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너를 생각해 아르테 미스터리 2
후지마루 지음, 김수지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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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다고 자부하는 호조 시즈쿠이지만 그녀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남다르다. 프롤로그에 적힌 그녀의 자기소개 글을 읽다보면, 아하, 이 소녀는 세상에 불평불만이 많기도 하지만 이렇게 온몸 가득 날을 세우고 있는 것을 보면 무언가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외롭기도 한 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은 사토리 세대(오랜 불황 속에서 자라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그에 적응하는 세대로 1980년대 후반 이후 태어난 젊은 층)로, 독립적이고 개인적인 생활을 중시하며, 남을 돕는 것에는 전혀 관심없다고 말하는 시즈쿠. 그런 그녀에게는 한 가지 비밀이 있다. 바로 헤이세이 시대(1989년 1월 8일-2019년 4월 30일) 마지막 마녀라는 것. 시즈쿠에게 전해진 마녀의 피와 마도구는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세대를 뛰어넘어 전수된다.

 

요즘같은 시대에는 마녀도, 마법도 필요없다고 생각하며 생활하는 시즈쿠에게 10년 전 홀연히 자취를 감췄던 소타가 갑자기 나타난다. 그는 시즈쿠가 어렸을 적 할머니 집에서 생활할 때 알게 된 소년으로, 자신이 마녀라는 사실을 털어놓은 유일한 상대. 저마다 고유한 능력이 있는 마도구들을 사용해 세상과 사람들을 돕는 것이 마녀의 사명이라는 것을 알게된 시즈쿠에게, 소타는 그 마녀의 사명을 완수하도록 돕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할머니가 예상치 못한 재해로 안타깝게 돌아가신 그 날, 소타 또한 모습을 감추었고 그 후 10년 동안 시즈쿠는 세상과 소타를 원망하며 평범함을 가장한 채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 시즈쿠에게 자신이 첫 번째 의뢰인이 되어주겠다는 소타. 소타의 소원은 간사이에 있는, 자신들이 자랐던 그 산으로 데려다달라는 것. 소타는 왜 그 산으로 가자고 한 것일까. 그리고 사라졌던 1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과연 시즈쿠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멋진 마녀로 거듭날 수 있게 될 것인가.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으로 잊지 못할 감성 미스터리를 선물한 작가 후지마루의 신작 [가끔 너를 생각해]. 출간된 작품 수도 많지 않고 이름이나 수상 이력 외의 작가의 자세한 사항은 알려져 있지 않다. 정보가 부족했기에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을 처음 읽을 때만 해도 가벼운 라이트노벨이겠거니 했지만, 이 작품의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쯤에는 벅차오르는 감동과 슬픔을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어서 빨리 다음 작품을 만나보고 싶었는데, 약 1년 만에 찾아온 신간이라니! 이번 작품도 마녀와 마법이라는 소재를 사용해 다소 유치하지만, 작가 특유의 허를 찌르는 묵직한 감동을 선사해주는 이야기다.

 

시즈쿠가 마녀의 사명을 다하도록 돕기 위해 인터넷에 고민을 상담해준다는 게시글을 올리는 소타와 그런 소타에게 펄펄 뛰며 화를 내는 시즈쿠. 그런데 이런 게시글에 끌려 고민을 털어놓는 이가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무심한 듯, 냉정한 듯 하면서도 결국 진심을 다해 그들을 돕게 된다. 마법으로 시작했지만 작은 기적을 가능하게 한 것은 결국에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 그리고 바보처럼 웃으면서 시즈쿠의 구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굳건하게 그녀의 곁을 지키는 소타의 정체에 대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중간에 소타가 누구인지 눈치를 채버려, 그들의 인연이 어쩌면 순탄치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들의 인연은 그보다 더 깊고도 무거운 것.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을 읽었을 때와 같은, 가슴 아프면서도 찬란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감성적인 표지와 그에 어울리는 멋진 이야기! 이 후지마루라는 작가에 대해 더 알고 싶다! 앞으로 나올 작품들, 미리 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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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고르는 여자들 미드나잇 스릴러
레슬리 피어스 지음, 도현승 옮김 / 나무의철학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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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영국. 법률사무소에서 비서로 일어하는 케이티 스피드. 그녀의 직장에서 두 건물 떨어진 곳에는 '글로리아네 드레스'가 있다. 케이티의 엄마 힐다는 드레스 가게의 주인이며 매력 넘치는 이혼녀인 글로리아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지만, 케이티에게 그녀는 동경의 대상이다. 고민에 대해 긍정적인 조언을 해주기도 해서 글로리아는 케이티에게 벡스힐을 떠나 런던으로 갈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 그런 글로이아의 집은 케이티의 집과 거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는데 그녀의 집 앞에 검은색 험버가 서 있을 때가 있었다. 글로리아의 집에 차로 손님들을 데려오는 작은 키에 회색 머리를 한 중년 여자, 그리고 험버에서 내리는 젊고, 추레하고, 얼굴에 상처가 있는 또 다른 여자들.

 

해는 넘어가 1965년 1월, 글로리아의 집에 불이 나 그녀와 그녀의 둘째 딸이 목숨을 잃는다. 그런데 케이티가 런던으로 직장과 집을 알아보러 다녀온 사이 용의자로 체포된 케이티의 아버지 앨버트. 케이티는 절대 그럴 리 없다며 호소하지만, 힐다마저 앨버트가 글로리아와 불륜 사이였다며 남편을 비난한다. 감옥에 있는 아버지로부터 글로리아가 가정 폭력을 당하던 여성들을 돕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케이티는 범인이 그 여성들의 남편 중 한 명이 아닐까 의심하고, 험버를 통해 젊은 여성들을 데려다주던 중년 여인 에드나에게 경찰서에 가서 그녀들이 하던 일에 대해 증언해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두려움에 휩싸인 에드나. 에드나와 글로리아조차 가정폭력의 피해자들이었으며, 다른 피해자들을 돕고 있었고, 항상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찬 생활을 해야하는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경찰서에 가지는 못하지만 케이티에게 자신들이 돕던 여성들의 명부가 적힌 노트를 전달한 에드나도 의문의 사고를 당하고 만다.

 

아버지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명부에 적힌 여성들의 집을 찾아다니면서 에드나를 덮친 차량을 수색하던 케이티. 그런 그녀의 눈 앞에 용의 차량이 발견되고, 한편 범인 또한 케이티가 자신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 그녀를 납치, 감금해버린다. 아무도 그녀의 실종을 눈치채지 못하던 때, 케이티가 런던에서 구한 직장에서 만난 변호사 찰스가 예전 그녀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며 케이티가 위험에 처해있음을 직감한다. 한 쪽에서는 찰스와 케이티의 친구 질리가 그녀를 찾아다니고, 또 다른 한 쪽에서는 케이티가 범인에게 대항하는 모습이 긴박하게 그려진다.

 

남편에게 학대당하고 신고해도 가정에서의 일이라며 모른 척 했던 경찰들.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던 여성들. 그녀들의 남편 대부분은 사회적으로 지위도 있었고, 경제적으로 부유했다. 단지 식사 시간이 5분 늦었다는 이유로, 셔츠가 다림질 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자신들을 폭행했던 남편들로부터 도망친 여자들은,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 남편들이 자식들에게까지 손을 대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도망칠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나 역시 아이들이 있다보니 여성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올드한 분위기 속에 전개되는 이 이야기는 마치 한 편의 흑백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써온 여성들의 이야기. 범인에게 잡혀 사투를 벌이는 케이티가 부디 살아남기를 바랐고, 후에 밝혀진 힐다의 비밀에는 그만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어둠을 빠져나온 이들은 강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선행과 봉사.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찡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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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쉬즈 곤
카밀라 그레베 지음, 김지선 옮김 / 크로스로드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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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작은 마을 오름베리.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러 들어간 눈 덮인 숲에서 말린이 백골 사체를 발견한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나고 그 숲에서 한 여성이 만신창이 상태로 구조된다. 그녀의 이름은 프로파일러 한네 라겔린드. 연인이자 동료 수사관인 페테르, 그리고 이제는 경찰이 된 말린과 또 다른 동료인 만프레드, 안드레아스와 팀을 이루어 8년 전 백골 사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오름베리에 와 있었다. 그러나 한네는 사라진 페테르의 행방도, 실종되었던 기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 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모두에게 숨긴 채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었던 한네. 모든 것을 자신의 노트에 기록해 두었지만, 그녀의 노트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또 다시 일어난 살인사건. 8년 전 백골 사체가 발견된 장소에 유기된, 얼굴이 뭉개진 한 여성의 사체. 수사팀은 이 사건이 과거의 사건과 연결되어 있음을 확신하고, 페테르의 생명이 위험에 처해있음을 직감한다.

 

한편 한네가 기록하던 노트는 오름베리에 살고 있는 소년 제이크가 가지고 있었다. 고등학생인 이 소년에게는 한 가지 비밀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가 가끔 여장을 한다는 것이었다. 보통의 남학생들과는 달리 예쁜 드레스, 구두, 반짝이는 매니큐어 등에 관심이 많은 제이크가, 한네가 발견된 그 밤에도 여장을 하고 숲을 산책하고 있었다. 한네가 떨어트리고 간 노트를 주웠지만 자신의 비밀 때문에 차마 경찰에 가지 못하는 제이크. 몰래 숨겨 그녀의 사건 기록을 읽어나가면서 노트에서 단서를 얻게 된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페테르의 행방을 알 수 있는 곳으로 향한다.

 

작고 쇠락한 마을 오름베리가 내뿜는 기운은 서늘하다. 예전에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났었지만 주요 작업장은 모두 문을 닫은 데다 심지어 정부는 이 마을에 난민수용소까지 허가했다.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아나가는 주민들과는 달리 난민이라는 이유로 정부의 지원을 받는 그들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감정은, 물론 좋을 리가 없다. 8년 전 발견된 백골 사체와 이번에 발견된 시체가 모두 난민과 관련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오름베리 출신인 말린과 다른 수사원들 사이에 일종의 골이 생기고, 그런 그녀를 향해 동료 수사원 안드레아스는 전쟁과 기아를 피해 탈출해야 했던 게 당신이었을 수도 있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이것은 작가가 전달하려고 하는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메시지다.

 

수사가 진전됨과 동시에 제이크가 읽는 한네의 노트 내용에도 가속도가 붙어 작품은 점점 긴장감이 더해진다. 사라진 페테르의 행방, 발견된 두 사체, 한네의 기억상실증. 다소 답답한 면이 없지는 않지만 작품이 전달하는 서늘한 기운에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 폐쇄적인 마을에 숨겨진 비밀. 그 비밀이 너무 잔혹하고 슬퍼서 마지막에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행할 수 있는 잔혹함의 끝은 어디일까. 그 잔혹함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한네는 완전히 기억을 잃어버렸던 게 아니었을까. 모든 것을 기억하는 채로 살아가기에는 삶이 너무 가혹하므로.

 

작가는 자매인 오사 트레프와 함께 심리학자인 시리 버그먼을 주인공으로 한 다섯 편의 범죄소설을 저술했고, 폴 린더-엥스트롬과 함께 모스크바 느와르 3부작 소설을 저술하기도 했다고 한다. 두 시리즈 모두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개인적으로 심리학자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가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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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의 술래잡기 모삼과 무즈선의 사건파일
마옌난 지음, 류정정 옮김 / 몽실북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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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잃은 채 악몽을 꾸다 어두운 방 안에서 깨어난 모삼. 사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 왜 이곳에서 살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다. 왜 매일 밤 자신이 비수에 찔리는 악몽을 꾸는 지도. 샤워를 할 때마다 보게 되는 몸에 새겨진 흉측한 상처들. 그 상처들만이 그에게 어떤 끔찍한 일이 있었는지 짐작하게 할 뿐이다. 자신의 이름조차도 이 집의 고용인들에게 들어 알게 되었을 정도로 그는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하다. 기분전환 겸 옷을 차려입고 외출한 모삼. 그가 향한 곳은 어떤 클럽이다. 바에 자리를 잡고 마르가리타를 주문하며 상념에 빠져 있는 그에게 한 여인이 다가온다. 여인이 알려준 마르가리타에 얽힌 슬픈 사연. 여자는 이야기를 끝내고 모삼 곁을 떠나고 곧 클럽 안 한 룸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져 소란해진다. 현장을 찾아 피해자의 사인부터 신원에 이르기까지 명쾌하게 추리해내는 모삼. 그는 경찰이 해결하지 못하는 모든 사건을 해결해낸 명탐정, 신화로 불리는 남자 모삼이었다! 그리고 그의 연락을 받고 나타난 무즈선. 1급 경감이자 특급 법의관 주임으로 활동하는 그는 부와 명예, 멋진 외모까지 갖춘 완벽한 남자다. 모삼은 기억을 잃기 전까지 무즈선과 파트너를 이루고 여러 사건들을 해결해왔다.

 

모삼이 기억을 잃은 이유는 한 연쇄살인마를 쫓았기 때문이었다. 여대생을 잔인하게 살해한 후 시체를 참혹하게 훼손한 연쇄살인마. 책에 적힌 묘사를 읽는 것만으로도 인간이 어떻게 인간에게 이런 짓을 벌일 수 있는가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이 작품에 실린 사건들이 거의 실제로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했다는 말에 정말 깜짝 놀랐다. 그런 살인마를 쫓고 있었으니 그 화살이 모삼에게 향해진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 터. 결국 살인마의 칼날은 모삼의 약혼녀인 관팅을 향하고, 결국 그녀는 모삼의 집에서 자궁과 태아가 적출당하고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모삼 자신도 살인자와 마주하고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채 기억을 잃었었다. 그리고 클럽에서 벌어진 일을 해결해나가면서 점차 잃어버린 기억을 찾게 된 것이다. [사신의 술래잡기]는 모삼과 무즈선이, 그들이 L이라 이름붙인 이 연쇄살인마가 제시한 게임에 동참하면서 여러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 과정 속에서 빛나는 모삼과 무즈선의 활약이란! 그들의 실력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큰 줄기는 L과의 게임이지만 L이 제시한 범행의 범인을 잡는 과정 속에서 작가는 다양한 사건들과 피해자, 가해자의 모습을 그려낸다. 아직까지 발견되지 못한 살육과 죄악을 보여주겠다는 L의 경고로 작품은 긴장감을 유지한 채 이어지고, 그가 세상 앞에 드러내보인 사건들은 하나같이 잔혹하면서도 안타까웠다. 가해자로 밝혀진 이가 간직한 기구한 사연들에 과연 내가 그의 입장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또다시 수많은 희생자를 만들어낸 것은 잘못된 일임에 확실하다. 과연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 복잡한 세상 속에서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악에 휩쓸리기 쉬울 것이니 끊임없이 주의해야 한다.

 

작품 안에서 모삼과 무즈선이 묘사하는 범인의 모습이 무즈선과 비슷해 혹시 L이 무즈선은 아닐까 의심했다. 작품 끝에서 L의 정체가 밝혀질 것이라 예상했는데 아무래도 속편인 [사신의 그림자]로 이야기는 이어질 모양이다. 과연 L은 누구일지, [사신의 그림자]에서 작가는 또 어떤 사건들로 모삼과 무즈선의 활약을 그려낼 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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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여자의 사랑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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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에서 함께 읽는 도서로 선정된 앨리스 먼로 시리즈의 첫 번째 도서는 [착한 여자의 사랑]이다. 앨리스 먼로는 1931년 캐나다 온타리오주 윙엄에서 태어나 그녀의 유일한 장편소설로 여겨지는 [소녀와 여자들의 삶]을 이끌어가는 화자 델과 비슷한 나이인 열한 살 때부터 작가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첫 단편은 1950년에 발표되었고, 1968년에는 첫 단편집인 [행복한 그림자의 춤]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1998년에 발표된 [착한 여자의 사랑]. 총 여덟 편의 이야기가 실린 이 작품집에서 먼로는 여성들을 내세워 평범했던 그녀들의 삶과, 그런 삶 속에 찾아든 폭풍같은 사건들, 그 폭풍이 지나간 후 다시 이어지는 삶을 그려낸다.

 

표제작인 <착한 여자의 사랑>은 한 검안사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소년들에 의해 강물에 빠진 차 안에서 시체로 발견된 검안사 윌렌스. 그의 죽음의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채 시선은 보조간호사로 근무하면서 병자들의 집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이니드에게 옮겨진다. 사구체신염을 앓으며 죽음을 앞둔 퀸 부인은 이니드의 학창시절 동창인 루퍼트의 아내로, 그녀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고 있는 중이다. 아이들마저 멀리하는 퀸 부인 대신 루퍼트의 딸들을 돌보며 집안일을 해내는 이니드. 어느 날 퀸 부인으로부터 상상도 하지 못할 이야기를 듣게 된 이니드의 생활에 태풍이 불어닥치고, 퀸 부인이 세상을 떠난 후 고민 끝에 다시 루퍼트의 집을 찾는다. 죽음마저 각오하고 찾아간 그의 집에서 과연 이니드는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당신한테 말하고 싶은 게 있어요.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요.

-사람들은 나한테 많은 이야기를 해줘요.

-그렇겠죠. 다 거짓말이겠지만요. 장담하건대 다 거짓말일걸요.

p97

어떤 여자의 삶에서는 남편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어떤 여자는 어이없는 집주인을 만나 황당한 경우를 당하며, 어떤 여자는 오랜만에 만난 딸과 손주들과 보낸 시간 속 잠깐 위기감을 느끼기도 한다. 누군가 옆에서 지켜봤다면 잔잔한 물결같았던 그녀들의 일상. 그 일상에 갑자기 바람이 불고 그녀들을 흔든다. 하지만 바람은 곧 멈추고 다시 잔잔한 물결이 계속된다. 작가가 여성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담담하다. 그 중 누구도 작가의 대체 인물로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거리를 두고 묘사된다. 날카로운 시각으로 그저 그녀들의 삶에 일어난 한 순간의 사건을 관찰하고,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계속되는 삶을 연이어 노출시킨다. 독특한 것은 삶의 방향을 바꿔버리는 그 사건들이 여성들의 삶을 힘들게 했을 법도 한데 그 힘든 과정은 딱히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치 그 사건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처럼. 그런 일들이 있었더라도 시간은 흘렀고, 이렇게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먼 훗날의 모습만 살짝 비춰질 뿐이다.

 

가장 감정이입하면서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읽은 <자식들은 안 보내>. 결혼 후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폴린 앞에 연극을 준비하는 제프리가 나타난다. 연극 <외리디스>의 여주인공으로 발탁된 폴린. 하루하루 공연을 준비하면서 제프리와의 관계도 깊어진다. 가족들과 휴가를 보내기 위해 떠난 폴린을 쫓아 온 제프리. 그리고 결국 가족을 떠나 제프리를 선택한 폴린. 남편 브라이언은 체념한 듯 하지만 그녀를 가장 고통스럽게 할 말을 내뱉는다.

간밤에 브라이언은 차분하고 통제되고 거의 유쾌한 목소리로 통화를 했지만-충격을 받지 않은 자신, 반대하거나 매달리지 않는 자신을 대견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기어코 감정을 터뜨리고 말았다. 누가 들을지 모른다는 사실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경멸과 분노를 담아 말했다. "그래 그럼......애들은?" 폴린의 귀에 댄 수화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말했다. "그 이야기는......" 하지만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았다. "자식들은." 그가 여전히 복수심에 불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단어가 '애들'에서 '자식들'로 바뀌자 그녀는 판자로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무겁고 공식적이고 정당한 협박. "자식들은 안 보내."

p356

남편이 그렇게 나올 줄 몰랐던 걸까. 아이들을 지금까지처럼 당연히 자신이 키울 수 있을 줄 알았던 것인가. 아이들을 생각하지 않은 채, 오직 자신에게만 몰두해 한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어떻게 짐작도 못할 수 있을까. 제프리를 선택한 후의 폴린의 삶은 과연 어떠했는지 역시나 자세히 드러나있지 않다. 다만 아이들이 장성했고, 그 아이들이 폴린을 만나러 왔고, 큰 딸 케이틀린과 폴린은 그 때의 일을 역시나 담담하게 추억한다.

 

여기 실린 여덟 편의 이야기는 천천히 시간을 두고 읽어볼 것을 권한다. 일상을 뒤흔드는 사건들임에도 담담하게 서술되는 것에 반해, 이상하게 여성들의 심리를 따라가는 게 힘에 부쳤다. 그 담담했던 문체가 오히려 깊고 무겁게 다가왔던 것인가. 앞으로 남은 먼로의 작품은 과연 어떤 느낌으로 찾아오게 될 지, 기대되는 한 편 약간 두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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