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책이다 - 시간과 연민, 사랑에 대하여 이동진과 함께 읽는 책들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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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전, 제가 즐겨보는 프로는 이동진님과 팝칼럼니스트 김태훈님이 등장하는 '영화는 수다다' 입니다. 꿀맛같은 늦잠 속에서 느긋하게 떠돌다가도, 이 시간만 되면 눈을 번쩍 뜨곤 합니다. 영화를 소개해주는 프로그램 속 코너 중 하나로, 저는 이 '영화는 수다다'에서 이동진님의 영화에 대한 별점을 꽤 신뢰하는 편이에요. 별점이 적으면 꼭 그만큼밖에 느낄 수가 없었고, 별점이 많으면 그런대로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거든요. 맞는 별점이었거나 아니면 제가 그의 별점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겠죠. 때문에 이번 책에 대한 기대도 상당히 컸습니다. 그의 블로그를 통해 많은 영화를 접하는만큼 독서량도 굉장하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거든요. 오오. 그런데 제 기대가 너무 컸든, 혹은 저랑 책이 잘 맞지 않았든, 아니면 정말로 이 책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재미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뒷페이지로 넘어갈수록 저는 점점 책에 대한 흥미를 잃어갔습니다.

 

[밤은 책이다] 에는 그동안 그가 읽었던 70편이 넘는 도서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총 330여 페이지, 330여 페이지를 70(70보다는 많은 도서이지만)으로 나누어보면, 한 권당 평균 4.7 페이지가 할애되는 편입니다. 많으면 두 장, 적게는 1.5페이지 정도입니다. 이 책에는 그가 책을 읽으면서 감명깊게, 혹은 일상적으로 읽었던 장면들이 인용되어 있고 뒤에는 그의 감상이 뒤따릅니다. 불쑥불쑥 공감할 수 있는 문구가 나타나거나 새로운 단어에 대해 알 수 있었지만, 저는 마치 단순히 나열되어 있을 뿐인 도서목록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어쩌면 읽은 책보다는 읽지 않은 책이 더 많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문에 그가 제시한 인용글의 앞뒤를 파악할 수가 없어서 그리 인상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을지도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만약 그가 자신이 읽은 책을 독자들과 더 깊게, 더 진솔하게 나누고 싶었다면 그에 대한 배경지식을 충분히 제공했어야 한다고요. 소개된 책의 권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의 책을 소개하더라도 독자를 깊게 끌어들일만한 요소를 제공했어야 한다고요. 저는 [밤은 책이다]에서 독자와의 소통을 원하는 저자가 아니라, -나는 이런 책도 읽었고, 저런 책도 읽었어. 그리고 이런 생각들을 했지-를 내세우는 그저 한 사람의 '독자'를 만났을 뿐입니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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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한번은 이탈리아를 만나라 - 역사와 예술이 숨 쉬는 이탈리아 기행 일생에 한번은 시리즈
최도성 지음 / 21세기북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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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신 분들 중에 어째서 이 책을 인문으로 판단했는지 궁금해하는 분들도 계실 거라 생각해요. 크게는 이탈리아 여행서이지만 단순히 관광지만을 다루고 있는 책은 아닙니다. 요즘 특히 여행에세이가 많이 출간되고 있고 또 주위에 언젠가는 여행다닌 것을 책으로 내면 좋겠다는 분들도 꽤 계셔서 그 인기를 실감하고 있는데요, 이 책은 관광지를 소개하고 그 곳에서의 단상만을 소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 점이 이 <일생에 한번은...>시리즈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여행지에서의 감성적인 단상은 그 곳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허용 가능하지만, 그 감성이 과도해서 읽기 버거운 책들도 있거든요. 그런 여행서는 책이 아니라 개인적인 일기장을 만들었어야 옳다고 보는 저로서는 여행지의 모습과 문화적, 역사적인 지식을 함께 맛볼 수 있는 <일생에 한번은...>시리즈를 애정하는 편입니다.

 

사실 저는 이탈리아를 비롯한 서유럽에 그리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제 안에 나름대로 순번을 매겨놓은 장소가 있는데 동유럽-터키-스페인-북유럽-서유럽 순이었거든요. 그런데 요즘 유독 로마에 관련된 소설과 여행서를 읽다보니 이탈리아도 꼭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웅대한 건물과 장대한 역사의 현장인 이탈리아를 직접 가보지 못한다면 분명 후회할 것 같다는 마음까지 드는 거 있죠. 그 생각에 이 책이 한층 부채질을 해주었습니다. 매혹적인 사진과 함께 작가와 이탈리아를 거니는 시간은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일생에 한번은 이탈리아를 만나라-는 거창한 제목과 달리 많은 곳을 소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 드라마 <아테나-전쟁의 여신>에 등장했던 도시 비첸차, 볼로냐, 레지오 에밀리아,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의 고향인 빈치 마을과 카프레세,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탈리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로마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쇼핑과 패션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기대하셨을 밀라노와 나폴리, 시칠리아 등의 주요 도시들은 아쉽지만 제외되어 있어요.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밝혔듯 이 책의 주제는 과거 그랜드 투어(역사 문화 기행) 대상지와 르네상스 정신이 살아있는 도시들이거든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여행지와 문화, 역사를 함께 설명해준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베네치아와 같은 도시명의 어원,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에 얽힌 일화들, 피렌체의 역사, 음식에 얽힌 이야기, 수많은 전설들을 함께 알아갈 수 있어요. 게다가 그림, 영화, 문학작품들도 함께 소개해주고 있어 이탈리아에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층 더 이탈리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책인 듯 합니다.

 

그럼에도 별이 다섯 개가 될 수 없었던 이유는 마지막의 로마 부분이 앞부분보다 성의가 없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앞부분의 내용들은 느긋한 분위기에 세세하고 꼼꼼하게 설명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로마 부분은 어쩐지 페이지를 채우기 위해 간단히 편집된 느낌이랄까요. 마지막까지 일관된 분위기와 내용이 유지되었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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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색 연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7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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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은 이번이 두 번째. [행각승 지장스님의 방랑]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재미를 [주홍색 연구]에서 발견하고, 오오~! 눈을 번쩍거리며 읽었습니다. 행각승 지장스님으로부터 받은 충격이 너무 커서 -아리스가와 아리스라는 작가도 일본에서는 유명하다던데 나랑은 맞지 않는 건가, 아니면 내가 이해를 하지 못하는 건가-를 나름 심각하게(?) 고민한 것이 어언 몇 년 전. 어찌보면 단편을 잘 쓰는 작가가 실력이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은연 중에 가지고 있던 저로서는, -그렇다면 이 작가는 아직 조금은 더 두고봐야 할 존재?-라는 의문을 남겨주기도 했습니다. 어쨌거나 이 [주홍색 연구]는 크게 기대를 하지 않고 읽기 시작해서인지 체감으로 느낀 재미는 훨씬 더 컸던 듯 합니다. 중간을 지키기 위해 별은 네 개.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건은 세 가지. 1건의 화재와 2건의 살인사건. 화재 중 히무라에게 사건 의뢰를 부탁한 학생의 고모부가 목숨을 잃었으니 총 세 건의 살인사건 되시겠습니다. 그리고 늘 그렇듯 주인공 아리스와 히무라는 사건을 슉슉 해결한다는 이야기. '영상통화가 된다면 좋겠다'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꽤 오래 전에 쓰여진 작품 같지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재미 면에서는 크게 지장이 없으므로 샥샥 읽힙니다. 사건이야 아리스와 히무라가 알아서 해결을 해 주시니 직접적으로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 그리고 추리소설에서 내용을 자꾸자꾸, 많이많이 이야기하다보면 비밀이 새어나가고, 그건 곧 범죄라 믿는 바입니다!

 

이 작품에서 매력을 느낀 부분은 두 가지. 첫 째는 주인공 아리스와 히무라의 '존재' 그 자체라고 할까요. 셜록 홈스의 곁에 친구 왓슨이 있었던 것처럼, 탐정 히무라 옆에 작가 아리스가 있는 것이지요. 저에게 왓슨은 의사로서 명석한 두뇌를 가진, 추리능력이 조금 부족할 뿐 그래도 똑똑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남아있는데요, 어째서인지 이 <작가 아리스> 시리즈에서는 명석한 두뇌도 날카로운 추리능력도 전부 히무라가 가지고 있는 형편입니다. 다른 시리즈에서는 어떻게 등장하는 지 모르겠지만, 이 한 편만으로 볼 때 아리스는 조금 멍~한, 히무라의 사건현장에 동행은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그런 사람 같거든요.

 

그런데 이 둘을 보며 저희 반 반장과 부반장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2011년에는 반장복이 있어서 그랬는지 어쨌는지, 저희 반 반장녀석이 아주 똘똘합니다. 씩씩한 여학생인데, 작년 3월 개학 다음 날 제가 몸이 안 좋아서 (긴장했는지 급체를;;) 오후에 나갔더니, 알아서 기초자료를 싹 걷어서 제 책상위에 올려놓은 거 있죠! 그 후로 1년 동안 알게 모르게 제가 의지를 좀 많이 했습니다, 흠흠! 한 마디로 실무적인 능력이 아주 뛰어난 아이입니다. 반면 부반장 녀석은 늘 허허 웃는 순진무구 남학생이에요. 고3 이니 공부에 열중을 해야 할 터인데, 반장이 '좀 조용히 해, 공부 좀 해!' 라고 소리치는 무리 중에 이 부반장 녀석은 꽤 섞여 있고, 아이들이 떠들어도 큰 소리 하나 못내는 겁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이 부반장 녀석을 놀리면서도 좋아하는 게 눈에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깨달았죠. -아, 이 둘은 꼭 같이 있어야겠구나. 한 명은 실무 담당, 한 명은 인화 담당-그래서 두 녀석 다 봉사상을 주었습니다. 부반장은 지각도 엄청 하고, 자율학습 때도 몇 번 혼나기는 했지만요. 아, 그렇다고 반장이 실무면에서만 뛰어나고 친구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어찌나 씩씩하고 활발한 지 전교에 모르는 애가 없을 정도거든요.

 

히무라 옆에 아리스 작가가 없었다면 작품의 매력도는 크게 떨어졌을 거라는 건 두말 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저 또 하나의 밍숭맹숭한 탐정 이야기, 그 정도로만 여겨졌을지도요. 히무라와 아리스는 두 몸이지만 한 몸이나 마찬가지라는 요상한 생각이 듭니다. 히무라의 어두운 기운을 아리스가 받아줘야 하기도 하고. 또한 그 둘이 풍기는 엉뚱발랄한 분위기도 꽤 매력적입니다.

 

두 번째 마음에 들었던 점은 사건을 전개시키는 꼼꼼함이었어요. 추리소설을 오랜만에 읽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전개방식이 인상적입니다. 트릭을 서술할 때도 한 번에 이해가 확 되는 설명을 좋아하거든요. 이것은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이므로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끼셨을 지 모르겠습니다. 지루하다, 전개가 조금 느릿하다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 수도 있겠습니다.

 

[주홍색 연구]를 읽고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가 아리스> 시리즈를 전부 찾아봤는데, 평이 엇갈리는 경우도 있어서 아직 다 접하기에는 쪼큼 거부감이 듭니다. 아직은 [주홍색 연구]에서 받은 재미를 쪼큼 오래 간직하고 싶다는 기분이랄까요.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추리소설을 읽었더니 자꾸 추리소설만 읽고 싶다는 기분이 드는 게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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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아날로그 책공간 - 오래된 책마을, 동화마을, 서점, 도서관을 찾아서
백창화.김병록 지음 / 이야기나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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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어느 범주에 넣어야할까-를 쪼큼 고민한 끝에 '인문'으로 선택했습니다. 유럽 4개국-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보긴 했으니 여행서인 것 같기도 하고 저자들이 여행의 목적으로 선택한 것은 '도서관'과 '서점'이었기에 단순히 그것에 대한 에세이인 듯 싶기도 하지만, 자신들의 쾌락을 위해 유럽으로 떠나 탱자탱자 즐기다 온 것이 아니니 여행서는 아니고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길을 떠났으니 단순 에세이도 아닌 것 같거든요. 여행서+에세이+도서관과 서점에 대한 생각들을 한 데 모아놓고, 장차 우리나라의 도서관과 서점이 갖춰야 할 태도와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해 제시하고 있으니 그냥 제 마음대로 '인문'이 가장 적절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이 분들, 제가 가장 꿈꾸고 원하는 삶-책과 함께 하면서 무언가를 이룩해가는-을 살아가시는 듯 해요. 여성잡지와 출판사에서 글 쓰고 책 만드는 일을 해온 아내와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미디어교육과 방송 문화 일을 해오던 남편이, 아이를 낳고 키우며 마음 속에 생긴 아쉬움을 해소하기 위해 2002년 '숲속작은도서관'이라는 작은 마을 도서관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 길이 결코 쉽지는 않았을테지만 자신의 생각을 지지해줄 수 있는 다른 누군가 (심지어 그 사람이 배우자!) 와 함께 지금까지 굳건히 걸어왔다는 것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현재는 충북 괴산에서 도서관 마을을 꿈꾸며 시골 마을 도서관 만들기에 몰두하고 있는 이들 부부의, [유럽의 아날로그 책공간] 입니다.

 

1부에서는 도서관을, 2부에서는 서점을, 3부에서는 동화마을을, 4부에서는 책으로 되살아난 농촌마을공동체인 유럽의 책마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시간이나 나라 순서가 아니라 주제에 맞추어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가 번갈아가며 등장하기 때문에 다소 중첩되는 부분도 있고 각 나라들의 소소한 풍경들을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할만 한 도서관과 서점 풍경이 가슴을 설레게 해요. 사실 여행자들의 주머니는 가볍고 호기심은 왕성하기 마련. 이번 책처럼 간접적으로나마 만족도가 높은 책은 드물지 않을까 싶습니다.

 

3부의 동화마을과 4부의 유럽의 책마을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였고 또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나도 그런 책마을 속에서 살아보고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책 읽기를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책 모으는 것에도 중독되어 있는 저인지라 도서관과 서점 풍경을 담은 1부와 2부에 빠져들었습니다. 수도원 도서관 입구에 적혀있다는 '영혼을 치유하는 요양소'라는 말에 심하게 공감하면서요. [장미의 이름]으로 유명한 움베르토 에코가 싫어하는 도서관/ 좋아하는 도서관 구분도 재미었고, 오랜 역사를 지닌 수도원 도서관의 풍취에는 녹아들었고, 프랑스의 미테랑 전 대통령의 책에 대한 열정과 도서관 건립에는 감동했으며, 공공도서관의 나라인 영국에도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게다가 유럽의 골목골목마다 숨어있는 헌책방들과 서점들이 지닌 무구한 역사들을 접하니 저도 당장 짐을 싸서 그저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로 날아가고 싶습니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적혀 있어요. 저자가 '문화 예술의 나라' 러시아에 대한 특집 프로그램을 보았는데, 러시아 사람들은 푸시킨을 가장 좋아한다고 합니다. 러시아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푸시킨을 읽으며 거리에서 만난 초등학생들에게 푸시킨의 시를 알고 있느냐 했더니 너나 할 것 없이 푸시킨의 시를 암송하는 모습이 비춰졌답니다. 순간 울컥. 우리에게는 저런 '아름다운' 교육이 있는가? 책 읽는 전통과 책 읽는 교육이 살아있는가를 고민하고 그 그리움을 느껴보고 싶었다며 여행의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광범위하게 보급되면서 요즘들어 책 읽는 풍경이 사라졌다고 느낀 것은 비단 저 혼자 뿐인 걸까요? 그래도 예전에는 지하철을 타면 몇몇 분들은 책을 읽고 있었는데 요즘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기 바쁜 듯 했어요. 호기심 많고 새로운 것 좋아하는 아이들이야 말할 것도 없겠죠. 스마트폰의 보급과 기술의 발달은, 분명 우리에게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 줄 겁니다.

 

하지만 뭔가, 내면을 채워줄 수 있는 것, 생각하고 판단하고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주는 것에 책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저자들도 유럽의 아날로그 책공간을 돌며 소중한 자료를 모으고 동화마을과 책마을을 돌아보는 거겠죠. 디지털 시대지만 '아날로그'를 잃어서는 안 되는 부분도 확실히 있어야 하니까요. 수도원도서관이 '영혼을 치유하는 요양소'라는 문구를 도서관 입구에 적어놓은 의미,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여전히 도서관과 서점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들을 깊이 생각하고 되새겨볼 시간입니다.

 

 

 어린 시절에 읽었던 책들은 우리를 과거로 인도한다. 그것은 꼭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 때문은 아니다. 그 책을 읽었을 때 우리가 어디에 있었고 우리는 누구였는가를 둘러싼 기억들 때문이다. 책 한 권을 기억한다는 것은 곧 그 책을 읽은 어린아이를 기억하는 것이다.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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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은 속삭인다
타티아나 드 로즈네 지음, 권윤진 옮김 / 비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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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의 온전한 공간이 생긴 여자는 신경이 예민해진다. 현관문을 열 때는 주위를 살피기도 하고 모퉁이 한 구석에서 갑자기 괴한이 나타나 집으로 끌고 들어가지 않을까 걱정했다. 한밤 중 복도에 울리는 발걸음 소리에도 머리카락이 쭈뼛 서며 바깥의 동선에 집중하기도 하고, 방음이 잘 되지 않는 집이었기에 옆방에서 들리는 수상한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다.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고, 겁이 너무 많다고 간단히 넘어가기에는 매일 접하는 사건사고가 너무나 잔혹했다. 여자를 무서움에 떨게 만들었던 것이 또 하나 있었는데, 집안 곳곳에 남아있는 수상(해보이는)한 흔적들이었다. 크고 작은 구멍들, 형광등을 끄고 바깥의 불빛에만 의지해 본다면 어떤 괴물의 형상같기도 한 얼룩 같은 것들에 여자는 지레 겁을 집어먹고 그 근처에는 가지도 않으며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 '여자'는 바로 나였다. 워낙에 겁이 많기도 했지만, 자유로운 공간이 생긴 것이 기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 혼자 있는 공간에서 극도의 무서움을 느꼈던 것 같다. 그 집이 내 집처럼 느껴지지 않았고 그저 잠깐 들어와서 잠만 자는 일종의 정거장 같은 곳이라 여겨졌던 탓도 있었겠지만, 나를 가장 겁먹게 한 것은 각각의 집의 '사연'이었다. 가족과 함께 지내는 집에서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일들이, 어째서인지 가장 행복하고 자유로워야 할 시기들에 나를 괴롭혀 소심한 마음을 더욱 작게 만들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새벽에 윗층에서 들리는 그치지 않는 물소리에 '헉! 설마 @.@'하는 잔인한 생각이 들었던 것도 그 집의 터가 좋지 않았던 탓이었을까. 실제로 그 집들은 곰팡이가 심했고, 마지막 집은 비만 오면 실내에서도 바깥처럼 비가 내렸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나는 파스칼린을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그녀가 이제 막 남편과 이혼하고 새 인생을 시작해보려던 찰나에, 그녀의 미래를 빛나는 것으로 만들었어야 옳았을 그 집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안 그 심정이 어떠했을지. 도저히 그 방에서 잠을 이루지 못했던 그녀의 예민한 마음과 상처를 이해한다. 그리고 외로운 섬처럼 주위에 이해받지 못하고 불쌍한 사람 취급받던 그녀의 자존심이 얼마나 상처받았을지도 이해한다. 그녀는 14년 전에 어린 딸을 잃었고, 딸의 죽음과 함께 행복한 결혼생활도 막을 내렸으며, 남편은 다른 여자를 만나 그녀에게 자신을 놓아달라고 했다. 그녀의 영혼이, 삶이 얼마나 황폐해지고 상처로 얼룩져있었을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그녀가 '어머니'였었기에 잔인한 범죄자에게 딸을 잃은 다른 어머니들의 심정으로 사건이 일어났던 공간을 찾아 자기만의 추모식을 진행한 것도 '완벽히는 아니지만' 이해한다. 그러면서 그녀도 자신의 상처를 다스릴 수 있을 것이라 믿었고, 그래야 그녀에게 행복이란 것이 찾아올 것이니까.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스스로의 삶을 망치고 있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파스칼린 그녀 자신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라면 이러지 않을텐데, 나라면 떠나간 남편은 잊고 새로운 행복을 찾는 데 집중했을텐데'라는 말을 얼마나 중얼거렸는지. 그만큼 그녀의 붕괴되어가는 정신이 안타까웠고, 무서웠다. 사랑도 아니고, 집착도 아닌. 어둠의 공간들을 돌면서 추모식을 진행했던 그녀는 추모의 대상이 아니라 추모를 하게 만든 범인의 모습과 닮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안타까움과 슬픔으로 시작했던 감정이 끝으로 갈수록 혼돈에 빠졌고 급기야 작품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만든 것 같다.

 

그러나 이 작품이 타티아나 드 로즈네의 [사라의 열쇠] 의 모태가 된 작품이라면 그럴만도 하다는 의견이다. [사라의 열쇠]는 [벽은 속삭인다] 보다 공간이 간직한 사연을 훨씬 애잔하면서도 냉철하게 풀어놓았다. [벽은 속삭인다] 를 먼저 읽고 [사라의 열쇠]를 읽었다면 괜찮았을테지만, 그 순서가 바뀌어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다. 그나저나. 이제는 아무 집에나 이사 들어가지 못할 것 같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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