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 12가지 '도시적' 콘셉트 김진애의 도시 3부작 1
김진애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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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 시작할 때부터 서울에 살았다. 친가와 외가도 서울에, 시댁도 친정도 모두 서울에 사신다. 그래서인지 서울에 산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왔고, 여기를 벗어나 다른 곳에서 산다는 것을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서울이 아닌 다른 곳에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큰이모와 작은이모는 전라도 광주에 사시고, 엄마의 고향도 광주라 어렸을 때 자주 놀러가기도 했기 때문인지 광주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포근해진다. 옆지기가 직장 때문에 다른 지역에 가서 사는 건 어떠냐고 물었을 때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가족이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니까. 그렇게 당연하게 여겨온 '도시'들에 대해, 그 의미에 대해 물음표를 가져본 적이 없다. 이 책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를 읽기 전까지는.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는 도시에 대한 이야기 3부작 시리즈의 1부에 해당하는 책이다. 12가지 '도시적' 콘셉트에 따라 도시를 읽는 핵심적인 시각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도시는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야기가 되면 더 알고 싶어지고 더 알게 되고 더 좋아하게 된다고. 자기가 사는 도시를 아끼게 되고 도시를 탐험하는 즐거움에 빠지게 되고 좋은 도시에 대한 바람도 키우게 된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이 중심에 놓여야 한다. 그 '사람'을 중심에 놓고, 저자는 12가지 콘셉트를 소개한다. '익명성, 권력과 권위, 기억과 기록, 알므로 예찬, 대비로 통찰, 스토리텔링, 코딩과 디코딩, 욕망과 탐욕, 부패에의 유혹, 이상해하는 능력, 돈과 표, 진화와 돌연변이'. 이 12가지 콘셉트는 도시 뿐만 아니라 인간사회 어디에나 적용된다. 바로 그래서 도시의 콘셉트. 인간 사회의 가장 적나라한 모습이 모여 있는 공간이 도시이고, 이 시대 가장 보편적인 삶의 조건을 규정하는 공간이 도시이므로, 이 12가지 콘셉트가 도시라는 조건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정의되느냐에 따라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근대 역사 보전에 대한 관심은 최근에 일어났다고 한다. 근대기라 하면 일제 강점기를 떠올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꺼리는 주제였다. 조선총독부 건물만 봐도 그러하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 행해진 조선총독부 건물 해체는 일제 잔재 청산을 상징했다. 지금은 잔해 일부가 독립기념관 부지 한쪽에 전시되어 있는데, '잔재 청산'과 '역사 기록' 입장 사이에서 상당한 갈등이 발생했을 것이라는 점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일제 잔재 청산을 강렬하게 부르짖었던 시기가 지나고 잠시 일본과 화해 무드가 형성된 시기를 거쳐 지금은 다시 어느 정도 갈등 상황을 맞이했다.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 따라 도시는 변화한다. 이와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 어쩌면 '다크 투어리즘'이 아닐까. 잊고 싶은 기억을 간직한 장소-감옥, 강제수용소, 학살현장, 전쟁터, 항거의 장소-들을 찾아 피해자의 아픔을 기억하고 가해자의 죄악을 기억하는 행동. 어둠의 체험을 마치고 환한 밖으로 나와 삶에 대해 느끼는 희망의 빛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아파트 공화국, 단지 공화국에 대한 글도 흥미로웠다. 요즘은 초등학생들조차 어디 아파트에 사는지, 어디 단지에 사는지에 따라 편을 가른다고 하던데 정말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분명 어른들에게 책임이 있을 것이다. 아파트 공화국이란 말을 처음으로 쓴 사람은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이고, 단지 공화국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건축학자 박인석 교수다. 아파트 공화국은 아파트가 대규모로 들어서는 현상 자체를 지칭하지만 단지 공화국은 그 단어에 여러 가지가 함축되어 있다. 그는 대규모 단지를 만드는 경제구조와 주택 유통구조가 문제라는 논지를 펼쳤다. 담벼락을 치고 게이트를 만들고 자신들의 성을 지키려 드는 관습이 도시를 망치고 시민들의 삶을 망치고 있다고. 아파트 단지가 도시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서도 설명되어 있다.

 

오랜 시간 도시는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고 움직이며 변화되어 왔다. 도시의 진화는 인간 삶의 진화와 그 길을 같이 한다.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게 될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도시에 대해 재미있게 풀어낸 김진애 작가의 다음 이야기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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