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쉬즈 곤
카밀라 그레베 지음, 김지선 옮김 / 크로스로드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스웨덴의 작은 마을 오름베리.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러 들어간 눈 덮인 숲에서 말린이 백골 사체를 발견한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나고 그 숲에서 한 여성이 만신창이 상태로 구조된다. 그녀의 이름은 프로파일러 한네 라겔린드. 연인이자 동료 수사관인 페테르, 그리고 이제는 경찰이 된 말린과 또 다른 동료인 만프레드, 안드레아스와 팀을 이루어 8년 전 백골 사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오름베리에 와 있었다. 그러나 한네는 사라진 페테르의 행방도, 실종되었던 기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 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모두에게 숨긴 채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었던 한네. 모든 것을 자신의 노트에 기록해 두었지만, 그녀의 노트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또 다시 일어난 살인사건. 8년 전 백골 사체가 발견된 장소에 유기된, 얼굴이 뭉개진 한 여성의 사체. 수사팀은 이 사건이 과거의 사건과 연결되어 있음을 확신하고, 페테르의 생명이 위험에 처해있음을 직감한다.

 

한편 한네가 기록하던 노트는 오름베리에 살고 있는 소년 제이크가 가지고 있었다. 고등학생인 이 소년에게는 한 가지 비밀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가 가끔 여장을 한다는 것이었다. 보통의 남학생들과는 달리 예쁜 드레스, 구두, 반짝이는 매니큐어 등에 관심이 많은 제이크가, 한네가 발견된 그 밤에도 여장을 하고 숲을 산책하고 있었다. 한네가 떨어트리고 간 노트를 주웠지만 자신의 비밀 때문에 차마 경찰에 가지 못하는 제이크. 몰래 숨겨 그녀의 사건 기록을 읽어나가면서 노트에서 단서를 얻게 된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페테르의 행방을 알 수 있는 곳으로 향한다.

 

작고 쇠락한 마을 오름베리가 내뿜는 기운은 서늘하다. 예전에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났었지만 주요 작업장은 모두 문을 닫은 데다 심지어 정부는 이 마을에 난민수용소까지 허가했다.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아나가는 주민들과는 달리 난민이라는 이유로 정부의 지원을 받는 그들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감정은, 물론 좋을 리가 없다. 8년 전 발견된 백골 사체와 이번에 발견된 시체가 모두 난민과 관련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오름베리 출신인 말린과 다른 수사원들 사이에 일종의 골이 생기고, 그런 그녀를 향해 동료 수사원 안드레아스는 전쟁과 기아를 피해 탈출해야 했던 게 당신이었을 수도 있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이것은 작가가 전달하려고 하는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메시지다.

 

수사가 진전됨과 동시에 제이크가 읽는 한네의 노트 내용에도 가속도가 붙어 작품은 점점 긴장감이 더해진다. 사라진 페테르의 행방, 발견된 두 사체, 한네의 기억상실증. 다소 답답한 면이 없지는 않지만 작품이 전달하는 서늘한 기운에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 폐쇄적인 마을에 숨겨진 비밀. 그 비밀이 너무 잔혹하고 슬퍼서 마지막에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행할 수 있는 잔혹함의 끝은 어디일까. 그 잔혹함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한네는 완전히 기억을 잃어버렸던 게 아니었을까. 모든 것을 기억하는 채로 살아가기에는 삶이 너무 가혹하므로.

 

작가는 자매인 오사 트레프와 함께 심리학자인 시리 버그먼을 주인공으로 한 다섯 편의 범죄소설을 저술했고, 폴 린더-엥스트롬과 함께 모스크바 느와르 3부작 소설을 저술하기도 했다고 한다. 두 시리즈 모두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개인적으로 심리학자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가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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