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뒤에 숨은 사랑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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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껴 두었던 줌파 라히리의 장편을 드디어 꺼내 읽었다.

『축복 받은 집』으로 단숨에 내 마음을 사로잡고 『그저 좋은 사람』으로 내게 '그저 좋은 작가'가 되어버린 줌파 라히리.

그녀가 태어난 곳은 영국이다. 부모님은 인도 벵갈 출신이다. 그녀는 출생 후 미국으로 이민하여 미국에서 자랐다.

그녀의 고향은 어디일까...? 그녀는 영국 사람일까, 인도 사람일까, 미국 사람일까?

줌파 라히리의 책에는 미국에서 이민자 2세로 자라며 그녀가 (그녀뿐만이 아니라 그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많은 이민 2세, 3세들이) 느꼈을 정체성의 혼란과 인도 벵갈 출신의 부모 밑에서 전통 고수를 위한 일종의 강요와 억압 아래 느껴야 했을 수많은 번뇌가 담긴 글이 많다. (실제로는 작가가 그런 문제들로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작가의 글을 통해 막연하게나마 추측해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런 글들은 내 마음속에 커다란 공감대를 형성해주며, 나를 작가의 열혈 독자, 작가를 내 마음속의 최고의 작가로 만들어주었다.

한국에서 나고자란 내가 어째서 미국 이민자 2세들이 느꼈을 고통과 고뇌에 공감을 느낄 수 있느냐고 하겠지만, 내 인생에도 그와 비슷한 장면이 담겨 있고, 그것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늘 줌파 라히리 작품 속 이민 2세들에게 무한한 지지를 보내며 글을 읽곤 한다. 그들이 결코 원치 않음에도 그저 부모님의 강압에 의해 미국에서도 철저히 벵갈인의 삶을 살아가지 않기를, 거기에서 벗어나 그들이 바라는 그들만의 삶을 살아가기를... 비록 그는 부모에게서 나왔으나, 그렇다고 그 삶이 반드시 부모의 '연작소설'이 될 필요는 없는 거니까(그러니까, 본인이 원치 않는다면...). 아무튼,

 

이 책 속 주인공도 바로 인도 벵갈 출신 부모 밑에서 태어난 '미국인' 고골리이다. '고골리'라는 이름은 짐작가다시피 러시아 작가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리에서 딴 것이다. 주인공 아버지의 삶을 바꿔놓게 되는 큰 사건에 이 고골리가 연관을 맺게 되어 아버지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작가가 된다. 그러다가 후에 아들에게까지 (우여곡절 끝에) 고골리라는 이름을 붙여주게 된 것이다. 아버지 마음속에 고골리라는 작가가 얼마나 크게 자리하고 있으며,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알 수 없는 아들은 후에 이 이름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미국에서 벵갈 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러시아 이름을 갖게 되었으니 아무런 이음새도 찾을 수 없는 그 이름 아래 혼란스러울 법하다. 후에 고골리는 자신의 본명이 될 뻔 했던 '니킬'이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이름을 바꾼다는 행위가 아니라 그에게 더 큰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고골리는 다른 미국 친구들과 달리 크리스마스 대신 벵갈 전통 명절을 지키고 늘 부모님의 벵갈 인 친구와 그 자녀 들로 북적대는 파티에 참석해야 하며 주기적으로 캘커타를 방문해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친척과 지내야 하는 등의 생활에 염증을 느끼지만 그건 '고골리'라는 이름처럼, 자신이 아무리 바꾸고 싶어도 설령 진짜로 바꿔버렸다고 해도 이 세상 어딘가에는 영원히 고골리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듯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의심 한 번 품지 않고 너무나 당연스레 부모님의 세상에 남아 있는 것이 싫'지만 그렇다고 훌훌 벗어나버릴 수도 없는 그 현실의 굴레가 내게도 너무 절절하게 와닿아 읽는 내내 마음에 먹구름이 낀 것처럼 우울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결국 고골리는 자신의 이름을 고골리로 받아들였는지 철저하게 니킬로 바꿔버렸는지, 확신은 가지 않지만, 아마, 고골리는 영원히 고골리일 것이다. 아무리 법적 과정을 거쳐 니킬로 이름을 바꿨더라도. 고골리라는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은 결국 고골리를 다시 그 자리로 돌려 놓게 되는지도. 벗어날 수 없는 치명적인 사랑.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지어버리는 치명적인 사랑. 원망을 해야 할까, 수긍하고 감사해야 할까... 고골리의 문제는 고골리가, 내 문제는 내가, 각자의 삶은 각자가 알아서 결정하고 잘 헤쳐나가야겠지.

 

외국에서 이민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거나, 부모님 혹은 다른 외부에서 오는 강요와 억압을 벗어날 수 없어 자신만의 삶을 그리기 어렵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이름 때문에 많은 고민과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 들이 읽으면 정말 많은 부분 공감하고 자신의 내면을 더 깊이 들여다 볼 계기를 만들어줄 수 있는 책이다.

이러저러한 환경에서 오는 공감을 빼더라도, 그냥, 무조건 읽어보면 한없이 빠져들게 될 그런 작가, 그런 책이다. 줌파 라히리의 책들은.

다음 책은 언제 나오려나? 신간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는 작가!

 

 

_ 고쉬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자네는 아직 젊네. 자유롭다고." 그는 강조하느라 양손을 벌리며 말했다. "자네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 더 늦기 전에 복잡하게 생각 말고, 베개 하나에 담요 한 장 챙겨서 가능한 한 많은 세상을 보고 오게나. 후회하지 않을 걸세. 언젠가는 너무 늦고 말 거야."

"할아버지께서는 그게 바로 책을읽는 이유라고 항상 말씀하셨는데요." 아쇼크가 그 틈을 타 손에 쥔 책을 펴들며 이렇게 말했다.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여행할 수 있으니까요."

"사람마다 사는 방식이 다른 법이지." (28)

 

_ 애칭이란 인생이 항상 그렇게 심각하고, 형식적이고, 복잡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는 유물, 어린 시절이 남겨준 유물인 것이다. 애칭은 또한 사람이란 함께 있는 사람,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지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게 해준다. (41)

 

_ "디다, 곧 돌아올게요." 아시마는 이렇게 말했었다. 벵골 사람들은 안녕이라는 말 대신 언제나 이 말을 썼다.

"가서 마음껏 즐기거라." 할머니는 그 우렁찬 목소리로 고함을 치듯 말씀하시면서 아시마를 일으켜주셨다. 그러고는 떨리는 손으로 아시마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엄지손가락으로 눌러 닦아주셨다. "가서 이 할미가 못한 일을 하거라. 다 잘되기 위한 거란다. 명심해야 한다. 자, 이제 그만 가거라." (56)

 

_ 아시마는 요즘 들어 외국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평생 임신한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을 했다. 기다림은 끝도 없고, 언제나 버겁고, 끊임없이 남과 다르다고 느끼는 것이다. 한때는 평범했었던 삶에 이제는 불룩하게 괄호가 하나 삽입되었고, 이 괄호 속에는 끝나지 않는 책임이 들어 있었다. 이를 통해 이전의 삶은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 그 삶은 오히려 더 복잡하고 힘든 무엇인가로 대체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외국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임신했을 때처럼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호기심과, 그리고 동정심과 이해심이 묘하게 뒤섞인 감정을 자아내는 어떤 것이라고, 아시마는 생각하였다.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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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
한창훈 지음 / 창비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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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티브이에서 "**을 글로 배웠어요~"하는 게 유행이었는데, 내게도 글로 배운 게 몇 가지 있다.

그 중 한 가지는 바로 '섬'이다. 나는 섬을, 글로 배웠다. 섬에 산다는 것, 섬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것, 섬의 풍경 같은 것들. 내게는 기억할 만한 섬 방문기도 없고(제주도도 한 번 못 가봤으며, 혹시 제부도도 섬으로 쳐준다면, 그 섬은 몇 번 가봤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섬의 풍경 같은 것도 없었다.

그런 내게 마치 섬을 내 마음속 고향이라도 되는 듯 새겨넣어 준 것은 바로 한창훈 작가의 책들이었다.

작가의 책을 읽으면, 순식간에 공간 이동을 해 파도가 찰싹이는 바닷가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문득 입안 가득 신선한 해산물의 맛과 질감이 퍼져 견딜 수 없이 괴로워지기도 하고(그렇다, 그건 행복과 동시에 괴로움이다!), 코끝으로는 짭쪼롬하면서 비릿한 갯내가, 귓가로는 잠시도 쉬지 않고 조잘거리는 바다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이 증상은, 거문도를 다녀와서 더욱 심해졌다.

섬을 글로 배운 내가, 섬을 내게 가르쳐 준 한창훈 작가가 있는 거문도를 직접 찾아가 몸소 섬을 느껴본 것이다. (1박 2일 다녀와 놓고 섬을 느꼈다고, 섬을 알았다고 말하는 건 말도 안되겠지만, 적어도 실질적인 풍경과 냄새와 맛과 질감과 느낌을 조금이나마 내 안에 담아올 수 있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육지(!)에서의 생활이 서글플 때가 있는데 말이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 '일견'하고 났으니, 책속의 문장 문장이 이제는 그냥 글이 아닌 거라. 책 속의 낱말 하나 하나가 그냥 가슴에 콕콕 와서 박히는 거라. 거문도를 구르던 돌멩이 하나도 그리워지는 책읽기였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보다 더 마음을 절절하게 만든 건, 바닷가 자갈이 파도에 휩쓸려 이리 또로록 저리 또로록 굴러 다니듯이, 육지에서 이리 저리 '굴러 다니며' 온갖 고생(이라고 쓰고 경험이라고 읽는다)을 하고 섬으로 돌아온 사내가 섬 외딴 곳에 스스로를 가둬두고 스스로를 닦음질 하는 장면들이었다.

고령의 외조모가 살고 있는 섬으로 돌아온 사내는 동네와 외따로 떨어진 '도깨비가 나오는 집'에 거처를 꾸미고 그곳에서 자신의 내면을 벼리는 시간들을 보낸다. 온갖 세간이며 집 구조물까지 다 뜯겨나간 집을 수리하면서 육지에서 헐어버린 마음 어딘가를 함께 수리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고쳐 '내집'으로 만든 곳에서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적막에 맞서 홀로 '버틴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사내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낯선 여인의 방문을 받기도 하고, 과거 자신 앞에서 훌러덩 속바지를 까내리고 오줌을 싸던 한 얄미운 계집을 중년의 모습으로 재회하기도 하고, 세상을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다 온 파도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불나방과 밧줄과 날치의 각자 나름대로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기도 하며, 과거의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던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기억의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사내의 모습을 빌려 작가가 들려주고 싶었던 것 중에는 섬 사람들의 '삶'도 있었을 것이다. 육지에서 나고자란 사람들은 결코 상상하지도 못할, 섬 사람들만이 아는, 그들만의 삶. 혹은 천형으로 여기고, 혹은 가혹한 운명으로 여기고 순응해야 하는 그런 삶. 가끔 바다를, 섬을 그리워하여 찾아가 그곳의 풍경에 흠뻑 빠져 낭만을 즐기는 도시것들의 행위는 그야말로 사치일, 바다로 울고 웃는 바다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마음은, 어쩐지 조금쯤 쓸쓸하기도 하고, 나는 결코 알 수 없는 어떤 애잔함 같은 것이 느껴져 마음속에 자꾸자꾸 파도소리만 높아져갔다.

작가, 하면 책상 앞에 앉아 공책 펴 놓고 연필을 쥐고 있거나,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며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는 모습이 연상되지만, 한창훈 작가만은 그보다는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우거나 바닷가에서 갯것을 채취하거나, 포장마차에서 늦은밤까지 술꾼들의 고단한 술상을 봐주는 등의 모습, 그러니까 삶의 현장들이 떠오른다. 온몸 부딪쳐 직접 체험한 삶의 수많은 경험들이 작가의 문장들에 녹아 있음은, 책을 조금만 읽어봐도 금방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문장 곳곳에는 삶을 살아간다는 진지한 행위 뒤에 흐르는 땀방울이, 고뇌가, 고달픔이 그대로 묻어나있기도 하다. 마음이 팽팽하게 긴장되는 부분들이다. 삶이라는 건 거저 살아지는 게 아니지, 이렇게 온몸 부딪쳐 살아내야 하는 거지, 하는 깨침과 반성 같은 것들. 한창훈 작가가 들려주는 섬 이야기에서, 바다 이야기에서 내가 건지는 '갯것'들은 이런 것.

이 섬 이야기에서도 나는 많은 것들을 건져 올려 마음을 살찌우며, 또 한 번 글로 섬을 배웠다. 책을 읽는 밤마다, 거문도에서 먹고 마신 삼치회와 잎새주 생각에 침을 꼴깍거리기도 해가며...

 

 

_ "그때는 이런 노을을 보지 못했어요. 만약 그때 이렇게 아름다운 노을을 봤다면 혹시 삶이 바뀔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16)

 

_ 수십마리의 생선이 반찬이라는 아주 간단하고 흔한 단어 하나로 통일되어 죽었다. 사람 하나 살기 위해 죽어가는 것이 얼마인가. 그리고 그들은 각각 얼마나 오래도록 플랑크톤과 해초와 새끼 물고기들을 먹으며 살았나. 내 손아귀에서 마지막 몸부림을 치며 죽음을 맞이하는 이것은, 이것들의 살은, 결국 숱한 죽음들의 축적이라 부를 만한 것이다. 삶은 그러니까 죽음의 축적으로 인해 진행된다. 다른 것의 죽음이 내 삶을 진행시켜주는 것이다. (46)

 

_ 적막과 맞대면을 하면 무엇이 나오는지를, 사실은, 그것을 아직 모르고 있어서 그렇기도 할 것이다. 그동안 내가 하나 깨달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깨달았다기보다는 눈치챘다는 표현이 더 옳은데, 적막을 견디기에는 소음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적막의 무게를 견뎌내기 위해 소음을 내면 소음의 끝부분에서 적막을 다시 만나야 했고 그럴 때마다 그것은 더욱 크고 넓고 깊어져 있었다. (137)

 

_ 외로웠죠. 있잖아요, 외로움이라는 건 말이죠, 그걸 해소할 방법이 전혀 없을 때 찾아오는 거랍니다. 그 전까지는 외로움이 아니에요. 뭐라고요? 그렇죠, 그건 심심한 거죠. 심심한 거와 외로운 것은 달라요. (179)

 

_ 하지만, 그렇죠,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바로, 미래를 잘 몰라서이죠. 알 수 없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죠. (196)

 

_ 그래, 왜 세상에 나와 이런 고단한 삶을 살다가 돌아가는지 알 수는 없었다. 알 수 없어도 할머니가 소녀시절 늙은 할머니의 머리맡을 지켰듯이, 훗날 늙은 내 옆에도 어린 누군가가 앉아 있겠듯이 삶은 할머니 대에서 끝나는 건 아니었다. 삶은 이어질 것이고 할머니나 나나, 대(代)를 이음으로써 우주의 적막한 시간을 견디는, 알 수 없는, 그 긴 행렬의 중간조각일 것이다. 그렇다면 훗날 어린 내 피붙이에게 세상은 무어라고 나는 말하게 될까.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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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다 햄버튼의 겨울 - 제15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김유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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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은 (평소에 장기간 백수로 지내는) 내게 무척이나 바빠 정말 숨 돌릴 틈 없었던 시간으로 기억되어 있다. 그 기간만 떠올리면 골이 띵할 정도로.(남들은, 다들 그렇게 바쁘게 일하며 사는 건데...)

그때 정신없이 바쁘던 일을 마감하고 나서, 무언가 경쾌하고 산뜻한 책이 읽고 싶어 골라 들었던 책이다. 11월에는, 정말이지 책 읽을 틈도 없어, 오랜만에 읽는 책이기도 했고, 일 하느라 지친 머리를 가볍게 회복하게 해줄 책이 필요했기에. 그런 면에서는 꽤나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때의 내가 딱 필요로 한, 그만큼의 경쾌함과 그만큼의 산뜻함과 그만큼의 가벼움이 있었다.('가벼움'이라는 건 문장의 깊이나 필력을 말하는 게 아니라, 쉽게 잘 읽혔다는 의미다.)

 

제목에서는 짐작도 가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그렇지, '사라다 햄버튼'을 보고 과연 누가 그 이야기를 짐작할 수 있을까. 다만, '배경이 겨울일까?' 정도 짐작했을 뿐. 아, 그래서 배경이 겨울이었나? 잘 기억이 안 나네... 워낙 지친 머리로 읽었던 탓,으로 돌리자.)

'사라다 햄버튼'은 고양이 이름이었다. 주인공의 집에 느닷없이 찾아와 동거하게 된 한 마리 고양이. (동물이 등장하는 소설에는 일단 마음이 좀 더 녹고 본다.) 고양이, 그러니까 사라다 햄버튼의 등장은 그냥 단순히, '길냥이를 집에 데려다 키웠다'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의 이야기와 사연을 주인공에게 제공해주게 된다. 우연히 내 집에 찾아든 줄 알았던 고양이, 알고 보니 우연이 아닌 운명이었던 걸까?

 

사라다 햄버튼을 둘러싸고 풀려가는 이야기의 실타래와, 캐나다에서 잠시 귀국해 함께 살게된 새아버지와의 서먹하지만 뭔지 모를 끈끈한 정이 흐르는 부자관계, 그리고 주인공 뿐 아니라 독자도 궁금하게 만드는 친아버지의 존재, 떠나버린 여자친구의 빈자리를 채워줄 것으로 기대되는 새로운 여인과의 관계, 고양이 탐정의 등장 등이 이야기의 완급을 조절하며 재미나게 흘러갔다. 내 지친 머리를 살곰살곰 잘 달래준 책. 만족스러웠던 선택~!

 

 

_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김춘수의 시처럼, 녀석의 이름을 부르기 전에는 녀석은 단지 잘생긴 도둑고양이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사라다 햄버튼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을 때 비로소 녀석은 내 곁에 머물러 있는 유일한 가족이 되었다. (14)

 

_ 아버지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을 정리해 나열하라고 하면 난 아마 열 줄도 못 채울 것 같다. 어머니에 대해서 역시 스무 줄을 채우기 어려웠을 것이다. 좋아하는 음식과 음악, 영화, 징그러워하는 동물이나 듣기 싫어하는 단어나 문장 혹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 같은 것들 말이다.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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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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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은 김영하 작가의 책이다.

'오랜만'이라고 하니 예전에는 꽤나 읽었는가 싶은데, 그건 또 아니라 김영하 작가의 책을 읽은 게 몇 권 되지는 않는다.

주변에 김영하 작가의 책을 꽤 좋아하고 많이 읽은 지인들은 이 책을 두고 '김영하답지 않은 책'이라고 했다. 조금쯤 아쉽다는 표정으로.

나야 뭐, 김영하 작가의 책을 많이 읽지 않아 '김영하다움'이 뭔지 모르고 내 안에 작가의 글에 대한 어떤 기준이나 기대가 없기에, 나는 무난히 읽은 편이다.

(그러고 보니 '김영하답다'는 건 어떤 것인지 궁금해지네, 라고 쓰는데 노트북 옆에 놓인 김영하 컬렉션이 눈에 들어온다. 아아, 이렇게 책을 세트로 모셔 두고도 읽지 않아 이런 소릴 하고 있다니, 올해는 요 책들을 다 읽어줘야겠다, 다짐!)

 

어쨌거나, 나는 이 책에 실려 있는 혁신적인 (분량의) 단편도 마음에 들었고, 내 마음이 그대로 담긴 듯한 문장에 가슴이 콩콩거린 단편도 마음에 들었고,

(그러니 책을 읽은 지 두 계절이 지난 지금에라도 굳이 리뷰를 남기겠다고 이렇게 몇 자 끼적이고 있는 것이고...흠흠) 괜찮게 읽었다.

 

내가 가장 맘에 들어했다는, 혁신적인 (분량의) 단편은 소설 전체 길이가 총 한 페이지에도 달하지 않는 「명예살인」이고, 내 마음이 그대로 담긴 듯한 문장에 가슴이 콩콩거린 단편은 「마코토」이다. 일테면, 「마코토」 중의 이런 대목.

 

나는 이른바 짝사랑 전문가였고 그쪽 분야에만 오래 전념해오다보니 다른 분야는 아예 자신도, 관심도 없게 되었다. 짝사랑만의 도저한 쾌감이랄까, 뭐 그런 것에 중독되다보니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짝사랑만 가능한 대상을 물색하여 거기에 전념하게 되었다. 아이돌 댄스그룹 멤버에게 몰두하거나 내 평생 영원히 만나게 될 것 같지 않은 대만 텔레비전 드라마의 남자 배우를 남몰래 흠모했다. 그러다가 문득 달력을 보니 어느새 나는 서른이 되어 있었다. 거울 속의 저 아줌마는 과연 누굴까? (130)

 

정말이지 이 부분은, 어느 문장을 읽더라도 내 얘기가 분명했다! (그렇다고 김영하 작가가 내 얘기를 썼다고 우기려는 것은 당연히 절대 아니다. 우린 서로를 모르잖아요~!) '짝사랑만의 도저한 쾌감'이란 알 사람만 아는 것. 그러니 떠오르는 노래가 있는데,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에 보면 이런 가사가 나온다. '나는 그 사람 갖고 싶지 않아요. 욕심 나지 않아요. 그냥 사랑하고 싶어요.' 이게 바로 짝사랑의 대가들의 마음이랄까? 상대를 갖고 싶고 연애하고 싶다기보단, 그냥, 사랑하고 싶은 마음. 상대가 알든 모르든. 대부분은 상대는 모르지. 그래서 나도 처음부터 끝까지 짝사랑만 가능한 대상을 물색하여 빠져든 적도 여러 번이었는데, 그래서 좋아한 아이돌 댄스그룹 멤버는 H.O.T.의 이재원이었고, 대만 텔레비전 드라마의 남자 배우는 나지상(羅志祥)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달력을 보니 어느새 나는 서른도 넘어 있고 말이지. 거울 속 아줌마 보기 싫어서 거울도 안 본 지 오래다.

 

책을 읽은 지 오래 지나 워낙 인상적이었던 이 두 편의 글을 빼고는 기억이 희미해졌지만, 그래도 '김영하다움'이란 걸 내 안에 가지고 있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 김영하 작가의 책을 좋아하는 지인들처럼 아쉬운 표정으로 책장을 덮는 일은 결코 없었으니까! 다른 책들을 다 읽고 나서 이 책을 다시 읽어보면 기존의 책들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보일까? 나중에, 내 옆의 컬렉션들 다 읽은 후에 그 느낌 비교해봐야지.

 

_ 인간은 어떤 순간 완벽하게 다른 존재일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정말 인간은 삶의 전 순간을 오직 인간으로만 사는 것일까요? 그러니까 제 말은, 개나 돼지, 새나 물고기인 그 어떤 순간, 그것을 부인하기 어려울 때가 간혹은 있지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87)

 

_ 너무 평화롭고 좋아서, 어쩐지 그 시간은 누군가 다른 사람의 인생에서 몰래 빌려온 것만 같은,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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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와 클라라
필립 라브로 지음, 박선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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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는 (동네 근처, 동네 멀리 그 어디에도) 호수가 없기에, 내 소원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햇볕 따스한 날 호숫가 벤치에 앉아 책 읽기!

만약 호숫가에 앉아 책을 읽을 기회가 다가온다면, 무슨 책을 가져가서 읽어야 하지?

내가 호숫가로 이사간 것이 아니라 어쩌다 주어진 기회라면, 나는 아주 기억에 남을 책을 가져가야 한다.

소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인데, '흰 건 종이, 검은 건 글씨더라' 하는 책과 보내버리면 아주 낭패일 테니까.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내가 최고로 꼽는 책을 가져가야지,까지 생각해보기도 했는데(기회는 언제 올지 모르니, 구체적으로 계획해 놓는 게 좋겠다!)

만약, 지금 내게 '호숫가에서 책 읽기' 찬스가 주어진다면, 나는 이 책을 들고갈 것이다. 『프란츠와 클라라』.

그래, 이 책은, 호숫가에서 읽으면 더욱 좋겠다.

 

기왕이면 '봄이 시작되는 아름다운 오후'였으면 좋겠고, '그곳에 앉을 때 보이지 않는 문을 열고 마음속 독방으로 들어가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그런 벤치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책을 읽고 있을 때, 내가 앉은 반대편 끝으로는, 그가, 살며시 앉아준다면 좋겠다. 클라라의 벤치에 프란츠가 찾아와 앉은 것처럼. 뭐, 그래서 그와 사랑에 빠지고 싶다느니 하고 바란다면 너무 앞서 나간 것이고, 지나치게 사심 가득한 '호수에서 책 읽기' 설정이 되겠으므로, 일단 거기까지는 워워.

 

"솔직히 우린 같이 시간을 보냈다고 할 수 없어. 어제 이 벤치에서 한 시간, 겨우 한 시간뿐이었는걸."

"그 정도면 충분히 추측할 수 있어요."

확신에 찬 말투가 거슬렸다. 누구든 이처럼 거만하면서도 가식적이지 않고 침착하며 주저함 없이 부드럽게 말하는 아이를 보면 면박을 주고 싶으리라.

"그렇다면, 내게서 뭘 추측했는데?"

"불편한 듯 걷는 모습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어요. 뭔가를 떨쳐버리고 싶어하는 것 같았어요." (32~33)

 

행복하지 않은 모습으로 걸음을 옮겨 호숫가 벤치로 와 사색에  잠기는 클라라는, 프란츠의 추측 그대로였다.

사랑에 상처 입었다. 산산히 부서진 심장의 파편이 온몸의 혈관을 타고 돌아 너무나 아픈 나날이었다. 그런 날이 이어지던 가운데, 당돌한 소년 프란츠가 나타났다.

어딘가 평범하지 않아보이는 열두 살 소년 프란츠가 상처 입은 스무 살 여인 클라라를 위로하고 조언을 들려주는 모습은 정말이지 어딘가 맹랑해보이기도 하지만, 역시 나이란 숫자에 불과한 것인가, 일찍 세상을 깨달아버린 소년의 깊이 있는 마음 씀씀이와 어른 못지 않은, 아니 어른보다 뛰어난 논리와 사유는, 결코 '아이'라고 얕잡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 당돌한 소년은 심지어 자신보다 여덟 살이나 많은 스무 살 여인에게 사랑을 느끼게까지 되는데...

 

"이렇게 웃어본 지가 그때…… 그러니까,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봐요. 울고 있네요. 눈물이 날 만큼 웃었어요."

"이런 건 처음이야. 그때…… 이후론."

"그 표현은 이제 잊어버리기로 해요. 상처 입은 마음, 상처 입은 마음. 됐어요. 이젠 됐어요. 당신의 마음은 이젠 상처 입지 않았어요. 당신도 잘 알잖아요. 이렇게 웃을 수 있고요." (81~82)

 

클라라의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해주고 눈물이 날 만큼 웃게 해준 소년 프란츠.

정작 무언가 사연이 있어보이는 자신의 이야기는 한 번도 털어놓지 않고 늘 서둘러 다리를 건너가며 손을 흔들던 프란츠. 소년의 이야기를 알고 나니, 프란츠가 어째서 아이 같지 않고 그토록 내면이 다져질 수밖에 없었는가 알 것 같으면서, 이 어린 소년의 머리를 따스히 쓰다듬어 주고, 꼭 껴안아 다독여 주고 싶어졌다. 정작, 위로가 필요한 사람은 클라라가 아닌 프란츠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프란츠는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마음을 위로하는 법을 터득했는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절실했던 것을 타인에게 준 것인지도...

 

처음에는 아직 미성년(일 뿐만 아니라 '꼬맹이'라 불러도 될 것 같은 아이)과 성인의 사랑 이야기라니, 유치하거나, 말도 안 되거나, 아무튼, 그 이야기에 빠져들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웬걸, 정말이지 호숫가를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잔잔하면서도 빛나는 노을 같은 이야기를 만났다.

마음속으로 둘의 사랑을 응원했다...

살금살금 봄날 꽃밭의 나비를  잡으러 다가가다 살랑, 날아가버리는 나비를 바라보는 것 같은 마지막 페이지(185)가, 오래오래 내 마음에 남았다.

나비는 날아가 버렸어도, 나비가 앉았던 꽃밭은 여전히 향기롭고 아름다우리니, 나비 날아간 보이지 않는 선은, 언젠가 다시 나비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해줄지니...

 

십 년 전 '불가능'했던 것이 오늘은 가능했다. 나는 감히 장담한다. 그들은 사랑을 나눌 거라고.

그러지 않는다면, 그들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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