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고발 - 착한 남자, 안전한 결혼, 나쁜 가부장제
사월날씨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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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지기는 삼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갑자기 옆지기 출생신고). 위로 나이 차 많이 나는 누님과 형님이 한 분씩 계신다. 거의 10년이나 나는 나이 차로 인해 집안의 귀염둥이-가 아니라 그냥 막내로 자라났다. 공부보다는 노는 거 좋아해서 학창시절 어머니 속을 꽤 썩였고 뒤늦게 정신차려 공부에 올인, 대학원까지 나온 나름 수재(?)다. 아버님에게는 장남이 최고라 그리 귀여움 못 받은 듯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세상 예쁨 다 받고 성장했다. 늦게 태어난 자식, 앞으로 함께 지낼 날이 위의 자식들보다 짧을 것 같아 안쓰러우셨다고 한다. 비록 잔소리는 하시지만 절대 옆지기를 이길 정도는 아니고, 그냥 걱정되는 마음이 속에만 남아있지 않고 자연스럽게 밖으로 표현된다고 봐야 할까. 이 막둥이에 대한 관심이 너무나 지대하여 옆에서 지켜보는 나로서는 한 걸음만 잘못 디뎠어도 옆지기는 마마보이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정~~~말 평범하게 자라 공무원이 됐다. 노는 거에 관심 없었고 남들 들으면 재수없다 생각할 지 몰라도 공부하는 게 좋아 공부 열심히 했다. 엄청 잘 하진 않았어도 최선을 다했고 이만하면 괜찮게 살았다 싶을 정도로 나름 성취감도 느끼며 살던 그 때. 사실 나는 결혼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라 생각하는 사람이었지만 옆에서 그런 나를 지켜보던 부모님은 조금 답답해하셨다. 혹시라도 이 딸래미가 혼자 늙어갈까봐. 그렇다고 부모님의 바람대로 아무하고나 결혼할 수는 없어서 나의 의지를 공고히 했다. 그러다 옆지기를 만났다. 학창시절에 이 남자를 만났다면, 아마 이 남자는 놀고 있었을 것이므로, 놀기만 하는 남자는 나의 취향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 만남을 이어가지 못했을 텐데. 그나마 이 남자가 나와 만났을 때는 어머니 속 썩일 거 다 썩이고 사회인으로 자리돋움 하고 있을 때였던 것이다. 옆지기에게 말했는지 안했는지 모르지만 사실 처음 만났을 때 활짝 웃는 그 웃음에 내가 반했다. 사귀기 시작했을 당시 해프닝이 좀 있긴 했지만 적은 나이도 아니었기 때문에 부모님도 크게 반대하지 않으셨고, 결국 결혼했다. 4년 8개월 전에.

옆지기와 시가는 [결혼고발]의 저자 사월날씨의 경우처럼 무난한 사람들이다. 옆지기는 사람 좋아하고 자유로운 영혼에 집안일 잘 하고(냉장고 정리, 화장실과 베란다 청소, 집안전체청소 등등. 나는 주로 빨래만 하네) 아이들과 잘 놀아준다. 단점이 아예 없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여기서 단점까지 마구 어필하고 싶지는 않은 이 마음. 아버님은 별 말씀 없으시다기보다는 장남인 아주버님댁보다 딱히 우리에게 관심 없는 느낌이랄까. 어머니는 막둥이사랑이 하늘을 찌르는 분이시지만 형님네와 작은 분란이 있은 후로 시집살이를 마구 시키지는 않으신다. 그런데 무난하다고 해서 시부모님이 편할 리 만무하다. 어느 때를 기점으로 어머니가 무척 불편해졌다. 신혼 때는 시가에서 걸어서 1분이면 오갈 수 있는 집에 살았는데, 어느 날 새벽 6시 반에 어머니가 들이닥쳤다. 우리가 아침으로 뭘 먹는지 보시겠다면서. 아침이라 비몽사몽에 옷도 제대로 챙겨입지 않은 나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옆지기가 나와의 협의 없이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새벽 방문에 동의한 것에 너무 화가 났다. 왜 아들이 사는 집이라고, 같이 사는 아들의 아내는 생각지도 않고 새벽에 당당하게 방문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신 건가. 그가 전화를 끊고 나에게 미안한 눈짓을 보냈고 나는 모른 척 했다. '어머니가 우리 아침에 뭐 먹는지 보시려고 오시나' 했더니 그의 대답은 '우리 엄마는 안 그래' 였고, 말 그대로 들이닥친 어머니의 첫 마디는 '뭐 먹는 지 보려고 왔지' 였다.

 

그 후로 수 많은 일이 있었지만 내가 어머니에게 받은 상처 중 대부분은 '말'에 의한 것이었다. 나와의 통화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셔놓고, 옆지기와의 통화에서는 저렇게 말씀하시는 일이 잦았으며, 때문에 이후로는 어머니와 통화할 때는 항상 스피커 폰으로 진행했다. 하시는 말씀에 맞장구라도 치면 옆지기에게 '걔(어머니는 나를 주로 야, 걔 이런 식으로 부르셨다)는 직업이 그래서 그런지 말대꾸를 좀 한다'고, 싫은 소리 듣기 싫어 그냥 가만히 말씀만 듣고 있으면 나중에 꼭 '어디가 아픈 거냐, 표정이 왜 그러냐'는 식으로 또 한소리를 하셨다. 어쩌라는 건지. 위로 계신 형님 집에는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셔서 형님을 기겁하게 만들어 아주버님에게 크게 난리를 당하신 후 우리집에 비번을 누르고 들어오신 적은 없었지만 저녁마다 울리는 초인종 소리가 참 불편했더랬다. 나에게 늘 당부하신 말씀은 '아들 밥 잘 챙겨라' 였는데, 어머니 저도 같이 일하는 사람입니다. 시가에 가면 꼭 옆지기에게 '밥 먹고 왔냐'로 대화가 시작되었고, 옆지기가 먹고 왔다고 하면 '거짓말하네'를 스스럼없이 말씀하셨다. 아니 뭐가 '거짓말하네'인가. 내가 예민한 건지 모르겠으나 그 말에는 '네가 지금 네아침도 안 먹고 와서 네 마누라 편을 드냐' 라는 진심이 숨겨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명절에는 새벽부터 시누이가 오는 밤까지 자리를 지켜야 하고, 아들 안색이 안좋다고 확신하는 순간 '너희 싸웠냐, 왜 싸웠냐'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고 싶어하신다.

 

어머님이 하시는 말씀 중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은 '나는 너를 딸처럼 생각하니 너도 나를 친정엄마라고 생각해라' 였다. 책에서도 등장하는데 나도 이 말에 동의하 수 없다. 저 친정엄마 계시는데요. 어머니, 저 같은 딸 감당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저희 엄마 제 성격보고 고집세고 지랄맞다 하세요. 저 엄마한테는 마음 속에 있는 불만 이야기하면서 난리 버거지를 피울 때도 있지만 어머니한테는 그렇게 못해요. 제가 만약 그러면 어머니 뒤로 넘어가실 거에요. 저 몸 안 좋으면 엄마집 가서는 누워 잘 수 있어도, 어머니댁 가면 애들 돌보느라 제 밥 챙겨먹기도 힘들어요. 결국 친정엄마와 시어머니의 가장 큰 차이는 속에 있는 말을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느냐가 아닐까. 엄마와는 싸울 수 있다. 울며불며 이거 서운하다, 저거 서운하다 다 말하고 난리를 피워도 며칠 지나면 미안하다 사과하고 끝낼 수 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아니다. 혹시라도 속엣말을 하게 되면 '지랄하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어머니의 말들 중 충격적인 것은 며느리들에게 '지랄하고 자빠졌네'를 수시로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고, 결국 이렇게는 못살겠다 하여 옆지기를 통해 내 의사를 전달했다.

 

이런저런 일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대놓고 한 마디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전통적인 여성에 대한 인식이 내 안에도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쁨 받고 싶다는 욕구, 나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 어머니에게 고마운 점도 분명히 존재해서 이 널뛰는 듯한 내 감정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이 많이 필요하기도 했다. 결론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자는 것. 나를 '딸처럼' 생각한다는 어머니의 생각을 바꾸기는 어려우니, 나는 그저 어머니를 '시어머니'로 대하기로 했다. 잘 하려고 하지 않고, 그냥 못하지만 않으려고 했다. 어머니와의 통화는 옆지기에게 맡겼고, 옆지기도 친정에 자주 전화하지 않는다. 챙기는 것은 챙기더라도 효도는 셀프. 어머니도 아들이 보고싶지 며느리가 보고 싶겠는가. 옆지기는 처음에는 나를 통해 부모님께 효도하려고 하더니, 이제 포기했다. 결혼 전에는 세상 개방적인 척 하던 옆지기는 알고보니 아버님의 가부장적인 모습을 일부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었고, 가끔 나의 남편, 두 아이의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아들'이 되려는 그를 향해 내가 일침을 날리는 중이다. 힘들어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런 나를 만나버린 것을.

 

[결혼고발]을 읽다보니 할 말이 참 많아진다. 혹자는 여성의 이기심이라고, 시가를 꼭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고 할 수 있다. 내가 너무 기가 센 거 아니냐고,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고. 그가 만약 여성이라면 좋은 시가를 만났구나 하겠다. 남성이라면,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하련다. 그 은근한 분위기와 말투, 며느리는 그저 아들에게 종속된 존재라고 생각하는 그런 환경을 당신이 직접 맞닥뜨리지 않았다면 아무 말 말고 있으라고 하고 싶다. 사위는 손님, 며느리는 식구니까 맛있는 것은 다 사위가 먹으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어안이 벙벙했던 기억도 있다. 게다가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피해보다 이득을 보는 경향이 많은 집단일 가능성이 크므로 더 말하고 싶지 않다. 페미니즘이고 페미니스트고를 떠나 우리 사회가 여성의 대우에 각박한 건 맞지 않나. 과하다 싶을 때도 물론 있지만 여성이 자신의 권리를 악을 쓰고 찾게 된 경위는, 한 인간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대우를 여자라는 이유로 받지 못해서이기 때문이다. 반대의 성이 겪는 고충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지탄받아야 하는 것 아닐까.

 

저자가 너무하다 싶은 것도 물론 있다. 반찬을 해오셨는데 밑에서만 받고 돌아가시게 하는 것은 예의는 아니다. 누구를 위한 반찬이든 어쨌든 수고를 들이셨으므로 그 부분은 인정해드려야 한다고 본다. 그 횟수가 과연 얼마나 되느냐에 달렸지만. 아들 생각하는 마음은 이해한다

 

이렇게 쓰고보니 결혼이 어마무시 무섭고 두려운 일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분도 계실 것 같지만, 힘든만큼 행복도 많다. 세상 게으른 내가 곰돌이 둘 낳아서 '내가 태어나 제일 잘한 일'이라고 자부할 정도로 살고 있고, 맨날 투닥투닥 지지고 볶고 하지만 그래도 이 사람처럼 내 성격 다 받아주는 사람 없다는 생각에 오늘도 다혈질인 성격 누르고 산다. 내가 시가에 불만이 있는 것을 아는 옆지기는 친정에 가면 자기가 나서서 이런 저런 일 다 한다. 설거지도 하려고 하고, 자잘한 집안일 살피고. 그도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불만으로 부루퉁한 아내가 미울 때도 있겠지만 나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어쩌겠는가. 이 대한민국에서 막둥이사랑 나라사랑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것을. 미안하기도 하지만 내가 며느리라서 받는 대접(?)의 고충을 그도 알아야 한다.

 

이 리뷰를 대체 어디서 끊어야 할 지 모르겠다. 결론은, 서로 좀 이해 좀 하고 살자는 것. 며느리와 시어머니를 적으로 보지 말고 같은 여성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측은지심을 가져달라는 것. 남자들의 고충도 물론 있겠지만 [결혼고발] 리뷰니 여성들의 고충을 이번에는 먼저 생각해보자는 것. 그리고 나는 앞으로, 그냥 '나'로 살겠다는 것. 정말 죽어라 하기 싫은 일은 못한다고 말하면서 내 개인의 독립적인 인격을 지켜나가면서 살겠다는 것. 그렇다고 나 버릇없고 예의없는 인간 아니므로 태클은 사절. 참고로 그렇다면 집값은 보탰느냐 하는 속물적인 질문에 답하자면 시가에서 해 준 집값 못지 않게 혼수와 집값 같이 했다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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