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와일라잇 - 나의 뱀파이어 연인 ㅣ 트와일라잇 1
스테프니 메이어 지음, 변용란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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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내가 서 있는 앞자리에 앉아있던 여학생이 가방에서 책을 꺼내들었다.

책을 워낙 좋아하다보니,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을 보게 되면 '저 사람은 무슨 책을 읽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그래서 흘끔흘끔 제목을 확인해보곤 하는데, 그 여학생이 꺼낸 책 제목은 <트와일라잇>이었다.

트와일라잇? 아하, 요즘 한창 떠들썩한 그 책이군!

얼핏 보기에 표지도 예뻐 보이고, 도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그리 인기가 많을까 궁금해서 읽어 보고 싶었다.

그리고 한 달여쯤 지나 나도 드디어 <트와일라잇>을 읽게 되었다.

 

그때는 대충 무슨 내용이겠구나, 책 소개를 봤을 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책에 대한 정보는 다 까먹고, 그냥 읽었다.

무슨 내용이 전개될지 전혀 모르고 무작정 읽다가, 주인공이 학교 식당에서 보게 되는 기이한 가족에 대한 묘사를 읽으면서 그제서야 머리를 스치는 한 단어, '뱀파이어'!

그러고보니 작가 소개에 '매혹적인 뱀파이어와 사랑에 빠지는 꿈을 꾼 후, 소설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고 나와 있었다.

이 책은 바로 '인간 소녀'와 '매혹적인 뱀파이어'의 사랑이야기였다.

책을 쥐고 있는 내내 '오, 하느님! 제 꿈에도 이런 뱀파이어를 내려주소서!'라는 부러움 반, 간절함 반으로 읽어 내려갔다.

(꿈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뱀파이어를 만나 사랑에 빠져보고 싶기도 했고,

나도 꿈에서 뱀파이어와 아름다운 사랑에 빠졌다 깨어나면, 소설을 쓸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아주아주 대략적인 줄거리를 살짝 말하자면, 주인공 벨라는 아버지가 살고 있는, 일년 내내 구름이 햇빛을 막아 음침한 마을 포크스로 이사를 간다. 전학 간 학교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듯한 아주 매혹적이고 아름답고 환상적이고 숨이 멎을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뱀파이어' 에드워드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그런 이야기다.

에드워드,에 대해서는 저렇게 긴 수식어를 쓸 수 밖에 없었다.(사실 더 많은 수식어를 붙일 수도 있는데...)

이 책에서 내게 가장 감동적인(?) 부분이, 에드워드에 대한 묘사들이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얼마나 아름답고 멋지고 환상적인 사람, 아니 뱀파이어이길래...아무리 내 머릿속에 그려보려 해도, 그런 사람, 아니 뱀파이어를 본 적도 없기 때문에 상상 자체가 불가능이었다. 그나마 책 표지에 나와 있는 아름다운 일러스트에서 도움을 받아 어느 정도 상상을 해 볼 수는 있었지만.(띠지에 실린 영화 배우의 모습은 애써 외면해야 했다. 아무래도 책 속에서 주는 이미지와 많이 달라서...)

 

워낙에 사랑에 관한 글이라면 소설이든 에세이든 심리서든 잘 읽지 않는데,(전에는 읽었었지만, 갈수록 '사랑'이라는 소재에 공감이 안 되어서 흥미를 잃었다.) 이번에는 무슨 내용인지 모르고 그냥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스르르 빠져들었다. '스르르'는 어쩐지 좀 약한 느낌이다. 이 책을 읽느라 온밤을 꼬박 지새버리고, 동이 튼 뒤에 잠자리에 누워서도 쉽게 잠들지 못했을 정도이니까.

오랜만에 읽은 러브스토리라서 일까, 그야말로 매혹적이다 못해 사람 숨을 멎게 만드는 뱀파이어, 에드워드 때문일까?

정말 간만에 책을 읽으며 가슴이 찌리리릿 하는 경험을 했다.

 

<트와일라잇>을 다 읽고 나서, 마지막 장을 덮자마자 고민에 빠져들었다.

아, 이 시리즈를 다 읽어야 하나 어째야 하나...

나를, 온밤을 지새게 만들고 설렘에 잠도 못 들게 한 책인 건 틀림없지만, 아무리 매혹적인 뱀파이어라도, '뱀파이어'라는 소재가 어쩔 수 없이 대동하게 마련인 공포심은, 내 약하디 약한 심장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전반에서는 아직 '뱀파이어'라는 소재에 적응을 못했기 때문에, 그냥 막연하게 공포심을 느꼈지만,

(나는 공포소설은 못 읽는다. 공포영화도 물론 못 본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좀비'와 '드라큘라'다...)

후반에서는 나쁜 뱀파이어가 등장하고 긴장과 공포가 극에 달하면서 심장 박동을 엄청나게 상승시켜주었다.

에드워드의 입술이 다가올 때 벨라의 심장이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지금 이 다음 편을 읽느냐 마느냐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중인데,

아무래도 나의 이 '부실한' 심장에겐 미안하지만, 읽어야만 할 것 같다.

여기에서 그만 두기에는, 앞으로 이어질 벨라와 에드워드의 러브스토리가 궁금해 미치겠다.

벨라의 '소원'이 이루어질지도 너무너무 궁금하고...

 

결국 나는 꿈에서 뱀파이어를 만나지 못 했다. 에드워드 같은 매혹적인 뱀파이어라면 공포 대신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멋진 뱀파이어를 만난 작가가 참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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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후회남
둥시 지음, 홍순도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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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얼굴에는 입이 하나 있다.

이 하나 밖에 없는 입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먼저, 빼놓을 수 없는 게, 먹고 말하는 일이다. 보통 우리가 입으로 가장 많이 하는 일이 이 두 가지이다.

그 외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뽀뽀를 할 수도 있고, 미운 놈 깨물어 줄 수도 있고,

코가 막히면 숨도 대신 쉴 수 있고, 차력사라면 입으로 차를 끌 수도 있다.

담배를 필 수도 있고, 풍선을 불 수도 있고, 휘파람을 불 수도 있고, 관악기를 연주할 수도 있고, 메롱도 할 수 있다.

아마 이 외에도 더 많은, 입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하나 밖에 없는 입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참 많기도 많다.

그리고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지만, 입이 열심히 하고 있는 일이 또 있다.

남의 가슴에 상처 내기, 한 사람의 목숨 들었다 놓기, 사람 사이 갈라 놓기, 남의 눈에 눈물 빼기...

 

이 책의 주인공 광셴이 바로 입으로, 말로, 저런 일을 벌이고 있는, 그러고나서 죽도록 후회하는 우리의 '미스터 후회남' 되시겠다.

광셴은 어려서부터 저 입을 조심하지 못해서, 많은 것을 잃고 후회하며 살아간다.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를 잃고, 여동생을 잃고(한 마디로 온 가족을 잃고), 사랑도 잃고, 돈도 잃고, 신용도 잃고, 명예도 잃고,

아무튼 입으로 잃을 수 있는 건 다 잃는 듯하다.

 

광셴의 그 입이 처음으로 문제를 일으킨 것은 '성'에 관한 일이었다.

(이 책은 처음부터 성적인 소재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데-전반적인 소재가 '입'과 '성'이다-그 덕인지 술술 잘 읽힌다.)

흘레 붙은 개 한 쌍을 한 건물에 사는 사람들이 다같이 구경하고 나서, 그 날 밤 몸이 달아버린 어른들에서 시작되어 점차 사건이 벌어진다. 그리고 그 사건들에는 목격자 광셴이 있고, 그 사건을 일파만파 커지게 만드는 광셴의 입이 있다.

그래서 책 속에는 광셴이 자신의 입을 때리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모든 문제의 원흉인 그 입에게 벌을 주려는 것이다. "요놈의 주둥이!!"라는 대사를 살짝 곁들여주면 더 좋을 듯.

하지만 그 입이 매 몇 대 맞는다고 쉽게 다물려질까?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가고, 어려서부터 함부로 나불대던 '주둥이' 역시 평생이다.

하지만 광셴이라고 아무 생각없이 무조건 입을 놀리기만 한 건 아니다. 그 뒤엔 어김없이 후회가 따른다.

말 해 놓고 후회한다. 저질러 놓고 후회한다.

그때....했더라면, 그때....이랬더라면, 그랬다면.....일텐데, 그랬더라면.....했을텐데....

이런 후회의 말들이 정말 질리도록 나온다. 내 평생 한 후회보다 더 많은 후회를 이 책에서 만나게 된다.

하지만 후회한들? 이미 늦었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것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있다.

 

말로, 행동으로 온갖 후회스러운 일들을 저지르는 광셴의 모습에서 종종 내 모습도 발견한다.

나도 말로 남에게 상처를 준 적이 있고, 괜한 말을 했다고 후회한 적도 많고,

이건 진작 했어야 하는데, 이건 하지 말걸, 그런 숱한 후회 속에서 살고 있으니 말이다.

(나도 말 실수를 할 때마다 내 입을 때리는 벌을 줬더라면 지금쯤 입이 퉁퉁 부어 고름이 줄줄 흐르지 않을까?)

아마 광셴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한 사람이 광셴처럼 그렇게 많은 후회스러운 짓을 저지르지는 않았어도, 우리네들의 후회스러운 일들을 모두 모아놓으면

바로 광셴의 후회의 역사와 비슷해지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지난 날에 후회될 짓을 했다고 너무 자학하진 말길.

우리 삶이라는 게, 그렇게 후회를 거듭하면서, 그 후회의 상처가 아물고 딱딱해 진 위에 좀 더 나은 삶을 일궈나가는 것일테니까,

그 후회가 없었다면 그만큼의 반성과 깨달음도 없었을테니까.

광셴의 후회하는 삶을 통해, 내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광셴은 그런 후회스러운 삶 중에 '옌스화(延時話)'라는 내공을 연마하기도 한다. 

바로, 무슨 일이든 심사숙고 한 후에야 입을 열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남이 어떤 질문을 해도 바로 답하지 않고, 바둑을 둬도 성급하게 알을 옮기지 않는다.

생각 생각 생각한 끝에야 비로소 말하고 행동한다.(얼마 가진 못하지만.)

이런 '옌스화'는 나도 열심히 갈고 닦아야 하는 내공인 듯 싶다.(역시, 너무 지나치지는 않게...)

 

이 책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마지막 부분에 광셴이 의식 없는 아버지 앞에서 자신의 '후회록'을 털어놓는 부분이다.

십여 페이지(!)에 걸쳐 이어지는 '만약....더라면'을 꼭 한 번 맛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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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유쾌한 인물상식 ㅣ 교실밖 상식 시리즈 4
김동섭 지음 / 하늘아래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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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상식에 도움이 되는 책 좀 추천해주세요." "상식을 쌓고 싶은 데 어떤 책을 읽어야 하죠?"

책카페에의 질문 게시판에서 종종 보게되는 질문이다.

한 번도 그런 질문에 답해 본 적은 없지만, 저런 경우에는 무슨 책을 추천해야 하나? 무슨 책을 읽어야 하나?

혼자 여러 책들을 머릿속에 떠올려보곤 했다.

그때 내가 내린 결론은, 모든 책, 이었지만.

(책을 읽다보면, 뜻하지 않은 곳에서 '아하! 그렇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을 때가 많다. 소설책에서도.)

 

이 책을 보며, 그러니까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나는 종종 접했던 저 질문들을 떠올렸다.

상식을 쌓고 싶은데 어떤 책을 읽을지 모르겠어서 고민하던 저네들이 원하던 책이, 이런 책은 아니었을까?

왜냐면, 그런 내가 원한 책은 이런 책이었으니까 말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도 꽤나 '아는 게' 없다.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학교에서 배우는 게 다 쓰잘데기 없어 보였다.

머리 아픈 수학 공식이며, 과학, 화학 그런 거 배워서 어디에 써먹을까 싶었고,

무슨 시대에 누가 살았고, 몇 백 년 전에 무슨 대륙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으며, 그런 거 다 외워서 뭐하려나, 싶었다.

그런 내가 가장 '실용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했던 건, 말 그대로 정말 실용적이었던, 가사, 가정 수업 정도였던 것 같다.

그와는 상관없이 좋아했던 국어, 문학 수업이 있었고.(그렇게 따지자면 문학은 뭐에 써먹으려고?)

그땐, 먹는 거 참 좋아했나보다. '써 먹을 데' 없어 보인다고 배움에 시큰둥했으니.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해 더 넓은 세상에 나와서야,

나는 그때 내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던지 땅을 치고 후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중에 관심이 생겨, 어디 이거 한 번 공부해볼까? 싶은 것들이 가만히 생각해보면,

다 그때 내가 콧방귀를 쳤던 것들인 경우가 많았다.

'저 사람은 어쩜 저렇게 아는 게 많지?'하고 부러움에 의기소침해질 때도, 가만 생각해보면,

그 사람이 유별나게 아는 게 많은 게 아니라, "학교 다닐 때 다 배운 거잖아."라고 말할 그런 내용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까, 학교 다닐 때, 열심히 배워두는 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됨을, 학교 떠나고 느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뒤늦게 '상식'에 목마름을 느낀 나인지라, 제목에 '상식'이 붙은 책을 보면 귀가 솔깃해지곤 한다.

 

이 책은 '인물상식'이다. 거기다가 내가 좋아하는 '문학' 분야와, 요즘 피아노를 배우며 관심을 갖게 된 '예술' 분야와,

얼마 전에 철학 서적을 읽고 관심이 생긴 '철학', 이렇게 세 분야를 아우른 '인물상식'.

청소년을 위해 쓰여진 책이라니 지루하거나 어렵지도 않겠다 싶어서 반가운 마음으로 이 책을 만나보았다.

 

이 책은 정말 정리가 깔끔하게 잘 되어 있다.

문학, 철학, 예술에 대해서 대략적인 정의로 그 장을 열며, 각 분야는 모두 동서양으로 나뉘고,

거기에서 시대에 따라, 나라에 따라 나뉘어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덧붙인다.

인물 소개 순서도 무작위가 아니라 출생년도를 기준으로 하였기 때문에,

인물들의 선후 순서가 깔끔하게 정리된다.

각 인물들이 활동한 시대 배경으로 시작하여, 생애, 주요 활동 및 업적을 들려주고,

그 중간 중간에는 주요 저서라든가, 주요 이론 같은 것을 따로 박스에 담아 설명해두었다.

그리고 한 분야가 끝날 때마다 적지 않은 페이지를 할애하여 핵심용어를 정리해주고 있는데, 이 부분도 무척 마음에 든다.

용어 하나 하나 그 정의를 읽고 있자니, 마치 수험생 시절로 돌아가 밑줄 박박 그어가며 외워야 할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주변의 중고등학생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같은 내용이더라도, 교과서로 볼 때는 고리타분하고 따분하게 느껴지지만,

교과서 외의 책으로 볼 때는 괜히 더 재미있고 머리에 잘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은, 나만 느끼는 게 아닐 것 같은데,

이런 책은, '교과서 외 책'이니 일단 읽는 마음 편안하고, 내용은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니,

일석이조, 도랑치고 가재잡는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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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였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 -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김선우 외 지음, 클로이 그림 / 비채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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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중에서

 

나의 책읽기에는 슬픈 징크스가 하나 있다.

바로, '사랑'과 관련된 책에서는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

남들이 정말 감동적이고 재미있다고 추천 한 '사랑 소설'에서도,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는 '사랑 에세이'에서도,

내 가슴은 데워지지 않는다.

보고 나면 괜히 서러움만 더해질 뿐이다. 내 가슴에는 '사랑'이 비었구나,를 깨닫고는 말이다.

요즘 시집에 한창 빠진 터라, 이 시집을 만나보면서도, 내심 걱정했다.

나, 이 시집도 아무런 감동도 받지 못하고 차가운 마음으로 읽으면 어쩌나...

 

하지만 아름다운 시 앞에서 무너지고마는 내 '차가운 심장'을 느끼며

이 시집을 무척이나 아름답고 달콤하고 감미롭고 애잔하게 읽을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시의 힘이 위대함을 깨달았다.

 

이 시집은 시인 14명이 모여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를 추천하고, 추천작 중 50편을 엮은 것이다.

사랑에 빠졌을 때 한 번쯤 읊어봤을, 예쁘게 베껴 그리운 사람에게 한 번쯤 보내봤을 반가운 시들을 만날 수 있었다. 

장석남, 김선우 시인의 아름다운 해설은 시를 더욱 빛나게 해준다.

해설은, 단순히 작품 분석인 것이 아니라, 그 시인에 얽힌 혹은 그 시에 얽힌 일화가 재미있게 실려 있기도 하고,

(신경림 시인의 '너희 사랑'과 '가난한 사랑 노래'에 얽힌 이야기는 무척 감동적이었다.)

사랑에 관한 아름다운 생각들이 괜시리 내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도 만들어준다.

거기에 시를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으로 그려낸 클로이의 그림이 곁들여져,

읽는 내내 행복한 책이다. 나처럼 '사랑' 앞에 차가운 가슴을 가진 사람이라도 말이다.

 

창호지 문에 달 비치듯

환히 비친다 네 속살꺼정

검은 머리칼 두 눈

꼭두서니 물든 두 뺨

지금도 보인다 낱낱이 보인다

사랑 눈 하나 못 뜨고 헛되이 흘려버린 불혹

                     - 이근배, '찔레' 중에서.

 

'불혹이 되도록 사랑에 눈을 못 뜨면 인생에 이루어야 할 일이 도대체 무엇이겠는가.'라고 김선우 시인이 해설에 적어놓았다.

그 문장을 오래오래 곰곰 생각해보았다.

불혹이 되도록 사랑에 눈을 못 뜨면 인생에 이루어야 할 일이 도대체 무엇일까?

갑자기, 불혹이 되기 전에 사랑에 눈 뜨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불혹이 되어 찔레 덤불 가시의 아픔을 맛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

 

비록 사랑에 빠진 눈으로 보지 않아서, 이 시들과 많은 교감을 하진 못했을 테나,

'그리움' '기다림'을 노래한 시들은 오래전 짝사랑에 빠졌던 내 마음을 생각나게 해주어,

간만에 가슴이 콩콩 뛰는 시간 누려보기도 했다.

이미 잊은 지 오랜 감정이었는데, 시를 통해 되살아 난 그 느낌들, 참 그립다.

 

아름답고 아름다운, 사랑스럽고 사랑스러운, 감미롭고 감미로운 시집이다.

특히 사랑에 빠진 이들이 읽으면 더없이 좋을!

(한 지인은 이미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을 그의 연인에게 문자메시지로 '날려'주었다 했다.

이후 알콩달콩 아름다운 대화들이 오갔음은 당연한 일.)

 

김용택 시인의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를 읽으며,

문득 달이 떴을 때, 달 떴다고, 전화를 할, 전화를 해 줄 상대 하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이 밤이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라고 말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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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60
오규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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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조로운 것은 生의 노래를 잠들게 한다.

머무르는 것은 生의 언어를 침묵하게 한다.

人生이란 그저 살아가는 짧은 무엇이 아닌 것.

문득-----스쳐 지나가는 눈길에도 기쁨이 넘치나니

가끔은 주목받는 生이고 싶다-----CHEVALIER

                      -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 중에서.

 

한 시인의 '추천 시집' 목록에서 보고 메모해 두었다가 구입한 시집이다.

추천해주신 서른 권의 시집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제목이었다.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그렇지, 가끔은 주목받는 생도 동경하게 되지.

 

며칠 전에 이비인후과에 가면서 가지고 가,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읽었다.

(토요일 오전의 이비인후과는 원래 그렇게 사람이 많나? 한 시간 넘게 기다렸다!)

집에서 살짝, 휘리릭 넘겨 보았을 때는 왠지 꽤나 어려워보인다, 싶어서 어찌 읽을까 걱정 했었다.

그런데 막상 책장을 펼치니, 첫 시부터, 사람 마음을 사로 잡는 게 장난이 아닌 거다.

애써 한 시간 기다려 놓고는 이름 부르는 거 못 들어 진료 놓칠 뻔 했다.

시 한 편 한 편, 아름답고 아름다워서 잠시라도 덮는 손길이 어찌나 아쉽던지.

(시집은 서평 쓰기 어렵다. 내 짧은 글 솜씨로는.

다만, 이렇게 내 마음 울린 시집이라는 것만이라도 전달되길...)

 

 

눈싸움은 깨끗한 것으로 싸우는 싸움

얻어맞으면 체온이 더 따스하고

내가 피하면 얻어맞은 벽도 깨끗해진다

눈싸움은 눈덩이가 녹는 싸움 눈이

녹고 나와 적이 녹고

함께 물이 되어 숲이나

강으로 가서는 물로 흔들린다

눈이, 하얀 눈이 온다

나는 눈이 오면 적들과 눈싸움을 한다

눈이 제일 먼저 쌓이는 낮은 곳에서

이기기보다 지기 위해서

                  '詩人 久甫氏의 一日 5

                           ----눈싸움' 중에서.

 

요즘, 저어기 먼 나라에서 들려오는 전쟁 소식에 마음이 참 아픈데,

이 시를 보니, 그 아픔이 다시 크게 진동한다.

언제쯤이면 전쟁 없는 세상이 올까, 이 세상에서 전쟁이 끝나는 날이 오긴 올까?

눈싸움 빼곤, 모든 싸움이란 싸움은 다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

지금 그들도, 무시무시한 총칼 대신, 맞으면 맞을수록 깨끗해지고 따뜻해지는 눈을 뭉쳐서 싸움 한바탕 해본다면,

니 편 내 편 없이, 하얀 눈밭위에서 한바탕 눈덩이를 던지며 싸움 해본다면,

"하하하" 웃으면서 싸움을 끝낼 수 있지 않을까.

갑자기, 눈싸움이 하고 싶어진다.(이제는 겨울이 눈을 잊은 지 오래다.)

 

'이기기보다 지기 위해서' 사는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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