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고발 - 착한 남자, 안전한 결혼, 나쁜 가부장제
사월날씨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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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지기는 삼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갑자기 옆지기 출생신고). 위로 나이 차 많이 나는 누님과 형님이 한 분씩 계신다. 거의 10년이나 나는 나이 차로 인해 집안의 귀염둥이-가 아니라 그냥 막내로 자라났다. 공부보다는 노는 거 좋아해서 학창시절 어머니 속을 꽤 썩였고 뒤늦게 정신차려 공부에 올인, 대학원까지 나온 나름 수재(?)다. 아버님에게는 장남이 최고라 그리 귀여움 못 받은 듯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세상 예쁨 다 받고 성장했다. 늦게 태어난 자식, 앞으로 함께 지낼 날이 위의 자식들보다 짧을 것 같아 안쓰러우셨다고 한다. 비록 잔소리는 하시지만 절대 옆지기를 이길 정도는 아니고, 그냥 걱정되는 마음이 속에만 남아있지 않고 자연스럽게 밖으로 표현된다고 봐야 할까. 이 막둥이에 대한 관심이 너무나 지대하여 옆에서 지켜보는 나로서는 한 걸음만 잘못 디뎠어도 옆지기는 마마보이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정~~~말 평범하게 자라 공무원이 됐다. 노는 거에 관심 없었고 남들 들으면 재수없다 생각할 지 몰라도 공부하는 게 좋아 공부 열심히 했다. 엄청 잘 하진 않았어도 최선을 다했고 이만하면 괜찮게 살았다 싶을 정도로 나름 성취감도 느끼며 살던 그 때. 사실 나는 결혼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라 생각하는 사람이었지만 옆에서 그런 나를 지켜보던 부모님은 조금 답답해하셨다. 혹시라도 이 딸래미가 혼자 늙어갈까봐. 그렇다고 부모님의 바람대로 아무하고나 결혼할 수는 없어서 나의 의지를 공고히 했다. 그러다 옆지기를 만났다. 학창시절에 이 남자를 만났다면, 아마 이 남자는 놀고 있었을 것이므로, 놀기만 하는 남자는 나의 취향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 만남을 이어가지 못했을 텐데. 그나마 이 남자가 나와 만났을 때는 어머니 속 썩일 거 다 썩이고 사회인으로 자리돋움 하고 있을 때였던 것이다. 옆지기에게 말했는지 안했는지 모르지만 사실 처음 만났을 때 활짝 웃는 그 웃음에 내가 반했다. 사귀기 시작했을 당시 해프닝이 좀 있긴 했지만 적은 나이도 아니었기 때문에 부모님도 크게 반대하지 않으셨고, 결국 결혼했다. 4년 8개월 전에.

옆지기와 시가는 [결혼고발]의 저자 사월날씨의 경우처럼 무난한 사람들이다. 옆지기는 사람 좋아하고 자유로운 영혼에 집안일 잘 하고(냉장고 정리, 화장실과 베란다 청소, 집안전체청소 등등. 나는 주로 빨래만 하네) 아이들과 잘 놀아준다. 단점이 아예 없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여기서 단점까지 마구 어필하고 싶지는 않은 이 마음. 아버님은 별 말씀 없으시다기보다는 장남인 아주버님댁보다 딱히 우리에게 관심 없는 느낌이랄까. 어머니는 막둥이사랑이 하늘을 찌르는 분이시지만 형님네와 작은 분란이 있은 후로 시집살이를 마구 시키지는 않으신다. 그런데 무난하다고 해서 시부모님이 편할 리 만무하다. 어느 때를 기점으로 어머니가 무척 불편해졌다. 신혼 때는 시가에서 걸어서 1분이면 오갈 수 있는 집에 살았는데, 어느 날 새벽 6시 반에 어머니가 들이닥쳤다. 우리가 아침으로 뭘 먹는지 보시겠다면서. 아침이라 비몽사몽에 옷도 제대로 챙겨입지 않은 나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옆지기가 나와의 협의 없이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새벽 방문에 동의한 것에 너무 화가 났다. 왜 아들이 사는 집이라고, 같이 사는 아들의 아내는 생각지도 않고 새벽에 당당하게 방문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신 건가. 그가 전화를 끊고 나에게 미안한 눈짓을 보냈고 나는 모른 척 했다. '어머니가 우리 아침에 뭐 먹는지 보시려고 오시나' 했더니 그의 대답은 '우리 엄마는 안 그래' 였고, 말 그대로 들이닥친 어머니의 첫 마디는 '뭐 먹는 지 보려고 왔지' 였다.

 

그 후로 수 많은 일이 있었지만 내가 어머니에게 받은 상처 중 대부분은 '말'에 의한 것이었다. 나와의 통화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셔놓고, 옆지기와의 통화에서는 저렇게 말씀하시는 일이 잦았으며, 때문에 이후로는 어머니와 통화할 때는 항상 스피커 폰으로 진행했다. 하시는 말씀에 맞장구라도 치면 옆지기에게 '걔(어머니는 나를 주로 야, 걔 이런 식으로 부르셨다)는 직업이 그래서 그런지 말대꾸를 좀 한다'고, 싫은 소리 듣기 싫어 그냥 가만히 말씀만 듣고 있으면 나중에 꼭 '어디가 아픈 거냐, 표정이 왜 그러냐'는 식으로 또 한소리를 하셨다. 어쩌라는 건지. 위로 계신 형님 집에는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셔서 형님을 기겁하게 만들어 아주버님에게 크게 난리를 당하신 후 우리집에 비번을 누르고 들어오신 적은 없었지만 저녁마다 울리는 초인종 소리가 참 불편했더랬다. 나에게 늘 당부하신 말씀은 '아들 밥 잘 챙겨라' 였는데, 어머니 저도 같이 일하는 사람입니다. 시가에 가면 꼭 옆지기에게 '밥 먹고 왔냐'로 대화가 시작되었고, 옆지기가 먹고 왔다고 하면 '거짓말하네'를 스스럼없이 말씀하셨다. 아니 뭐가 '거짓말하네'인가. 내가 예민한 건지 모르겠으나 그 말에는 '네가 지금 네아침도 안 먹고 와서 네 마누라 편을 드냐' 라는 진심이 숨겨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명절에는 새벽부터 시누이가 오는 밤까지 자리를 지켜야 하고, 아들 안색이 안좋다고 확신하는 순간 '너희 싸웠냐, 왜 싸웠냐'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고 싶어하신다.

 

어머님이 하시는 말씀 중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은 '나는 너를 딸처럼 생각하니 너도 나를 친정엄마라고 생각해라' 였다. 책에서도 등장하는데 나도 이 말에 동의하 수 없다. 저 친정엄마 계시는데요. 어머니, 저 같은 딸 감당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저희 엄마 제 성격보고 고집세고 지랄맞다 하세요. 저 엄마한테는 마음 속에 있는 불만 이야기하면서 난리 버거지를 피울 때도 있지만 어머니한테는 그렇게 못해요. 제가 만약 그러면 어머니 뒤로 넘어가실 거에요. 저 몸 안 좋으면 엄마집 가서는 누워 잘 수 있어도, 어머니댁 가면 애들 돌보느라 제 밥 챙겨먹기도 힘들어요. 결국 친정엄마와 시어머니의 가장 큰 차이는 속에 있는 말을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느냐가 아닐까. 엄마와는 싸울 수 있다. 울며불며 이거 서운하다, 저거 서운하다 다 말하고 난리를 피워도 며칠 지나면 미안하다 사과하고 끝낼 수 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아니다. 혹시라도 속엣말을 하게 되면 '지랄하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어머니의 말들 중 충격적인 것은 며느리들에게 '지랄하고 자빠졌네'를 수시로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고, 결국 이렇게는 못살겠다 하여 옆지기를 통해 내 의사를 전달했다.

 

이런저런 일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대놓고 한 마디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전통적인 여성에 대한 인식이 내 안에도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쁨 받고 싶다는 욕구, 나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 어머니에게 고마운 점도 분명히 존재해서 이 널뛰는 듯한 내 감정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이 많이 필요하기도 했다. 결론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자는 것. 나를 '딸처럼' 생각한다는 어머니의 생각을 바꾸기는 어려우니, 나는 그저 어머니를 '시어머니'로 대하기로 했다. 잘 하려고 하지 않고, 그냥 못하지만 않으려고 했다. 어머니와의 통화는 옆지기에게 맡겼고, 옆지기도 친정에 자주 전화하지 않는다. 챙기는 것은 챙기더라도 효도는 셀프. 어머니도 아들이 보고싶지 며느리가 보고 싶겠는가. 옆지기는 처음에는 나를 통해 부모님께 효도하려고 하더니, 이제 포기했다. 결혼 전에는 세상 개방적인 척 하던 옆지기는 알고보니 아버님의 가부장적인 모습을 일부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었고, 가끔 나의 남편, 두 아이의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아들'이 되려는 그를 향해 내가 일침을 날리는 중이다. 힘들어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런 나를 만나버린 것을.

 

[결혼고발]을 읽다보니 할 말이 참 많아진다. 혹자는 여성의 이기심이라고, 시가를 꼭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고 할 수 있다. 내가 너무 기가 센 거 아니냐고,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고. 그가 만약 여성이라면 좋은 시가를 만났구나 하겠다. 남성이라면,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하련다. 그 은근한 분위기와 말투, 며느리는 그저 아들에게 종속된 존재라고 생각하는 그런 환경을 당신이 직접 맞닥뜨리지 않았다면 아무 말 말고 있으라고 하고 싶다. 사위는 손님, 며느리는 식구니까 맛있는 것은 다 사위가 먹으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어안이 벙벙했던 기억도 있다. 게다가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피해보다 이득을 보는 경향이 많은 집단일 가능성이 크므로 더 말하고 싶지 않다. 페미니즘이고 페미니스트고를 떠나 우리 사회가 여성의 대우에 각박한 건 맞지 않나. 과하다 싶을 때도 물론 있지만 여성이 자신의 권리를 악을 쓰고 찾게 된 경위는, 한 인간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대우를 여자라는 이유로 받지 못해서이기 때문이다. 반대의 성이 겪는 고충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지탄받아야 하는 것 아닐까.

 

저자가 너무하다 싶은 것도 물론 있다. 반찬을 해오셨는데 밑에서만 받고 돌아가시게 하는 것은 예의는 아니다. 누구를 위한 반찬이든 어쨌든 수고를 들이셨으므로 그 부분은 인정해드려야 한다고 본다. 그 횟수가 과연 얼마나 되느냐에 달렸지만. 아들 생각하는 마음은 이해한다

 

이렇게 쓰고보니 결혼이 어마무시 무섭고 두려운 일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분도 계실 것 같지만, 힘든만큼 행복도 많다. 세상 게으른 내가 곰돌이 둘 낳아서 '내가 태어나 제일 잘한 일'이라고 자부할 정도로 살고 있고, 맨날 투닥투닥 지지고 볶고 하지만 그래도 이 사람처럼 내 성격 다 받아주는 사람 없다는 생각에 오늘도 다혈질인 성격 누르고 산다. 내가 시가에 불만이 있는 것을 아는 옆지기는 친정에 가면 자기가 나서서 이런 저런 일 다 한다. 설거지도 하려고 하고, 자잘한 집안일 살피고. 그도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불만으로 부루퉁한 아내가 미울 때도 있겠지만 나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어쩌겠는가. 이 대한민국에서 막둥이사랑 나라사랑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것을. 미안하기도 하지만 내가 며느리라서 받는 대접(?)의 고충을 그도 알아야 한다.

 

이 리뷰를 대체 어디서 끊어야 할 지 모르겠다. 결론은, 서로 좀 이해 좀 하고 살자는 것. 며느리와 시어머니를 적으로 보지 말고 같은 여성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측은지심을 가져달라는 것. 남자들의 고충도 물론 있겠지만 [결혼고발] 리뷰니 여성들의 고충을 이번에는 먼저 생각해보자는 것. 그리고 나는 앞으로, 그냥 '나'로 살겠다는 것. 정말 죽어라 하기 싫은 일은 못한다고 말하면서 내 개인의 독립적인 인격을 지켜나가면서 살겠다는 것. 그렇다고 나 버릇없고 예의없는 인간 아니므로 태클은 사절. 참고로 그렇다면 집값은 보탰느냐 하는 속물적인 질문에 답하자면 시가에서 해 준 집값 못지 않게 혼수와 집값 같이 했다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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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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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투병 중인 빅 엔젤의 생일을 앞두고 그의 엄마가 돌아가셨다. 마마 아메리카. 그녀는 빅 엔젤의 생일 일주일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빅 엔젤이 자신의 생일과 엄마의 장례식을 묶어버렸다. 마마 아메리카를 화장하는 간단한 방법으로. 하나 둘 모여 마마 아메리카의 장례식을, 빅 엔젤의 생일을 축하할 준비를 하는 가족들. 얼마 남지 않은 생 앞에서 과거를 되돌아보는 빅 엔젤에게 죽음을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오직 회한과 아직 해결하지 못한 가족 일에 미련이 남을 뿐. 그래도 그는 내색할 수 없다. 그는 이 대가족의 가장, 아부지!였으니까. 그의 생의 마지막 토요일을 기점으로 엔젤 집안의 가족사와 비밀 , 모략, 암투(?)가 생생하게 벌어진다. 빅 엔젤의 숨이 꼴까닥 꼴까닥 하기 직전임에도!

작가인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는 시, 소설, 수필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작품 활동으로 펜포크너상, 에드거상, 라난 문학상 등을 수상하고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필력을 인정받은 작가로, 그의 장편소설이 국내에 소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작가가 형의 마지막 생일 파티에 영감을 받아 쓴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은 암 선고를 받은 70세 노인 빅 엔젤의 마지막 생일 파티를 둘러싼 대가족의 해프닝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소설이다. “제멋대로에 감이 안 잡힌다. 엄청나게 유쾌하다”라는 뉴욕타임스의 평가처럼, 도대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문장들을 읽다보면 이것이 과연 가장이 죽음을 앞둔 집안의 모습이란 말인가, 의심을 품게 된다. 막 던지는 말들, 스스럼없는 행동들. 어쩌면 이것은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또 누군가를 다시 떠나보내야 할 준비를 해야 하는 이들의 방어같은 것이었을까.

이 책을 읽다보면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서로 상처주고 상처받는 애증의 관계 속에서 영원히 끊고 살 수 없는 사람들.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하는만큼 미움이 배는 깊어질 수 있는 사이. 빅 엔젤의 가족들이 간직한 시간들도 그러했다.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것도 잘못된 착각이었을 뿐 그 사이에 단단히 얼어있던 빙하는 한 순간에 녹아내리고, 쌓여있던 오해도 단번에 풀어진다. 삶을 바라보았을 때는 내보일 수 없었던 속내가 누군가가 죽음을 앞에 둔 시점에서 스스럼없이 쏟아져나오는 아이러니. 죽음 앞에서는 그 무엇도 영원한 것은 없다.

죽음이라는 다소 무거운 소재를 생동감 넘치는 인물과 재치 있는 문체로 그려낸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읽다보면 정신없는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 작품은 미국 중소출판사 무역협회에서 주최하는 리튼하우스상을 수상했으며, “현대의 마크 트웨인이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뉴욕타임스 주목할 만한 도서 Top 100, 뉴욕도서관 올해의 추천도서, 커커스 리뷰 올해의 책, NPR 올해의 책, PBS 올해의 책, 리터러리허브 올해의 책 등에 선정되었고, 필립 로스와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을 영화화한 스콧 스테인도프의 지휘 아래 할리우드 TV 시리즈로 영상화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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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앞으로 328번 남았습니다
우와노 소라 지음, 박춘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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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생일날, -당신이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앞으로 3647번 남았습니다-라는 문장이 아래쪽 시야에 홀연히 떠오른다. 그 때는 별 생각 없이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먹었지만 어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숫자가 1씩 줄어든다. 식사가 아니라 간식이더라도. 불현듯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를 계산하다가 숫자가 0이 되면 어머니가 돌아가실 거라는 생각이 떠오른 순간부터, 더 이상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열세 살 때부터는 어머니의 집밥을 입에 대지 않게 되었고 스스로 차려 먹거나 귀찮을 때는 컵라면이나 과자, 패스트푸드 점의 음식으로 끼니를 때웠다. 대학에 진학한 후 자취를 시작하기 위해 집을 떠날 때 어머니가 싸주신 주먹밥은, 편의점 쓰레기통에 버리기까지 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어머니의 집밥을 먹지 않기 위해 버텨왔던 모치즈키. 생각지도 못하게 받아든 소식에 이제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당신이-남았습니다' 라는 제목으로 총 일곱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 자신에게 전화를 걸 수 있는 횟수, 수업에 나갈 수 있는 횟수, 불행이 찾아올 횟수, 거짓말을 들을 수 있는 횟수, 놀 수 있는 횟수, 살 수 있는 날 수. 감동적이기도 하고 코믹하기도 하고 코 끝이 시큰하게 될만큼 슬프기도 한 가지각색의 이야기가 책을 읽는 내내 나를 즐겁게 해주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읽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 마지막 페이지를 다 덮은 후의 여운이 오래 남았다. 누구라도 자신의 눈 밑에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가 나타난다면 어머니가 차려주신 음식을 마음 편히 먹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자신에게 전화를 걸 수 있는 횟수가 나타난다면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하겠지. 수업에 나갈 수 있는 횟수가 보이면 학생 입장에서는 유급이라도 할까 겁이 날 수밖에 없다. 불행이 찾아올 횟수가 보이면 어서 이 불행이 끝나길 바랄 것이고, 거짓말을 들을 수 있는 횟수가 보이면 타인이 하는 말 하나하나에 신경쓰며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놀 수 있는 횟수가 나타나다니, 그렇다면 제대로 놀아주겠다고 각오할 수도 있고 살 수 있는 날 수가 나타나면, 그렇게 되면 나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허를 찌르는 것이 즐거운 듯, 작가는 즐거운 반전도, 코믹한 반전도, 따스한 반전도, 슬픈 반전도 준비해놓고 독자를 기다리는 듯한 느낌이다.

 

책을 읽는 내 모습을 옆지기가 옆에서 지켜봤다면 -표정이 왜 저렇게 자꾸 바뀌지-라며 궁금해했을 것이다. 심지어 방금 전에는 눈물을 글썽이다가 지금은 방을 굴러다니며 웃는 모습에 오히려 자신이 이상한 표정을 지었을지도. 이 작품 덕분에 무척 즐거웠다는 것만은 꼭 말해두고 싶다. 게다가 가제본으로 만났는데 종이질이 엄청 훌륭하다. 맨들맨들. 아차 하는 순간 종이에 손을 베일 것 같은 느낌. 처음에는 표지가 우중충해서 슬펐는데 첫 페이지 넘기는 순간부터 '이건 소장용이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 정도. 따스한 느낌이 나는 출간본의 표지가 아쉽기는 하지만 가제본도 나름의 매력을 풍기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득 들려주었다. 우와노 소라, 기억해야 할 작가가 한 명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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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 또 하나의 이야기 디즈니 오리지널 노블
젠 캘로니타 지음, 성세희 옮김 / 라곰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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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다, 유후! 겨울하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노래들 중에 <Let it go>를 빼놓을 수 없다. 암요암요. 심지어 영화를 본 적 없는 우리집 첫째 곰돌군도 어떻게 알았는지 멜로디를 흥얼거린다! 깜짝 놀라 물어보았더니 어린이집 친구가 무척 좋아하는 노래라며 매일 부르고 있단다. 게다가 몇 년 전 1편의 위력을 등에 없고 2편까지 최근 개봉되었으니 그 인기가 말해 무엇. <겨울왕국2>가 <겨울왕국1>만큼 재미있는지, 노래는 어떠한지 관심의 대상이 된 가운데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선물용으로 이런저런 책들도 많이 나왔다. 나도 겨울왕국 팝업북, 스티커북, 스토리북 등 원서로 몇 권 샀는데 사고보니 멍. 아이가 아닌 나를 위한 선물이다! 여기에 흥미를 모으는 책이 또 한 권 출간되었으니 바로 [겨울왕국 또 하나의 이야기] 다.

 

영화 <겨울왕국 1>에서는 비록 동생 안나를 구하려던 시도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안나에게 상처를 입힌 것에 죄책감을 느낀 엘사가 동생을 멀리하는 설정이었다. 책에서는 이 내용을 살짝 비틀어서 엘사가 안나에게 마법을 부린 이후의 이야기가 조금 다르게 등장한다. 충격을 받고 쓰러진 안나. 왕과 왕비, 엘사는 트롤들에게 도움을 구하러 가고 파비 할아범은 안나를 구하기 위해서는 안나와 엘사를 떨어뜨려 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안나에 대한 기억을 엘사와 모든 국민의 머리속에서 지우고 가장 절친한 친구에게 안나를 맡긴 왕비. 엘사는 기억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누군가에 대한 정체모를 그리움을 느끼면서 자신이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성장한다. 비극적인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엘사. 그리고 그 날 엘사의 능력이 다시 발현된다. 이후 3년동안 두려움과 외로움 속에서 자신을 철저히 고립시킨 채 생활하고, 대관식날 아버지가 주신 상자 속에 들어있던 어머니의 편지로 모든 기억을 되찾는다. 자신이 동생을 상처입혔다는 사실을 안 엘사는 마음 속에 피어오르는 두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아렌델 왕국을 꽁꽁 얼려버리고 한스 왕자 일행에게 쫓기면서 안나를 찾아나선다. 한스 왕자는 어찌나 밉상이신지.

 

영화 속 장면들이 많이 삽입되어 있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오래 전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환희와 두근두근함, 노래로 인한 정겨움이 다시금 떠올랐다. 곰돌군에게 영화는 아직 자극적일 것 같아 보여주지 않고 있지만 조금 더 자라면 이 즐거움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 그 때가 되면 아이도 이 스토리와 노래를 좋아해줄까. 아직은 나를 위한 영화와 선물같은 책이다. 히힛. 오랜만에 <Let it go>를 신나게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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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를 알면 역사가 보인다 - 그림으로 보는 세계 신화 보물전
최희성 엮음 / 아이템비즈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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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나 또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세상에 이렇게 많은 신화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인간의 의지로는 뛰어넘을 수 없는 위험과 경이로운 모험들로 가득차 있는, 아주 오래 전 시작된 이야기. [신화를 알면 역사가 보인다]는 5대양 6대주의 20여개 신화를 아우른 전 세계 신화문명 대서사시다. 두께와 분량이 만만치 않지만 그래서 더 가치가 느껴지는 책이라고 할까. 책을 받아든 순간부터 이 책 자체가 커다란 보물처럼 느껴져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접해본 신화는 그리스 로마 신화, 북유럽 신화, 이집트 신화 정도였는데 이 책에는 처음 들어보는 민족의 신화들도 가득하다. 아시아에서는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페르시아, 인도, 중국, 일본, 태국, 베트남, 필리핀, 몽골, 티벳의 신화가 닮은 듯 하면서도 다른 분위기를 풍기면서 창세 신화와 영웅 서사시, 자연 신화 등의 모습을 펼쳐보인다. 유럽에서는 그리스와 발트해, 슬라브, 켈트, 핀란드, 북유럽의 미지의 세계를, 아프리카에서는 줄루족, 도곤족, 폰족, 거인족 등 대륙의 정글과 밀림 속을 뛰어다니며 자연과 동물의 세계를 넘나들던 전사들의 모험과 독특한 신화가 그 신비함을 전달한다. 인디언과 마야인, 잉카인, 에스키모인으로 대표되는 아메리크 원주민들의 신화도 가미되어 독특함을 더한다.

사람들이 신화에 열광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헤쳐나올 수 없는 역경을 신들의 도움으로 이겨내고 결국에는 승리를 쟁취하는 영웅들의 모습에서 희열을 느끼기도 하고, 우리와는 다를 것이라 생각했던 신들의 다툼이나 경쟁이 인간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영웅 서사시도 재미있지만 이번 책에서 특히 흥미를 느낀 부분은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자연친화적인 신화였다. 전통적으로 자연의 모든 곳에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각 부족마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신화가 존재하는 듯하다. 예를 들어 딩카 족은 아프리카의 남수단의 나일 강 유역에서 소를 방목하며 살아가는 부족인데 소를 극진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소를 찬미하는 신화나 노래가 많다고 한다.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많은 즐거움을 주기도 하지만, 어찌보면 그것은 인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상의 창조와 건국을 궁금해하고 영웅의 삶을 동경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결국에는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추구하는 여정이라고 할까. 멋진 삽화들과 함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러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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