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읽은 김영하 작가의 책이다.

'오랜만'이라고 하니 예전에는 꽤나 읽었는가 싶은데, 그건 또 아니라 김영하 작가의 책을 읽은 게 몇 권 되지는 않는다.

주변에 김영하 작가의 책을 꽤 좋아하고 많이 읽은 지인들은 이 책을 두고 '김영하답지 않은 책'이라고 했다. 조금쯤 아쉽다는 표정으로.

나야 뭐, 김영하 작가의 책을 많이 읽지 않아 '김영하다움'이 뭔지 모르고 내 안에 작가의 글에 대한 어떤 기준이나 기대가 없기에, 나는 무난히 읽은 편이다.

(그러고 보니 '김영하답다'는 건 어떤 것인지 궁금해지네, 라고 쓰는데 노트북 옆에 놓인 김영하 컬렉션이 눈에 들어온다. 아아, 이렇게 책을 세트로 모셔 두고도 읽지 않아 이런 소릴 하고 있다니, 올해는 요 책들을 다 읽어줘야겠다, 다짐!)

 

어쨌거나, 나는 이 책에 실려 있는 혁신적인 (분량의) 단편도 마음에 들었고, 내 마음이 그대로 담긴 듯한 문장에 가슴이 콩콩거린 단편도 마음에 들었고,

(그러니 책을 읽은 지 두 계절이 지난 지금에라도 굳이 리뷰를 남기겠다고 이렇게 몇 자 끼적이고 있는 것이고...흠흠) 괜찮게 읽었다.

 

내가 가장 맘에 들어했다는, 혁신적인 (분량의) 단편은 소설 전체 길이가 총 한 페이지에도 달하지 않는 「명예살인」이고, 내 마음이 그대로 담긴 듯한 문장에 가슴이 콩콩거린 단편은 「마코토」이다. 일테면, 「마코토」 중의 이런 대목.

 

나는 이른바 짝사랑 전문가였고 그쪽 분야에만 오래 전념해오다보니 다른 분야는 아예 자신도, 관심도 없게 되었다. 짝사랑만의 도저한 쾌감이랄까, 뭐 그런 것에 중독되다보니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짝사랑만 가능한 대상을 물색하여 거기에 전념하게 되었다. 아이돌 댄스그룹 멤버에게 몰두하거나 내 평생 영원히 만나게 될 것 같지 않은 대만 텔레비전 드라마의 남자 배우를 남몰래 흠모했다. 그러다가 문득 달력을 보니 어느새 나는 서른이 되어 있었다. 거울 속의 저 아줌마는 과연 누굴까? (130)

 

정말이지 이 부분은, 어느 문장을 읽더라도 내 얘기가 분명했다! (그렇다고 김영하 작가가 내 얘기를 썼다고 우기려는 것은 당연히 절대 아니다. 우린 서로를 모르잖아요~!) '짝사랑만의 도저한 쾌감'이란 알 사람만 아는 것. 그러니 떠오르는 노래가 있는데,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에 보면 이런 가사가 나온다. '나는 그 사람 갖고 싶지 않아요. 욕심 나지 않아요. 그냥 사랑하고 싶어요.' 이게 바로 짝사랑의 대가들의 마음이랄까? 상대를 갖고 싶고 연애하고 싶다기보단, 그냥, 사랑하고 싶은 마음. 상대가 알든 모르든. 대부분은 상대는 모르지. 그래서 나도 처음부터 끝까지 짝사랑만 가능한 대상을 물색하여 빠져든 적도 여러 번이었는데, 그래서 좋아한 아이돌 댄스그룹 멤버는 H.O.T.의 이재원이었고, 대만 텔레비전 드라마의 남자 배우는 나지상(羅志祥)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달력을 보니 어느새 나는 서른도 넘어 있고 말이지. 거울 속 아줌마 보기 싫어서 거울도 안 본 지 오래다.

 

책을 읽은 지 오래 지나 워낙 인상적이었던 이 두 편의 글을 빼고는 기억이 희미해졌지만, 그래도 '김영하다움'이란 걸 내 안에 가지고 있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 김영하 작가의 책을 좋아하는 지인들처럼 아쉬운 표정으로 책장을 덮는 일은 결코 없었으니까! 다른 책들을 다 읽고 나서 이 책을 다시 읽어보면 기존의 책들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보일까? 나중에, 내 옆의 컬렉션들 다 읽은 후에 그 느낌 비교해봐야지.

 

_ 인간은 어떤 순간 완벽하게 다른 존재일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정말 인간은 삶의 전 순간을 오직 인간으로만 사는 것일까요? 그러니까 제 말은, 개나 돼지, 새나 물고기인 그 어떤 순간, 그것을 부인하기 어려울 때가 간혹은 있지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87)

 

_ 너무 평화롭고 좋아서, 어쩐지 그 시간은 누군가 다른 사람의 인생에서 몰래 빌려온 것만 같은,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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