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와 귀울음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0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인상깊은 구절

비판하지 마라. 화내지 마라. 눈살을 찌푸리지 마라. 업신여기지 마라. 비판은 심신을 긴장시키고, 경멸은 감정을 마모시킨다. 이 맹속력으로 질주하는 대도시에서 거덜 나지 않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도 그냥 받아들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아주 약간 핥는다든지 깨문다든지 쓰다듬어 봐야 한다. 호기심을 잃은 순간부터 사람은 조금씩 죽어간다. 눈앞의 현실을 자신과 관계없는 것이라고 판단한 순간부터, 받아들인 현실은 체를 치듯 숭숭 빠져나간다.









온다 리쿠, 유명한 작가인데 아직 한 번도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작품을 가장 많이 들어봤지만, 어쩌다 이 책을 먼저 읽어보게 되었다.

 

책 날개의 저자 소개를 읽다가, 한 책 제목에서 그만 눈길이 멈췄다.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

아, 그 제목을 어찌 잊으리오!

그 책이라면 작넌에 2주 가량 나를 힘들게 했던,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겨우겨우 읽어나갔던 책이 아닌가!

어찌나 힘들게 읽었던지 그만 저자 이름 조차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던 거다.

그러니까, 이 책이 온다 리쿠와의 첫 만남이 아니었다. 구면인데, 하필이면 그게 별로 좋지 않은 첫인상을 남긴...

그래서 이 책의 첫장을 펼치기도 전에 나는 슬그머니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다.

 

거기다가, 이번에는 웬일로 책 소개 조차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읽단 책부터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별로 좋은 습관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평소에는 책 소개를 꼼꼼히 읽어보는 경우가 많다...)

세 번째 단편 쯤에 이르렀을 때에야, '으응....?' 머리에 물음표를 가득 달고 책을 뒤집어 뒷 표지에 실린 글을 한 번 읽어보았는데,

아 그렇구나, '주옥같은 단편 11편'...

단편소설집인줄 모르고 장편처럼 읽어나가고 있었다. 물론 연결이 제대로 안 됐겠지만,

<호텔 정원에서...>의 느낌이 떠올라, 그냥 그러려니 하고 읽고 있었던 것...

단편집이란 걸 알고, 앞의 글을 다시 후루룩 읽어보니 그제야 마침표가 하나 찍힌다.

 

이 책에는 온다 리쿠의 추리 단편 11편이 실려있다.

표제작인 '코끼리와 귀울음'은 4번 수록작이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우연히 들은 '한 마디'나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 등이 단서가 되어 사건을 추리한다는 전개이다.

바닷가에서 한 아이가 '바다에 있는 것은 인어가 아니다'라고 말을 하거나,

기차역 대합실에서 한 남자가 '7시 3분에 마중 나와라'라고 말한다.

바다에 있는 것이 인어가 아닌 거나, 7시 3분에 마중 나오라는 것이 어떻게 사건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거지?

그 추리 과정이 상당히 흥미롭다.

물론 조금은 억지로 상황을 거기에 맞게 엮어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감도 없잖아 있지만,

평소에 추리소설을 많이 접하지 않은 나로써는 그런 추리가 무척이나 신기하고 대단해 보이는 게 사실!

 

나는 첫 번째로 수록된 '요변천목의 밤'이 주는 느낌이 가장 좋았는데,

소설 속 다완이 실제로 등장한다니,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보고 싶다. 밤 하늘에 가득한 별이 들여다 보이는 다완...

아무튼, 이 책을 읽고나니 <호텔 정원에서...>로 얻은 이미지는 이제 그만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매력적인 인물 세키네 다카오의 공이 크다!

그리고 앞으로 세키네 씨 세 자녀의 추리 공방도 볼 수 있길 바라는 마음 한 가득!



온다 리쿠, 유명한 작가인데 아직 한 번도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작품을 가장 많이 들어봤지만, 어쩌다 이 책을 먼저 읽어보게 되었다.

 

책 날개의 저자 소개를 읽다가, 한 책 제목에서 그만 눈길이 멈췄다.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

아, 그 제목을 어찌 잊으리오!

그 책이라면 작넌에 2주 가량 나를 힘들게 했던,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겨우겨우 읽어나갔던 책이 아닌가!

어찌나 힘들게 읽었던지 그만 저자 이름 조차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던 거다.

그러니까, 이 책이 온다 리쿠와의 첫 만남이 아니었다. 구면인데, 하필이면 그게 별로 좋지 않은 첫인상을 남긴...

그래서 이 책의 첫장을 펼치기도 전에 나는 슬그머니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다.

 

거기다가, 이번에는 웬일로 책 소개 조차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읽단 책부터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별로 좋은 습관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평소에는 책 소개를 꼼꼼히 읽어보는 경우가 많다...)

세 번째 단편 쯤에 이르렀을 때에야, '으응....?' 머리에 물음표를 가득 달고 책을 뒤집어 뒷 표지에 실린 글을 한 번 읽어보았는데,

아 그렇구나, '주옥같은 단편 11편'...

단편소설집인줄 모르고 장편처럼 읽어나가고 있었다. 물론 연결이 제대로 안 됐겠지만,

<호텔 정원에서...>의 느낌이 떠올라, 그냥 그러려니 하고 읽고 있었던 것...

단편집이란 걸 알고, 앞의 글을 다시 후루룩 읽어보니 그제야 마침표가 하나 찍힌다.

 

이 책에는 온다 리쿠의 추리 단편 11편이 실려있다.

표제작인 '코끼리와 귀울음'은 4번 수록작이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우연히 들은 '한 마디'나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 등이 단서가 되어 사건을 추리한다는 전개이다.

바닷가에서 한 아이가 '바다에 있는 것은 인어가 아니다'라고 말을 하거나,

기차역 대합실에서 한 남자가 '7시 3분에 마중 나와라'라고 말한다.

바다에 있는 것이 인어가 아닌 거나, 7시 3분에 마중 나오라는 것이 어떻게 사건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거지?

그 추리 과정이 상당히 흥미롭다.

물론 조금은 억지로 상황을 거기에 맞게 엮어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감도 없잖아 있지만,

평소에 추리소설을 많이 접하지 않은 나로써는 그런 추리가 무척이나 신기하고 대단해 보이는 게 사실!

 

나는 첫 번째로 수록된 '요변천목의 밤'이 주는 느낌이 가장 좋았는데,

소설 속 다완이 실제로 등장한다니,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보고 싶다. 밤 하늘에 가득한 별이 들여다 보이는 다완...

아무튼, 이 책을 읽고나니 <호텔 정원에서...>로 얻은 이미지는 이제 그만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매력적인 인물 세키네 다카오의 공이 크다!

그리고 앞으로 세키네 씨 세 자녀의 추리 공방도 볼 수 있길 바라는 마음 한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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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없는 사람들
하산 알리 톱타시 지음, 김라합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인상깊은 구절

이발사에게 비둘기 그림을 손수 그렸냐고 물었다.
"예, 벌써 말씀드렸을 텐데요."
이발사가 대답했다.
"기억이 안 나는데요. 제가 까먹었나 봅니다."
"틀림없이 또 잊고 다음에 다시 물으시겠지요."
"우리네 삶이라는 게 반복으로 이루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때 이발사가 내 옆에 앉더니 예의 사형집행인 눈으로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반복의 반복으로 이루어지지요."









한 마을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내 영혼이 줄어든다!"고 외친 즌글 누리가 제일 먼저 사라졌고,

그 마을의 아리따운 처녀 귀베르진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젠네트의 아들이 귀베르진 납치의 용의자가 되어 '고문'에 가까운 추궁을 받지만,

결국 젠네트의 아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실종'되고 만다.

일련의 실종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큰 도시들에 이 일을 알리러 떠난 읍장도 감감무소식이다.

 

이렇게 사라지는 사람들을 둘러싸고 이 마을에서 벌어진 일들에 관한 이야기다.

고백하자면, 포스트 오르한 파묵! 터키의 카프카! 이런 수식어들에 혹해서 읽은 책이었는데,

이 책을 읽어내기가 그리 수월하지 않았다.

나는 도대체 이발사(준글 누리)가 사라진 건지, 사라지지 않은 건지, 돌아온 건지, 언제 돌아온 건지

이 책이 끝날 때까지도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마지막 즈음에 가서는 더 헷갈려 버렸다.)

즌글 누리는 아내에게 자기의 영혼이 줄어든다고 외치고 사라진 인물이다.

하지만 즌글 누리가 사라지고 나서도 이 마을에는 여전히 즌글 누리가 존재하는 것 같다.

새로온 이발사가 어쩌면 즌글 누리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어쩌면 즌글 누리는 애초에 사라지지 않았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러다가 작중에서 1인칭으로 나오는 '나'가 또 그 모든 인물인 것도 같고, 혼란의 도가니다.

장면도 이발소였다가 읍장 집이었다가, 오늘 아침이었다가 읍장의 과거였다가, 이리저리 수도 없이 전환되어

안 그래도 이해력 둔한 내가 따라가기에는 조금 벅찬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사라진 사람들을 찾는 과정을 따라다니다 보니,

문득, 사실 우리 모두는 누군가를 잃어버린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존재가 내 주변의 누가 되었든, 혹은 나 자신이 되었든.

'그림자 없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이 주는 느낌처럼 영혼을 상실한 기분이랄까.(즌글 누리의 표현을 빌려, '영혼이 줄어드는' 기분?)

나는 늘 마을에 있지만, 사람들은 나의 존재를 그만 잊어버리고 만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보이지 않는다고 여긴다.

그리고 나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은 제각각이다. '그림자 없는 사람'이 아닌 '그림자만 남긴' 사람이 되어버린 듯.

또한 사실 그 사람은 늘 내 옆에 있었지만 나는 그의 존재를 망각하고 만다.

내 앞의 그 사람에게 태연하게 이전에 내가 알던 그 사람 이야기를 한다. 이런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다고.

(사실은 눈 앞의 그 사람인데도 말이다!)

그러고는 이런 질문이 계속 반복되지 않을까? "그런데 당신은 누구시죠?" "글쎄요, 제가 누구일까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마음이 굉장히 헛헛하다.

이 책 속에 그만 나의 그림자를 두고 나와버렸다.

아니, 어쩌면 내가 늘 그림자를 잃어버리고 지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을지도.

한 번 쯤은 읽어보면 좋을 소설이다.


한 마을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내 영혼이 줄어든다!"고 외친 즌글 누리가 제일 먼저 사라졌고,

그 마을의 아리따운 처녀 귀베르진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젠네트의 아들이 귀베르진 납치의 용의자가 되어 '고문'에 가까운 추궁을 받지만,

결국 젠네트의 아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실종'되고 만다.

일련의 실종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큰 도시들에 이 일을 알리러 떠난 읍장도 감감무소식이다.

 

이렇게 사라지는 사람들을 둘러싸고 이 마을에서 벌어진 일들에 관한 이야기다.

고백하자면, 포스트 오르한 파묵! 터키의 카프카! 이런 수식어들에 혹해서 읽은 책이었는데,

이 책을 읽어내기가 그리 수월하지 않았다.

나는 도대체 이발사(준글 누리)가 사라진 건지, 사라지지 않은 건지, 돌아온 건지, 언제 돌아온 건지

이 책이 끝날 때까지도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마지막 즈음에 가서는 더 헷갈려 버렸다.)

즌글 누리는 아내에게 자기의 영혼이 줄어든다고 외치고 사라진 인물이다.

하지만 즌글 누리가 사라지고 나서도 이 마을에는 여전히 즌글 누리가 존재하는 것 같다.

새로온 이발사가 어쩌면 즌글 누리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어쩌면 즌글 누리는 애초에 사라지지 않았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러다가 작중에서 1인칭으로 나오는 '나'가 또 그 모든 인물인 것도 같고, 혼란의 도가니다.

장면도 이발소였다가 읍장 집이었다가, 오늘 아침이었다가 읍장의 과거였다가, 이리저리 수도 없이 전환되어

안 그래도 이해력 둔한 내가 따라가기에는 조금 벅찬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사라진 사람들을 찾는 과정을 따라다니다 보니,

문득, 사실 우리 모두는 누군가를 잃어버린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존재가 내 주변의 누가 되었든, 혹은 나 자신이 되었든.

'그림자 없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이 주는 느낌처럼 영혼을 상실한 기분이랄까.(즌글 누리의 표현을 빌려, '영혼이 줄어드는' 기분?)

나는 늘 마을에 있지만, 사람들은 나의 존재를 그만 잊어버리고 만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보이지 않는다고 여긴다.

그리고 나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은 제각각이다. '그림자 없는 사람'이 아닌 '그림자만 남긴' 사람이 되어버린 듯.

또한 사실 그 사람은 늘 내 옆에 있었지만 나는 그의 존재를 망각하고 만다.

내 앞의 그 사람에게 태연하게 이전에 내가 알던 그 사람 이야기를 한다. 이런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다고.

(사실은 눈 앞의 그 사람인데도 말이다!)

그러고는 이런 질문이 계속 반복되지 않을까? "그런데 당신은 누구시죠?" "글쎄요, 제가 누구일까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마음이 굉장히 헛헛하다.

이 책 속에 그만 나의 그림자를 두고 나와버렸다.

아니, 어쩌면 내가 늘 그림자를 잃어버리고 지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을지도.

한 번 쯤은 읽어보면 좋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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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 1
정재영 지음 / 풀빛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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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부끄럽지만) 나는 '전혀'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될만큼, 철학을 거의 모름을 밝혀둔다.

이 책을 읽으려는 사람 중에는 철학에 상당한 지식이나 많은 관심을 가진 사람도 있을테고, 나처럼 철학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지만 한 번쯤은 발을 담가보고 싶은,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다.

후자의, 나와 비슷한 경우의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읽은 느낌을 간단히 남겨본다.

철학,이라는 말을 듣고 "너 자신을 알라"나 소크라테스, 플라톤 같은 철학자를 떠올리는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내가 처음으로 읽은 철학책이 바로 <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이다.

작년에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읽고나서 갑자기 무척 알고싶어진 철학자가 있어서 도서관에서 처음으로 철학 쪽을 기웃거려 책을 몇 권 빌려 왔었다. 의욕에 불타 올라 그 중 한 권의 책장을 펼쳤지만, 결국 몇 페이지 읽지 못하고 함께 빌려온 다른 철학서와 함께 그대로 반납하고 말았던 가슴 아픈 기억이 있다. 그 뒤, 몇몇 흥미로운 철학서 소개를 보았지만 선뜻 집어들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책, <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가 기어이 나를 잡아 끌어 책장을 펼쳐들도록 한 데는 그만한 매력이 있었을테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일단 겁없이 철학책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제목을 보고는 철학과 '도시 디자인'이 결합된 책인가, 생각했는데 책 소개를 읽어보니 유럽 도시 곳곳으로 철학 여행을 떠난다 한다.

그렇게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철학과 사람을 살살 유혹하다 못해 황홀하게 만드는 여행이 결합된 책이라니, 내가 작년에 맛 본 '실패'의 쓰라린 경험을 기억 저편으로 밀어내고 다시 도전해볼 용기를 내도록 해준다.

저자의 당부대로 먼저 여행짐을 꾸렸다. 나는 이제 열한 곳의 유럽 도시와 고대 그리스로 떠날 테니까!

하지만 사뭇 경쾌한 발걸음으로 떠난 '여행'은 몇 걸음 내딛기도 전에 이 여행의 무게가 그리 가볍지 않음을, 아니 상당히 무거울지도 모름을 느끼게 해주었다. 왜냐하면, 아름다운 경치나 보고 즐기자고 떠난 여행이 아니라, 말 그대로 '철학 여행'이니까.

저자는 이 철학 여행의 목표를 '우리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했다.

살면서 한 번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해 본 사람이라면 이 여행 목표만 보고도 그 무게가 느껴지리라 생각된다. 내가 누구인가,라는 물음만큼 답도 없고 어려운 질문이 있을까? 그런데 이제 우리의 정체성을 발견하기 위해 이 여행을 떠나자 한다. 처음의 경쾌한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사뭇 비장해진다.

 

그리고 닷새 정도에 걸쳐 대단원의 '철학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

(어떤 도시를 다녔으며, 어떤 철학 사상을 보고 들었고, 어떤 철학자를 만났는지는, 책 소개에 나와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생략하겠다. 사실 그걸 정리하기에는 아직 나는 '철학을 너무 몰라~'가 진심이겠지만.)

이 여정에는 정말 흥미로워 정신없이 발걸음을 재촉하며 다닌 곳도 있었고, 엄청난 무게감에 짓눌려 한 줄 한 줄 천천히 따라가며 잠시 쉬었다 가고 싶은 곳도 있었다. 아, 이런 게 철학의 묘미로구나 하며 열심히 밑줄 긋고 황홀한 마음으로 읽은 부분이 있었는가 하면, 아, 역시 철학은 너무 어렵구나 하며 흰색은 종이요 검은색을 글자,라는 심정으로 읽은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기 위해 떠난 여행길일지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행복으로만 충만할 수는 없는 법. 이번 '철학 여행'도 그런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굴곡이 있었던 것은 당연지사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 나 같은 철학 문외한도 겁없이 덤벼들 수 있도록 매력적인 소재로 접근했다는 점이었다면,

그 다음 매력은, 이 책을 읽고 나면 철학이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될까?

이 책에서 소개해준 데카르트의 <방법 서설>이나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 읽고 싶어졌으니까. 앞으로는 다른 철학책도 과감히 도전해 볼 수 있으리라는 용기가 생겼으니까.

물론 책 속에서 만난 여러 철학적인 내용들이 무척 어려웠고, 정말 철학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읽기에는 힘든 내용도 많았다. 하지만 내가 말했다시피 나는 철학을 '하나도' 모르지 않는가. 어떻게 전혀 모르는 분야에 접근을 하면서 그저 쉽고 재미있기만을 바란단 말인가. 나의 '도둑놈 심보'가 부끄러워지고, 그런 나의 마음가짐을 반성할 수 있었다. 이런 나의 마음을 꾸짖기라도 하듯, 여행에 앞서 말한 저자의 한 마디가 오래 마음에 남는다. "남이 먹기 좋게 꼭꼭 씹어서 한입에 넣어 주는 철학은 생명력이 약하다."(당연히 이 책에서는 그렇게 '꼭꼭 씹어서 한입에 넣어 주는' 밥은 없다.) 그러니 이 책은 내 스스로 꼭꼭 씹어가며 몇 번이고 읽어 생명력이 강한 철학을 내 안에 키워야겠다.

 

나처럼, 철학을 어렵게만 느끼고 선뜻 접근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 철학을 만나보라고 적극 권해주고 싶다.

후회하지 않는 철학 여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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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마루 2008-12-08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봤습니다. 한번 읽어봐야 될것 같은 책입니다.
도시속 철학이라.. 유럽여행가기전 봐야 될것 같음..^^
 
아름다운 나의 사람들 - 프랑스에 간 카티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강혜경 옮김 / 시공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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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 롱스타킹...

우리에게는 '말괄량이 삐삐'라는 제목으로 더 익숙한 삐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또는 받고 있는 삐삐이니만큼

내게도 '삐삐'하면 떠오르는 특별한 추억이 한 자락 있다. 

어렸을 때, 난생 처음으로 본 연극이 바로 삐삐였던 것.(지금 기억하기로는 연극이었던 것 같은데 잘은...)

우리 4남매와 사촌 언니 동생까지 해서 모두 엄청 들뜬 마음으로 봤던 삐삐.

빨간 양갈래 머리와 주근깨가 과장된 커다란 인형 머리를 쓴 삐삐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리고 그날 즐거웠던 우리들의 모습은 아주 선명하게...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나는 남들 다 보이는 '와우~!'라는 반응은 미처 못 나왔다.

사람 이름 못 외우는 나의 주특기가 여기에서도 발휘되었다,고 핑계대기에는 너무나 대 작가인데?

그 이름 아래 소개 된 '삐삐의 작가'를 보고서야 아!하고 탄성이 터지며, 떠오르는 나의 어린 시절 추억...

생각해보니,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작품을 책으로 만나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보고도 기억을 못하는지, 책 이름을 하도 많이 들어서 봤다고 착각을 하고 안 봤는지.-가끔 이런 책들이 있다.)

이제서라도 나는 그녀의 작품 세계 속으로 들어가보고 싶었다.

그 시절에 함께 삐삐를 보며 같이 박장대소하고 같이 즐거웠던 사랑스런 나의 형제자매, 사촌들, '아름다운 나의 사람들'을 떠올리며...

 

이 책은 린드그렌의 자전적 여행 소설 3부작이다.

<미국에 간 카티 - 바다 건너 히치하이트>, <이탈리아에 간 카티 - 베네치아의 연인>, <프랑스에 간 카티 - 아름다운 나의 사람들>

나는 개인적으로 제목이 가장 끌리는 <아름다운 나의 사람들>을 먼저 읽어보았는데,

아, 이 책이 3부작의 막내였다.(기왕 이렇게 된 거, 다음에는 <베네치아의 연인>을 읽으리라 다짐. 아예 거꾸로...)

 

이 여행 소설의 주인공은 카티. 유쾌하고 발랄한 20대 아가씨이다.

그리고 그녀의 친구 에바가 나오고 이탈리아에서 만난 렌나르트가 주요 등장 인물이다.

(<이탈리아에 간 카티 - 베네치아의 연인>에서 그 '연인'이 혹시 렌나르트가 아닐까? 혼자 추측을...)

미국으로 이탈리아로 열심히 돌아다닌 카티가 이번에 프랑스에 가는 이유는?

바로 렌나르트와 결혼을 하기 위해서!

늘 외국에서 하는 결혼식을 꿈꾸던 내게는 정말 '꿈의 결혼식' 장면을 이 책을 통해 보게 되는 것이었다.

이 책을 읽어나가는 내 마음이 얼마나 떨리고 설렜는지는...

 

카티, 렌나르트, 에바와 함께 파리 곳곳을 돌아다니며 정말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처음 가 본 파리이지만, 처음 온 것이 아닌 파리.

왜냐하면 이미 책으로 사진으로 영화로 무수히 만나온 도시이니까.

그 도시에 드디어 발을 디뎠을 때의 그 황홀함, 그 도시 곳곳에서 만나는 익숙한 것들에의 친근감.

아, 나도 파리에 발을 디디면, 낯선 느낌보다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친구를 만난 듯한 그런 느낌이 들까?

그 느낌을 함께 맛 보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 마음은 이미 파리에 있다.

 

이 책은 읽는 내내 행복했다.

책 속에서 삐삐가, 아니 카티가 통통통 튀어다니는 느낌이랄까.

와아! 드디어 파리에 도착했다!!!라고 소리 지르며 얼른 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 같고,

나 이제 결혼해! 얼마나 행복한줄 알아?!라고 하며 황홀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 같고,

이봐, 내가 이제 엄마가 된다고!라고 하며 벌써부터 모성애가 가득한 행복한 미소를 짓는 것 같고.

카티와 함께한 프랑스 여행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이제 막 태어난 아이를 팔에 안고 카티가 속삭여 주는 이야기는, 올해 만난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기억하고 싶다...

아, 정말이지 아름다운 나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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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발견 1 ㅣ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10
스텐 나돌니 지음, 장혜경 옮김 / 들녘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나는 어렸을 적에 행동이 무척 굼떴다. 아침에 학교 갈 준비를 하느라 전쟁을 치르는 통에도(4남매의 등교 준비가 얼마나 부산했을지 한 번 상상해 보시길!) 나는 "세월아 네월아~" 꿈지럭꿈지럭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밥을 먹었다. 그러다보니 부모님과 떨어져 살 적에는 지각을 밥 먹듯이 했고, 아침마다 아버지가 우리 4남매를 등교 시켜주실 적에는 나 때문에 몽땅 지각하게 생겨, 경적을 누르다 지친 아버지가 나는 빼놓고 다른 3남매를 먼저 '배달'하고 오신 적도 있었다. '쏜살같다'는 시간이야 지나가든 말든 나 혼자 무슨 배짱으로 그런 여유를 부렸었는지 모르겠지만, 뭐 어쨌든 지금은 다 옛일이다.

 

살다 보니, 시간이 더 빨라진 건지, 내 마음에 여유가 없어진 건지, 여하튼 이제는 '쏜살처럼' 지나가는 그 시간의 흐름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아니, 이제는 '느리다'는 것이 죄악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바쁜 시대에 꿈지럭거릴 틈이 어디 있어!라고 누가 호통이라도 치는 것 같다. 요즘 들어, 그때의 '느림'이, 그때의 배짱이 가득 담긴 '여유'가 그리워지곤 한다. 바쁜 일도 없으면서 경보 대회라도 나간 모양으로 바쁜 걸음을 내딛는 내 모습을 발견 할 때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 내 마음에 한 줄기 느림의 여유를 되찾아 주는 책을 만났다. 바로 스텐 나돌니의 <느림의 발견>.

 

이 책의 주인공은 19세기 영국해군장교이자 북극탐험가인 존 프랭클린이다. 존은 어렸을 적의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느린 아이였다. 존도 아버지에게 "또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네!"라고 꾸지람 듣기가 일쑤다. 친구들과 공놀이를 해도 공이 어느 순간에 지나갔는지, 누군가 공을 붙잡은 건지 그냥 내밀고 있는 손에 공이 와 닿았는지 알 수도 없다. 빠르게 날아다니는 공의 움직임을 따라가기에 존은 너무나 느렸다. 빨리 보려고 하면 눈에 줄무늬가 아른거리기도 한다. 존은 여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좋지만, 남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따돌림을 당할 뿐이다. 그래서 모습을 바꾸어보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이미 사람들은 존의 느림에 대해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존이 어떤 변화를 시도해도 사람들에겐 먹히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을 느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한 존은 바다로 나가 배를 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쓸만한 항해사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존은 바다로 나가기 위한 준비를 열심히 했다. 학업을 마치면 해군사관학교 생도 자격으로 배에 태워주겠다는 선원 매슈의 말에 용기가 충천하여 학교에서 열심히 '훈련'을 한다. 하지만 학교에서도 다른 사람이 되기는 어려웠다. 다들 존의 느림을 금세 간파하고 괴롭혔다. 하지만 존은 가슴 속에 거인 같은 희망을 품고 어떤 장애에도 굴하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첫 항해에 나서는 날이 온다.

 

책은 이어서 존 프랭클린의 선원으로서의 삶, 선장으로서의 삶, 해군장교로서의 삶 등을 들려주며, 그의 삶 곳곳에 '느림'이라는 장치를 설치해 놓고, 우리가 '느림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도록 해준다. 존 프랭클린이 실제로 '느리게' 살았던 인물인지는 모르겠다. 저자의 설정이든 실제 인물의 삶이었든, 소설 속 존 프랭클린의 인생을 통해 '느림'이 가르쳐주는 깨달음이 참 많았다. 지난 날의 내 모습을 돌이켜 보면, 느리다는 것이 삶을 크게 그르친 적은 없었던 것 같다(학교에 조금 지각한다고 해서 인생이 크게 어긋날 것도 아니지 않은가). 행동으로 인한 실수든, 말로 인한 실수든 대개는 조급함이나 성급함에서 비롯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고해서 인생의 매 순간을 다 느리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빨라야 할 때는 빠르고, 느려야 할 때는 느릴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시간에 지배당하지 않고 우리의 삶을 충실히 살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금의 나는 조금 느려도 될 때마저도 "빨리빨리!"를 외치며 시간을 재촉하며 살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모처럼 '느림'을 발견한 나는, 이제 조금 더 여유로울 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겠다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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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겔 2008-12-04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굼뜬 건 저랑 비슷하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