 초반에는 '뭐지 이건' 하는 감정이 '뭐야! 이건'으로 바뀌어나가는데, 읽기 시작하니 멈출 수 없어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작가가 만들어낸 잔혹하지만 아름답게 느껴지는 세계 속에 빠져 결국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새삼 던지게 만드는 깊이있는
미스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