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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비밀 미술관 - 모든 그림에는 시크릿 코드가 있다
데브라 N. 맨커프 지음, 안희정 옮김 / 윌북 / 2021년 6월
평점 :
품절

거실 전면책장 한자리에 [동물미술관]이라는 책이 꽂혀 있다. 여러 명화 속 인물들을 동물로 바꿔 다시 그린 그림인데, 글씨는 많아도 아이들이 지나다니면서 오다가다 관심 좀 가져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전시해둔 것이다. 어디서 본 것 같다 싶으면서도 정작 그림의 원작을 찾아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나는, 그 그림의 원작을 이 책 [처음 보는 비밀 미술관]에서 발견했다!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 하고 많은 동물 중에 왜 담비인가. 그러고보니 [동물미술관] 책 표지의 그림에서도 여인 대신 담비가 그려져 있는 것 같다.
담비는 겨울이면 털갈이로 갈색 털이 드문드문해지고 흰 털이 빼곡히 자라나 흰담비라고 불린단다. 약해보이지만 은근 공격적이라는 이 맹수를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안고 있는 이 여인은 대체 누구인가. 1900년에 발견된 한 편지로, 그녀가 왕실 재무 관리의딸 체칠리아 갈레라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체칠리아는 통치자의 삼촌이자 섭정이었던 루도비코 스포르차의 정부였는데, 그는 어두운 얼굴빛 때문에 '레르멜리노(담비)'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데다 체칠리아와의 관계가 시작되기 직전 하얀 털을 더럽히느니 죽음을 택한다는 담비의 순수성에서 착안된 흰담비 기사단에 가입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이 초상화의 필수 요소인 담비가 다빈치의 초안에는 없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엔지니어 파스칼은 층간증폭법을 활용해 다빈치의 자세한 작업 과정을 추적했는데, 그 연구에서 완성된 초상화 밑에 두 개의 초안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혼자 있는 체칠리아에서 담비를 안고 있는 체칠리아로 변모한 속사정에 대해 이런 저런 속설이 있는 듯 하나, 나는 무엇보다 오늘날의 과학기술이 이렇게나 발전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이 작품 외에도 여러 그림들이 현미경, 적외선, 자외선 분석을 통해 그 밑에 숨겨진 비밀들을 이제야 세상에 선보이고 있다.
여러 그림책들을 읽으면서 그림에 담긴 이야기를 많이 알수록 보이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이 역사적인 사실이든, 그림이 그려진 배경이든, 과학적이거나 수학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그려진 그림이든 모든 그림에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 비밀을 탐색해나가는 과정이, 그야말로 나는 너무 즐겁다. 이번에 접한 [처음 보는 비밀 미술관]에는 그림이 그려진 배경, 그림에 숨겨져 있던 비밀을 파헤친 경위 등이 함께 밝혀져 있어 그 즐거움이 두 배는 증폭된 것 같다. 물감 속에, 그 표면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고, 작품의 어느 한부분을 확대시킨 세심한 배려 덕분에 상징과 의미를 더 잘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이 책에는 명화 뿐만 아니라 다수의 사진작품과 조각들도 실려 있다. 그 중 압도적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도미노 설탕공장의 철거를 맞이하여 사탕수수밭에서 신대륙의 부엌까지 우리의 설탕을 정제하느라 임금도 받지 못하고 과로했던 장인들에게 표하는 경의-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카라 워커의 <슈거 베이비>다. 우연히 책을 함께 들여다본 첫째 아이가 '엄마, 이건 뭐야? 괴물이야?'라고 물어볼 정도로 다소 괴상한 모습을 한 이 조각상은, 철거가 예정된 도미노 설탕 공장 일부인 5층 높이 창고에 전시되었다. 노예노동으로 돌아가던 옛 설탕 산업의 잔혹한 관행이 반영된 이 조각상은 설탕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 외에도 뱅크시의 <쓰레기통 속의 사랑>이 정말 놀라웠는데, 자세한 내용은 부디 책을 통해 확인해보시길 바란다.
팬데믹으로 인해 미술관 관람을 잘 하지 못하고 있어서 느끼고 있던 갈증을 또 이 책으로 해소했다. 방에 가만히 앉아 이런 저런 예술작품들을 구경할 수 있는 호사! 무엇보다 판형이 크고 종이질이 고급스러워서 매우 만족스럽다!

**출판사 <윌북>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