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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는 혼자다 1
파울로 코엘료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평점 :
지지난 주말, 부산에 함께 다녀온 책이다.
수원 - 부산, 왕복 10시간이 넘는 무궁화 여행을, '승자는 혼자다'가 지켜주었다.
네이버 연재를 시작할 때, 나도 함께 달렸었으나, 초반에 뒤쳐지고 말아, 책이 나오길 기다렸다.
사실, 처음에는 권총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책이, 별로 내 정서에는 맞지 않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 선뜻 읽지 못하고
여태 미뤄두었던 건데, 역시,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고, 책은 끝까지 읽어봐야 하는 법!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이어진 당일치기 부산 '여행'이었음에도, 기차에서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코엘료 작가가 들려주는 이 흥미진진한 칸에서의 하루, 때문에!
이 긴 이야기는, 전 세계적인 영화제가 열리는 칸에서의 단 하루가 담겨 있다.
이게 단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이라니, 마치 나의 그날 새벽부터 밤까지의 하루를 이 책 속에서 함께 숨가쁘게 지낸 기분.
인터넷 연재로 보며 글에 깊이 빠져들지 못했던 것과 달리,
종이책으로 만난 '승자는 혼자다'는 시종 끊이지 않는 긴장감이 (식상한 표현이지만) 손에 땀을 쥐게 했다.
헤어진 아내를 잊지 못하고, 그 사랑을 되찾기 위해 칸으로 날아온 주인공.
그는 냉소적인 태도로 칸 영화제 그 화려한 커튼 뒤에 숨겨진 탐욕스러운 욕망과 숨막히는 경쟁을 비웃는다.
영화제는 뒷전이고 어떻게든 '한 건' 해보려는 사람들로 득시글거리는 그 이면을 비웃으며, 주인공이 하는 일은 '희생자'를 만드는 일이다.
아내에게 다시 자신에게 돌아와 달라고, 그렇지 않으면 한 세계를 파괴해버리겠다는 협박을 하는 데 쓰일 도구로서의 희생자.
한 사람의 세계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당연히 영문도 모르고, 그렇게 파괴된다. 주인공의 손 안에서.
그리고 그 메시지가 아내의 휴대전화로 전송이 된다. 하나, 둘, 셋, 연이어서.
도대체 그는 얼마나 많은 세계를 파괴할 것인지, 그 희생자는 최종적으로 누가 될 것인지.
책은 뒤로 갈수록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2권 중반을 넘어가면서는 정말 '정신없이' 단숨에 읽어내렸다.
도저히 궁금해서, 이 책을 다 읽기 전에 기차가 수원에 도착하는 일만은 제발 없기를 바라며 말이다.
(어찌나 숨가쁘게 읽었던지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는, 한참을 컴컴한 창 밖을 내다보며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
이야기로서의 재미와 함께, 역시 파울로 코엘료로구나, 느낄 수 있는 그 특유의 교훈과 감동도 곳곳에 숨어 있어
책 읽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책 속 수많은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이 책을 읽으며, 누군가의 손에 파괴된 수많은 세계들이 떠올랐다.
얼마 전에 온국민을 경악하게 한 사건의 주인공 '나영이'부터해서, 뉴스나 신문 등을 통해 접하곤 혀를 끌끌 찼던 우리 현실의 '희생자'들.
단순히 한 목숨의 끝,이 아니라, 어쩌면 전 세계를 파괴하는 첫 톱니바퀴였을지도 모르는 그 한 세계,가 파괴된 일에 대해서,
깊이깊이 마음이 아프고 또 아팠다.
또한, 살아 있는 우리의 한 세계로 보자면, 우리 개개인 또한 속에 얼마나 큰 세계를 품고 있는 존재들인지.
나라는 사람이, 결코 '나' 한 사람의 세계만 품고 사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내가, 또한 이 지구위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가,
모두 다 특별한 존재로 여겨졌다.
이 책에서 내게 가장 강렬히 다가왔던 게 바로 이 '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무척 인상적이었다.
'연금술사'를 내 인생의 책으로 꼽을 만큼 좋아하지만, 파울로 코엘료의 책,에는 별다른 애정이 없었는데,
'승자는 혼자다'를 읽고나니, 파울로 코엘료의 책들을 다시 만나보고 싶어졌다.
파울로 코엘료의 책들을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편애' 레이더가 꿈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