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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메론 프로젝트 - 팬데믹 시대를 건너는 29개의 이야기
빅터 라발 외 지음, 정해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6월
평점 :

2020년 초부터 코로나 바이러스가 닥친 이후 나의 모든 관심사는 '아이들'이었다. 첫째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도 그랬지만 '팬데믹'이라는, 전지구적 재난 속에서 나의 임무는 아이들을 지키는 것. 독서와 그 임무 외에 나의 생활을 지배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려나. 본래도 예민한 신경은 아이들이 관계되어 있는 상황 속에서 그 정도가 더해갔고, 옆지기가 누구를 만나러 간다고만 해도 지레 겁을 먹었다. 마치 그 옛날 곰이 사람이 되기 위해 동굴 속에서 마늘과 쑥을 먹으며 버텼던 것처럼 그렇게 아이들을 품에 안고 이 시간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는데, 이 상황은 도무지 나아질 것 같지 않다. 나아지기는 커녕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로 또다시 가정보육을 눈앞에 두고 있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아이들의 체온을 재는 것. 조금이라도 미열이 있거나 코가 막히거나 컹컹 기침을 하면 바로 병원으로 직행한다. 설마-라는 단어로 약간의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는 것, 그것이 육아니까. 때문에 총 29편의 이야기가 실린 [데카메론 프로젝트]에서 내가 가장 공감하며 읽었던 작품은 리즈 무어의 <임상기록>이었다. 아기가 열이 있는 상황에 대해 팩트와 근거로 나누어 서술되어 있는 이 작품은, 그 자체로 안절부절 못하며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내 마음을 울렸다. '따뜻하지만 뜨겁진 않군'. 이런 느낌이 얼마나 많은 부모들을 안심하게 하는지, 육아전선에 뛰어들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일종의 구호, 일종의 기도'다.
14세기에 쓰인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흑사병이 피렌체를 황폐화시키고 있을 때 그 도시 밖으로 피신한 한 무리의 남녀가 서로를 위해 들려주는 이야기를 액자소설 형태로 모은 선집이다. 2020년 3월 이 책이 서점에서 팔려나가기 시작했는데 많은 독자가 이 오래된 책에서 지침을 찾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소설가 리브가 갈첸이 독자들이 현재 순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하여 [데카메론] 리뷰를 쓰고 싶다고 밝힌 것에 착안하여, <뉴욕타임스>의 책임 프로듀서인 케이틀린 로퍼는 우리 시대의 [데카메론]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탄생한 [데카메론 프로젝트]. 총 29인의 작가가 써내려간, 전염병의 시대를 견디는 고통과 희망의 이야기.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나의 사랑 너의 사랑 마거릿 애트우드의 단편이 실려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녀는 과연 이 전염병의 시대에 독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을까. 그녀의 작품인 <참을성 없는 그리젤다>는 은하계 간 위기 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지구로 보내진 '문어'처럼 보이는 외계인이, 격리된 지구인들에게 쌍둥이 자매 그리젤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야기의 결말은 다소 잔인하지만 나는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저는 결말은 다른 이야기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게는 흥미 없는 이야기죠. 그런 이야기라면 제가 잘 하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주의를 집중시킬 만큼은 말이에요. 이 점은 인정하셔야 할 겁니다.
징징거리는 것도 멈추지 않았습니까.
p 108
중요한 것은 '징징거리는 것도 멈췄다'이다. 작가는 아무리 고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어도 '이야기'만 있다면 우리의 징징거림은 멈출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것이 이 시기를 보내는 하나의 방법이며, 그 방법이야말로 위대한 이야기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길이라고.
[데카메론 프로젝트]에 들어 있는 모든 이야기는 작가들의 그런 희망 아래 탄생한 것이라고 믿는다. 자신들이 써내는 이 이야기로 잠시나마 독자들이 현실을 잊고, 현실이되 현실같지 않은 세상 속에서 끈기를 가지고 살아남기를 바라는 희망. 덕분에 영미권 작가 뿐만 아니라 다양한 나라의 작가들의 주옥같은 작품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니 버텨보자. 견뎌보자. 이 재난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항상 우리 곁에 있다!
**출판사 <인플루엔셜>을 통해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