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여자의 사랑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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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에서 함께 읽는 도서로 선정된 앨리스 먼로 시리즈의 첫 번째 도서는 [착한 여자의 사랑]이다. 앨리스 먼로는 1931년 캐나다 온타리오주 윙엄에서 태어나 그녀의 유일한 장편소설로 여겨지는 [소녀와 여자들의 삶]을 이끌어가는 화자 델과 비슷한 나이인 열한 살 때부터 작가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첫 단편은 1950년에 발표되었고, 1968년에는 첫 단편집인 [행복한 그림자의 춤]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1998년에 발표된 [착한 여자의 사랑]. 총 여덟 편의 이야기가 실린 이 작품집에서 먼로는 여성들을 내세워 평범했던 그녀들의 삶과, 그런 삶 속에 찾아든 폭풍같은 사건들, 그 폭풍이 지나간 후 다시 이어지는 삶을 그려낸다.

 

표제작인 <착한 여자의 사랑>은 한 검안사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소년들에 의해 강물에 빠진 차 안에서 시체로 발견된 검안사 윌렌스. 그의 죽음의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채 시선은 보조간호사로 근무하면서 병자들의 집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이니드에게 옮겨진다. 사구체신염을 앓으며 죽음을 앞둔 퀸 부인은 이니드의 학창시절 동창인 루퍼트의 아내로, 그녀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고 있는 중이다. 아이들마저 멀리하는 퀸 부인 대신 루퍼트의 딸들을 돌보며 집안일을 해내는 이니드. 어느 날 퀸 부인으로부터 상상도 하지 못할 이야기를 듣게 된 이니드의 생활에 태풍이 불어닥치고, 퀸 부인이 세상을 떠난 후 고민 끝에 다시 루퍼트의 집을 찾는다. 죽음마저 각오하고 찾아간 그의 집에서 과연 이니드는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당신한테 말하고 싶은 게 있어요.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요.

-사람들은 나한테 많은 이야기를 해줘요.

-그렇겠죠. 다 거짓말이겠지만요. 장담하건대 다 거짓말일걸요.

p97

어떤 여자의 삶에서는 남편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어떤 여자는 어이없는 집주인을 만나 황당한 경우를 당하며, 어떤 여자는 오랜만에 만난 딸과 손주들과 보낸 시간 속 잠깐 위기감을 느끼기도 한다. 누군가 옆에서 지켜봤다면 잔잔한 물결같았던 그녀들의 일상. 그 일상에 갑자기 바람이 불고 그녀들을 흔든다. 하지만 바람은 곧 멈추고 다시 잔잔한 물결이 계속된다. 작가가 여성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담담하다. 그 중 누구도 작가의 대체 인물로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거리를 두고 묘사된다. 날카로운 시각으로 그저 그녀들의 삶에 일어난 한 순간의 사건을 관찰하고,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계속되는 삶을 연이어 노출시킨다. 독특한 것은 삶의 방향을 바꿔버리는 그 사건들이 여성들의 삶을 힘들게 했을 법도 한데 그 힘든 과정은 딱히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치 그 사건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처럼. 그런 일들이 있었더라도 시간은 흘렀고, 이렇게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먼 훗날의 모습만 살짝 비춰질 뿐이다.

 

가장 감정이입하면서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읽은 <자식들은 안 보내>. 결혼 후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폴린 앞에 연극을 준비하는 제프리가 나타난다. 연극 <외리디스>의 여주인공으로 발탁된 폴린. 하루하루 공연을 준비하면서 제프리와의 관계도 깊어진다. 가족들과 휴가를 보내기 위해 떠난 폴린을 쫓아 온 제프리. 그리고 결국 가족을 떠나 제프리를 선택한 폴린. 남편 브라이언은 체념한 듯 하지만 그녀를 가장 고통스럽게 할 말을 내뱉는다.

간밤에 브라이언은 차분하고 통제되고 거의 유쾌한 목소리로 통화를 했지만-충격을 받지 않은 자신, 반대하거나 매달리지 않는 자신을 대견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기어코 감정을 터뜨리고 말았다. 누가 들을지 모른다는 사실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경멸과 분노를 담아 말했다. "그래 그럼......애들은?" 폴린의 귀에 댄 수화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말했다. "그 이야기는......" 하지만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았다. "자식들은." 그가 여전히 복수심에 불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단어가 '애들'에서 '자식들'로 바뀌자 그녀는 판자로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무겁고 공식적이고 정당한 협박. "자식들은 안 보내."

p356

남편이 그렇게 나올 줄 몰랐던 걸까. 아이들을 지금까지처럼 당연히 자신이 키울 수 있을 줄 알았던 것인가. 아이들을 생각하지 않은 채, 오직 자신에게만 몰두해 한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어떻게 짐작도 못할 수 있을까. 제프리를 선택한 후의 폴린의 삶은 과연 어떠했는지 역시나 자세히 드러나있지 않다. 다만 아이들이 장성했고, 그 아이들이 폴린을 만나러 왔고, 큰 딸 케이틀린과 폴린은 그 때의 일을 역시나 담담하게 추억한다.

 

여기 실린 여덟 편의 이야기는 천천히 시간을 두고 읽어볼 것을 권한다. 일상을 뒤흔드는 사건들임에도 담담하게 서술되는 것에 반해, 이상하게 여성들의 심리를 따라가는 게 힘에 부쳤다. 그 담담했던 문체가 오히려 깊고 무겁게 다가왔던 것인가. 앞으로 남은 먼로의 작품은 과연 어떤 느낌으로 찾아오게 될 지, 기대되는 한 편 약간 두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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