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ㅣ 창비시선 211
이면우 지음 / 창비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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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공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는 이면우 시인을,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곤,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라는 제목에 마음이 끌렸다.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내가 울었을 밤에, 함께 울었을지도 모를 누군가의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그렇게 만나게 된 이면우 시인의 시집을 읽노라니, 이런 말 아직 어울리지 않는 나이이지만,

자꾸, 지나온 삶이 되돌아봐졌다.

그리고 언젠가 지금의 나를 돌아보고 있을 나이의 내 모습을 상상하게 되었다.

 

51년 생 시인. 지천명에 삶을 돌아다보는 시들이, 이립의 내 마음에도 이렇게 와 닿을 줄이야.

내 마음은 벌써 몇 십년 뒤를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인지.

 

 

  서른 전, 꼭 되짚어보겠다고 붉은 줄만 긋고 영영 덮어버린 책들에게 사죄한다 겉 핥고 아는 체했던 모든 책의 저자에게 사죄한다

 

  마흔 전, 무슨 일로 다투다 속맘으론 낼, 모레쯤 화해해야지 작정하고 부러 큰 소리로 옳다고 우기던 일 아프다 세상에 풀지 못한 응어리가 아프다

 

  쉰 전, 늦게 둔 아이를 내가 키운다고 믿었다 돌이켜보면, 그 어린 게 날 부축하여 온 길이다 아이가 이 구절을 마음으로 읽을 때쯤이면 난 눈썹 끝 물방울 같은 게 되어 있을 게다

 

  오늘 아침, 쉰이 되었다, 라고 두 번 소리내어 말해보았다

  서늘한 방에 앉았다가 무릎 한번 탁 치고 빙긋이 혼자 웃었다

  이제부턴 사람을 만나면 좀 무리를 해서라도

  따끈한 국밥 한그릇씩 꼭 대접해야겠다고, 그리고

  쓸쓸한 가운데 즐거움이 가느다란 연기처럼 솟아났다 ('오늘, 쉰이 되었다' 전문)

 

 

생의 북쪽에 와 있는 것만 같은 내 마음에, 언젠가 북쪽에도 눈 녹고 꽃 필 날이 있을 것이라고 위로해 주는 목소리에 가만히 힘을 얻어본다.(누구라도 자기 안에 북쪽을 지니고 간다 좀 더디지만 북쪽에 쌓인 눈도 때 되면 녹고 꽃은 한꺼번에 붉고 푸른 빛을 몰아 터뜨리기도 했다. _ '생의 북쪽'에서) 

내 삶도 하나의 왕국, 아름다움을 가진 왕국, 그러니 한껏 자신을 즐겨야지. 나도 한 아름다운 왕국의 주인임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글에 삶은 조금 더 힘차진다.(생은 하나씩 왕국이다/모든 왕국의 아름다움을 나는 믿는다 언젠가/여름 풀숲 고슴도치 한껏 자신을 즐기는 걸 보았다 _ '골짜기의 포장도로'에서)

 

어쩌면, 밤은, 누군가가 흘리는 눈물이 있어서 더 밤다운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어딘가 메말라 보일지도.

환한 햇빛 아래 힘겹게 감춰온 눈물을, 밤이라면, 그 어둠의 두께로 다 감싸안아 줄 것 같다.

그러니, 밤에는 맘 놓고 울자.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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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달래는 순서 ㅣ 창비시선 296
김경미 지음 / 창비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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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의 만남에도 시절 인연이 있다는 걸 굳게 믿는다.

이 시집을, 지금 이 가을, 이런 시간에 만나게 된 것을 무척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금이 아니어도, 충분히 내 마음을 흔들고 달래주었을 시집이지만, 지금 이 시집은 내게 최상의 '약효'를 발휘한다.

 

고통을 달래는 순서,라니. 그 순서가 궁금했다.

잠깐, 그 전에,

고통이, 달래지는 것이던가?

육체적인 고통이든, 정신적인 고통이든, 내 과거 경험들을 비추어 봤을 때 말이다.

 

그렇지. 고통을 달래는 데는, '순서란 없다 견딘다'.

 

육체적 고통을 겪는 데 있어서라면, 그 고통을 견디는 데 있어서라면, (안타깝게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을, 한 여인에 대한 글이 떠올랐다.

그녀는 '고통을 참는다'는 멕시코 말 '아구안타르'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1925년 12월 5일 일기에는 '유일한 희소식은 이제 내가 참는 데 익숙해졌다는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 _ '프리다 칼로&디에고 리베라' 중에서...

갑자기 이 글이 떠오른 건, '유일한 희소식은 이제 내가 참는 데 익숙해졌다는 것이다'라는 말 때문이었다.

고통은, 어떻게 해도 달래지지 않는다, 그저 참고 참고 또 참고, 그렇게 견디어 내는 것일 뿐.

 

이 시집은, 나의 고통을, 혹은 누군가의 고통을 공유하고 함께 견디어 준다.

나의 아픔은, 누군가가 내밀어 준 한 알의 아스피린보다는, 나도 같은 고통 안고 있다, 혹은 네가 그런 고통을 안고 있구나, 공유하고 이해해주는 것으로 더 견딜만 해진다.

 

이 시집이, 지금 나를 만나야 하는 운명,이라고 생각하게 된 까닭은,

요즘 나를 괴롭히는 마음의 고통들이 이 시집안에 공유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시 구절구절에 빨간 밑줄을 두 번이나 긋고 별표를 그려넣을 정도로, 깊은 공감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내 마음과 같은 상황이 담겨 있는 시집이라니, 어찌 아니 사랑할 수 있을까!

물론, 이 시집에는, 내가 처한 아픔을 떠올리게 하는 시들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내가 읽기에는, 그 시들이 더욱 구구절절이 다가왔을 뿐.

다음에 다시 읽을 때는, 이 시집의 다른 시들에 밑줄을 그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밑줄 그은 문장들을 보며, 내 마음 유난히 시리게 했던 이 가을을 떠올리겠지.

그때 '매일의 행복과 항복 사이'에 나는 잘 견뎌내었다고, 그리고 그때 이 시집이 내밀어준 손길이 유난히 따스했었다고 말이다.

 

 

다정한 모임 속 네가 갑자기 내 머리에 못을 박았다

그 대못 얼버무리려 괜한 웃음을 웃느라

이마와 코가 헐거워졌다,

너무 가깝거나 멀어 몹쓸

사이도 아닌데 인간이 인간을 얼마나 낙담시키는지

이미 잘 알고 있다

 

잘 알고 있는데도 뺨으로 눈썹이 흘러내렸다

나는 확실히

사람과 잘 안 맞아 어떻게 사람이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죽은 척하는 순간

고양이가 내 두 손을 지목한다



 

_ '그날의 배경' 중에서

 

 

  내 사랑의 겉묘엔 선혈의 망치못들, 잔디떼의 잔못질들 그 속 반달의 흙뚜껑 들솟도록 너무 많이 죽거나 너무 많이 죽인 나와 당신의 시신들 여전히 푸르고 성성하니 고르지 못한 처신과 처사들 사이 못질 좋은 모서리들 가득한데 나 하나 걸어둘 대못 하나 아직 단단치 못한 나는 마냥 쓸모없는 인간 같아요 위로나 두둔 따위 마세요 알지도 못하면서 어느덧 오늘도 귀신이 나타난다는 자정이다 잊고 싶지 않은 일들 벽에 못질해두는 일 따위

 

  이젠 하지 않지만

 

_ '잘 모른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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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세트 - 전3권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199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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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믿을만한 누군가로부터 추천을 받은 책이라 덜렁 사 놓고는 책꽂이에 꽂아만 두고 있었다.

아무래도 세 권짜리라 부담이 되었던 듯.

매주 화요일, 강의 나가기 전에 그날 그날 끌리는 책을 선택해 들고 나가는데, 몇 주 전에 문득 이 책이 내게 강렬한 눈빛을 보내왔다.

그래, 일단 상 권부터 펼쳐보자, 한번 펼치면 어떻게든 끝까지 읽겠지,

나름대로 단단히 각오를 하고 상 권 '비밀 노트'를 챙겨나갔다.

그 결과,

수업 중에 "아까 읽던 책이 너무 재밌어서 빨리 수업 끝내고 책 읽고 싶다"는 말을 비치는 지경에 이르고 마니...

한번 펼치면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책,이란 이런 것이지! 오랜만에 느꼈다.

그날따라 엄마가 데이트를 신청해와 백화점에서 엄마를 기다리다가 상 권을 다 읽고 말았는데,

쇼핑이고 뭐고 얼른 집에 가서 중 권을 읽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는!

 

상중하 세 권은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라는 큰 제목 아래 '비밀 노트', '타인의 증거', '50년간의 고독'이라는 각각의 제목을 또 가지고 있다.

읽다 보니, 세 권을 각각의 한 이야기로 읽어도 손색이 없겠다 생각이 들었는데(그래서 원래는 서평도 각 권에 쓸 생각이었지. 당시에는.) 역자 후기를 읽어보니, 이 책은 원래 시리즈이긴 하나 독립된 소설로 발표된 것이라 한다.

한국에서 번역 출간하면서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라는 제목을 따로 단 것이다.

내 느낌으로는,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라는 제목과 '이름의 철자 순서만이 다른 쌍둥이 형제 루카스Lucas와 클라우스Claus의 처절한 운명이 교차하는 삼부작 소설'이라는 띠지의 문구가 이 소설을 읽는 데 약간의 방해 요소가 되었다.

책을 읽기 전에 자꾸 생각이 그쪽으로만 쏠려서 도대체 그 '세 가지 거짓말'은 무엇일까, 자꾸 생각하게 되고, 루카스와 클라우스의 이름에 깊은 의미를 두게 되었으니 말이다.(실제로 소설에서는 그 '철자 순서만이 다른' 이름은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지도 않다. 오히려 Claus와 Klaus의 차이라면 모를까.)

그래서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라는 제목 보다는 각각의 책에 달린 소 제목을 그 제목으로 하여 이 책을 보는 게 더욱 좋겠다는 생각.

 

상 권 '비밀 노트'는 전쟁 때 시골 할머니 집에 맡겨진 클라우스와 루카스 형제의 시골 생활기가 담긴 책인데, 그 재미를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시골 생활을 견디기 위해 하는 갖가지 훈련들-단식 훈련, 잔혹 훈련, 구걸 연습, 장님과 귀머거리 연습 등등은 어린 형제가 처한 상황에 가슴이 짠하긴 하지만 (미안하게도) 엄청 재밌다. 두 형제와 관계 맺는 여러 사람들 이야기, 특히 마녀 같지만 결국 두 형제와 끈끈한 정을 나누는 할머니 이야기가 이 책의 재미를 더해준다. 엄청난 재미에 휩싸여 정신없이 읽다보면, 정말이지 (쇼핑이고 뭐고!) 얼른 다음 권을 펼쳐들고 싶은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상 권에서 그렇게 됐으므로, 중 권 '타인의 증거'는 루카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번에는 루카스가 상 권과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가는데, 상 권에 비해 분위기는 조금 무거워지고, 단순한 재미도 약간 덜해진다. 하지만 역시 헤어날 수 없는 흥미진진함으로 밤을 새게 만들어 버린다. 중 권이 끝나갈 무렵 슬슬 움직임을 보이는 클라우스. 그리고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듯한 그 분위기! 아, 궁금증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편지를 한 통 남기며 '타인의 증거'도 막을 내린다. (마지막을 마무리하는 솜씨가 아주 뛰어나다! 다음 권을 보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만든다는.)

 

하 권 '50년간의 고독'에서는 클라우스가 화자인 '나'로 등장하여 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 권 중 하 권의 제목이 가장 마음에 드는데, 책의 내용과 가장 잘 어울리는 제목이라는 생각. '나'는 왜 50년간이나 고독해야 했는지, 도대체 이 쌍둥이 형제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마지막까지 마음을 놓을 수도, 눈을 뗄 수도 없다. 읽는 동안 머리가 따라주질 않아 내용이 헷갈리기도 여러번이었다. 작가가 천재이거나, 내가, ...이거나. 흠흠.

 

읽은 지 한참이 지났건만, 이 책을 떠올리니 그때의 감동과 흥분은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이 책을 읽으며, '아!'하는 감탄을 몇번이나 터뜨렸는지 모른다.

이 책을 읽은 뒤로는,

'한번 잡으면 손을 뗄 수 없는 책'이나 '재밌게 읽은 책' 등을 추천해달라는 글에 이 책을 빠뜨리지 않고 추천한다.

아, 정말이지 자신있게 강추!!!

 

 

그녀가 말했다.

- 그래요. 제일 슬픈 책들보다도 더 슬픈 인생이 있는 법이니까요.

내가 말했다.

- 그렇죠. 책이야, 아무리 슬프다고 해도, 인생만큼 슬플 수는 없지요.

('50년간의 고독'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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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는 혼자다 1
파울로 코엘료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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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지난 주말, 부산에 함께 다녀온 책이다.

수원 - 부산, 왕복 10시간이 넘는 무궁화 여행을, '승자는 혼자다'가 지켜주었다.

 

네이버 연재를 시작할 때, 나도 함께 달렸었으나, 초반에 뒤쳐지고 말아, 책이 나오길 기다렸다.

사실, 처음에는 권총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책이, 별로 내 정서에는 맞지 않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 선뜻 읽지 못하고

여태 미뤄두었던 건데, 역시,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고, 책은 끝까지 읽어봐야 하는 법!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이어진 당일치기 부산 '여행'이었음에도, 기차에서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코엘료 작가가 들려주는 이 흥미진진한 칸에서의 하루, 때문에!

 

이 긴 이야기는, 전 세계적인 영화제가 열리는 칸에서의 단 하루가 담겨 있다.

이게 단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이라니, 마치 나의 그날 새벽부터 밤까지의 하루를 이 책 속에서 함께 숨가쁘게 지낸 기분.

 

인터넷 연재로 보며 글에 깊이 빠져들지 못했던 것과 달리,

종이책으로 만난 '승자는 혼자다'는 시종 끊이지 않는 긴장감이 (식상한 표현이지만) 손에 땀을 쥐게 했다.

 

헤어진 아내를 잊지 못하고, 그 사랑을 되찾기 위해 칸으로 날아온 주인공.

그는 냉소적인 태도로 칸 영화제 그 화려한 커튼 뒤에 숨겨진 탐욕스러운 욕망과 숨막히는 경쟁을 비웃는다.

영화제는 뒷전이고 어떻게든 '한 건' 해보려는 사람들로 득시글거리는 그 이면을 비웃으며, 주인공이 하는 일은 '희생자'를 만드는 일이다.

아내에게 다시 자신에게 돌아와 달라고, 그렇지 않으면 한 세계를 파괴해버리겠다는 협박을 하는 데 쓰일 도구로서의 희생자.

한 사람의 세계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당연히 영문도 모르고, 그렇게 파괴된다. 주인공의 손 안에서.

그리고 그 메시지가 아내의 휴대전화로 전송이 된다. 하나, 둘, 셋, 연이어서.

 

도대체 그는 얼마나 많은 세계를 파괴할 것인지, 그 희생자는 최종적으로 누가 될 것인지.

책은 뒤로 갈수록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2권 중반을 넘어가면서는 정말 '정신없이' 단숨에 읽어내렸다.

도저히 궁금해서, 이 책을 다 읽기 전에 기차가 수원에 도착하는 일만은 제발 없기를 바라며 말이다.

(어찌나 숨가쁘게 읽었던지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는, 한참을 컴컴한 창 밖을 내다보며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

 

이야기로서의 재미와 함께, 역시 파울로 코엘료로구나, 느낄 수 있는 그 특유의 교훈과 감동도 곳곳에 숨어 있어

책 읽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책 속 수많은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이 책을 읽으며, 누군가의 손에 파괴된 수많은 세계들이 떠올랐다.

얼마 전에 온국민을 경악하게 한 사건의 주인공 '나영이'부터해서, 뉴스나 신문 등을 통해 접하곤 혀를 끌끌 찼던 우리 현실의 '희생자'들.

단순히 한 목숨의 끝,이 아니라, 어쩌면 전 세계를 파괴하는 첫 톱니바퀴였을지도 모르는 그 한 세계,가 파괴된 일에 대해서,

깊이깊이 마음이 아프고 또 아팠다.

또한, 살아 있는 우리의 한 세계로 보자면, 우리 개개인 또한 속에 얼마나 큰 세계를 품고 있는 존재들인지.

나라는 사람이, 결코 '나' 한 사람의 세계만 품고 사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내가, 또한 이 지구위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가,

모두 다 특별한 존재로 여겨졌다.

이 책에서 내게 가장 강렬히 다가왔던 게 바로 이 '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무척 인상적이었다.

 

'연금술사'를 내 인생의 책으로 꼽을 만큼 좋아하지만, 파울로 코엘료의 책,에는 별다른 애정이 없었는데,

'승자는 혼자다'를 읽고나니, 파울로 코엘료의 책들을 다시 만나보고 싶어졌다.

파울로 코엘료의 책들을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편애' 레이더가 꿈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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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지음, 이종인 옮김 / 동아일보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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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알게 된 건, '질병의 통역사'라는 단편을 통해서였다.

문장배달로 날아온 '질병의 통역사'의 한 부분을 만나고는 당장 이 책을 읽고 싶었다.

그때는 '통역'이라는 단어가 남의 일이 아니던 때였던지라,

그 제목이며, 그때 만난 문장들이 가슴에 무척 와 닿았다.

 

'질병의 통역사'라는 책을 찾았으나 아무리 찾아봐도 책이 없어 웬일인가 했더니,

이 책 <축복받은 집>의 수록작 중 하나가 '질병의 통역사'였다.

 

줌파 라히리.

처녀작 <축복받은 집>으로 펜/헤밍웨이 문학상과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뉴요커> '올해의 소설'에 선정되기도 했단다.

소설가 김연수는

"이야기 중독자를 위한 휴대용 구급약. 런던, 뉴델리, 뉴욕, 모두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라는 추천평을 남기기도 했다.

(줌파 라히리의 후속작 <그저 좋은 사람>에 대해서도 '남들보다 먼저 읽은 게 미안할 정도'라며

김연수 작가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쯤 되면 줌파 라히리가 어떤 작가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몇 달 전에 단편 두 개 정도를 읽고 덮어 두었다가 이번에 다시 펴들었다.

이 책에는 모두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모든 이야기에 인도인이 등장한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영국에서 인도 벵갈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미국에서 살고 있다는 작가의 배경이 책 속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제목은 '축복받은 집'이지만, 이야기의 대부분은 어딘가 조금씩 부족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부족함을 각자의 방식으로 극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사실 이 책을 읽은 지 3주 가량 지나 기억이 조금 흐려졌지만,

수록작 중 '잠시 동안의 일'과 '섹시', '질병의 통역사', '세 번째이자 마지막인 대륙' 이렇게 네 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잠시 동안의 일'에서는, 아이를 사산하고 서로 사이가 멀어진 부부가 닷새간 1시간씩 정전 된 저녁 시간에 서로에게 비밀을 하나씩 털어놓는다. 어두움을 틈타 그 동안 서로에게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말하며 부부의 사이가 가까워지겠구나 지레짐작했는데, 역시 그건 '잠시 동안의 일'일 뿐. 그 닷새간의 정전이 너무 늦게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전이 조금 더 일찍 되었더라면, 그들 부부가 대화를 나눌 시간이 조금 더 일찍 찾아왔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글쎄. 아무튼, 정전 속에서 진심을 털어놓는 부부의 모습이 꽤 인상적인 글이었다.

'섹시'는 사실 처음 읽을 때 흥미를 느끼지 못하여 읽다가 덮어두고는 몇 달 동안 이 책을 잊고 있게 만들었는데, 다시 펼쳐들고 읽었을 때, 처음과 달리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는 글이었다. 직장 동료의 형부가 바람이 났다는 얘기를 옆에서 계속 전해듣는 그녀는 사실 그 형부의 정부와 같은 상황에 빠져있다. 역시 아내가 있는 남자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이 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친구의 아이가 그녀에게 '섹시하다'고 말해주는 부분이었다. 섹시하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말해달라고 애원하는 그녀에게 아이는 말한다. "그건 당신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뜻이에요." 아이에게 '섹시하다'의 의미를 그렇게 그려준 건, 아이의 부모였다. 엄마 대신 섹시한 어떤 여자를 사랑하는 아빠를 보며 아이가 익힌 '섹시하다'의 의미가, 왜 아직 잊혀지지 않고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질병의 통역사'에서는 인도로 여행을 떠난 화목(해보이는)한 다스 가족과 인도인 가이드가 나온다. 그 가이드의 또다른 직업이 바로 '질병의 통역사'이다. 병원에서 구자라티족 환자들을 위해 통역을 해주는 일을 한다. 이 가이드에게 다스 부인이 갑자기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8년 동안 가슴 속에 담아온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을 낯선 이에게 털어놓고 자신의 아픔을 덜어달라고 말하는 다스 부인. 이 '질병의 통역사'는 다스 부인을 위해 어떤 질병도 통역해 줄 수 없지만, 다스 부인은 누군가에게 아픔을 털어놓은 것만으로도 그 아픔이 덜어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다시 화목한 가정으로 돌아가는 거다. 많은 가정이 그렇게 유지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해 준 소설이었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인 대륙'은 특히나 아름답다고 느껴진 글이었다. 아홉 편의 단편 중 하나인 짧은 글이지만, 그 감동만큼은 결코 짧지 않다. 인도에서 건너 온 남자와 그 남자가 하숙을 하게 되는 집의 주인인 괴이한 노파 사이의 이야기도 아름다웠지만, 남자와 그 부인이 타인에서 진정한 '가족'이 되기까지의 그 과정이 내게는 경이롭게 여겨지기까지 했다. 이들 부부에게는 불타는 사랑도 없었고, 환상적인 결혼 생활도 없었고, 정말 '잔잔히' 그들의 가정을 이루어 나갈 따름이다. 뜨겁게 사랑해 결혼하고 차디차게 식어 이혼하는 요즘의 수많은 가정의 모습과 크게 비교되는 모습이다. 결혼은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하는 것이라는 환상(?)을 가진 내게, 또다른 결혼의 모습을 생각해보게 해주기도 한. 아아, 정말 아름다운 소설이다.

 

이렇게 좋은 책을 오랫동안 책꽂이에 묵혀 두었다니 죄악이다.

그녀의 최신작 <그저 좋은 사람들>도 얼른 읽어봐야겠다.

줌파 라히리를 읽을 수 있다니, 정말이지 나는 축복받은 독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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