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정호승 지음, 황문성 사진 / 비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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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성당을 가지 못할 것 같아 미리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신부님이 베드로 이야기를 하시네요. 고기를 잡으려고 오랜 시간 기다렸지만 수확이 없어 낙담한 베드로 앞에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더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져라- 신부님께서는 이 일화를 소개하시며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는 전적인 신앙에 대해 말씀하셨지만 정호승 작가님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남의 충고를 받아들이는 겸손한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해석도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전 날라리 신자이기는 하지만 오늘의 신부님 말씀은 작가님 덕분에 더 귀에 쏙쏙 들어왔던 것 같아요. 으흣.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를 잇는 두 번째 책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입니다. 첫번째 책보다 조금 더 두꺼워진 것만 제외하고는 전작과 동일한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들려주는 짧은 이야기. 길지 않은 이야기 속에 작가의 체험과 인용구들이 함께 실려 있어 이번에도 역시 따스한 마음으로 읽었어요. 전작보다 조금 더 깊어진 느낌입니다. 모든 벽은 문이다, 견딤이 쓰임을 결정한다, 스스로 자기 자신의 스승이 되라 지금도 늦지 않았다, 미래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다, 다람쥐는 작지만 결코 코끼리의 노예가 아니다, 누구나 자기만의 사막을 지니고 있다와 같은 위로의 말씀들. 제목만으로도 그 내용을 헤아리기 어렵지 않아 오히려 더 쉽게 다가오는 것 같았어요. 때로 긴 말보다는 한 마디의 툭 던지는 말에서 더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요.

 

굳이 마음 아픈 이들만 읽어야 하는 책은 아니랍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조용한 시간을 갖기 어려운 일상을 되돌아보고, 그 안에서 차마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솔직하게 자신의 지난 시간을 반성하는 작가님의 모습 또한 위안이 되고요. 나만 늘 잘 못하고 있는 것 같고 나만 늘 부족한 사람이다 여겼었는데 그 누군가도 똑같이 아파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위로를 받는 건,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정호승 작가님의 시나 또 다른 작가님들의 다양한 작품도 엿볼 수 있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언제쯤 되면 무언가를 깨닫고 그 깨달음에 대해 솔직하게 내비칠 수 있게 될까요. 작가님의 연륜에 새삼 감탄을 느끼며 저도 앞으로는 그때그때 깨달은 것에 대해 메모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만을 위한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를 만들어보는 것도 멋진 일일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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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 정호승 산문집
정호승 지음 / 비채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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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우리 사이에 가장 유행했던 단어는 '힐링'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삶에 지쳐있고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있다는 증거겠죠. 힐링 책, 힐링 영화, 힐링 강연. 한편으로 저는 힐링이 너무 유행처럼 번지는 것은 아닌가 염려하기도 했어요. 넘쳐남은 모자란 것만도 못하다는 말도 있잖아요. 힐링의 대유행은 곧 힐링은 그 어디에도 없음을 반증하는 것 같아 저 혼자 스스로 '힐링'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 말아야지 다짐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마음을 다독거려주는 책을 멀리하기도 했는데요, 좋은 글귀를 읽는 것도 좋지만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그것은 한순간에 지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말 오랜만에 읽는 '마음 다스리기' 책은 참 좋네요. 누군가가 해주었으면 하는 이야기, 소중한 사람들에게 듣고 싶었던 말을 책을 휘리릭 넘기면서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정호승 작가님은 시집을 통해서만 만났어요. 그것도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고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시집의 제목이 마음을 흔든 적이 있었거든요. 아주 오래 전에 읽은 후로 작가님의 책은 오랜만입니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3~4장 정도 되는 이야기들이 실려있는데요, 사람마다 책을 읽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저는 각각의 이야기의 제목을 먼저 휘리릭 훑어보시기를 권해드려요. 그 중에서 자신의 마음에 가장 와닿는 이야기부터 먼저 읽다보면 이 책의 부드러움과 편안함에 쉽게 빠져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대소변을 몸 밖으로 버리듯 번뇌와 망상도 미련 없이 버리세요> 부분이 가장 와 닿았습니다. 사소한 것에도 쉽게 겁을 먹고 온갖 잡다한 생각 속에 스스로를 괴롭힐 때가 많은 저에게 해결책(?)을 제시하는 글이었다고 할까요. 게다가 뜻하지 않게 접한 부분이 지금의 제 상황과 어울리는 것도 같아 발췌해봅니다. 으힛.

 

베풀어주겠다는 마음으로 결혼하면 길가는 사람 아무하고나 결혼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덕 보겠다는 생각으로 고르고 고르면, 백 명 중에 고르고 골라도, 막상 고르고 보면 제일 엉뚱한 것을 고르게 됩니다.  

생전에 주례를 딱 두 번 보셨다는 성철스님의 말씀을 인용한 부분입니다. 아무래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부모님께서 결혼을 재촉하셔서 가끔 다툼 아닌 다툼(?)을 하고 있는 저로서는 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말씀이었어요. 그 동안 사귀었던 사람들, 그리고 소개받았던 사람들을 나는 어떤 눈으로 보고 있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있었는지 반성도 했답니다.

 

이 책에서 작가님이 들려준 이야기는 모두 작가님 자신의 이야기는 아니에요. 보고 들은 것을 인용한 부분도 많은데 저는 오히려 그런 점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작가님도 늘 끊임없이 배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일까요. 사실 저는 작가님 사인회도 다녀왔답니다.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의 2탄 격인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출간 기념으로요. 따스한 문체만큼이나 온화한 미소를 지닌 분이셨어요.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에서는 작가님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지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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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꽃, 눈물밥 - 그림으로 아프고 그림으로 피어난 화가 김동유의 지독한 그리기
김동유 지음, 김선희 엮음 / 비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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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는 잘 알지 못했던 김동유님의 그림에세이입니다. 굳이 분류하자면 여러 가지 그림들을 소개해주는 책이 아니라 자서전같은 책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굉장히 선한 인상의, 고집이라고는 단 한줄도 보이지 않는 화가의 얼굴에서 고생이라는 그늘은 단 한 점도 찾아볼 수 없었어요. 그림을 그려온 세월들을 그는 어려움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겠죠. 아무리 어려운 시절을 보냈어도, 그 순간에도 그는 그림에 대한 열정과 사랑으로 불타오르고 있었을테니까요. 그런 뜨거움이 부럽기도 했지만 그것은 어쩌면 비범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열정의 시간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질투와 심술이 나네요.

 

단 한 가지만 보고 굳건하게 걸어간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요. 정말 그는 단 한 순간도 흔들린 적이 없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도 흔들렸겠죠. 그림을 반대하는 부모님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가족을 바라보면서 그의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므니다~일 겁니다. 그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림, 그 하나였다는 것을 생각하니 도대체 얼마나 단단한 성품과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상상하기 쉽지 않네요.

 

더불어 저는 화가 김동유 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에게 더 자주 눈길이 갑니다. 몸이 아프다고 해도 무뚝뚝하게 대꾸하고 가족들은 안중에 있는지 없는지 오직 그림 그리기에만 몰두하는 남편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요. 아내의 입장에서는 어찌나 이기적인 남편이신지. -가난은 환쟁이의 부록-이라며 축사같은 곳을 개조해서 집이라고 살려니 아내 분의 마음 고생이 얼마나 심했을지 같은 여자 입장에서 공감이 되고도 남습니다. 화가로서는 성공했지만 남편으로서는 어떨지 그녀의 입장이 아니라면 알 수 없을 거에요. 그나마 이제 조금 살림이 피셨을테니 마음이 많이 누그러지셨기를. 화가 김동유님 옆에 아내분이 있었기에 그가 묵묵히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는 것을 그도, 그녀도 아시기를 바랍니다.

 

살림이 좀 나아지자 좋은 곳으로 이사가자는 아내와는 달리 원래 있던 곳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했다는 그. 아내 입장에서는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얄미운 발언이었겠지만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오!!'라는 감탄이 저절로 나오더군요. 우쭐하지 않고 그림 앞에서 늘 겸손한 그의 자세가, 비록 가족들 앞에서는 인정머리 없어 보일 때도 있었지만, 그림에 대한 사랑만큼은 그 누구보다 깊고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까요. 그림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지식을 갖추지 못한 저로서는 그의 그림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는 잘 알 수 없었지만, 마릴린 먼로의 작은 얼굴들로 이루어진 존 F 케네디의 얼굴 등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기적이고 외곬수인 화가이지만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린 후에도 자만하지 않고 그림만 바라보며 후학을 기대하는 그의 행보가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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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낙엽
토머스 H. 쿡 지음, 장은재 옮김 / 고려원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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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엔 단지 아주 많은...오해가 있었군요.

 

행복하다고 믿었던 한 가족이 있습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에릭과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메러디스와 그들의 10대 아들 키이스.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소심하고 겁많아 보이고 말이 없을 뿐 아니라 친구도 없는 아들에 대해 걱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리 큰 문제는 없었어요, 그 날까지는. 가끔 이웃인 빈센트 지오다노의 딸 에이미를 돌봐주던 키이스가, 하필 늦게 귀가하고 이상한 행동을 보인 밤, 에이미가 실종됩니다. 에릭은 필사적으로 아들을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자신은 분명 그랬다고 생각하겠지만) 경찰은 키이스를 주요 용의선상에 두었고, 에이미의 가족들은 아이를 돌려달라며 에릭의 가족들을 위협하죠. 하지만 그 모든 일보다 더 무서운 일은, 에릭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유괴범의 용의자로 지목되는 사건을 통해 일어나는 아버지의 마음 속 의심과 빠르게 붕괴되어 가는 가족의 모습을 그려낸 이 작품은, 한 번 마음 속에 자리잡은 의혹이 얼마나 끔찍하게 번져가는지를 세심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경찰이 주인공도 아니고 범인을 잡아내는 과정이 스릴있게 그려져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어떤 스릴러보다 강한 긴장감을 선사합니다. 모두 네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데 앞의 두 챕터는 롤러코스터의 올라가는 과정, 뒤의 두 챕터는 내려가는 과정에 비유하면 될까요. 특히 마지막 챕터에서 드러나는 사건의 모든 진실에는 빠르게 질주하는 롤러코스터에 탄 것 같은 긴장감과 숨가쁨, 그리고 안타까움이라는 감정이 모두 숨어 있습니다.

 

지난 주에 S본부에서 방영한 <학교의 눈물>에 등장한 부모들의 인터뷰 중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습니다. 내 아이가 피해자가 되었을 때만 상상했지, 가해자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는. 아마 모든 부모의 마음이 같지 않을까요. 어느 누가 내 아이가 끔찍한 범죄의 가해자일 거라고 상상이나 하겠습니까. 에릭도 처음에는 뭔가 착오가 있었을 거라며 키이스를 감쌉니다. 하지만 평소 때 키이스가 보여주었던 미덥지 못한 행동, 친구 하나 제대로 사귀지 못하는 성품, 음울한 분위기로 인해 그만 품어서는 안 될 감정을 품고 말아요. 그리고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인 키이스는 아버지의 그런 감정을 알아채고 절망하죠. 과연 어떻게 행동하는 게 옳은 것일까요. 내 아들은 아닐 거라고, 그럴 리 없다고 끝까지 믿어야 할까요. 아니면 내 자식이지만 실현되어야 할 정의를 위해 조금이라도 의심을 품어야 할까요.

 

불우한 가족사를 가진 에릭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 주저하는 인물입니다. 어머니의 죽음, 여동생의 병사, 빈곤한 말년을 보내는 아버지와 조금 모자라 보이기까지 하는 형. 첫 번째 가족은 실패했다는 감정을 가지고 어떻게든 자신이 이룬 가정만은 지키기 위해 몸부림쳐요. 그래서 아들 키이스와의 대립을 줄곧 피해왔던 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에이미가 사라지고 키이스와 대립하면서 마음 속에 싹튼 의심들은 이제 키이스 뿐만 아니라 형, 아내에게까지 미치고 그렇게 분출된 감정들로 인해 어느 순간 키이스에게 한 발 다가섭니다. 그러나 예고없이 일어난 불행한 사건. 그 사건으로 에릭을 인도한 것은 운명이었을까요, 오해였을까요.

 

굉장히 많은 의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다 읽고 난 뒤엔 마음이 상해 한참동안 책을 이리 펴보고 저리 펴보고 했어요. 할런 코벤과 조이스 캐롤 오츠가 극찬한 작품인만큼 기대가 컸는데, 그 마음은 충족되었지만 제목만큼이나 마음이 쓸쓸하네요. 과연 이 처절한 감정들과 안타까운 이야기를 영화에서는 어떤 영상과 음악으로 그려낼 지 기다려지지 않는 듯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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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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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읽어온 히가시노 작가의 작품답지 않은, 굉장히 따스하고 가슴 뭉클한 미스터리입니다. 미스터리한 점이 분명 있지만, 저는 이 작품에서 그것은 미스터리가 아니라 역시 '기적'이라고 부르고 싶네요. 여기 저기 얽힌 선들 속에서 하나로 뭉쳐지는 실타래처럼 그렇게 연결되어 있는 등장인물들의 인연은 신기하기만 하고, 우리는 알 수 없는 큰 지도가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이렇게 지나가는 하루하루도 그저 평범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을 겁니다. 이 모든 날들이, 어쩌면 지금 적는 작은 문장들이 모여 또 어떤 인연을 만들어낼지 알 수 없을테니까요. 아우, 그래서 일상 미스터리가 참 좋아요!!

 

나미야라는 잡화점의 이름 때문에 생겨난 것이 나야미(고민) 상담이었어요. 오랜 세월 살아온 연륜을 자랑하는 나미야 할아버지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고민에 성실하게 응답해주죠. '공부는 하기 싫은데 시험에서 100점 맞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와 같은 엉뚱한 질문에도 '그렇다면 선생님에게 너에 관한 문제를 내시라고 해라'라는 현명한 대답을 들려주고, 한 사람이 장난삼아 여러 개의 질문을 대충 써서 보내도 질문 하나하나에 꼼꼼히 답을 적어 돌려줍니다. 시간은 한참 흘러 어느 날. 좀도둑 세 명이 은신처를 찾아 나미야 잡화점으로 숨어들었어요. 그리고 들려오는 편지 떨어지는 소리, 툭. 세 사람은 호기심에 편지를 읽어보고 자신들이 대신 답을 적어 전달합니다. 그런데 답장을 하자마자 바로 들어오는 익명의 고민상담자의 또다른 편지. 또 하나 이상한 것은 고민상담자가 이야기하는 시대가 어쩐지 이들 세 사람이 살고 있는 시간과 어긋나 있다는 점입니다.

 

총 다섯 편의 연작단편집입니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모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앞에 나왔던 인물이 뒤에서 친구나 동료로 등장하기도 하고, 무심히 지나쳤던 소품이 다른 이야기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 채 불쑥 나타나기도 해서 읽는 내내 신이 났어요. 게다가 역시 미스터리이다보니 과연 이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끝이 날까 하는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두근. 가슴을 간지럽히는 따뜻한 이야기들에 한참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어딘가에 이런 잡화점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 작품에서 사람을 감동시키는 가장 큰 요인은 '향수'와 나미야 할아버지가 고민상담 편지에 쏟는 '부드러움'입니다. -인간의 마음 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돼(p159)-라며 장난스러운 편지 하나하나에도 어떻게 대답을 해줘야 하나 고민하는 모습은 정말 푸근하죠. 그런 푸근함과 향수를 자극하는 요인들-비틀즈, 일본 대중가요-이 버무려져 읽는 이로 하여금 탄식을 자아내게 합니다. 사람에 대한 배려, 바쁜 일상이지만 결코 잊고 살아서는 안 될 가치들에 가슴이 먹먹해져요.

 

사람이 죽거나 풀어야 하는 사건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작품은 어쩌면 올해 최고의 미스터리가 될 지도 모르겠네요. 미스터리라서 감동을 줄 수 없다는 생각은 갖지 마시고, 히가시노 작가가 만들어낸 나미야 잡화점에 발을 딛어보세요. 개인적으로 작가의 작품 중에서는 [방황하는 칼날] 이후로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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