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세트 - 전3권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199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믿을만한 누군가로부터 추천을 받은 책이라 덜렁 사 놓고는 책꽂이에 꽂아만 두고 있었다.

아무래도 세 권짜리라 부담이 되었던 듯.

매주 화요일, 강의 나가기 전에 그날 그날 끌리는 책을 선택해 들고 나가는데, 몇 주 전에 문득 이 책이 내게 강렬한 눈빛을 보내왔다.

그래, 일단 상 권부터 펼쳐보자, 한번 펼치면 어떻게든 끝까지 읽겠지,

나름대로 단단히 각오를 하고 상 권 '비밀 노트'를 챙겨나갔다.

그 결과,

수업 중에 "아까 읽던 책이 너무 재밌어서 빨리 수업 끝내고 책 읽고 싶다"는 말을 비치는 지경에 이르고 마니...

한번 펼치면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책,이란 이런 것이지! 오랜만에 느꼈다.

그날따라 엄마가 데이트를 신청해와 백화점에서 엄마를 기다리다가 상 권을 다 읽고 말았는데,

쇼핑이고 뭐고 얼른 집에 가서 중 권을 읽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는!

 

상중하 세 권은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라는 큰 제목 아래 '비밀 노트', '타인의 증거', '50년간의 고독'이라는 각각의 제목을 또 가지고 있다.

읽다 보니, 세 권을 각각의 한 이야기로 읽어도 손색이 없겠다 생각이 들었는데(그래서 원래는 서평도 각 권에 쓸 생각이었지. 당시에는.) 역자 후기를 읽어보니, 이 책은 원래 시리즈이긴 하나 독립된 소설로 발표된 것이라 한다.

한국에서 번역 출간하면서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라는 제목을 따로 단 것이다.

내 느낌으로는,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라는 제목과 '이름의 철자 순서만이 다른 쌍둥이 형제 루카스Lucas와 클라우스Claus의 처절한 운명이 교차하는 삼부작 소설'이라는 띠지의 문구가 이 소설을 읽는 데 약간의 방해 요소가 되었다.

책을 읽기 전에 자꾸 생각이 그쪽으로만 쏠려서 도대체 그 '세 가지 거짓말'은 무엇일까, 자꾸 생각하게 되고, 루카스와 클라우스의 이름에 깊은 의미를 두게 되었으니 말이다.(실제로 소설에서는 그 '철자 순서만이 다른' 이름은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지도 않다. 오히려 Claus와 Klaus의 차이라면 모를까.)

그래서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라는 제목 보다는 각각의 책에 달린 소 제목을 그 제목으로 하여 이 책을 보는 게 더욱 좋겠다는 생각.

 

상 권 '비밀 노트'는 전쟁 때 시골 할머니 집에 맡겨진 클라우스와 루카스 형제의 시골 생활기가 담긴 책인데, 그 재미를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시골 생활을 견디기 위해 하는 갖가지 훈련들-단식 훈련, 잔혹 훈련, 구걸 연습, 장님과 귀머거리 연습 등등은 어린 형제가 처한 상황에 가슴이 짠하긴 하지만 (미안하게도) 엄청 재밌다. 두 형제와 관계 맺는 여러 사람들 이야기, 특히 마녀 같지만 결국 두 형제와 끈끈한 정을 나누는 할머니 이야기가 이 책의 재미를 더해준다. 엄청난 재미에 휩싸여 정신없이 읽다보면, 정말이지 (쇼핑이고 뭐고!) 얼른 다음 권을 펼쳐들고 싶은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상 권에서 그렇게 됐으므로, 중 권 '타인의 증거'는 루카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번에는 루카스가 상 권과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가는데, 상 권에 비해 분위기는 조금 무거워지고, 단순한 재미도 약간 덜해진다. 하지만 역시 헤어날 수 없는 흥미진진함으로 밤을 새게 만들어 버린다. 중 권이 끝나갈 무렵 슬슬 움직임을 보이는 클라우스. 그리고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듯한 그 분위기! 아, 궁금증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편지를 한 통 남기며 '타인의 증거'도 막을 내린다. (마지막을 마무리하는 솜씨가 아주 뛰어나다! 다음 권을 보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만든다는.)

 

하 권 '50년간의 고독'에서는 클라우스가 화자인 '나'로 등장하여 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 권 중 하 권의 제목이 가장 마음에 드는데, 책의 내용과 가장 잘 어울리는 제목이라는 생각. '나'는 왜 50년간이나 고독해야 했는지, 도대체 이 쌍둥이 형제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마지막까지 마음을 놓을 수도, 눈을 뗄 수도 없다. 읽는 동안 머리가 따라주질 않아 내용이 헷갈리기도 여러번이었다. 작가가 천재이거나, 내가, ...이거나. 흠흠.

 

읽은 지 한참이 지났건만, 이 책을 떠올리니 그때의 감동과 흥분은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이 책을 읽으며, '아!'하는 감탄을 몇번이나 터뜨렸는지 모른다.

이 책을 읽은 뒤로는,

'한번 잡으면 손을 뗄 수 없는 책'이나 '재밌게 읽은 책' 등을 추천해달라는 글에 이 책을 빠뜨리지 않고 추천한다.

아, 정말이지 자신있게 강추!!!

 

 

그녀가 말했다.

- 그래요. 제일 슬픈 책들보다도 더 슬픈 인생이 있는 법이니까요.

내가 말했다.

- 그렇죠. 책이야, 아무리 슬프다고 해도, 인생만큼 슬플 수는 없지요.

('50년간의 고독'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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