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를 믿나요? - 2019년 볼로냐 라가치 상 오페라프리마 부문 대상 수상작 웅진 모두의 그림책 25
제시카 러브 지음, 김지은 옮김 / 웅진주니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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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주니어에서 출간된 [인어를 믿나요?].

저는 인어를 믿습니다! 외계인도 믿어요!

인간 외의 다른 신비로운 생명체를 부정하는 것은 오만이라는 생각을 하곤 해요.

 

[인어를 믿나요?]는 인어를 너무 좋아하고, 자신이 인어라는 상상에 빠진 한 아이의 이야기에요.

아이의 이름은 줄리앙이고, 아이 옆에 앉아있는 사람은 줄리앙의 할머니입니다.

저 물고기 꼬리를 가진 사람들은 인어고요!

줄리앙은 인어를 정말 좋아해요. (왜인지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상상 속에서 줄리앙도 인어가 되어 커다란 물고기와 눈맞춤을 하기도 하죠.

그런 공상 속에서 줄리앙은 자신은 인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 사실을 할머니에게 털어놓지만, 할머니는 가볍게 '목욕 좀 해야겠다'며 욕실로 들어가버리죠.

 줄리앙은 바람에 흩날리는 커튼을 이용해 인어로 변신합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화면에서 사라지는 할머니.

줄리앙은 민망한 듯, 어색한 듯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봅니다.

그리고 다시 등장한 할머니가 조용히 줄리앙을 부르네요.

그러고는 줄리앙에게 어울릴 것 같다며 목걸이 하나를 건넵니다.

함께 문밖을 나서는 두 사람!

앗!

그런데 줄리앙은 인어로 변신한 모습 그대로에요!

어디 가는지 궁금해하는 줄리앙에 곧 알게 될거라고 대답하는 할머니.

많은 사람을 지나쳐 당도한 곳에는 여러 인어들이 함께 걷고 있었어요.

함께 걷자며 손을 내미는 할머니를 따라 줄리앙도 대열에 합류합니다!

 

어른의 눈으로 보기에 줄리앙의 행동과 자신은 인어라는 말은 어쩌면 어이가 없을 지도 몰라요.

하지만 줄리앙의 할머니는 그를 혼내거나 무시하지 않고

조용히 아이가 원할만한 장소, 궁금해할만 장소로 인도하죠.

 

마지막 부분에서 줄리앙은 인어 할머니들의 환대를 받으며 자유롭게 헤엄을 치고 있어요.

누구도 줄리앙의 꿈을 헛되다, 어리석다 일갈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꿈꾸는 다양한 세계를 응원하고 싶어요.

그것이 아무리 허황된다 여겨질지라도 아이에게 그 세계는 전부일 것이므로

부러 그 상상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습니다.

 

부디 제가 줄리앙의 할머니처럼

항상 아이를 응원하고 격려할 수 있게 되기를,

모자란 어른이 되지 않기만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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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 12가지 '도시적' 콘셉트 김진애의 도시 3부작 1
김진애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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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 시작할 때부터 서울에 살았다. 친가와 외가도 서울에, 시댁도 친정도 모두 서울에 사신다. 그래서인지 서울에 산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왔고, 여기를 벗어나 다른 곳에서 산다는 것을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서울이 아닌 다른 곳에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큰이모와 작은이모는 전라도 광주에 사시고, 엄마의 고향도 광주라 어렸을 때 자주 놀러가기도 했기 때문인지 광주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포근해진다. 옆지기가 직장 때문에 다른 지역에 가서 사는 건 어떠냐고 물었을 때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가족이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니까. 그렇게 당연하게 여겨온 '도시'들에 대해, 그 의미에 대해 물음표를 가져본 적이 없다. 이 책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를 읽기 전까지는.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는 도시에 대한 이야기 3부작 시리즈의 1부에 해당하는 책이다. 12가지 '도시적' 콘셉트에 따라 도시를 읽는 핵심적인 시각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도시는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야기가 되면 더 알고 싶어지고 더 알게 되고 더 좋아하게 된다고. 자기가 사는 도시를 아끼게 되고 도시를 탐험하는 즐거움에 빠지게 되고 좋은 도시에 대한 바람도 키우게 된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이 중심에 놓여야 한다. 그 '사람'을 중심에 놓고, 저자는 12가지 콘셉트를 소개한다. '익명성, 권력과 권위, 기억과 기록, 알므로 예찬, 대비로 통찰, 스토리텔링, 코딩과 디코딩, 욕망과 탐욕, 부패에의 유혹, 이상해하는 능력, 돈과 표, 진화와 돌연변이'. 이 12가지 콘셉트는 도시 뿐만 아니라 인간사회 어디에나 적용된다. 바로 그래서 도시의 콘셉트. 인간 사회의 가장 적나라한 모습이 모여 있는 공간이 도시이고, 이 시대 가장 보편적인 삶의 조건을 규정하는 공간이 도시이므로, 이 12가지 콘셉트가 도시라는 조건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정의되느냐에 따라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근대 역사 보전에 대한 관심은 최근에 일어났다고 한다. 근대기라 하면 일제 강점기를 떠올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꺼리는 주제였다. 조선총독부 건물만 봐도 그러하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 행해진 조선총독부 건물 해체는 일제 잔재 청산을 상징했다. 지금은 잔해 일부가 독립기념관 부지 한쪽에 전시되어 있는데, '잔재 청산'과 '역사 기록' 입장 사이에서 상당한 갈등이 발생했을 것이라는 점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일제 잔재 청산을 강렬하게 부르짖었던 시기가 지나고 잠시 일본과 화해 무드가 형성된 시기를 거쳐 지금은 다시 어느 정도 갈등 상황을 맞이했다.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 따라 도시는 변화한다. 이와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 어쩌면 '다크 투어리즘'이 아닐까. 잊고 싶은 기억을 간직한 장소-감옥, 강제수용소, 학살현장, 전쟁터, 항거의 장소-들을 찾아 피해자의 아픔을 기억하고 가해자의 죄악을 기억하는 행동. 어둠의 체험을 마치고 환한 밖으로 나와 삶에 대해 느끼는 희망의 빛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아파트 공화국, 단지 공화국에 대한 글도 흥미로웠다. 요즘은 초등학생들조차 어디 아파트에 사는지, 어디 단지에 사는지에 따라 편을 가른다고 하던데 정말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분명 어른들에게 책임이 있을 것이다. 아파트 공화국이란 말을 처음으로 쓴 사람은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이고, 단지 공화국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건축학자 박인석 교수다. 아파트 공화국은 아파트가 대규모로 들어서는 현상 자체를 지칭하지만 단지 공화국은 그 단어에 여러 가지가 함축되어 있다. 그는 대규모 단지를 만드는 경제구조와 주택 유통구조가 문제라는 논지를 펼쳤다. 담벼락을 치고 게이트를 만들고 자신들의 성을 지키려 드는 관습이 도시를 망치고 시민들의 삶을 망치고 있다고. 아파트 단지가 도시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서도 설명되어 있다.

 

오랜 시간 도시는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고 움직이며 변화되어 왔다. 도시의 진화는 인간 삶의 진화와 그 길을 같이 한다.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게 될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도시에 대해 재미있게 풀어낸 김진애 작가의 다음 이야기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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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보는 아이네이스 - 로마 건국의 신화
베르길리우스 지음, 강경수 엮음 / 미래타임즈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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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네이스>는 트로이의 장군 아이네이아스의 유랑과 로마 건국을 노래한 대서사시로, 라틴어로 쓰인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단테의 [신곡]에서 그의 길잡이로 등장해 지옥과 연옥의 여행을 도왔던 베르길리우스가 이 <아이네이스>의 저자이며, 그 시작은 트로이 전쟁이다. 헤라와 아테나, 아프로디테의 미의 경쟁이 시발점이 되었는데, 그들은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던진 황금사과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다툰다. 결국 누가 이 황금사과를 가질 자격이 되는지 이다 산에서 양을 돌보고 있는 파리스에게 물어보기로 결정하는데, 파리스는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와 왕비 헤카베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였다. 헤카베가 파리스를 낳았을 때 그녀는 횃불이 트로이를 불태우는 꿈을 꾸었고 신탁에서 파리스가 트로이를 멸망시킬 운명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아기를 산에 갖다 버린 것이었다. 그는 기적적으로 양치기에게 발견되어 성장했고 산의 님프 오이노네와 결혼해 아들 코리토스를 낳고 살고 있었다. 파리스는 쾌락을 제시한 아프로디테를 선택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헬레네를 만나기 위해 하산한다. 이것이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게 된 배경인데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다고 해야할 지, 아이러니하다고 해야할 지. 결국 여신들의 미의 경쟁 때문에 그리스와 트로이가 전쟁을 치르게 되고 결국 트로이는 함락된 것이 아닌가.

 

아이네이아스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트로이의 왕족 안키세스 사이에서 태어난 영웅으로 헥토르에 이어 트로이의 2인자였다. 트로이의 백성들이 잔인하게 학살당하던 그 밤, 아이네이아스는 가족을 걱정해 어둠을 뚫고 그의 집까지 당도하지만 이미 그리스 군이 그의 집을 점령한 뒤였다. 아내를 찾기 위해 왕궁으로 발길을 돌리는 아이네이아스 앞에 아내 크레우사가 영혼의 모습으로 나타나, 자신은 데메테르 여신이 붙들고 있으니 눈물 흘리지 말고 어서 이곳을 떠나 새로운 국가를 세우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슬픔에 빠진 아이네이아스 앞에 어머니인 아프로디테가 등장해, 트로이의 유민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으니 그들과 함께 떠나 새로운 국가를 세우라며 위로한다. 결국 살아남은 유민들과 아버지, 아들과 함께 트로이를 떠난 아이네이아스. 트리키아를 거쳐 디도 여왕이 다스리는 카르타고에 도착해 그녀와 열정적인 사랑에 빠지지만 자신과 결혼해달라는 디도여왕의 요청에 부담을 느끼던 와중 제우스가 보낸 전령 헤르메스의 메시지를 듣고 라티움을 향해 떠난다. 아이네이아스에게 버림받은 디도 여왕은 결국 자결하고 만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에서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영향을 주는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점이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 안키세스의 환영이 나타나, 라티움에는 아주 어려운 전쟁이 기다리고 있으니 강한 전사들만 데리고 갈 것, 그 곳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지하세계로 내려가 장차 자신의 백성들의 미래에 대해 알아야 할 것, 천국인 엘리시움에서 은총을 받으며 지내고 있는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시빌레의 도움으로 저승의 문턱에 도착한 아이네이아스는 생전 알았던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며 저승을 둘러본 후 아버지 안키세스를 만나기 위해 엘리시움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안키세스는 우주 순환의 법칙, 자신의 아들이 미래에 성취할 영광의 미래를 일일이 보여주고 설명해준다. 이 부분에서는 르네상스 화가인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그림 <엘리시움>도 만날 수 있다. 다시 라티움으로 돌아온 아이네이아스는 또다시 여러 고난을 넘어 마침내 라비니움의 왕이 되고, 그의 후손인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로마를 건설하는 것으로 이 장대한 서사시의 막이 내린다.

 

미래타임즈에서 출간된 <명화로 보는> 시리즈의 도서들이 그러하듯, 역시 명화와 함께 읽은 아이네이아스의 이야기는 한층 생생하고 현실감있게 다가왔다. 아이네이아스 개인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삽입된 신들의 스캔들이나 소소한 일화들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이런 신화를 읽으면서 예전과는 달리 신들이 무척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아름다운 처녀만 보면 겁탈하는 남신들이나, 누가 아름다운지 선택하게 하면서 자신이 선택받지 못하면 저주를 내리는 여신들이나, 어찌보면 사람들이 저지르는 어리석은 행동을 똑같이 하고 있는 모습에 실소가 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어처구니 없는 선택의 결과로 발발한 트로이 전쟁에서 고통받고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 것은 결국 아무 죄 없는 일반 백성들 아니던가.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아이네이아스가 누구인지, 작품 <아이네이스>가 이렇게도 유명한 지, 베르길리우스가 누구인지 자세히 알지 못했는데 트로이 전쟁의 참화 속에서 굳건히 일어나 유민들을 이끌고 로마를 건설하기까지 온갖 역경을 딛고 일어선 아이네이아스가 아킬레우스 같은 인물들보다 훨씬 영웅적이라고 느껴진다. 또 어떤 <명화로 보는> 시리즈가 등장할 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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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제왕업 - 상.하 세트 - 전2권
메이위저 지음, 정주은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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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웅. 궁중암투와 모략, 그 안에서 펼쳐지는 불꽃같은 사랑을 다루는 이야기. 명문세가의 귀한 딸이자 황제와 황후의 사랑까지 듬뿍 받고 자란 소녀 왕현. 랑야왕씨의 하나뿐인 금지옥엽 딸이자 아버지는 재상, 고모는 황후인 그녀는 안팎으로 남부러울 것 없었다. 재색을 겸비한 그녀의 마음 속에는 황자 자담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황후는 사귀비에게서 태어난 그가 황제의 총애를 받는 것에 못마땅해한다. 사귀비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황후는 3년상을 빌미로 그를 황릉으로 쫓아버리고, 결국 권력과 생존 앞에서 자담은 왕현의 곁을 떠난다. 언젠가 그와 다시 만날 날을 꿈꾸었으나 불현듯 왕현에게 들어온 혼인요청. 그는 뛰어난 무장으로 북방에 이름을 떨친 예장왕 소기였다.

지금까지 누린 모든 것은 가문에게 받은 것이었으니 너 또한 그 책임을 깨닫고 마땅히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 날, 철없던 왕현의 소녀시절은 끝났다. 자신조차 정략결혼의 도구에 지나지 않음을 깨달은 그녀. 어머니는 그녀를 소기에게 시집보낼 바에는 죽어버리겠다고까지 하지만, 오히려 왕현이 그런 어머니를 말리며 혼사를 치르겠다고 나선다. 그러나 혼례를 치른 날조차 적이 침략했다는 연락을 받은 소기는 그녀의 얼굴도 보지 않고 부하를 시켜 작별을 고하고, 왕현은 모멸감과 수치심에 치를 떤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3년. 휴양을 빌미로 숙부의 별장이 있는 휘주로 거처를 옮긴 그녀는 하란잠에게 납치를 당하고, 왕현을 구하러 온 소기와 그렇게 재회한다. 이제 마음 속에서 자담을 떠나보내고 소기의 진정한 아내가 되어 궁중의 암투와 권력에 휘말린 왕현. 더 이상 그녀는 한 떨기 꽃같은 소녀가 아니라 천하를 얻고자 나선, 그로 인해 친우여도 죽고 죽일 수밖에 없는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 직접 뛰어든 영웅으로 태어난다.

목숨을 위협받는 위기 상황 속에서도 왕현의 기개는 꺾이지 않는다. 속으로는 두려울지언정 그 두려움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당당하게 맞선다. 마음 속 정인을 떠나보내는 일은 고통스러웠지만 이내 그가 자신과 운명이 아님을 깨닫고 예장왕비 왕현으로서 다시 태어나는 모습은 같은 여자인 내가 봐도 정말 멋있었다. 우락부락하고 예의도 모를 것이라 짐작했던 소기가 뜻밖의 호남형에 능력있는 무인이라는 사실에 내 마음도 끌렸는데 그런 이를 남편으로 맞이한 왕현은 오죽했으랴. 그런 그의 곁에서 보호만 받는 여인이 아니라 귀하고 연약한 여인으로만 바라보는 평범한 남편과는 함께하지 않겠다는 그녀의 기개가 훌륭하다. 여기에 더해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하나의 성쯤이야 가뿐히 포기할 수 있는 소기라니! 찰떡궁합 천생연분이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권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제왕의 패업을 이루기 위해 당당히 나선 여인 왕현. 그녀의 마지막이 내가 생각했던 방향이 아니라 마음이 아파 계속 왕현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장쯔이 주연으로 2020년 초 드라마가 방영된다니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시청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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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패시지 1~2 - 전2권 패시지 3부작
저스틴 크로닝 지음, 송섬별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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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명으로 이루어진 민간 생태탐사단은 인간의 생로병사에 관여하는 고대의 바이러스를 추적하기 위해 정글 탐험에 나선다. 목적지에 가까워진 그들을 박쥐떼가 습격하고 결국 살아남은 사람은 단 네명 뿐. 그 네 명은 모두 암환자들이었지만 그 일이 있고나서 완치되었을 뿐 아니라 면역체계가 가속화되고 세포재생 속도도 빨라졌다. 그들은 모두 오십 세 이상이었지만 마치 십 대로 되돌아간 것 같은 모습까지 갖게 된다. 안타까운 것은 가장 오래 살아남은 사람이 겨우 86일을 살았다는 것. 정부는 '노아 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실험을 계속하고, 그 성공을 군에 투입하기 위해 군 병력까지 이용한다. 홍수로 세상이 멸망할 때 방주를 만들었던 노아이기도 하지만, 이 프로젝트의 힌트 자체는 바로 노아다. 성경에 950세까지 살았다고 적힌 노아. 정부는 곳곳의 사형수들을 모아 실험체로 사용하고 성범죄 이력이 있는 이들을 감시자로 선별하여 혹시 있을지도 모를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이려고 한다. 그리고 그 사형수들을 모으는 일의 중심에 FBI 요원 울가스트가 있다.

 

사랑하는 딸 에바를 떠나보내고 아내 라일라와 이혼한 울가스트. 처음에는 자신이 왜 이 임무를 맡게 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소중한 누군가를 잃었던 경험마저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지켜본 사람만이 이 임무의 정당성을 이해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 죄책감을 갖지 않게 될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마지막으로 데려가야 하는 인물 앞에서 울가스트는 결심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 사람은 이제 여섯 살 된 에이미. 어머니는 아버지 없이 에이미를 낳았고 가난에 허덕이다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른 후 그녀를 수녀원에 맡기고 도망쳤다. 하지만 비정하게 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본 나로서는 어쩌면 내가 에이미의 엄마라도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으니까. 자신은 범죄자고, 같이 있어봤자 에이미에게 하등 도움될 것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렇게 수녀원에 맡겨졌고, 레이시 수녀와 동물원에 나들이를 갔지만, 어쩐 일인지 에이미와 마주한 동물들이 급격하게 흥분하기 시작하면서 동물원은 혼란에 빠진다. 그 혼돈의 와중, 에이미를 납치하듯 포획한 울가스트와 그의 동료 도일. 에이미를 이동시키던 중 울가스트는 그녀를 탈출시킬 계획을 세우지만 결국 에이미는 실험본부에 도착한다.

 

실험체가 된 사형수들은 모두 열두 명이다. 바이러스를 맞은 이들은 모두 상상할 수 없었던 모습으로 변화한다. 인간이라기보다 차라리 괴물에 가까운 모습. 몸에서는 빛이 났고 날카로운 이빨로 살아있는 동물을 먹어치웠다. 그저 조용히 실험체로 이용되고 있다 생각했던 그들은 어느 밤 프로젝트 제로의 암시에 걸려 문을 개방한 그레이에 의해 탈출하고 살육을 시작한다. 앞으로 재앙이 될 이름 트웰브가 마침내 데뷔한 순간이었다. 울가스트는 마지막까지 에이미를 탈출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결국 그녀는 핵폭발의 잔해가 쏟아져내리는 마지막 순간 울가스트의 말에 따라 산등성이를 향해 내달린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백년 뒤. 트웰브들에게 공격을 받고 살아남은 바이럴들은 끊임없이 인간을 습격해 피를 빨아먹었다. 새로운 뱀파이어의 탄생. 살아남은 자들로 이루어진 도시 퍼스트 콜로니에 산등성이를 넘어 도망쳤던 에이미가, 도망쳤던 그 밤처럼 달려 장벽으로 접근한다. 문득 나타난 소녀, 난데없이 나타난 자, 천년을 산 최초이자 마지막이며 유일한 자인 에이미다.

 

평소 줄거리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도저히 그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언급한 내용은 그저 일부에 지나지 않을 뿐, 에이미의 탄생부터 울가스트의 사연,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이야기는 이보다 더 길고 장대하다. 작품 자체가 그러하다. 이번에 읽은 [패시지]는 1부, 2부와 3부는 아직 출간되지도 않았다. 게다가 오마이갓! 글자는 왜 이리 작고 페이지에 담긴 문장들은 어찌나 빽빽한 지. 이러다 눈이 나빠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될 정도였지만 이 방대한 내용을 두 권으로 편집한 출판사에는 독자의 입장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다. 요즘 말도 안 되는 페이지로 출간되는 책들을 하도 많이 봐와서 오히려 이런 책들을 만나면 약간 부담스럽기는 해도 칭찬해주고 싶다.

 

에이미가 퍼스트 콜로니로 귀환한 후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원정대를 꾸려 퍼스트 콜로니를 탈출한 에이미와 그 일행들이 각자 성장해가는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위기를 극복하고, 서로 용기를 북돋우며 우정과 사랑을 쌓아나가는 것은, 이런 판타지 성장 소설에서 빠져서는 안되는 양념이 아니던가. 나 또한 그들 원정대의 일원이 되어 마지막까지 그들과 함께 하고 싶다. 2부가 출간될 때까지 기다리는 일은 힘들겠지만, 기다린만큼의 기쁨이 배가 되어 돌아올 것을 알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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