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사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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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시절 함께 했던 미식축구 동료들과 동창회가 열렸던 밤, 쿼터백이었던 니시와키 데쓰로는 동창회에는 참석하지 않은 팀 매니저 히우라 미쓰키를 만난다. 어딘가 어색하고 불안정해 보이는 그녀. 미쓰키는 자신은 이제 더 이상 여성이 아니며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아주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는 비밀을 털어놓는다. 충격적인 이야기도 잠시, 미쓰키의 입에서 흘러나온 자신이 한 남자를 살해했다는 더 놀라운 고백. 니시와키와 그의 아내인 리사코는 미쓰키가 경찰의 수색을 피할 수 있게 도와주려 하지만 그녀는 곧 모습을 감추고 만다. 

 

느닷없는 미쓰키의 고백에 놀란 것은 니시와키 뿐만은 아니었다. 나 또한 초반부터 밝혀진 미쓰키의 비밀에 깜짝 놀라고, 이것은 과연 무슨 소설인가 짐작하느라 바빴다. 남성으로 변모해가는 과정 속에서도 미쓰키는 니시와키에게 애정이 있었나, 살인사건은 어쩌다 일어난 것일까, 과연 이 작품은 어떤 결말을 보여주기 위해 이러나!! 표면적으로는 미스터리이지만, 그 안에는 인간을 향한 깊은 고뇌가 담겨 있다. 젠더는 무엇이고, 그 틀을 정하는 것은 누구이며, 우리의 삶을 규정짓는 것은 자신인가 타인인가 하는 문제들. 

 

미쓰키의 뒤를 추적하며 니시와키는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반음양 선수인 무쓰미,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견디지 못해 결국에는 수술을 감행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나가는 사람들. 사실 젠더 문제에 대해 나름 열려 있다고 생각했는데, 작품 안에서 맞닥뜨리는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내 자신을 보면서 나 또한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인간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두려워해요. 그래서 배제하려 하죠. 아무리 성정체성장애라는 단어가 부각되어도 변하는 것은 없어요. 받아들여지길 바라는 우리 마음은 전해지지 않을 거예요. 짝사랑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죠. 

p423

 

작품 속에서 니시와키가 만난 사람들 중 가오리의 말이 인상적이다. 이 세상에는 완전한 남자도, 완전한 여자도 없다는 말. 우리는 모두 뫼비우스 띠 위에 있고 각자가 지닌 뫼비우스의 띠도 하나가 아니라는 말. 인간은 단순하면서도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내 안에 내가 알고 있는, 혹은 알지 못했던 다양한 모습이 분명 존재한다. 그것을 드러내고 살아가느냐, 숨기고 살아가느냐의 문제일 뿐. 그 모든 것이 결국 '나'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받아들여지길 원하는 존재들이다. 쉽지 않은 그 일을, 미쓰키를 향한 사랑으로 실현한 나카오는 우리 모두의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 

 

최근에 쓰여진 작품인 줄 알았는데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일본 <주간문춘>에 연재되었던 소설이라고 한다. 개념 자체도 복잡하지만, 여전히 젠더에 민감한 시대적 상황을 감안해보면 무척 앞서나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순한 추리소설이 아니라 인간의 실존과 연결지어지는 철학적인 이야기. 압도적인 분량으로 인간에 대해 성찰해온 히가시노 게이고. 그 이름이 전혀 아깝지 않은 작품이었다.

 

** 출판사 <소미미디어>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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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함과 분노 열린책들 세계문학 280
윌리엄 포크너 지음, 윤교찬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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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같은 언어 속에서 피어나는 격동의 가문 이야기] 

 

지금까지 화자의 시점은 말 그대로 그의 시각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물의 느낌이나 기분, 의견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윌리엄 포크너의 [고함과 분노]를 읽다보면 더 나아가 한 사람의 정신상태까지도 충분히 알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적 장애를 가진 벤지의 시점,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혼자만의 문제에 갇힌 퀜틴의 괴로움과 혼란스러운 상태, 제임스의 냉소적이고 신랄하며 몰인정한 모습들이 작가가 고안해낸 문체 안에서 선명하게 느껴진다. 

 

몰락해 가는 미국 남부의 명문가 콤슨 가문. 반항적인 데다 성적으로도 자유분방한 장녀 캐디와 그런 캐디에게 뒤틀린 애정을 느끼는 퀜틴, 오직 돈에 대한 집착만이 삶의 목표인 제임스, 지적 장애를 가진 막내 벤지. 어쩐지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품 설명에 무척 기대하며 펼친 첫 부분에서부터 머리가 띵-해왔다. 벤지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1부는 과거와 현재를 너무나 자유롭게 넘나들고, 과거와 현재 속에서조차 앞뒤가 무질서하게 진열된다. 아무리 벤지의 시점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하지 않나 하며 퀜틴의 장으로 넘어갔을 때도 입이 떡 벌어졌다.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은 퀜틴임에도 난해하게 다가오는 그의 사고들. 세 번째 장인 제임스의 이야기를 읽었을 때에야 어째서 작가가 이런 기법들을 사용했는지 간신히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작가가 다른 이들처럼 평범한 전지적 작가 시점을 사용했더라면 벤지와 퀜틴의 이야기가 그리 생동감있게 다가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누구 하나 행복한 사람이 없다. 냄새로 모든 것을 알아차리는 벤지는 거세라는 비인간적인 처사까지 당하고 제임스로부터 매번 정신병원에 보내버려야 한다는 언어 폭력을 들으며 살아가고 있는 상태다. 자신의 내적인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한 장남 퀜틴이나 사생아 딸로 인해 결혼이 파탄난 후 그 딸마저 제대로 만나지 못하는 캐티, 억압된 생활을 견디다 못해 연인과 도주하는 모습을 보이는 캐티의 딸, 가족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결국에는 돈에만 집착해가는 제임스 모두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이런 몰락해가는 가문 속에서 어지간하면 보기 싫은 인물을 꼽지 않으려 했으나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자 미운 캐릭터는 이들의 엄마였다. 벤지의 시각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에는 그를 돌보는 러스터가 벤지에게 '그만 징징대'라는 말이 수도 없이 등장하는데, 나는 이 말을 이 엄마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나쁜 것은 다 남편을 닮고 좋은 것은 자신을 닮았기를 바랐던 것일까. 캐티와 퀜틴은 콤슨 가문으로, 오직 제임스만 자신의 친정인 배스콤 가문의 일원이라며 추켜세우는 모습이나 생활에 밝지 못한 모습 등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그녀 때문에 제임스의 인생이 더 망가져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문의 몰락에 그녀가 일조한 점이 적지 않다. 

 

[고함과 분노]라는 제목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맥베스>의 맥베스가 뱉은 독백에서 따 온 것이라 한다. '인생은 바보 천치가 고함치고 화를 내면서 떠들어대는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일 뿐'이라고 울부짖으며 생을 마감한 맥베스. 제목 덕분인지 작품을 읽는 내내 인물들의 외침이나 격한 감정들이 그대로 전달되어오는 듯한 기분이었다. 삶은 이토록 어렵고 가혹한 것인가. 난해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읽다보면 이상하게 마법처럼 그 어려운 문장 안으로 끌려들어가는 느낌이 강해졌던 작품. 쉽게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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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힘 2 - 최고의 나를 만드는 62장의 그림 습관 그림의 힘 시리즈 2
김선현 지음 / 세계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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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전달하는 최고의 안식과 치유의 마법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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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힘 2 - 최고의 나를 만드는 62장의 그림 습관 그림의 힘 시리즈 2
김선현 지음 / 세계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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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은 그림 관련 도서들은 대부분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화가와 그림이 그려진 배경, 역사, 그림이 그려진 기법,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과학적인 원리 등에 대한 것이었죠. 책을 읽으면서 뿌듯했고 뭔가 하나라도 더 알게 되면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었어요. 뭔가 그림과 내가 더 가까워진 듯한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그렇게 보는 그림도 무척 좋았지만, 그림을 통해 '습관'을 만들 수 있다니 신기했어요. 그림으로 어떻게 최고의 나를 만들 수 있지, 그게 가능한가, 과연 예술도서인 [그림의 힘]이라는 이 책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줄지 무척 기대되었습니다. 

 

저자는 20년간 미술치료 현장에서 사람들에게 심리적인 안정을 찾아준 이였습니다. 매일의 일상을 조금 더 낫게, 최고의 상태로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믿고 엄선한 62점의 그림. 그 포문을 열어준 작품은 귀스타브 쿠르베의 <팔라바의 바닷가>입니다. '하루하루의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이라는 소재에 사용되었는데, 저는 이 소제목을 보고 살짝 놀랐어요. 연말이 다가오기 때문인지 갑자기 의욕도 없고, 매일매일의 인생이 굉장히 덧없다고 느끼고 있던 참이었거든요. 그 와중에 결심한 것은 '루틴을 지키자' 였는데, 어쩐지 제가 다짐한 것과 소제목이 겹치는 느낌이 들어 제 마음이 간파당한 기분이었습니다. 탁 트인 바다 앞에서 안녕을 고하는 누군가. 그에 대해 저자는 '내 할 몫은 다 했다'라는 문장으로 그림의 느낌을 설명합니다. 어쩐지 안심이 되지 않나요. 내 할 일은 다 했으니 이제 결과는 나의 몫이 아니다, 진인사대천명이라는 한자가 생각나기도 하는 그림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소개된 피에트 몬드리안의 작품도 흥미로웠어요. 왜냐하면 이 그림의 제목은 '보기만 해도 머리가 좋아지는 그림'이었거든요. 결혼하기 전에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아이들을 낳고나니 귀가 좀 얇아졌는지, 이 소제목을 보고 당장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생각했지 뭐예요. 오방색을 활용한 이 그림이 우리 몸의 각 기관과 연결된다고 보는 한의학의 음양오행과도 연관되어 있어서 머리를 좋아지게 하는 요소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니, 부모로서 욕심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이 심미적으로 좋아할만한 형태와 색깔을 본능적으로 알아채 만들어낸 결과물. 머리에 좋다는 음식 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머리에 좋다는 그림을 접해보시면 어떨까요.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중에서느 어떤 작품을 좋아하세요? 많은 분들이 <별이 빛나는 밤>이나 <해바라기>는 잘 알고 계실텐데 저는 <꽃 피는 아몬드 나무>가 참 마음에 들어요. 그 파란 색감이나 하얗고 작은 꽃들이 너무 아름답잖아요. 여기에 담긴 고흐와 동생 테오의 일화도 훈훈합니다. 테오에게 아들이 태어났고, 동생이 아들의 이름을 '빈센트'라고 지었다는 소식에 고흐는 그 아이의 침실에 걸어둘 그림을 가능한 빨리 그리겠다고 결심합니다. 그 작품이 바로 이 <꽃 피는 아몬드 나무>인데요, 아몬드는 봄이 오기 전 추운 겨울에 꽃을 피우는 나무로, 생명력과 희망을 상징해요. 아이에 대한 삼촌의 사랑과 축복이 넘치는 그림인 데다, 어쩐지 강렬하기만 했던 고흐의 작품 중 부드럽고 온화한 느낌이 전달되는 것 같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그림의 힘을 믿는 저자가 쓴 책이기 때문인지 이상하게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그림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게 됩니다. 1권보다 더 심혈을 기울였다는 말에, 저 또한 글자 하나하나 허투루 읽게 되지 않더라고요. 긍정에너지를 채우기 위해, 뇌를 자극하기 위해, 놀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 피로가 몰려올 때, 혼자라고 느껴질 때 들여다보면 좋을 그림들이 이 책에 실려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바쁘고 피곤한 일상 속, 그림 한 점으로 잠깐의 휴식을 얻어보면 어떨까요. 


** 네이버 독서카페 '리뷰어스클럽'을 통해 <세계사>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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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함과 분노 열린책들 세계문학 280
윌리엄 포크너 지음, 윤교찬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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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세 번째 화자는 콤슨 가의 차남 제이슨이다. 어머니로부터 콤슨 가가 아니라 배콤스 가(어머니의 친정)로 분류받는 은혜(?)를 누리지만 그가 처한 상황은 전혀 은혜롭지 않다. 제이슨의 시점은 형 퀜틴은 이미 자살하고, 아버지조차 술로 인해 돌아가신 후로 그에게 남은 사람은 '내가 죽어야지'를 연발하는 어머니와 벤지, 엄마 캐디로부터 거의 버림받다시피 한 조카 퀜틴 뿐이다. 아, 늙은 딜지도 있다. 하지만 제이슨에게 딜지는 그저 깜둥이 노예일 뿐.

 

제이슨의 시각에서 읽히는 [고함과 분노]는 한결 읽기가 편하다. 어째서인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벤지가 화자로 등장한 부분은 벤지의 정신세계를, 퀜틴이 등장한 부분은 퀜틴의 정신과 심리를, 제이슨 부분은 제이슨의 생각을 드러내기 때문이었다. 정신적으로 장애를 가진 벤지와 시간의 덫에서 빠져나오려 애썼던 퀜틴의 불안정한 부분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에 비해 제이슨의 사고는 단순하며 철저히 현실에 뿌리내려져 있다.

 

그러나 제이슨은 신랄하고 냉정한 사람이다. 그를 그런 사람으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어머니. 그 어머니를 보고 있자면 나조차도 짜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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