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앞으로 328번 남았습니다
우와노 소라 지음, 박춘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열 살 생일날, -당신이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앞으로 3647번 남았습니다-라는 문장이 아래쪽 시야에 홀연히 떠오른다. 그 때는 별 생각 없이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먹었지만 어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숫자가 1씩 줄어든다. 식사가 아니라 간식이더라도. 불현듯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를 계산하다가 숫자가 0이 되면 어머니가 돌아가실 거라는 생각이 떠오른 순간부터, 더 이상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열세 살 때부터는 어머니의 집밥을 입에 대지 않게 되었고 스스로 차려 먹거나 귀찮을 때는 컵라면이나 과자, 패스트푸드 점의 음식으로 끼니를 때웠다. 대학에 진학한 후 자취를 시작하기 위해 집을 떠날 때 어머니가 싸주신 주먹밥은, 편의점 쓰레기통에 버리기까지 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어머니의 집밥을 먹지 않기 위해 버텨왔던 모치즈키. 생각지도 못하게 받아든 소식에 이제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당신이-남았습니다' 라는 제목으로 총 일곱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 자신에게 전화를 걸 수 있는 횟수, 수업에 나갈 수 있는 횟수, 불행이 찾아올 횟수, 거짓말을 들을 수 있는 횟수, 놀 수 있는 횟수, 살 수 있는 날 수. 감동적이기도 하고 코믹하기도 하고 코 끝이 시큰하게 될만큼 슬프기도 한 가지각색의 이야기가 책을 읽는 내내 나를 즐겁게 해주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읽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 마지막 페이지를 다 덮은 후의 여운이 오래 남았다. 누구라도 자신의 눈 밑에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가 나타난다면 어머니가 차려주신 음식을 마음 편히 먹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자신에게 전화를 걸 수 있는 횟수가 나타난다면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하겠지. 수업에 나갈 수 있는 횟수가 보이면 학생 입장에서는 유급이라도 할까 겁이 날 수밖에 없다. 불행이 찾아올 횟수가 보이면 어서 이 불행이 끝나길 바랄 것이고, 거짓말을 들을 수 있는 횟수가 보이면 타인이 하는 말 하나하나에 신경쓰며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놀 수 있는 횟수가 나타나다니, 그렇다면 제대로 놀아주겠다고 각오할 수도 있고 살 수 있는 날 수가 나타나면, 그렇게 되면 나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허를 찌르는 것이 즐거운 듯, 작가는 즐거운 반전도, 코믹한 반전도, 따스한 반전도, 슬픈 반전도 준비해놓고 독자를 기다리는 듯한 느낌이다.

 

책을 읽는 내 모습을 옆지기가 옆에서 지켜봤다면 -표정이 왜 저렇게 자꾸 바뀌지-라며 궁금해했을 것이다. 심지어 방금 전에는 눈물을 글썽이다가 지금은 방을 굴러다니며 웃는 모습에 오히려 자신이 이상한 표정을 지었을지도. 이 작품 덕분에 무척 즐거웠다는 것만은 꼭 말해두고 싶다. 게다가 가제본으로 만났는데 종이질이 엄청 훌륭하다. 맨들맨들. 아차 하는 순간 종이에 손을 베일 것 같은 느낌. 처음에는 표지가 우중충해서 슬펐는데 첫 페이지 넘기는 순간부터 '이건 소장용이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 정도. 따스한 느낌이 나는 출간본의 표지가 아쉽기는 하지만 가제본도 나름의 매력을 풍기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득 들려주었다. 우와노 소라, 기억해야 할 작가가 한 명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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